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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여왕 박세리 가슴을 열고 말하다

“저 독종 아니에요!눈물 펑펑 쏟는 여자예요”

  • 황호택 < 동아일보 논설위원 > htwhang@donga.com

골프여왕 박세리 가슴을 열고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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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세리는 앞으로 3년 이내에 ‘나비스코 다이너쇼’ 우승컵만 거머쥐면 최연소 ‘메이저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또한 프로골퍼 최대의 영광인 ‘명예의 전당’에도 어렵지 않게 들어갈 전망이다. 겉보기에 남부러울 게 없는 골프계의 신데렐라. 하지만 그녀의 지독한 프로근성 뒤편에는 눈물겨운 외로움이 숨어 있다.
일본에서 대회를 치르고 제주도에서 열리는 스킨스 시합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박세리 선수로부터 어렵게 인터뷰 시간을 따냈다. 박선수는 미국에 있을 때보다 한국에 들어오면 더 바빠진다. 박세리 선수를 끼워파는 행사에 여기저기 불려다니느라 몸살이 나 입원한 일도 있다.

이른 아침 대전시 유성구 박선수 집의 초인종을 누르니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나는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었다. 박선수 가족이 사는 집은 그녀가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무대에서 거둔 성공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아버지 박준철씨가 작년말 경매에 나온 대전지방법원장 관사와 대전고등법원장 관사를 사들여 두 집 사이의 담을 헐고 조경을 새롭게 했다. 곱게 잔디를 깐 마당은 30야드 어프로치 샷 연습을 할 수 있을 만큼 넓다. 모양 좋게 뒤틀린 소나무와 바위, 너른 잔디…. 캘리포니아 몬트레이 패블비치 골프장 주변에 들어선 부호들의 저택을 연상케 한다. 소나무들은 아버지 박준철씨(51)가 일일이 좋은 나무들을 찾아다가 마당에 옮겨 심었다고 박선수가 나중에 설명해 주었다.

박선수는 지난밤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늦게까지 놀다가 새벽 3시에 들어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박선수는 수줍음을 많이 타고 말수가 적은 편이다. 지금까지 나온 박선수 인터뷰 기사들을 읽어보면 질문의 길이보다 답변의 길이가 훨씬 짧다. 박선수에 관한 이야기는 아버지 박준철씨를 통해 많이 나온다.

박준철씨에 대해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을 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오늘의 박선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는 딸의 천재적 재능을 일찌감치 발견하고 재정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세계적인 선수로 길러냈다. 그는 박선수의 첫번째 코치고 박선수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남자다.

박씨에게도 어두운 시절이 있었다. 그는 국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굳이 그런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박선수의 어머니는 남편이 인터뷰에 나와 이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박선수의 어머니는 “나는 솔직히 남편이 인터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안해도 될 이야기를 하니까 남들이 몰라도 될 사실을 알게 되고…”라고 말하며 아침 일찍 찾아온 기자를 조금 민망스럽게 했다.

박씨는 아내의 불평을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그는 기자가 참고로 들고온 다른 잡지의 인터뷰 기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사실 틀린 내용은 없거든요”라고 말했다. 이른 아침부터 아내에게 당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딸에게 담력을 길러주기 위해 한밤중에 공동묘지로 끌고갔다는 사람의 집착이나 강인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는 내가 “정원의 나무들이 좋다”고 칭찬하자 “그렇습니까” 하고 되물으며 금세 얼굴을 폈다.

그는 길 건너 충청남도 농업기술원 부지를 가리키며 그곳에 골프스쿨을 세우고 싶다는 포부를 털어놓았다. 부지가 6만 평이나 되는 충남농업기술원은 2003년에 충남 예산으로 옮겨간다. 그 부지는 공개입찰에 부쳐지겠지만 도로가 새로 나 땅값이 만만찮게 오를 것이라고 박씨는 예상했다.

