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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기획|골프,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유

골프를 통한 인생에의 도전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 골프전문기자

  • 김흥구 hksky@golfsky.com

골프를 통한 인생에의 도전

  • 10년간 어떻게 매일 골프 이야기만 쓸 수 있는냐는 질문에 “그건 골프니까 가능하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하는 한 골프전문기자가 있 다. 이제는 골프전문사이트를 운영하는 경영자로 변신한 골프 마니아가 들려주는 골프 이야기. 그리고 골프를 통해 펼쳐지는 인생에의 도전.
세상에서 가장 웃기는 얘기가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소리다. 십년이면 모든 게 변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변하는 건 거의 없다. 골프만 해도 그렇다. 십년 전에도 부킹은 여전히 어려웠으며 골프장 가는 길은 언제나 막혔다. 그때도 돈이 좀 있어야 골프를 쳤고‘ 여성골프 인구 급증’이란 표현도 매년 나타나는 단골 메뉴였다. 당시 골프도 마찬가지다. 십년 전에도 OB가 있는 홀에서는 간이 조마조마했는데 그 긴 세월이 흘렀어도 똑같은 두려움이 당신을 지배한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변하지 않는 것이 골프일지 모른다. 골프는 영원히 똑같다. 속을 썩이는 것도 한결같고 그렇게 속을 썩이는데도 당신은 여전히 골프에 미쳐있다. ‘골프가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 함은 그 변치 않는 속성에 기인한다. 동반자란 ‘좋은 친구’라는 의미인데 그 ‘친구’가 변한다면 그 변하는 순간에 더 이상 ‘친구’가 아니다. 그런데 골프가 ‘인생의 동반자’로 자리잡는 과정에 는 무수한 ‘도전’이 존재한다. 도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골프 자체에 대한 도전’이고 다른 하나는 ‘골프를 통한 인생에의 도전’이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직업

‘골프 자체에 대한 도전’은 누구나 한다. 골프채를 잡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골퍼라면 프로, 아마 가릴 것 없이 평생 스코어에 도전한다. ‘ 인생에의 도전’은 골프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 몫이다. 프로골퍼는 두 가지를 다하는 것이고 나 같은 사람은 스코어 자체보다는 인생도전의 의미가 강하다.

이제 나는 ‘이 땅에 골프전문기자로 자리잡은 한 인간’이 어떻게 골프에 도전했고 어떻게 인생에 도전하고 있는지 그 과정을 펼쳐보이려 한다. 내가 밟아 온 길은 당신이 생각하는 골프를 한층 도전적 으로 만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골프라는 운동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도전 정신’은 너무도 정확히 사람의 일생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추어로서 ‘골프와 인생’을 묶는 ‘도전의 시범’ 을 보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난 한국경제신문 골프전문기자였다. 난 지난 십년 동안 하루 한번 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직업을 가졌다”는 인사를 들었다.

골프기자는 골프를 쳐야 한다. 프로골퍼는 생존을 위해 플레이를 하 지만 골프기자는 그 정도로 처절하지는 않다. 그저 골프를 알려고, 칼럼 소재를 얻으려고 그리고 뉴스를 캐내려 골프장을 찾는다. 남들 의 취미이자 신앙인 골프가 ‘실제 생활에서 늘 접하는 직업’이 되 니 부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 스포츠 기자가 아닌 골프전문기 자는 하루 아침에 되는게 결코 아니다. 골프는 하루 아침에 배워 일 가견을 가질 수 있는 그런 단순 종목도 결코 아니다.

십여년에 걸친 내 골프기자 생활은 무조건적 ‘최초 시도’로 점철 됐다. 그건 일년에 100번 라운드하든 평생 1만번 라운드 하든 플레 이하는 매번 라운드는 언제나 ‘최초 시도일 수밖에 없다’는 골프 속성과 같다. 일단은 ‘골프 온리’를 시도했다. 88년 말 나는 캐나 다 밴쿠버에 8개월가량 체류했다. 그때 선배 한분이 말했다. “그 동네 골프치기 너무 좋은 곳이야. 가서 골프나 배우고 오지.”

맞는 말이다 싶으면 ‘즉각 실행’이 옳다. 난 하숙집에 짐을 풀자 마자 인근 골프장을 찾았고 생전 처음 골프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 골프인생의 시작이었다. 30여년 동안 전혀 안 쓰던 근육 을 이리저리 돌리니 탈도 많이 났다. 또 그곳 레슨이란 게 한국과 같이 매일 하는 게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이 고작. 나는 겨우 그립 잡는 법이나 배우고 돌아온 격이다.

