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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능동적 집단’으로 거듭나자

월드컵 열풍 그후

  • 이근후 < 신경정신과 전문의·이근후열린마음클리닉 원장 > ignoo@hanmail.net

이젠 ‘능동적 집단’으로 거듭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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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열풍 이후를 예측해보기 위해선 이런 기질 외에도 현재 한국인이 지니고 있는 후천적 성격 몇 가지를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몇 년 전 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집계된 한국인의 성격을 요약해본 것이 있다. 한국인의 사회적 성격으로 상위에 오른 몇 가지는 이렇다.

(1)성급하다 (2)감정적이다 (3)비합리적이다 (4)남의 눈치를 본다 (5)집단주의다 (6)허세를 부린다 (7)이기적이다 (8)변화를 싫어한다 (9)내성적이다 (10)권위적이다. 이것이 한국인의 사회적 성격으로 상위에 오른 열가지다. 물론 이 결과는 특정 연령층의 반응이라 한국인을 대표한 결과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한 단면을 보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응답 학생들의 ‘자아방어’에 대해서도 검사해보았다. 자아방어란 개인이 주변과 적응하기 위해 사용하는 습관적 행동이나 사고로서 적응양식과 관계가 있다. 말로는 한국인의 특징이 ‘그렇다’고 스스로 표현하면서도 정작 응답자 자신의 자아는 어떻게 방어 메커니즘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본 것이다. 4가지 특징이 있었다. (1)반동형성(反動形成·reaction formation) (2)동일시(同一視·identification) (3)수동공격성(受動攻擊性·passive aggressive) (4)투사(投射·projection)가 그것이었다.

이것들은 피검자의 내면적 적응양식을 대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 간단히 주석을 달면, 반동형성이란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이나 욕구로부터 벗어나려 그와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는 격이다. 동일시란 주위의 중요 인물들의 태도와 행동을 닮는 것을 말한다. ‘공격자와의 동일시’란 것도 있는데, 이는 부정적인 것을 비판하면서도 그 부정적 면을 닮는 경우다. 시어머니 욕하면서 시어머니 닮는 것과 같다. 수동공격성이란 자신의 공격성을 남의 힘을 빌어 표현하거나 비협조적 태도로 표현하는 것이다. 투사란 자신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동이나 욕구를 외부 탓으로 돌리는 것을 말한다.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인 것과 같다.

이상이 한국인의 사회적 성격의 현주소라면, 월드컵 열풍에 목숨 건 듯 비치는 이유와 함께 우리들이 그토록 소망했던 목표(실제든 거품이든)를 이루지 못했을 때의 행동양식을 유추해보는 근거가 될 것이다. 집단행동의 결과는 언제나 개인의 갈등이 집단의 역동성과 맞물려 일어나고, 또 이에 불을 당기는 다변적 요인이 있을 때 더욱 쉽게 행동화할 수 있는 속성이 있다. 때문에 한국대표팀이 16강에서 밀려난다면 그 한을 또 어떻게 쌓을 것이며, 어떤 행동화로 카타르시스를 분출할 것인지 정말 긴장됐었다. 위에서 설명한 개인으로서의 한국인이 지닌 성격표현이나 자아방어기제가 집단행동화에 아주 중요한 기폭제로 작용할 소지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었다.



기질적으로 가무를 좋아한다는 것은 낙천적임을 뜻한다. 이럴진대, 후천적으로 억압을 한으로 맺고 수동공격적으로 살아온 처지라면 누군가 불을 지르기만 하면 쉽게 타오를 속성인 터인데, 그 후유증을 누가 걱정하지 않으랴 싶다. 붉은 악마의 헌신적 응원도 정신역동적으로 본다면 개개인의 맺힌 한이 많다는 뜻이다. 맺힌 한을 개인적으로 행동화하기보다는 집단역동을 빌어 수동공격적으로 표현하며, 열성적인 리더의 행동양식을 그대로 모방하는 가운데 에너지가 응집된 것으로 해석된다.