“저곳에 골프스쿨을 세우고 싶어요. 서울의 몇 군데서 세리를 기념하는 골프스쿨을 만들자는 제의가 들어왔지만, 세리가 태어나 자라고 골프를 배운 유성에 세워야 의미가 있지요. 그런데 땅값이 비싸 혼자 힘으로는 어려워요.”

아버지 박준철씨의 야망

그는 기자를 박선수의 우승컵 등 기념품을 모아놓은 방으로 안내했다. 박선수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탄 트로피, 지금까지 사용한 골프클럽, 훈장, 기념사진, 신문기사들이 정리돼 있었다. 골프스쿨이나 기념관을 만들자면 이런 것들을 잘 모아놓아야 할 것이다. 그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집에도 우승 트로피가 많다고 말했다.

박선수가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면서 아버지와 대화를 이어갔다.

“아무래도 가정이 어려우면 골프 같은 운동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 아닙니까. 좋은 자질을 갖춘 선수가 있어도 누가 자기돈으로 보조해서 키우려고 하지 않거든요. 워낙 많이 들어가니까. 우리나라에는 골프 전문학교도 없습니다. 서울에 골프아카데미가 몇 군데 있지만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합니다. 선수를 발굴해 도움을 주려는 뜻은 없어요. 좋은 선수가 있어도 그냥 사라져버리는 거지요. 타고난 재주, 승부근성, 이런 것들을 모두 갖춘 선수도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키울 수 없습니다. 어려서 발굴해 투자하고 체계적으로 교육하면 말도 잘 듣습니다. 어려서부터 잘 관리해야 세리처럼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추진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 혼자는 어렵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운이 따라준다면 제가 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박선수 부녀에 관한 기사를 많이 읽었습니다. 박선수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골프선수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처음부터 세리한테 골프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세리는 어려서부터 육상을 했어요. 태어난 지 8개월도 안돼 걸어다녔고 달리고 운동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애들이 셋인데 세리가 유독 운동을 잘했어요. 제가 1988년 미국 하와이로 이민을 갔습니다. 세리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하와이에서 살았어요. 저는 골프를 늦게 배웠지만 악착같이 연습해 6개월 만에 싱글이 됐습니다. 미국에서 연습하다가 세리에게 그립 잡는 법을 가르쳐주었더니 굉장히 잘하는 거예요. 그때 세리에게 골프를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죠. 어린 녀석이 기가 막히게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골프가 어렵잖아요? 클럽이 성인용이라 무거운데도 공을 잘 쳐냈어요.

그러나 한동안은 바빠서 제대로 못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왔죠. 세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귀국했는데 ‘그동안 미국에서 골프 좀 해봤냐?’고 물으니까 ‘아빠가 놓고간 골프채로 계속 쳤다’는 거예요. 그래서 시켜보니까 제법 잘해요. 제가 평화골프숍을 운영할 때였지요. 그래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골프선수로 키우자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어려웠겠어요.

“당시 대전은 골프의 불모지였어요. 프로는 서울에 가야 구경할 수가 있었지요. 서울 아이들은 프로를 붙여주니까 기량이 좋더라고요. 서울 아이들과 시합을 해보고 나서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름의 독특한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세리한테 ‘프레셔’를 주었지요. 독창적으로 한 거죠. 지금 애들한테 그렇게 시키면 아마 클럽 집어던지고 집 나갈 거예요. 지금은 내 방식으로 할 수 없어요. 세리는 골프를 좋아했기 때문에 내가 밀어붙이는 걸 받아들였습니다.”