그런데 귀국해서 며칠 지나니 회사에서 ‘골프 좀 맡아라’는 주문 이있었다. 당시 골프를 맡았던 선배가 다른 신문사로 자리를 옮겼 기 때문인데 사실 그때만해도 다소 망설임이 있었다. “골프기자? 골프가 재미있기는 한데 그걸 매일 취재해야 한다는 말이지. 상황으 로 보아 골프 쪽에 한번 발을 담그면 다른 분야 기자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사회부, 경제부 등 해볼 만한 분야가 너무 많은데 그걸 다 포기해?”

그러나 망설임은 금방 사라졌다. 판에 박힌 걸 싫어하기도 하지만 마음 한편에 다음과 같은 계산이 뚜렷이 떠올랐다. “다른 분야 기 자는 누구나 하는 거다. 이 부서 저 부서 도는 건 평범한 거다. 골 프엔 골프라이터란 타이틀도 있다. 멋지지 않은가. 글 쓰는 재주는 있으니 골프라이터해도 쪽 팔리진 않겠다. 주위를 보니 골프 글쓰기 로튀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인생이 별건가 다른 사람 안 하는거 해 보는 거지.” 그래서 회사측에 제안했다. “딱 골프만 하겠다.다른건 시키지 말아 달라” 사소한 것 같지만 그와 같은 ‘구체적 요청’도 시도의 일종이다.

난 골프기자가 된 후 3개월 만에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도전의 구 체적 출발이었던 셈. 제목은 ‘마인드 골프’로 정했다. 당시 보기 플레이하는 주제에 레슨을 쓸수는 없는 것. 그래서 골퍼들 심리부터 후벼파기로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골프 잘 치는 사람은 많아도 그걸 글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마인드 골프’는 필드에서 느낀 ‘쓰 라린 심정’을 있는 그대로 신문에 표현한 것인데 독자가 보면 마치 자신의 얘기인 것처럼 느껴져 재미 있었을 것이다.

세계를 돌기 시작했다

89년부터 지금까지 난 매일 칼럼이나 골프기사를 써온 셈이다. 지난 해인가,동료 기자와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그는 중소기업 전문 기자였다. “중소기업엔 상품도 많고 회사도 무수하다. 이는 취재거 리, 소재가 무궁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김부장의 소재는 딱 골프 한 가지다. 그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십여년 동안 매일 글을 쓴다는 게 신기하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건 바로 ‘골프이기 때문’이다. 골프가 아 니면 수천, 수만의 스토리가 어떻게 나오겠는가. 골프기자로서 애초 의 내 컨셉은 ‘골프에서 분석할 것이 1만 개 있다면 그 1만개 라는 절대치에 도전해보자’는 것이었다. 이는 가능한 한 똑같은 얘기는 안 쓰려는 취지인데 그 절대치에 대한 도전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 다.골프는 하나의 상황을 100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는데 그 가지 치기가 유독 골프에서는 영원하다.

두번째 ‘시도’는 메이저대회와 연결된다. “골프엔 메이저 대회 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회가 4개 있고 그걸 메이저대회라 한다.그런데 유명대회라면 취재를 가야 하지 않는가. 메이저 취재 도 안 해보고 어떻게 골프기자라 할 수 있겠는가.

취재욕심도 있었지만 솔직히 ‘전세계 명코스에서 골프를 치고도 싶고, 세계 톱프로들을 면전에서 만나고 싶다’는 개인적 욕구도 강 했다.

문제는 회사측에서 취재를 보내주느냐의 여부가 아니었다. 취재를 가본 사람이 있어야 그 루트를 알수 있는데 가본 사람이 없으니 절 차부터찾아야 했다. 방법은 뻔했다. 난 마스터스나 브리티시오픈 등의 주최측에 편지를 보냈다. ‘한국 유명 신문사의 유명 골프기자 ’니 절차를 알려 달라고.

그렇게 해서 메이저 취재가 시작됐고 처음 간 대회가 90년 브리티시 오픈이었다. 90년 브리티시오픈은 공교롭게도 골프의 발상지라는 세 인트앤드루스GC올드코스에서 열렸다. 골프의 고향, 발상지! 할 얘 기가오죽 많은가. 현지에서 기사를 보내자 반향이 대단했다. 골퍼 들은누구나 골프광. 누구도 생각 못한 메이저 현지취재는 그들의 오랜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 격이 됐다. 히트를 하니 그 이후 ‘모 든 메이저 100% 현지 취재’ 패턴이 정해졌다.

