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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마니아들의 18홀 편력기

공 대신 헤드가 날아가다니…

  • 글: 신문수·만화가

공 대신 헤드가 날아가다니…

공 대신 헤드가 날아가다니…
그러고 보니 이러저러한 골프 전문매체에 이러저러한 골프만화를 그린 것이 어느새 11년째다. ‘로봇 찌빠’와 ‘도깨비 감투’ 대신 ‘비기너 장’을 주인공으로 만화를 그리는 동안 강산이 한번 변했으니 이제는 ‘명랑만화 작가’라는 타이틀보다 ‘골프전문 만화가’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리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이 으레 ‘이 사람 골프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겠구나’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 곤란한 상황에 놓이거나 룰에 관한 논란이 있을 때 시선은 곧잘 나를 향한다. 물론 그러면 나는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며 단판에 상황을 해결하곤 한다. 골프스윙이론이나 룰, 또는 매너 등에 관한 지식이라면 싱글도 프로도 찜쪄먹을 정도로 훤히 꿰고 있으니 어려울 것도 없다. 이만하면 골프전문 만화가답지 않은가.

그러나 그 순간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양심의 소리’가 머리를 든다. ‘아는 척만 하지 말고 진실을 말해, 진실을.’ 에라 모르겠다. 이번 기회에 골프만화가의 생명을 걸고 중요한 사실을 털어놓아야겠다. 내 골프실력은 영락없는 초보신세라는 사실을 말이다.

처음 골프에 입문한 것이 1985년, 그러니까 어느새 18년차(!) 골퍼인 셈이지만 스코어로만 따지면 초보도 그런 초보가 없다. 창피한 얘기지만 아직 90도 못 깨고 100을 넘나드는 ‘왕 비기너’ 신세다.

곰곰 생각해보면 입문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당시 내 작업실은 서울 역삼동에 있었는데, 놀러왔던 친구와 점심식사를 하러 나갔다가 우연히 근처 연습장 구경을 간 것이 시작이다. 골프를 치겠노라는 거창한 결심도 없이 그 길로 등록을 하고 연습을 시작했던 것. 함께 놀러갔다 골프를 시작했던 친구는 다름아닌 만화가 고우영씨. 그러나 나와는 달리 그 친구는 이후로도 골프연습에 정진해 이제는 평균 70대를 치는 ‘빵빵한 싱글’이 되었다.

반면 나는 골프에 폭 빠지지 못하고 골프채를 잡았다 놓았다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변덕이 나면 ‘이번에는 기필코’ 하면서 각오를 다지고 연습장에 등록했다가 한 달쯤 지나면 집어치우고 또 몇 달쯤 지나 다시 등록하고….

그러는 동안 나를 거쳐간 코치들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 코치 저 코치 거치는 동안 귀동냥한 것이 많다 보니 이론만큼은 프로에도 뒤지지 않게 된 것. 이제는 새로운 코치를 만나 지도를 받을라치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딴소리가 많다. 그게 실력향상에 결정적 장애물임을 잘 알지만 타고난 성격이 그런 것을 어쩌란 말인가. 요즘은 아예 코치들 잔소리가 듣기 싫어 그냥 생각날 때 연습장에 들러 내 멋대로 치고 만다.

연습장에 나가기라도 하면 내 실력을 아는 사람들은 내 옆 타석을 피하려 든다. 공이 앞으로 날아가기는커녕 옆으로 튀니 위험을 느낀대나. 며칠 전에는 간만에 연습장에 나가 7번 아이언을 잡고 맘먹고 멋지게 휘둘렀는데 이게 웬일인가! 공이 날아간 게 아니라 7번 아이언 목이 똑 부러져 30m쯤 날아가버린 것이 아닌가. 축구공을 차려다가 신발이 벗겨졌다는 에피소드는 심심찮게 들었지만 골프공 대신 클럽머리가 날아가는 일은 돈 주고 봐도 아깝지 않은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연습장에서 잘 맞는 골퍼들도 필드에 나가면 헤매는 법인데 이 실력으로 필드에 나가니 캐디들의 눈총에 뒤통수가 온전할 리 없다. 그린에 처음 올랐을 때는 그런대로 정중히 예우하다가도 몇 홀 지나지 않아 실력이 들통나면 바로 괄시가 시작되는 것. 에휴, 그러다 보니 요즘엔 누가 같이 골프치러 나가자고 옆구리를 찔러대도 내가 미리 오금이 저려 슬슬 피한다. 뜬금없는 스케줄 타령이나 하면서.

더욱 황당한 것은 대회에 출전하라는 성화를 받을 때. 명색이 골프전문 만화가이다 보니 골프대회의 프로암 행사에 초청받는 일이 왕왕 있다. 솔직히 내 실력에 그게 가당키나 한 얘긴가. 다른 핑계를 대어 정중히 사양하지만 한편으로는 ‘골프를 더 열심히 쳐둘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사정을 잘 모르는 주최측이 ‘그 사람 엄청나게 비싸게 구네’ 할 것을 생각하면 머리가 딱딱 아프다.

그러나저러나 이거 큰일이다. 골프만화 그려서 밥 먹고 사는 주제에 이런 중대 비밀을 털어놓았으니 당장 내일부터 연재 일거리가 다 끊기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이 알고 보니 사이비였다면서 항의라도 한다면 그 뒷감당은 또 어찌해야 하나.

큰맘 먹고 ‘양심선언’을 하긴 했는데 뒷일이 염려스러우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싶다.

그러나 독자여러분께서는 염려하지 마시라. 비록 실력은 초보지만 머리 속에 들어있는 골프 아이디어로만 따지면 싱글, 아니 프로 이상이니까. 무궁무진한 에피소드로 골퍼들을 더욱더 즐겁게 하는 재주는 필드 실력과는 다른 거 아닌가 말이다. 초보의 심정을 아는, 황당한 경우를 많이 겪은 나 같은 사람이 그리는 만화가 훨씬 더 재미있지 않겠냐는 게 양심선언 뒷감당을 위한 나의 변명이다.

그러나저러나 이런 변명도 불철주야 열심히 연습할 때나 통하는 거지. 별수 없다. 밑천을 만천하에 공개한 이번 달부터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연습장에서 살다시피하는 수밖에. 코치들 잔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올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90을 깨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용솟음친다. 한 두어 달 지나면 또 유야무야되는 것 아니냐고요? 이번만큼은 정말, 진짜, 맹세코 열심히 하겠다니까요! 믿어주세요, 네?

신동아 2002년 11월 호

글: 신문수·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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