역사적인 에너지의 결집

우리가 지닌 기질과 성격으로 미뤄 그같은 집단행동화 결과는 쉽게 예측된다. 투사라는 방어가 한몫 했을 것이다. ‘누구 때문에’라며 원인을 외부로 뒤집어 씌우는 일인데, 뒤집어 씌우지 않더라도 뒤집어써야 마땅한 사건이나 사정이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판에, 만일 우리가 졌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그 억눌림이 집단행동화했을 것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 집단행동화할 것인가 하는 것은 럭비공처럼 정말 어디로 튈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이겼으니 정말 기쁘다. 만일 졌다면 어땠을까. 한번 가정해보자.

“당신이 신나는 월드컵, 그것도 우리나라가 출전한 D조 경기를 보러갔는데 우리 팀이 결승골을 성공시켜 승리했다면 기쁠 것이다. 즐거울 것이다. 속이 시원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감도 생길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도 너그러워질 것이다. 우쭐해질 것이다. 이런 만족감을 누구와도 나누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열광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상대 팀에 일격을 당해 다 이긴 경기를 망쳤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할 수 없는 일로 체념할 수밖에 없겠지만, 일단은 분한 마음일 것이다. 아쉬울 것이다. 화가 날 것이다. 흥분할 것이다. 그리고 행동화할 것이다. 축구장을 나오면서 아수라장이 된 군중 속에 끼어 당신도 한몫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모습은 개인의 성격만으론 해석되지 않는다. 소위 집단행동의 역동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집단행동 과정을 설명한 간단한 이론이 하나 있다. 집단행동화에 이르는 네 단계를 설명한 것인데, (1) 주의를 집중할 만한 사건의 발생 (2) 흥분에 의한 소용돌이 (3) 공통된 목표의 출현 (4) 목표를 향한 공격적 행동화가 그것이다.

축구에 진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분명히 화 나는 사건이다. 얼마나 고대하고 준비했던 일인데 패배라니…. 분명 큰 사건임에 틀림없다. 이때는 분명히 자신의 울분을 군중의 힘을 빌어 흥분의 소용돌이로 공유할 것이다. 내가 흥분한 게 아니라 다수가 흥분한 속에서 나도 흥분하는 수동공격형의 소용돌이가 점화되는 것이다. 공동의 목표는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져버렸으니 목표를 잃게 됐다.

이때 작용하는 것이 투사 메커니즘이다. ‘누구 때문에’란 편리한 투사 기전이 있다. 직접적으로는 축구 관계자겠지만, 광범위하게는 개인이나 집단이 가졌던 모든 억압된 핵심요소들이 결합하여 누군가에 의해 주도되는 공통된 목표가 다시 생겨나는 것이다. 일단 공통 목표가 설정되면 군중은 목표를 향해 돌진할 뿐이다. 이런 이론대로라면 우리가 이겼기에 천만다행이라는 긴장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꼭 그렇게 진전됐을 것이란 단정이라기보다, 그런 인위적 공통 목표를 설정할 요소들이 현재 너무 많이 깔려있다는 말을 강조한 것이다).

집단행동도 개인 성격의 발달처럼 사회적 발달의 한 단계에서 볼 수 있는 과정이라 생각된다. 개인이 어리면 유치한 행동을 하고, 성장하면 성숙한 행동을 하듯, 사회란 집단도 그 발달 단계에 따라 미숙하거나 성숙한 집단행동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붉은 악마가 주도한 이번 월드컵 응원은 경기장 내외를 막론하고 전국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일체감을 부여해 역동적 모티브를 제공했다. 되돌아보더라도 언제 우리가 자발적(조직화의 노력은 일부 있었겠지만)으로 이런 일체감을 나눠본 적이 있었나? 역사적 사건이다. 역사적인 에너지의 결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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