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중식 기자]
다행스럽게도 요즘 예보는 다른 이유로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6월 1일로 설립 20주년을 맞이한 것. 예보는 그간 금융 안정의 한 축으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온 덕분에 국내외에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예보는 ‘성년’을 맞아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선제적 위기 대응 능력을 갖춘 최고의 금융 안정 및 예금자 보호 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선포했다. 이를 위해 기업 이미지 통합(CI)도 교체했다.
6월 10일 곽범국 예보 사장을 만나 예보의 그간 성과와 미래 비전에 대해 들었다. 곽 사장은 한양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기획재정부에 들어간 뒤 금융정책실에서 오래 근무했다. 2010년엔 농림수산식품부에 파견돼 2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이후 국유재산심의관, 국고국장,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 등을 역임하다 지난해 5월 예보 사장에 취임했다.
“예금보험료는 비용 아니다”
▼ 부실을 사전에 막는 선제적 대응 능력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사전적 리스크 관리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하는데, 그게 성공하려면 금융감독원(금감원)과 감독 정보를 충분히 공유해야 할 텐데.“기본적으로 금융권 핵심 정보에 대해선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법에 금감원과의 공동조사와 단독조사권이 명시돼 있어 1년에 업권별로 한두 곳씩 공동검사도 같이 한다. 연말엔 다음 해 공동검사 계획을 짜고 분기별로 협의도 해서 잘 진행하고 있다. 한국은행(한은)도 최근 금감원과 함께 농협은행 공동검사에 나갔다는데 예보도 그 자료를 받기로 했다.
3개 기관이 협조를 잘하니 우려할 필요는 없다. 물론 검사를 받는 금융회사에 금감원이나 예보 같은 감독기관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예보 스스로 역량을 축적해 예보만이 할 수 있는 특장을 잘 살리면 금감원이 먼저 나서서 예보와 공동검사를 요청할 것이다. 그런 부분에 대한 신뢰관계를 계속 쌓아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 사전적 리스크 관리 활동과 관련해 금융회사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모형을 개발했다고 들었다.
“최근 그것을 마지막으로 점검하면서 한은과 금감원 관계자들을 초청했다. 두 기관의 고유한 시각도 반영하려는 취지였다. 상당히 긍정적인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아직 모형 개발 초기라 테스트 결과를 해석할 때는 반드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도록 강조했다. 기계적 모델에서 나오는 값만으로는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은행 vs 농협은행
▼ 금융회사의 재무건전성에 따라 예금보험료를 달리 적용하는 차등 보험요율제도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보험요율 차이가 징벌적 수준이 돼야 하지 않나.“2018년이 되면 요율 차이가 ±10으로 오른다. 최고 20%포인트 차이가 나므로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닐 것이다. 이 제도는 예보의 가장 큰 정책수단이기에 금융업권별로 잘 협의해 정착시켜갈 예정이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금융회사에서 아직도 보험료를 비용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가령 어떤 금융기관이 예금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어느 예금자가 그 금융기관을 이용하겠나. 관성적으로 비용으로 인식하는 사고방식은 고쳐야 한다.”
▼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피해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사전적 리스크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같은 곳에 올인(다걸기)하는 우리 금융기관의 대출 관행, 즉 쏠림 경영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도 중요할 텐데.
“차등 보험요율 부과 외에 지난해부터 추가로 차등평가 결과 종합 분석 자료도 해당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전달하고 있다. 가령 퇴직연금에 대한 별도 리스크 관리가 안 돼 있다든지, 저축은행이 대출 한도를 회피하려 여러 곳과 공동으로 대출하는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면 이런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시할 예정이다. 금융회사 스스로 고쳐가도록 하려는 취지에서다. 또한 동급 금융회사 간 평균 비교평가 자료도 제공할 것이다. 물론 금융회사들이 서로 벤치마킹하겠지만 제3의 평가기관이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 우리 금융회사들은 평소엔 리스크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가 경기침체기에 접어들어서야 뒤늦게 리스크 관리를 한다고 부산을 떠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은행 돈을 빌린 기업들이 ‘비 올 때 우산 뺏어간다’는 비난도 많이 한다.
“사실 리스크 관리란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선 외환위기 직후에야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그 이전에 은행은 그야말로 ‘대마불사(大馬不死)’였다.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계속 외형 성장 위주의 경영을 해왔다. 지금도 이런 관행이 남아 있다. 금융회사 CEO가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다 보면 평소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CEO라면 위기 때 빛을 발하도록 평소에 리스크 관리를 잘해야 한다.
최근 우리은행 사례가 좋은 본보기다. 물론 우리은행도 과거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못해 큰 위기를 맞은 때도 있었지만 이순우 전 행장과 이광구 현 행장은 경기침체에 접어들기 전에 선제적으로 충당금을 쌓고 여신 관리에 신경 쓰는 등 내실 있는 경영을 해왔다. 그 결과 최근 조선업과 해운업 부실 문제가 터졌는데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면 농협은행은 그간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한 이후 외형을 키우면서 이 업종 저 업종 가리지 않고 대출해줬고, 그 결과 부실채권이 증가했다.”
▼ 우리은행 얘기가 나왔으니 민영화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다. 지금껏 우리은행 민영화에 실패한 것이 궁극적으론 정부에 민영화 의지가 없기 때문 아니냐는 시장의 의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