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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튀는 스포츠신문 四國志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불꽃튀는 스포츠신문 四國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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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적인 초쇄경쟁을 벌이는 스포츠신문 四國志. 스포츠신문은 왜 내일자 신문을 오늘 오전에 인쇄해야 하는가. 가판에서는 어느 신문이 우위이고 배달판에서는 어느 신문이 강세인가. ‘20초 전쟁’에 목매는 스포츠신문의 제작·판매·광고 시스템을 철저 해부했다.
3월14일 오전 11시,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 중림동 방면 출구 도로변에 신문더미가 쌓여 있다. 스포츠신문이 가장 많고, 일간지로는 석간인 문화일보, 그밖에 경제신문 한 종류와 주간신문 몇 종이 눈에 띈다.

포장이 돼 있고 노끈으로 묶인 점으로 미뤄 어디론가 실려갈 신문들인 듯싶다. 각 신문더미 위엔 날짜와 부수, 발송지가 적힌 종이가 끼워져 있다. 스포츠조선을 덮은 종이엔 ‘2001.3.14 200부 홍대’라고 적혀 있다. 판수는 30판.

스포츠신문 초판은 오전에 인쇄된다. 그에 따라 정오쯤이면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 내일자 신문이 배포된다. 이른바 가판석간이다. 스포츠조선의 경우 30판이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도로변에 쌓여 있는 스포츠조선 30판은 하루 전인 3월13일 정오에 발매된 신문이다.

그 옆에 스포츠투데이가 쌓여 있다. 250부짜리와 205부짜리 두 묶음이다. 모두 1판이다. 스포츠투데이 1판은 스포츠조선 30판과 같다. 마찬가지로 하루 전날 오전 발행된 신문들이다. 잠시 후 용달차가 다가오더니 신문더미를 차에 싣는다. 운전기사에게 “반품이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끝 모를 초쇄경쟁

3월6일 스포츠서울 스포츠조선 일간스포츠 등 스포츠3사 노동조합은 각사 경영진에 초쇄경쟁 개선책을 요구하는 공동결의문을 발표했다. 스포츠투데이가 빠진 것은 노조가 없기 때문. 다음날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최문순)은 스포츠4사 대표이사 앞으로 ‘근로조건 악화를 부추기는 초쇄경쟁 개선 촉구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스포츠3사 노조는 결의문을 통해 “스포츠신문 조합원들은 오전 11시30분대 초쇄시각을 맞추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오전 7시 반에 출근해야 하고, 초판 제작 마감이 끝나자마자 바로 5개의 지방판을 포함한 당일 최종판 제작 마감까지 판갈이를 거듭하는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또 “이러한 제작 풍토는 기자조합원들에게 부실한 기사를 양산하게 함으로써 신문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며 “우리는 스포츠신문사 경영진이 살인적인 초쇄경쟁에 대한 각성을 토대로 개선에 관한 합의를 하루 빨리 도출해낼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노조가 문제삼은 초쇄경쟁이란 말 그대로 초판, 곧 가판석간을 먼저 찍기 위한 경쟁이다. 현재 스포츠신문의 초판 인쇄 시각은 오전 11시30분 안팎. 이에 비해 문화일보와 같은 석간 종합일간지의 가판은 오전 11시, 조간 종합일간지 가판은 오후 6시에 인쇄된다. 일반 가정에 배달되는 스포츠신문은 조간 종합일간지와 마찬가지로 밤 12시쯤 인쇄된다. 사실상 조석간 체제로 운영되는 셈이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스포츠신문의 초쇄시각이 정오 이전으로 당겨진 것은 1999년 스포츠투데이 창간 직후. 스포츠지 역사를 살펴보면 새로운 신문이 창간될 때마다 초쇄시각이 조금씩 앞당겨졌음을 알 수 있다. 일간스포츠만 있을 때는 물론 초쇄경쟁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경쟁의 시위가 당겨진 것은 1985년 스포츠서울이 창간되면서다.

스포츠서울이 창간될 때만 해도 초쇄시각은 오후 4시께로 조간 종합일간지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두 신문의 경쟁은 초쇄시각을 오후 2시께로 앞당겼다. 초쇄경쟁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스포츠조선이 창간되면서. 그 전까지만 해도 오후 시간대를 유지하던 초쇄시각은 3사 경쟁시대를 맞아 정오 가까이까지 다가섰다.

그로부터 몇 년 동안 12시30분 초쇄 체제가 유지됐다. 그러나 ‘정오의 벽’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어느 한 신문이 ‘선’을 넘으면 다른 두 신문은 자동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도였다. 스포츠투데이 창간은 기존 세 신문의 이런 조바심에 불을 지른 셈이었다.

3사 노조가 결의문을 통해 “내일자 신문을 오늘 오전에 발행하는 현실은 독자를 혼란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자사 최종판 신문의 판매까지도 가로막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 데서도 알 수 있듯 스포츠신문들의 제살 깎기 경쟁은 한계점에 이른 양상이다. 노조에 따르면 경영진은 열악한 제작환경을 시정하기는커녕 올림픽이나 월드컵, 박찬호 경기 등이 열릴 때는 초쇄를 오전 10시 이전으로 앞당기는 등 무분별한 초쇄경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것.