이 부분만큼은 당시 회사의 판단,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지금은 메 이저 취재가 흔한 일이지만 그래도 그때의 개척이 오늘의 한국골프 에 일조했다는 긍지는 있다.

난 메이저대회들을 통해 ‘골프 보는 법’을 배웠다. 글재주도 늘고 골프도 깊어지며 골프책도 4권(마인드골프, 골프친구들, 골프란 무 엇인가,타이거우즈스윙의 비밀) 펴냈다. 골프기자로는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붙인 골프프로그램(김흥구의 골프매거진- 현대방송 스포 츠 TV)도 97년부터 올 2월까지 4년가까이 진행했다. ‘메이저 취재, 잇따른 골프책 펴내기, 타이틀 프로그램에서의 MC 등’도 ‘최초 도 전’목록의 일부일 것이다.

내가 글을 쓰거나 방송하는 스타일은 언제나 직설법이다. 골퍼들은 ‘골프’자만 들어가면 헷갈린다. ‘이 방법, 저 방법이 있으니 선 택하십시오’식은 절대 정답이 아니다. 51%와 49%의 두 가지 방법이 있으면 무조건 51%를 정답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 믿고 좋아한 다.

두드려라, 열리리라

다 좋은데 당신의 골프실력은 얼마나 되나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좋다.글도 잘쓰고, 골프도 많이 알고, 유명하다고 치자. 그런데 당신은 실제 골프를 얼마나 잘 치는가”

이에 대해선 먼저 다음 얘기를 하고 싶다. 사람들은 골프를 너무 어 렵게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뜻대로 안 되는 게 골프라는 것. 그러나 골프도 인간이 하는 운동이다. 인간이 맘먹어서 안 되는 게 몇가지나 되나. 골프 역시 맘먹기따라 ‘몽땅 된다’는 전제가 긴요 하다.난 선수도 아니고 레슨프로도 아니다. 그러나 ‘원하던 골프 ’는이뤄본 경험이 있다. 이는 골프를 잘친다는 얘기가 아니라 원 하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개념이다. 예를 3개 들겠다.

예1) 90년 브리티시오픈 취재 당시 내 핸디캡은 18쯤 됐다. 난생 처 음 그곳 올드코스에서 플레이할 때 난 18번홀에서 6m 거리의 파퍼팅 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 6m 퍼팅을 넣으면 89타이고 실패하면 90타. 여기서넣고싶지 않은 사람 없다. 나도 진정 기대했다. “이곳은 골프의발상지라 하는데 한국의 골프기자인 내가 그 역사적 코스에 서 9자를 그리긴 싫습니다. 이곳에 골퍼의 영혼들이 있다면 이 퍼팅 을 성공시키게 해 주십시오.” 그 퍼팅은 들어갔다. 90타에서 89타, 그한 타를 염원하는 게 인간의 사소한 욕심일지라도 그 퍼팅이 들 어가는 순간 ‘진정 원하면 골프도 보답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 다.

예2)90년대 중반 나는 뭐가 잘못됐는지 비거리가 갑자기 줄어들었 다. 남들이 6번아이언 칠 때 난 5번우드를 잡아야 하는 참담함이 몇 달동안 계속됐다.그 와중에 겨울이 왔다. 겨울엔 별로 골프를 안 친다.그리고 연습장 가는 스타일도 못 된다. 그해 겨울에 난 연습 장한번 안 갔다. 그러나 연습은 분명 했다. 그저 사무실이나 술집 에서 머릿속으로만 스윙을 그렸다. 원인은 다운스윙 시작이 빠르고, 톱에서부터 힘줘 내리치고, 뭐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시간날 때마다 머릿속으로 ‘백스윙, 다운스윙, 그 스윙평면과 궤도’를 천 천히 상상하며 스윙했다.

그리고 이듬해 봄. 난 첫 라운드에서 전성기보다 더 나가는 거리를 구축했다. 아마 망가졌던 때에 비해 40~50야드는 늘었을 것이다. 이 보다 쉬운 연습, 쉬운 골프가 어디 있는가.

