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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스스로 수치심을 키웠다 그게 수치스러웠다”

그때 그 여자, 모니카 르윈스키

  •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okforallbeings@gmail.com

“스스로 수치심을 키웠다 그게 수치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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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트럼프, ‘힐러리 공격용’으로 르윈스키 거론
  • ● ‘세기의 창녀’ 낙인 후 사회심리학 몰두
  • ● 10년 은둔 끝내고 ‘대중 속으로’
  • ● “연민과 공감으로 모욕의 문화 바꿔내자”
여름이다. 미 대륙의 대통령선거 열풍도 달아올랐다. 세계 최대의 군사력을 지닌 미국의 통수권을 주류 엘리트 여성 정치인이 차지할지, 아웃사이더 부동산 재벌이 거머쥘지를 놓고 지구촌의 관심 또한 뜨겁다.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로 각축이 좁혀지자, 공격의 구도는 당내 경선후보를 넘어 두 대표주자의 싸움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역시나 한 여성의 이름이 수시로 거론된다. 힐러리 클린턴이 권력, 성공, 유명세를 덥썩 물 때마다 마치 하나로 연결된 낚시찌처럼 세상으로 나오는 인물이다. 모니카 르윈스키(Monica Samille Lewinsk).



18년 전 기억 끄집어내기

5월 6일 오리건 주 유세에서 트럼프가 그녀를 언급했다. “힐러리가 빌 클린턴과 추문을 만든 상대 여성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읽어봤습니까?” 이 질문에 수면 아래 잠자던 여러 개인의 이름이 거론됐다. 응답하는 대중이 더욱 노골적인 단어를 내뱉도록 유도하는 트럼프식의, 질문 아닌 질문이다.

그동안 트럼프는 여성을 향해 막말을 일삼았다. CNN 조사에서는 여성 유권자의 73%가 그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그런 그가 공격의 방향을 힐러리에게로 돌리며 여성 표심(票心)을 겨냥한 것이다. “만약 힐러리가 남성이었다면 5%의 지지도 얻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녀가 겉모습만 여성일 뿐이라는 공격이다.

트럼프는 가부장적, 청교도적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 성향의 여성들이 힐러리에게서 등을 돌리도록 추문을 들췄다. 제대로 점화됐다. 정치, 경제, 외교적 현안들은 이성적으로 다가가야 하기 때문에 피로감을 주는 반면, 일상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가십들은 이성 이전에 감성에서 쉽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빌 클린턴과의 추문을 낳은 상대 여성’ 거론은 향후 4년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논의의 장인 선거를, 단순한 감성적 표 대결 구도로 가져가기 위한 트럼트의 전략적 발언이다. 이미 공화당 내 경선을 인신공격 진흙탕으로 몰고가 대승가도를 달려온 트럼프다. 그는 대중의 마음이 활활 발화하는 지점을 잘 안다. 그만큼 르윈스키와 빌 클린턴의 오래 전 스캔들은 여전히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있다.

1998년에 벌어진 당시 현직 대통령의 성(性) 스캔들이 아직까지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것은 두 가지 방향에서 힐러리 클린턴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힐러리-르윈스키 함수

하나는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누렸던 경제호황을 그리워하는 기성세대에게 과거의 성과를 탈색시킬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힐러리에게 덧씌워진 ‘진실성’에 대한 물음이다.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도 ‘힐러리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내하는 여성이다’라는 중첩된 네거티브 이미지가 있다. 많은 이가 힐러리를 ‘속내를 알기 어려운 마초적 여성’으로 느낀다. 힐러리는 똑똑하고 국정운영 능력이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여성이 갖는 ‘보살핌’의 온기를 자신의 이미지로 끌어들이지 못한다.

르윈스키의 이름은 거론되지만, 정작 불어닥친 돌풍 안에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집단의 권력투쟁 속에 개인의 존엄은 무시된다. 영국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문명이 갖는 가장 큰 위험 요소를 ‘개인과 집단의 불화’로 본다. 세계화한 질서 속에서 경제 및 사회적 문제는 세계적으로 작동하는 힘에 의해 발생하지만, 책임은 철저히 개인에게 지워진다. 따라서 살아남으려면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은 세계시장의 변동으로 촉발됐지만, 그로 인해 밀려난 자는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저임금 국가로 떠나버린 미국 공장에서 해고된 숙련노동자들은 시급 1달러라도 더 받기 위해 서비스직을 전전한다. 경제만이 아니다. 거대한 미디어가 지배하던 20세기 말, 인터넷 혁명이 일어나고 세계가 수평적으로 연결됐다. 개인이 콘텐츠를 생산하는 소셜 미디어 시대다. 이 와중에 사생활은 개인의 통제 너머로 밀려들어간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은밀한 순간마저 음모 속에서, 해킹 속에서, 혹은 조작된 여론 속에서 대중과 시장에 휘둘린다.

르윈스키가 조롱받던 1990년대 후반은 기존 미디어가 인터넷에 진출하던 시기다. 광고 유치를 놓고 경쟁하는 매체들은 앞다퉈 선정적인 제목으로 독자를 유인했다. 24세 백악관 인턴 직원의 연애 상대가 대통령이다! 미디어의 파헤침은 집요했고, 정치적 공방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달았다. 대중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 스캔들은 미국은 물론 유럽, 아시아, 한국까지 기성세대의 ‘컴맹 탈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장 큰 피해자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는 ‘사이버 왕따’ ‘사이버 폭력’이라는 사회적 개념이 회자되지만, 당시에는 그저 한 남성 권력자의 성적 취향, 상대 여성의 외모, 클린턴 부부의 이혼 여부만이 입방아에 오르내렸을 뿐이다. 여기에 개인이 당하는 정신적 피해는 거론되지 않았다. 르윈스키는 베레모, 그리고 빌 클린턴의 정액이 묻었다는 블루 드레스, 단 두 개의 이미지만으로 조각돼 ‘세기의 창녀’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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