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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타자’ 이승엽과 야구전문기자의 6년 교유기

‘홈런 무효’ 화풀이에 찌그러진 캐비닛

  • 글: 김상수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ssoo@donga.com

‘국민타자’ 이승엽과 야구전문기자의 6년 교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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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6호 홈런으로 아시아 신기록을 경신하며 온 국민의 영웅이 된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 선수.
  • 항상 웃는 얼굴로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착해빠진 순둥이’라 하지만,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은 그의 마음속에서 들끓는 ‘못 말리는 승부욕’을 먼저 말한다. 프로 그 이상의 프로, 그 속에 담겨 있는 인간 이승엽 스토리.
‘국민타자’ 이승엽과 야구전문기자의 6년 교유기

지난 10월2일, 기다렸던 56호 홈런을 쳐내고 껑충껑충 뛰며 그라운드를 도는 이승엽 선수.

기자가 프로야구 취재를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다. 햇수로 따지면 올해로 9년째. “프로야구 담당기자가 된 지 10년이 되지 않았으면 내 작전에 대해 논하지 말라”던 LG 트윈스 이광환 감독의 말을 되새겨보면, 기자도 내년에는 드디어 감독의 작전에 대해 한마디 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뜬금 없이 이런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기자가 야구를 전문적으로 취재하기 시작한 1995년이 한국 프로야구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 해는 OB(현 두산) 베어스가 전년의 불미스러운 항명파동의 앙금을 씻고 프로야구 원년 우승 이후 13년 만에 두번째 우승의 감격을 맛본 해였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훨씬 ‘상징적인’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국민타자’ 이승엽(27)이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프로생활을 시작한 해인 것이다.

“야구선수는 몰라도 이승엽은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대한민국의 슈퍼스타다. 1999년엔 54개의 홈런을 날렸고 올해는 56호 홈런으로 기어이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작성했다. 나이 쉰을 넘긴 ‘국민배우’ 안성기와 ‘국민가수’ 조용필과 달리 그는 불과 20대의 나이에 ‘국민…’이란 칭호까지 얻었다.

널리 알려진 지극한 효심, 스타이면서 항상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겸손함, 운동선수다운 강한 정신력과 투지, 여기에 잘생긴 얼굴까지 그는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젊은이다. 만약 그가 단순히 운동만 잘하는 선수였다면 ‘국민타자’라는 명예를 얻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그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때때로 “야, 이 친구 정말 대단하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홈런을 때려내는 능력말고도 여러 장점을 가진 선수다.

골칫덩어리 삼성 라이온즈

이렇게 대단한 선수를 기자가 알게 된 건 1998년이었다. 그해 기자는 삼성 라이온즈를 담당하게 됐다.

프로야구 기자들에게 삼성을 전담 취재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다. 삼성이 워낙 ‘골치 아픈’ 구단이기 때문이다.

이 팀에는 일단 스타가 많다. 스타가 많다는 건 기사가 많다는 걸 의미한다. 기사를 많이 쓰기 위해선 그만큼 취재를 열심히 해야 한다. 삼성처럼 한두 명도 아니고 1번부터 9번까지 전부 스타인 팀을 맡은 기자는 흔한 말로 ‘물먹을’ 일도 많다.

게다가 삼성 라이온즈는 언론의 선수 취재를 차단하기로 이름난 구단이다. 기자들이 라커룸에 들어가는 것도 싫어하고 원정숙소에 들어가는 것도 못하게 했다. 당시만 해도 이 두 장소는 기자들이 선수를 취재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장소였다. 이걸 금지하니 선수들과 친해질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밥 먹는’ 거였다. ‘선수들이 개인시간에 기자 만나 밥 먹는 거야 간섭 못하겠지’ 싶어, 삼성의 연고지인 대구에 내려갈 때마다 낮에 선수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얼굴을 익혔다. 가장 까다로운 선수는 당시 주장을 맡고 있던 양준혁이었다. 덩치는 산만한 선수가 이만저만 무뚝뚝한 것이 아니었다. 운동장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걸로는 영 가까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날 점심식사를 같이하고 나서는 반응이 달라졌다. 만나면 얼굴 가득 ‘어울리지 않는’ 살가운 표정이 피어올랐다. 양준혁은 “나이는 내가 한 살 어리지만 밥은 더 많이 먹었을 게 분명하니 말 놓고 지냅시다”라며 맞먹기(?) 시작했다. 기자는 “한 살이면 짬밥이 몇 그릇인데 안 된다”고 버텼다. ‘경상도 싸나이’답게 처음에는 까다로워 보이지만 일단 친해지면 화끈해지는 의리파였다.

양준혁과 함께 당시 ‘왼손 쌍포’를 이뤘던 선수가 바로 이승엽이었다. 기자가 삼성을 담당하기 한 해 전인 1997년 이승엽은 홈런왕(32개) 타점왕(114점) 최다안타왕(170개) 등을 휩쓸며 최우수선수(MVP)에 등극했다. 화려한 ‘이승엽 시대’의 서막을 열었던 것이다. 입단 첫 해인 1995년에 13개, 이듬해 9개 등 2년간 홈런을 22개밖에 치지 못했던 이승엽이 1997년 들어 이처럼 장족의 발전을 하게 된 배경에는 백인천 감독이 있었다. 백감독은 이승엽에게 ‘외다리 타법’을 지도한 주인공이다.

그해 스프링캠프에서 백감독은 이승엽에게 “넌 어떤 타자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승엽은 서슴없이 “홈런을 많이 쳐내는 타자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답했고, 이후 백감독은 방망이의 힘을 타구에 한꺼번에 전달할 수 있는 외다리 타법을 이승엽에게 가르쳤다. 올해 롯데 사령탑에서 물러난 백감독은 “외다리 타법의 단점은 변화구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기 어렵다는 것인데 승엽이는 이를 무난히 극복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외다리 타법은 큰 성공을 거뒀고 이승엽에게 홈런타자라는 이름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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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상수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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