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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진정한 치유는 인성으로 하는 것”

대장암 명의(名醫) 김남규 연세대 의대 교수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진정한 치유는 인성으로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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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3년간 대장암 환자 9500명 수술
  • ● 평균 5년 생존율 결장암 88.4%, 직장암 84.5%
  • ● “수술 임할 땐 항상 ‘올인’”
  • ● 환자와 공감…‘당신을 만나서 참 좋았다’
“진정한 치유는 인성으로 하는 것”

김남규 교수의 에세이집 ‘당신을 만나서 참 좋았다’. [박해윤 기자]

9년 만의 해후다. MBC 메디컬 드라마 ‘하얀 거탑’이 인기 절정이던 2007년 2월, 기자는 대장암 수술 현장을 참관했다.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중앙수술실에서다.

이동침대에 실린 채 수술실로 향하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탄 암환자의 퀭한 눈빛. 절박감에 사로잡힌 그를 그저 간절함으로만 지켜볼 수밖에 없는 가족의 무력감. 이후 몇 겹 유리문 저편, 단절된 미지의 공간에서 벌어질 일에 대한 피 말리는 긴장감과 형언키 어려운 온갖 상상.

언제, 누구라도 맞닥뜨릴 수 있는 암수술 현장을 생생히 보여주려 한 그 르포 취재에서 아직껏 잊히지 않는 장면 하나가 있다. 개복(開腹) 수술이 이뤄지는 동안 살짝 훔쳐본 73세 남성 대장암 환자의 평온하기 그지없는 얼굴. 의식이 없어 자신의 몸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사투 따위는 까맣게 모를 수밖에 없는 극명한 대비. 순간 떠오른 건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었다.

당시 집도의는 국내 최고의 대장암 명의(名醫)로 꼽히는 김남규(60) 세브란스병원 외과부장 겸 연세대 의대 외과학교실 주임교수다. 김 교수가 본격적으로 대장암(결장암+직장암) 수술에 나선 건 1993년. 이후 올해 5월 말까지 그가 수술한 대장암 환자는 9500여 명에 달한다. 대장암 외 항문질환, 염증성 장질환, 외상 등을 합치면 총 수술 건수는 1만2000여 건. 전공의를 시작한 1982년부터 30여 년을 거의 다 수술실에서 보내지 않고선 불가능한 횟수다.

수술 방법도 개복 수술에서 복강경 수술, 로봇 수술에 이르기까지 환자의 상태에 맞게 최적화한다. 360여 건의 직장암 로봇 수술도 국내 최다 기록이다. 대한대장항문학회장과 이사장을 지낸 그는 대한대장암연구회장, 아시아태평양대장암학회장도 맡고 있다.



年 450건 수술

8월 2일 김 교수를 만났다. 매일같이 생명의 회복과 소멸을 접해야 하는 삶이 궁금했다. 오후 4시. 그는 경남 창원에서 올라온 70대 남성 환자를 수술실에서 살피고 나온 참이었다.

“첫 수술을 내가 했는데 항암치료를 받다 암이 재발해 다시 수술하는 거예요. 다른 환자 수술이 많아 예정 시각보다 30분쯤 늦게 시작됐죠.”

▼ 수술을 얼마나 자주 합니까.

“지금은 암수술만 하는데, 연간 450여 건쯤 돼요. 전에 더 많이 할 땐 500건도 넘었죠. 월·목요일은 하루 종일 수술하고, 화·수·금요일은 오전 혹은 오후 반나절 외래진료를 하고 나머지 시간엔 수술을 합니다. 주말 빼곤 매일 수술해요. 일주일 평균 10건 이상. 조교수급까지는 ‘응콜(응급실 콜)’을 받아 주말에도 응급수술을 나가야 하지만, 나처럼 나이 든 사람은 안 받지. 의사들끼린 ‘응콜’을 ‘별밤지기’라고도 하죠.”

일과가 빽빽하다. 오전 6시 전에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차를 몰고 나와 신촌의 병원에 도착하면 6시 20분쯤. e메일을 점검하고 7시에 주임교수로서 외과 전체 회의를 주재한다. 그러고는 곧 외래진료나 수술. 수술이 늦게 끝나도 환자가 병실로 옮겨진 후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하느라 퇴근은 밤 11시를 넘기기 일쑤다. 귀가 후에도 밀린 일을 하거나 논문을 수정한다. 수면은 4~5시간. 그럼에도 피곤한 기색이 안 보인다.

▼ 왜 하고많은 직업 중 의사를….

“내 주변에 의사가 한 명도 없었어요. 평소 의대 진학은 생각지도 않았고. 그런데 피난민 출신인 부모님이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느 날 말씀하셨어요. ‘넌 장남이고 성격이 차분한 데다 공부도 잘하니 (동생들도 보살필 겸 안정적 직업인) 의사가 되는 게 좋겠다.’ 피나 인체 해부 사진 등은 끔찍해서 아예 못 보고 눈을 감아버릴 정도로 마음이 여리고 약했는데도 주저 없이 ‘네’ 했죠.

원래는 이공계 순수과학을 전공해 교수나 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땐가 고1 땐가 신앙에 눈뜬 뒤로, 사회에 나가면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 남한테 좀 더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의술을 배워야겠다던 참이었어요. 그래서 연세대 의대 진학을 결심했죠.”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세례명은 ‘비오(Pius).’ 



“김군, 대장항문외과 해라”

▼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달프기로 이름난 외과를 왜 선택했습니까.

“수련의 과정을 마치면 임상과를 지원하는데, 당시 세브란스병원 외과의 트레이닝 강도가 너무 세서 분위기가 안 좋았어요. 한두 주 해보다 도망가는 게 다반사고. 의대 졸업성적이 최상위권이라 어떤 과도 지원할 수 있었지만, 환자의 몸에 직접 손을 대서 병을 치료하는 외과의 매력을 떨칠 수 없었죠. 어릴 때부터 미술이나 손으로 만드는 것에 재능이 있었고, 논리적이고 추론하는 능력보다는 관찰력과 기억력이 좋았던 때문이기도 해요. 그런 특성이 외과에 맞지 않겠냐 싶어 남들이 힘들다고 말려도 뛰어든 겁니다.”

하마터면 그는 대장항문외과 전문의가 되지 못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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