예3)3년 전인가까지 내 베스트스코어는 74타였다. 그런데 내가 존 경하는어떤 분이 베스트스코어를 물어오셨다. 74타가 창피할 것도 없고또 베스트스코어를 억지로 만들 필요도 없는 것이어서 별신경 안썼는데 대답을 들은 그분의 표정에 약간의 실망감이 보였다. “ 음 골프전문기자는 언더파는 쳐야 하는구나.” 딱 두달 후 난 71타 를 쳤다.

눈을 부릅뜬 라이벌 앞에서 친 것이고 종반에 갈수록 더 까다로워지 는상황에 친 것이니 거리낄 것 없는 스코어였다. ‘필요하다 싶으 면 이뤄지는 게 골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 베스트스 코어가 더 개선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원하고 진정 하고 싶으면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골프 자체에 관한 한 내 가장 큰 취약점은 대다수 아마골퍼들과 마 찬가지로 ‘스윙 폼’이다. 한마디로 ‘개폼’이다. 그러나 그 폼이 란것도 난 얼마든지 고칠 수 있고, 반드시 멋진 폼으로 거듭날 것 으로 확신한다. 내나이 46세인데 66세까지 친다고 해도 지나간 10년 보다는 남은 20년이 더 길다. 골프인생 3분의 1이 지났을 뿐인데 안 될 게 뭐 있는가. 골프는 죽을 때까지 항상 새로 시작할수 있다.

새로운 도전

지금까지의 골프기자 생활중 가장 통쾌한것이 IMF이다. 온 세상이 신음하던 IMF시절 유독 골프만큼은 그들자신의힘으로 솟구쳐 올랐 다.박세리의 낭보가 없었다면 그 시절이 조금은 더 괴로웠을 것이 다. 박세리는 가장 필요한 순간 필요한 쾌거를 전달하며 자신감과 긍 지를 부여했다.

메이저대회를 취재하며 ‘평생 한번이라도 한국선수가 출전하는 메 이저’를 접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박세리는 출전 자체를 떠나 우승까 지 치달았다.이 점 역시 ‘진정 바라면그때가 도달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박세리에 이어 김미현, 최경주, 김 성윤등의 잇단 도전은 골프 자체의 도전이라기보다는 한국인의 도전 이다. 한국의 골프는 참담했던 IMF 시절을 떳떳이 이겨내며 한층 대중 적인 운동으로 자리잡았다. 초등학 생이 골프를 모르는 아버지를 깨워 골프중계를 보자고 할 정도면 그것 이상의 승리가 어디 있는가. IMF가 사치성운동으로 치부되던 골프에 가장 치명타를 입힌 것 같지만 실 은 그 반대가 됐다.

그때 난 이렇게 표현했다. “IMF가 골프를 KO시킨 게 아니라 골프가 IMF를 KO시켰다.”

나는 지난 1월3일 회사를 사직하고 3개월여의 준비끝에 골프스카이닷 컴(www.golfsky.com)이란 골프사이 트를 만들어 4월19일 오픈했다. 인 터넷세상이 도래했다면 우리나라 에 좋은 골프사이트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에게 동기를 부여 했다. 골프 전문기자인 내가 그 인 터넷 세상을 외면하면 그건 내 인 생의 직무유기가 될지 모르겠다는 문제의식이었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골프와 관련돼 하는 일은 아주 똑같다. 인 터넷은 신문과 방송을 합친 기능이 다. 골프와 관련된 모든 내용을 실 시간으로 올리는 게 인터넷이고 얼 마든지 심층적으로 만들 수 있다.

나는 우리나라 골퍼들을 행복하게 해주고싶다. 컴퓨터를 모르고 인 터넷이 어렵다는생각을 하는 40 대,50대 골퍼들. 바로 그들도 현 세상의 화두인 인터넷에 쉽게 접근 해서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사 이트를 나는 추구한다. 실제 이 세 상에서 인터넷만큼 쉬운 것이 있는 가.그저 영어 스펠링 몇 개 ‘즐 겨찾기’에 쳐 놓고 클릭한번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 인생에 자리잡은 골프는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나날이 깊어질 수밖에없는 동반자가 됐다. 그리 고현 시점의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골프’를 가장 적나라하게 테 스트하고 있는 셈이다. 뭐, 걱정하 지는 않는다. 그저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 다는 진리를 믿으면 그것으로 그만 이다.

최선을 다하면 언제나 후회는 없 다. 골프가 언제나 재미있듯 현재 의 직업도 너무 재미있다.

신동아 2000년 6월 호

김흥구 hksky@golfsk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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