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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데이트

영원한 18번 황선홍 VS 축구광 최영미 시인

  • 정리·정호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demian@donga.com 진행·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영원한 18번 황선홍 VS 축구광 최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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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선홍의 축구인생은 한(恨)으로 뒤엉킨 한국 현대사를 연상케 한다. 국가대표 14년, 월드컵 4회 연속 출전, A매치 50골…. 그는 한국축구사에 빛나는 금자탑을 쌓았지만, 잦은 부상 때문에 다른 스타들처럼 전성기를 오래 누리지 못했다. 황선홍과 태극마크의 이별은 그래서 더욱 아쉽고 애틋하다. ‘신동아’는 황선홍이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 이색적인 만남을 기획했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백전노장과, 축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시인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신동아’ 육성철 기자가 게스트 자격으로 참여했다.(편집자)
‘신동아’가 황선홍 선수와 최영미 시인의 만남을 준비한 것은 6월18일 스페인전 직후다. 하지만 이 무렵 대표선수들을 밖으로 불러낸다는 건 ‘이적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신동아’는 여러 경로를 통해 월드컵 직후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황선수와의 만남 자체가 어려운 상태였다.

6월29일 대구에서 3·4위전이 열렸다. 황선홍에게 이날 터키전은 대표선수로서 마지막 경기였다. 하지만 그는 부상 때문에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했다. 3·4위전의 승자는 터키였지만, 한국선수들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이미 목표를 초과 달성한 까닭이다. 이 때문인지 경주로 이동한 선수들은 새벽까지 흥겨운 축제를 벌였다.

황선홍 선수는 휴대전화를 꺼놓았다. 분당 집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원래 인터뷰나 방송출연을 꺼리는 성격인 데다, 하루에 수백 통씩 걸려오는 전화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7월3일 오후가 돼서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이날 대표선수들은 축구협회에서 열린 현대자동차 기증식에 참여했다. 행사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한 황선홍은 차량인수 서명을 요구하는 현대자동차 직원에게 “우리집에는 더 이상 차가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황선홍의 옆에서 그랜저를 받았다며 신명이 난 젊은 선수들과는 한참 다른 모습이었다.

황선홍은 최영미 시인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였다. 국내일정이 워낙 빡빡한 데다 일본 J리그 개막에 맞춰 귀국을 서둘러야 했던 것이다. 그는 고심 끝에 “그분께서 괜찮으시면 내일 밤에 집으로 오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황선홍-최영미의 심야 데이트’는 이렇게 해서 성사될 수 있었다.

“이제야 큰일을 한 것 같아요”

7월4일. 황선홍은 이날 숨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오전에는 모교인 건국대에서 ‘자랑스런 건국인상’ 시상식이 있었다. 황선홍은 건국대 재학 시절 처음으로 국가대표가 되었고, 그의 뒤를 이어 유상철 이영표 현영민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고등학교에서 잘한다는 스타들을 연고대와 한양대가 쓸어가던 시절, 건국대 선수들의 투혼은 인상적이었다. 황선홍은 고정운과 함께 ‘건국대 신화’를 만든 1세대인 셈이다.

오후엔 황선수가 태어난 충남 예산으로 내려갔다. 고향 사람들은 카퍼레이드까지 벌이며 황선홍의 금의환향을 축하했다. 황선홍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쓰려왔다. 바로 6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1500명의 주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황선홍’을 연호하는 모습에 황선수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황선홍은 꼼꼼한 사람이다. 그는 환영행사 도중과 예산을 출발하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그때마다 도착 예정시간을 알려줬다. 황선홍은 혹시라도 최영미 시인이나 ‘신동아’ 기자가 자기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 한번 약속하면 꼭 지키고야마는….

밤 9시30분. 어둠이 짙게 깔린 분당 장안타운. 아파트 입구에 걸린 ‘장하다 태극전사 황선홍’이라는 플래카드가 보이고, 현관 앞에는 선물을 든 여중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20분 먼저 집에 들어온 황선수는 여덟 살 된 딸(현진)과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황선수는 축구협회 마크가 새겨진 운동복에 맨발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딸아이가 잠투정을 부렸다. 딸이 잠들자 아내에게 잠자리를 부탁하는 황선홍의 모습은 폴란드전에서 선취골을 넣고 포효하던 장면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TV에서는 예산에서 벌어진 황선홍 선수의 환영식 장면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황선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황선홍 : “고향집에서 출발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이제야 큰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합할 때는 몰랐거든요. 그동안 대표선수들은 경찰의 통제를 받으면서 편하게 다녔는데, 오늘은 옷이 찢어지고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최영미 :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중에 잊어버릴지도 모르니 사인부터 부탁할게요. 부탁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공짜로는 안될 것 같아서 제 책을 한 권 가져왔습니다. ‘시대의 우울’이라고 1997년에 쓴 책입니다. 사실 저는 이번 월드컵 이후 유럽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에게 먼저 이 책을 보냈답니다. 유럽을 다니며 쓴 거라서 유럽생활에 도움이 될까 해서요. 황선수는 직접 만나서 주려고 가져왔어요.”

황선홍 : “고맙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최영미 : “저는 이번 월드컵을 제대로 보고 즐기기 위해 서점에 나온 축구관련 서적을 몇 권 사서 보았어요. 모르는 것은 체크해가며 읽고 있습니다. 제일 어렵고 잘 이해가 안 가는 규칙이 오프사이드 같아요.”

황선홍 : “오프사이드는 논란이 많죠. 축구규칙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수비수가 앞에 있어도 공격상황과 수비수들의 행동에 따라서 판정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가령 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공격수라면 최종 수비수 뒤에 있어도 오프사이드가 아니에요. 그래서 오심도 자주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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