“골프 말고는 다 끊었다”

아버지는 딸의 다리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아파트 15층을 걸어서 오르내리게 했다. 공동묘지에 텐트를 치고 밤중에 박선수에게 샌드웨지 연습을 시켰다. 한밤 공동묘지 연습은 실화다. 겨울 어느날인 가는 아버지가 연습장에서 딸에게 ‘친구 좀 만나고 올테니까 그때까지 여기서 연습하고 있거라’ 하고 나가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깜박 잊어버렸다. 새벽 4시에 집에 들어가 아내에게 “세리 자나?”하고 물었더니 “당신하고 함께 나가지 않았냐”고 말하더란다. 큰일 났다 싶어 골프연습장에 가보니 세리가 구석에서 불을 켜놓고 그때까지 연습하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얘기다. 아버지도 지독했지만 딸이 한술 더 떴다. 아버지와 딸의 이런 강인함이 오늘 박세리를 세계정상에 우뚝 서게 한 것이다.

―이런 것들이 모두 중학교 때 이야기인데 박선수가 너무 힘들다고 짜증내거나 반발하지는 않았나요?

“자기가 좋아하고 아버지가 워낙 밀어대니까 그러지는 않았어요. 자신이 소화 못하는 건 어머니한테 얘기하고 울고 그랬겠죠. 그렇지만 세리는 이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이니까 해야 된다는 집념을 갖고 있었어요. 어떤 고난이 닥쳐도 참을 수 있다는 정신을 가졌다고 할까요. 골프 외에는 모든 걸 다 끊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하고 둘이서만 다녔기 때문에 세리에게는 어린 시절 추억이 별로 없어요. 내가 그 애 인생의 절반은 접어버린 거죠. 세리가 세계적인 선수가 됐지만 지금까지 어려운 시기가 더 많았어요. 앞으로도 더 잘해야 합니다. 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됩니다. 지금부터 교육이 많이 필요해요. 세리가 운동할 때는 저하고 항상 같이 다니면서 어른들 세계에서 놀아 일찍 성숙했어요. 그래서 뭐든지 찬찬하게 잘해 나간다고 생각해요.”

―박선수가 지금 몇 살인가요?

“한국 나이로 스물다섯입니다.”

―선수활동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행복도 있지 않습니까? 결혼과 선수생활을 양립시킬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부녀 사이에 약속한 게 있어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때까지는 결혼을 미뤄야 한다고요. 목표를 이룰 때까지는…. 부모 마음이야 일찍 결혼시켜 가정을 꾸미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제 딸이기보다는 국민의 딸로서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고, 또 할 수도 없는 거고, 그렇잖아요?”

―어떤 사람이 사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세리 뒷바라지 잘해 줘야죠. 국민이나 부모나 원하는 건 세리가 운동을 잘하는 것입니다. 운동을 그만두고 가정생활을 하더라도 여태까지 쌓은 것을 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앞으로 할일이 더 많습니다. 세리가 은퇴하더라도 세계적인 선수의 업적을 길이 보존하고 그걸 옆에서 보조해 줘야지요. 어떻게 됐든 최고 선수로서 은퇴할 때까지는 참아야 합니다. 은퇴하고 나서 세리를 뒷바라지할 수 있는 남자가 필요해요.”

결혼은 명예의 전당 이후에

―외국인 사위를 맞게 되더라도 받아들이겠습니까?

“안돼요 그건. 앞일을 미리 말할 수는 없지만 동양인이라면 모르지만 미국사람은 곤란하지요. 그렇잖아요?”

―박세리 선수가 성적이 부진할 때는 모든 사람들이 안타깝게 생각하지요. 그럴 때면 언론이 아버지가 코치를 하니까 그렇다는 식으로 보도하는데 억울한 생각은 안 드세요?

“골프는 자기 혼자 하는 운동입니다. 성공의 길목에 있을 때 옆에서 ‘푸시’하고 질타하고 간섭하는 거지만 세계적인 선수의 대열에 들어서면 수준에 맞는 전문가들과 많이 대화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가지를 조금씩 다 하지만 선수가 원하는 쪽으로 해야지요. 끝까지 부모들이 간섭해서는 안됩니다. 외국 사람들과 자주 대화하고 접촉해야 빨리 적응합니다. 아버지가 데리고 있으면 매일 한국말 하고 한국적인 것만 가르치니 그만큼 발전이 늦어지죠. 저는 세리가 원하는 시합에만 가봅니다. 어떤 때는 오라고 해도 잘 안갑니다.”

