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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마니아들의 18홀 편력기

“나이스 샷! 진작 그렇게 치시지예”

  • 글: 서경묵 중앙대 교수·재활의학

“나이스 샷! 진작 그렇게 치시지예”

“나이스 샷! 진작 그렇게 치시지예”

지난 2000년 SBS 골프최강전 프로암 대회에 참석했을 당시

내가 그 녀석을 처음 만난 것은 1988년 재활의학 전문의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군에 입대하면서였다. 군의관으로 복무하는 동안 나는 틈만 나면 그 녀석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좀더 친해지기 위해 ‘그와 사귀는 법’을 다룬 책을 자못 진지하게 연구해가며 읽기도 했다. 덕분에 3년간의 군생활 동안 나는 그의 삐치기 쉬운 성격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우리 관계의 아쉬움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눈치 빠른 이들은 이미 감 잡았겠지만, 그 녀석은 다름아닌 골프라는 운동이다.

이후 처음으로 70대 타수를 기록한 것은 골프를 시작한 지 무려 8년이 지난 1996년 가을이었다. 76타를 기록했던 그날, 같이 게임을 했던 친구들은 ‘Welcome to seventy’s holder’라고 쓴 패를 만들어주었다. 대신 그날 밤 ‘술 한잔 사라’는 그들의 성화에 못이겨 적잖이 돈을 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그걸로 ‘땡’이었다. 그 뒤로는 오랫동안 76타 이하를 기록하지 못했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반에 이븐으로 들어와서는 후반에 점수를 깨겠다는 욕심과 긴장으로 그만 40대 중반을 쳐 80타, 어떤 때는 81타, 좀 되는 날은 78타 등등. 이렇게 2788(두 번은 70대, 여덟 번은 80대) 시절이 이어졌다.

그러던 2001년 여름 어느날 부산에서 강의요청이 왔다. 피서를 겸해 아내와 함께 부산으로 향했다. 강의 다음날인 7월29일, 아내, 친구와 함께 부산 가야CC에서 라운딩에 나선 그날이 ‘운명의 날’이었음을 어찌 미리 알 수 있었으랴. 그날 18홀 라운드의 한순간 한순간은 지금까지도 너무나 생생해 잊을 수가 없다.

비가 내린 후인지라 공기는 후텁지근했지만, 가야산 중턱에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그런대로 골프하기에 괜찮은 날씨였다. 파 5의 첫 홀에서 멋지게 드라이브를 날리고 세컨드, 서드 샷 또한 잘 맞았지만, 아쉬운 2퍼팅으로 파. 두 번째 파 4홀에서도 잘 맞아 2온, 또다시 버디 퍼팅 기회를 잡았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댕그랑 소리와 함께 낚아챈 버디. 세 번째 홀에서 엉거주춤 파를 기록한 뒤 넘어간 네 번째 172야드 내리막 파 3홀에 섰다. 6번으로 샷을 하자 토핑이 됐는데, 갑자기 이게 웬일? 볼이 떼구르르 굴러 깃대에 붙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또 한번의 버디를 기록하자 옆에 있던 친구녀석이 내뱉은 말이 압권이었다. “서울에서 사기 골프 부부가 내려왔네. 우이 씨….”

한바탕 웃고 난 후 선 다섯 번째 홀에서 다시 파, 여섯 번째 파 4홀에서는 세컨드 샷이 벙커에 빠져 보기. 이후 9홀까지 ‘파파파’가 이어져 전반 아홉 홀이 끝나자 2개의 버디와 1개의 보기로 35타였다. “오늘 서울에서 온 부부 사기 골프단에게 아주 혼난다”며 투덜거리던 친구녀석도 이쯤 되니 갑자기 “에라 모르것다, 친구야 니 오늘 정말 잘 치네. 언더 한번 치 보래이” 하며 힘을 북돋워주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내가 뭐…” 하며 말끝을 흐렸지만, 슬슬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바로 오늘이야.’ 끓어오르는 전의를 들키지 않으려 표정을 관리하며 들어선 후반 첫 홀도 멋진 티샷 덕분에 파를 기록했다. 두 번째 홀 파, 세 번째 홀에서는 다시 버디가 터지니 지금까지 2언더파. 맘속으로 ‘오늘 정말 일내고 마는구나. 점수를 깨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언더파도 가능하겠다’는 계산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이븐인 채로 여덟 번째 홀에 섰다. ‘주말 골퍼가 언더는 무슨, 이븐만 쳐도 대단하지’하고 되뇌이지만 한 켠으로 휑하니 찬바람이 스쳐가는 것을 어쩔 수는 없다. 도우미에게 물으니 오른쪽은 OB. ‘그래, 여기서 OB 내면 끝장이다. 힘 빼고, 머리 고정시키고, 스웨이 하지 말고….’ 하나하나 따져가며 자세를 가다듬는다. ‘우측은 낭떠러지 OB, 좌측은 산…. 약간 산쪽으로 치면서 페이드를 주면 정중앙에 떨어지겠지.’ 결론이 난 그대로 마음을 모아 정성을 가득 실어 채를 휘둘렀는데, 아이고 갑자기 하늘이 노래진다. 옆에 있는 마누라는 깔깔대며 웃고, 친구는 히히덕거리며 무슨 의미인지 모를 웃음을 던진다.

“사장님, 공이 너무 말릿어예. 산속으로 드가삣네. OB라예, 하나 더 치이소.”

아, 신이시여, 정녕 나를 버리시나이까. 옆에 있던 친구녀석 “걔 사장 아이다, 꽈장이다” 하며 연신 웃어대고…. 당첨된 복권을 잃어버리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채를 휘두르니 어쩜 그리 깔끔하게 들어가는지. 옆에 서 있던 도우미의 “나이스 샷! 꽈장님, 진작 그렇게 치시지예” 하는 소리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세컨드 샷은 짧아 그린 앞 벙커에 떨어진다. 가까스로 올리고 나니 5온. 운 좋게 한번의 퍼팅으로 마무리했다지만 점수는 간신히 더블이었다. 마지막 파 5홀은 어떻게 쳤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어쨌든 파로 마무리. 결국 후반에서 보기 2개, 버디 1개, 더블 1개로 39타였다. 전후반 도합 74타였다. 어찌 됐건 종전 기록이었던 76타에서 무려 2타나 줄어든 74타를 기록한 것이다. 2타를 줄이는 데 5년 걸린 셈이었다.

골프는 멘탈 스포츠라고 하던가. 그날 ‘역시 마음자세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절절한 진리를 깨달은 나는 ‘오늘은 혹시…’하며 라운딩에 나서지만, 결과는 늘 ‘오늘도 역시…’다. 언젠가 스크래치 골퍼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날 내게 뭐가 씌웠던 것이라 생각하는 게 속 편한 일일까. 골프는 역시 사귀면 사귈수록 만만치 않은 ‘성격 안 좋은’ 친구다.

신동아 2003년 6월 호

글: 서경묵 중앙대 교수·재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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