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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마지막 작품 될 것 80년대의 진실 제대로 그리겠다”

장편소설 ‘대위법 80년대’ 연재 이문열

  • 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내 인생 마지막 작품 될 것 80년대의 진실 제대로 그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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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와 모루

-구상은 언제부터 한 것인가.
“2005년부터 쓰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이리저리 밀려 시작하질 못했다. 3년 전쯤엔 본격적으로 쓰려는데 암 수술을 하는 바람에 또 늦어졌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그동안 막연하게 여겨졌던 80년대의 의미들이 최근 몇 개월을 거치면서 명확해지는 것을 느꼈다. 또한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더욱 농익어가는 것을 느꼈다.”

-분량은 어느 정도로 예상하고 있나.
“총 3권이다. 처음엔 ‘변경’처럼 10부작으로 해서 여러 등장인물의 시각으로 80년대를 조망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런 대하소설이 허용되는 시대가 아닌 것 같다. 주인공 한 사람의 시선으로 80년대를 볼 생각이다. 3권도 요즘 독자에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그 정도가 아니고서는 10년의 세월을 담아내기 어렵다.”

-연재소설 제목이.
“처음엔 ‘도가니와 모루’로 하려고 했다. 쇳물을 뽑아내려 달궈진 도가니와 쇠를 두드려서 뭔가를 만드는 모루가 1980년대를 은유적으로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 설명적인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대위법 80년대’로 정했다.”

-대위법(對位法)이 무슨 뜻인가.
“대위법은 여러 개의 운율이 동시에 흐르는 음악이다. 여러 가락이 함께 흐르면 때론 잡음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조화를 이루면 멋진 푸가(둔조곡)가 된다. 1980년대를 음악으로 표현하면 여럿이 한목소리로 부르는 단성 음악의 제창이 아니고 대위법처럼 여러 개의 멜로디가 각계 층위에 따라 이쪽에서는 민주화의 노래, 다른 쪽에서는 산업화의 노래로 나오고 세계화의 변화도 섞인 복합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민주화나 산업화 어느 한쪽만 강조하는 건 1980년대의 시대정신을 단선음악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해선 안 된다.”

작가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작고했을 때 모든 언론이 그를 민주투사로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심지어 이만섭, 박태준이 작고했을 때도 민주 인사로만 부각하더라. 하나의 멜로디만 흐르는 게 좋은 것은 아니다”라며 산업화의 가치가 퇴색하는 시류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광주의 또 다른 진실

-광주민주화운동을 어떻게 다룰지 궁금하다.
“그동안 진보 쪽 작가들이 광주에 대해 많이 다뤘다. 하지만 그들이 다루지 않은 이면의 이야기가 많다. 그들의 영웅담, 저항정신은 충분히 이야기돼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필요는 있다. 또한 많은 국민이 1980년대 초를 흔히 3저 호황으로 인해 저절로 경제가 발전한 것으로 아는데, 사실은 큰 고비였다. 자칫하면 1960~70년대 우리 국민이 쌓아올린 산업화 근대화 성과가 다 무너져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이야기도 담으려 한다.”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소설이 예언서나 역사서가 될 필요는 없지만, 그 시대의 여러 가지 진실을 이야기할 책무가 있다. 1980년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80년대를 다룬 진보 시각 작품은 많지만 보수의 시각으로 80년대를 본 작품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 정치적 이념이나 의도, 목적에 사로잡혀 글을 쓰는 것은 피하고 싶다. 진보와 보수 사이에 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충실히 보여줄 생각이다.”

-주인공은 작가 자신의 투영인가.
“주인공은 80년대를 종합적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가능한 직업이 뭘까 생각했는데,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골고루 관찰하고 현장에 뛰어들 수 있는 작가가 가장 적당했다. 내 체험도 잘 활용할 수 있고. 그래서 주인공이 소설가다. 내 체험도 많이 들어갈 것이다. 당시 만난 보수와 진보 인사들, 각 분야 수많은 군상의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이다. 물론 이건 실록이 아니라 소설이다. 주인공에겐 내 모습도 있지만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문학적 고민을 했던 당시 작가들의 고민도 투영될 것이다.”

-그런 작가가 많았나.
“과거엔 지금처럼 문인들이 좌파 우파로 나뉘지 않았다. (사회)참여냐, 순수(예술)냐로 성향이 갈렸는데, 그래도 서로를 인정했다. 내가 등단할 때만 해도 순수문학이 대다수였고, 참여문학은 소수였다. 1980년대 중반만 해도 비율이 5대 5였는데, 1995년쯤엔 7대 3으로 기울더니 10년 뒤엔 9대 1이 됐다. 내 주위에 아무도 없더라. 그래도 나는 저쪽으로 갈 수는 없었다. 세상 어느 것이든 한쪽으로 모두 몰리면 전복될 수밖에 없다. 작고한 소설가 이문구 씨는 글은 순수문학인데 참여문학 편으로 분류됐다. 나중에 조선일보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고 그들로부터 엄청 비난을 받았다. 작고하기 몇 년 전에 만났는데 그 친구들을 신랄하게 비판해 깜짝 놀랐다. 그전엔 그런 말을 전혀 안 하던 사람인데, 그 일로 고초를 많이 겪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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