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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그 황홀함과 씁쓸함에 관하여 · 중

공짜 구경, 심야의 가출 그리고 도둑질

축구에 미쳤던 시절의 만화 같은 이야기

  • 송기룡 < 대한축구협회 홍보차장 > skr0814@hitel.net

공짜 구경, 심야의 가출 그리고 도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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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시민운동장에서 망원경으로 처음 만났던 화랑팀, 10년 뒤를 훤히 내다본 축구광 아저씨, 사춘기 소년을 설레게 만들었던 분데스리가와 독일 여학생의 펜팔 편지… 밥보다 축구를 더 좋아했던 사커키드의 그때 그 시절.
TV로만 축구경기를 보던 1970년대 시골소년에게 가장 간절한 소망은 직접 운동장으로 찾아가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A매치를 포함한 대부분의 축구경기가 서울에서만 열렸기 때문에 지방에 사는 축구팬들이 대표선수들을 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나는 1977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대구로 옮겨왔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인재는 대구로 보내야 한다’는 어머니의 소신에 따라 촌놈이 대도시로 진학한 것이다. 나는 중학교 추첨을 실시할 때 축구부가 있는 계성중학교(황보관씨가 나온 학교)에 배정되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늘이 무심했던지 럭비부가 있는 중학교로 가게 되었다.

그해 봄 대구시민운동장에서는 MBC배 고교축구대회가 열렸다. 워낙 축구 열기가 높고, 대구MBC가 열심히 홍보한 덕분에 예선 첫날부터 3만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이 꽉 들어찼다. 흔히 대구를 야구의 도시라고 말한다. 경북고와 대구상고라는 야구명문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축구의 인기는 야구에 견줄 만했다.

나는 잔디구장에서 벌어지는 진짜(?) 축구시합을 보기 위해 날마다 학교가 끝나면 시민운동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대회진행 도중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소식이 들렸다. 지방의 축구열기를 높이기 위해 국가대표팀이 고교축구대회 결승에 앞서 영남대학과 평가전을 치른다는 빅뉴스였다.

당시 대표팀의 인기는 상종가였다. 불과 한달 전 이스라엘과 일본을 누르고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 최종예선전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스라엘을 3대1로 통쾌하게 누른 게임은 올드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만한 명승부였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잠시 1977년 서울운동장으로 돌아가보자.

1977년 봄. 78아르헨티나월드컵을 앞두고 전세계는 지역예선전 열풍으로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4년 전 74서독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호주에 덜미를 잡혀 온 국민에게 쓰라린 좌절을 안겨준 한국축구는 이번에야말로 월드컵에 진출하리라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그러나 1차예선 조 편성은 축구팬들을 한숨짓게 했다. 강호 이스라엘, 숙적 일본과 같은 조에 속한 것이다. 세 팀 중에서 1위만 최종예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일본이야 이길 수 있겠지만, 유럽축구를 구사하는 이스라엘은 아무래도 버거운 상대였다.

1차전 어웨이 경기는 0대0 무승부. 이제 홈에서 이기면 최종예선 진출이 확정된다. 그러나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1년 전 서울에서 열린 76몬트리올올림픽 예선전에서 이스라엘에 1대3으로 완패당하지 않았던가.

드디어 3월20일. 아지랑이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화창한 일요일 오후였다. 서울운동장은 발디딜 틈도 없이 가득 찼고 도로는 한산했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3000만 국민 모두가 TV 앞에 모여 앉았다.

경기 시작 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영무가 운동장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자 관중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이스라엘 선수들과 싸우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다니….

마침내 휘슬이 울렸다. 그러나 채 5분도 안돼 김강남이 허벅지 근육통으로 쓰러지면서 불길한 조짐이 나타났다. 한국대표팀의 최정민 감독은 곧바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박상인을 교체 투입했는데, 이것이 결국 역사에 길이 남을 ‘대형사고’를 일으키고 말았다.

전열을 정비한 태극전사들이 특유의 기동력으로 이스라엘 문전을 위협하자 노련한 이스라엘 선수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전반 22분 한국이 드디어 첫 골을 터뜨렸다. 차범근이 왼쪽을 치고 들어가다 이영무에게 밀어주자 이영무는 상대수비를 넘기는 재치있는 월(Wall)패스로 공을 차범근에게 넘겼다. 그리고 페널티에어리어 왼쪽에서 상대 수비 두 명을 제친 차범근의 왼발이 불을 뿜었다.

골인! 숨죽이며 지켜보던 3만 관중의 함성이 폭발했다. 차범근은 득점 후의 감격을 이렇게 회고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뒤에서 목을 감아쥐었고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계속해서 동료들이 나를 짓누르듯 올라탔다. 축구가 아닌 그 무엇이 이런 감격을 맛보게 할 수 있을까.”

후반전. 이스라엘의 맹렬한 반격이 펼쳐졌다. 제발 1대0으로 끝나주었으면 하는 온 국민의 애절한 소망을 짓밟기나 하듯 이스라엘은 후반 31분 동점골을 뽑아내고야 말았다. 문전 프리킥이 수비를 맞고 나오자 말미리안이 땅볼 중거리슛을 성공시킨 것이다. 스탠드는 순식간에 적막에 휩싸였다.

무승부는 안된다! 동점골을 허용한 뒤 태극전사들의 투지가 다시 불타올랐다. 짧은 패스와 과감한 돌파로 이스라엘 문전을 더욱 세차게 두들겼다. 몇 차례의 결정적 찬스가 있었으나 아쉽게 골문을 비켜갔다. 남은 시간은 3분여. 이때 오른쪽 코너 부근에서 최종덕이 긴 드로인을 던지자, 차범근이 비호처럼 달려들며 백헤딩했고, 한번 잔디에 튀긴 볼은 골에어리어 정면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그곳에 박상인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그물이 찢어질 듯한 통렬한 발리슛이 터지면서 전광판에는 2대1이란 스코어가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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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룡 < 대한축구협회 홍보차장 > skr0814@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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