아버지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잠자리에서 일어난 박선수가 나타나 응접실 바닥에 무릎을 괴고 앉았다.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다. 박선수는 여간해서 화장을 하지 않고 가볍게 로션만 바른다고 한다. 스물다섯의 나이는 그 자체로 아름다움인데 거기에 무엇을 덧칠한단 말인가. 화장을 하느라 빼앗기는 시간도 아까울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보다가 가까이서 대하니 훨씬 정감이 가는 모습이다.

박준철씨는 “세리 이야기를 듣자고 오셨을 테니 하던 이야기나 마저 끝내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간섭하는 것은 정확하고 조직적인 프로그램이 없을 때의 이야기예요. 그러나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신조 속에서 훈련을 받아야 할 때도 있어요. 승부사의 세계에서는 일단 이겨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기지 못하면 지는 거죠. 최고가 돼야만 합니다. 세리도 이젠 성인이 돼서 생각의 범위가 넓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하고 늘 같이 다녀서 굳이 말 안해도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요. 내가 얘기하기 전에 본인이 알아서 하지요.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겁니다.”

아버지가 자리를 뜨고 박선수와 마주 앉았다.

―친구들하고 놀다가 새벽 3시에 들어왔다던데 어떤 친구들을 만났나요?

“유성초등학교 다닐 때 같이 육상했던 친구들요. 너무 오래간만에 봐서 늦게까지 놀았어요.”

―뭐하고 놀았습니까?

“특별한 건 없고요. 친구들 만나면 맨날 옛날 얘기죠. 조그만 카페에 들어가 맥주 마시며 옛날 운동했을 적 이야기를 했어요. 이러쿵저러쿵 싸운 얘기도 하고….

―작년에는 LPGA에서 한번도 우승을 못해 한국팬들이 굉장히 아쉬워했는데요. 스스로도 인간적인 고뇌가 컸을 것 같아요. 올해 들어서는 작년의 부진을 일시에 털어버리고 다섯 차례나 우승했습니다. 작년과 올해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일부러 부진한 선수가 어디 있겠어요. 작년에는 올해 5승보다 더 값어치 있는 걸 많이 배웠어요. 되돌아보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아무래도 자기 제어를 잘못했던 것 같아요. LPGA 선수생활 1, 2년차에는 생각도 안하고 연습하고, 언론 인터뷰하고…. 개인적인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그래서 아마 저도 모르게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지쳐버렸나봐요.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작년에 그런 상태를 우연치 않게 느끼면서 생각을 정리하게 됐습니다. 작년 9월부터 시간의 여유를 갖게 됐어요. 그러고나서 ‘아 이렇게 해야겠구나’ ‘저렇게 해야겠구나’ ‘이런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가 코치도 바뀌고 새 캐디하고 호흡이 잘 맞아 좋은 성적을 내게 됐습니다.”

―브리티시오픈에서 처음 1,2라운드는 뒤지다가 3,4라운드에서 버디 행진을 했습니다. 박선수의 경기를 보면 3라운드나 4라운드에서 몰아치기로 역전승하는 경기가 적지 않습니다. 1,2라운드에서 잠들었던 샷이 깨어날 때의 심리상태나 몸의 컨디션은 어떻습니까. 아버지는 담력 때문이라고 했는데 동의하나요?

“뭐라 그럴까? 아무래도 시합에 들어가면 예민해지고 힘들어요. 저는 정신적으로 긴장하는 경기를 좋아해요. 조용히 가는 것보다는 과감하면서 공격적인 게임을 좋아합니다. 첫 라운드나 둘째 라운드는 천천히 올라가다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성적이 좋을 때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모든 샷이 잘된다는 느낌을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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