이와 관련, 스포츠조선 이영식 노조위원장은 “석간은 조간과 불과 몇 시간 차이로 가판에 깔린다. 먼저 나와 있던 조간은 파지 신세가 돼 전부 쓰레기장으로 간다. 종이 한 장,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이 무슨 낭비냐”고 개탄했다. 이위원장은 또 “초쇄경쟁이 심해진 데는 스포츠조선의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후발주자로서 일간스포츠와 스포츠서울을 단기간에 따라잡기 위해 ‘먼저 내고 먼저 팔자’는 판매전략을 구사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극한 초쇄경쟁의 뿌리라는 것이다.

대체 스포츠신문의 어떤 특징이 이렇듯 무분별한 경쟁체제를 낳았을까. 스포츠 발전과 대중문화 창달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긍정적 평과 동시에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스포츠신문의 무한경쟁세계를 들여다보면 한국 언론의 구조적 문제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지국간 과당판매경쟁으로 종종 물의를 빚는 종합일간지에 스포츠신문 4국지는 남의 일이 아니다.

스포츠신문의 원조는 1969년 9월 창간된 일간스포츠다. 1985년 6월 스포츠서울이 등장하기 전까지 스포츠지 시장은 일간스포츠의 독무대였다. 고교야구 붐이 일었을 때 경기장 입구에 트럭을 대놓고 팔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후발주자인 스포츠서울은 스포츠신문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전 지면 컬러화를 내세우며 젊은 독자층을 파고든 스포츠서울은 선두주자인 일간스포츠를 단숨에 따라잡았다. ‘읽는 신문’ 시대를 지나 ‘보는 신문’ 시대가 온 것이다. 거기에 일간지 최초의 한글전용, 전면 가로짜기 편집, 연예면 확대 등의 차별화전략이 시장에 먹혀 들어갔다.

스포츠서울의 대성공과 더불어 스포츠지 시장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스포츠서울 창간 배경에 대해선 몇 가지 분석이 있다. 5공화국은 스포츠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스포츠 활성화 정책을 폈다. 군사정권의 폭압적 정치에 염증과 무력감을 느끼던 국민들에게 스포츠는 정신적 해방구 구실을 했다. 1982년 발족된 프로야구는 국민의 폭발적 관심을 일으키며 조기정착에 성공했다. 스포츠신문 1면에 각 종목 중 야구 기사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전통은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야구팬들의 호응에 힘입어 일간스포츠는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스포츠조선의 ‘원죄’

거대 지하철 가판의 탄생도 스포츠서울 창간을 촉발한 요인이다. 스포츠신문은 종합일간지에 비해 가판 판매율이 높다. 스포츠서울 창간 1년 전인 1984년에 개통된 지하철 2호선은 가판시장의 개념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스포츠서울은 가판시장을 집중 공략했는데 그것이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같은 대형 국제경기를 잇따라 유치한 것도 큰 호재였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1990년 3월 스포츠조선이 탄생했다. 스포츠조선은 연예면 특화와 만화 지면 강화로 승부수를 던졌다. 무분별한 연예 스캔들 기사와 대담한 노출사진, 타블로이드판 만화부록은 선정성 및 음란성 시비를 불러 일으켰다. 그렇지만 나머지 두 신문 또한 스포츠조선의 전략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무차별 판매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스포츠신문 음란폭력성 시정촉구운동’이 벌어진 것도 그 즈음이다. 오늘날 스포츠신문들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인 음대협(음란폭력성조장매체대책시민협의회)은 바로 이 운동의 결실이었다. 음대협은 지난 10년 동안 스포츠신문의 음란폭력성을 추방하기 위해 광고주 불매운동, 규탄집회, 검찰고발 등 실력행사를 벌여 스포츠신문 판매에 타격을 입혀 왔다.

스포츠조선이 시장의 한 축을 형성한 이후 비교적 안정된 3파전 구도가 유지되던 스포츠지 시장은 1999년 3월 스포츠투데이 창간으로 또한번 요동했다. 스포츠투데이의 차별화 전략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판형 변화. 기존 3개 스포츠신문의 판형보다 조금 작은,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 판형으로 바꾸었다. 글자 각도와 색깔도 달리 했다. 또한 스포츠지 영역인 스포츠 연예 문화 레저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 경제 국제 사회 분야의 뉴스를 다룸으로써 스포츠 종합일간지를 지향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스포츠투데이는 스포츠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갔다.

스포츠투데이는 창간 2년 만에 가판시장에서 나름의 영역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학생층이 애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포츠투데이는 창간 당시 ‘선정주의 배격’의 기치를 내세우고 한동안 음란물 추방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지난해 한국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기사와 관련해 4회 연속 공개경고를 받는 등 선정성과 저질 시비를 부채질했다.

한국언론재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스포츠신문 종사자는 994명으로 전체 신문사 종사자(1만4664명. 중앙일간지 경제신문 외국어신문 스포츠신문 지방일간지)의 6.8%를 차지했다. 전년(1999년)과 비교하면 213명이 늘었다. 이는 스포츠투데이 창간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에 종합일간지 종사자는 166명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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