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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마니아들의 18홀 편력기

골프여행 귀국길에 곧바로 골프장행?

  • 글: 이상무 만화가

골프여행 귀국길에 곧바로 골프장행?

골프여행 귀국길에 곧바로 골프장행?
영국이 자랑하는 골퍼 조지 호튼은 “아주 시시한 일을 놓고 가장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플레이어의 모습은 골프에서만 볼 수 있는 흥밋거리”라고 말했다. 영국 수상을 지낸 아서 밸푸어는 “인간의 지혜로 발명한 놀이 중 골프만큼 건강과 보양, 상쾌함과 흥분, 지칠 줄 모르는 즐거움을 주는 것은 없다”고 예찬했다 한다. 굳이 유명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도 골퍼라면 누구나 도무지 헤어나올 길 없는 마약 같은 골프의 매력을 느꼈으리라. 흔히 그러지 않는가. ‘누워서 하는 가장 재미있는 것은 섹스, 앉아서 하는 가장 재미있는 것은 마작, 서서 하는 가장 재미있는 것은 골프’라고.

그러니 골프를 둘러싸고 갖가지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어떤 탤런트는 촬영과 촬영 사이 몇 시간을 이용해 가까운 퍼블릭 코스에서 여섯 홀만 돌겠다고 나섰다가 결국 다음 스케줄을 펑크내 감독에게 징계를 당했다고도 하고, 어느 중견 회사원은 ‘현장확인’이라는 핑계로 회사를 빠져나와 필드로 직행, 라운드를 하다가 바로 뒷 조에서 골프를 치던 회사 사장과 마주치자 엉겁결에 연못으로 뛰어들었다고도 할 정도니까.

필자가 하려는 이야기는 절친하게 지내는 선배 L에 관한 것이다. 골프경력 30년을 훌쩍 넘긴 그는 내가 아는 한 ‘이보다 더할 수 없다’ 싶은 세계최고 수준의 골프마니아다. 만일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께서 골프의 맛을 아는 분이라면 팔자 좋은 L씨에게 은근히 질투가 솟아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L선배의 올해 나이 70세. 그가 골프에 입문한 것은 30대 후반 무렵이었다고 한다. 사업을 착실히 운영한 덕분에 이때 이미 탄탄한 경제력을 갖추었던 그는 골프가 좋은 나머지 오직 골프만을 즐기려 50대 초반에 모든 사업을 정리했다. 그리곤 매주 월요일을 빼고 일주일 내내 필드에 나가는 일을 오늘까지 계속 해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해가 긴 여름철 토·일요일에는 하루 36홀을 돌기도 하는데, A골프장에서 새벽 라운드를 마치고 곧바로 B골프장에서 오후 라운드에 나서곤 하는 식이다. 그나마 일주일에 하루를 쉬는 건 골프장이 월요일마다 휴장하던 옛 시절의 습관이 그대로 이어진 때문이라나.

때문에 그의 스케줄 노트에는 부킹과 파트너 이름을 기록한 일정이 한 달 전부터 빽빽하게 정리되어 있다. 동문 선후배부터 사회동료, 심지어는 프로가 되기 위해 연습하는 중·고교 선수들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만나 골프를 즐기는 그의 취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부킹에 들어가는 돈도 만만찮을 것은 당연하다. 필자가 아는 골프장 특수회원권만도 7~8개, 시가로 따져보면 30억원은 될 테니 그저 놀라울 수밖에.

날씨가 추워 라운딩이 여의치 않은 겨울에도 그의 골프는 계속된다. 몇 해 전부터는 1,2월이 되면 아예 동남아나 호주, 뉴질랜드로 날아가 라운드를 이어가는데, 이 동남아 사설캠프(?)는 그의 수많은 파트너들이 교대로 물 흐르듯 다녀가기 때문에 항상 문전 성시다. 특히 전지훈련차 온 학생 선수들은 그의 겨울 라운드를 함께하는 든든한 지킴이들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경이적인 일이지만, 정작 놀랄 만한 에피소드는 지난 2월말 그가 동남아 캠프를 철수하고 돌아왔을 때 벌어졌다. 2개월여 만에 한국 땅을 밟은 그는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자기가 들고 온 여행가방과 며느리가 준비해온 보스턴백을 바꿔 메고는 이미 약속한 친구들과의 라운드를 위해 곧장 골프장으로 내달았던 것. 이쯤 되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으나 그를 아는 이들은 한결같이 그의 집착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부러움을 감추지 않는다. 우선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제력이 부럽고 매일같이 필드에 나갈 수 있는 건강도 부럽지만, 가장 샘 나는 것은 그 많은 파트너를 유지할 수 있는 폭 넓은 인간관계다. 돈이야 L선배보다 많은 사람도 많을 것이고 건강 또한 수십 년 골프로 다져진 몸이니 그럴 수 있다 쳐도, 그렇듯 많은 파트너를 가진 골퍼는 온 천지를 통틀어 흔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골프경력 어언 16년. 나름대로 열심히 골프를 치며 엄청난 시간을 필드에서 보냈지만 L선배 앞에서는 그저 그의 골프 열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흥미롭게 지켜볼 따름이다.

무슨 일이든 지독하게 집착하는 사람을 보면 옷깃을 여미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일까. L선배의 엄청난 열정에서 나는 철학적 소신 같은 것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필드에서 그를 만나게 되면 자연 고개가 숙여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의 골프 사랑이 타이거 우즈에 비한들 못하다 할 수 있겠는가. 마니아만의 정서라고 몰아붙인다면야 할말이 없지만, 남들이 뭐래도 나는 그가 부럽고 존경스럽다. L선배 파이팅!

신동아 2004년 3월 호

글: 이상무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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