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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마니아들의 18홀 편력기

바람처럼 가볍게, 심각하지 않게?

  • 글: 김수정 MBC 골프전문 아나운서

바람처럼 가볍게, 심각하지 않게?

바람처럼 가볍게, 심각하지 않게?
“If you don’t take it seriously, it has no fun. If you take it seriously, it breaks your heart.”

‘사랑과 골프에는 공통점이 있다. 진지하게 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고, 심하게 빠지면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는 어느 외국 골프장의 TV 광고멘트다. 골프를 시작한 지 어느새 14년이 되어가는데 처음 10년 동안은 전자 쪽이었던 것 같다. 골프를 치열하게 치는 사람을 어딘가 모르게 촌스러운 사람으로 여겼다고 할까. 그렇게 친구들과 ‘피크닉 골프’를 즐기는 수준으로 오래 버텨왔다. 마치 그것이 우아한 일이기라도 한 듯 착각하면서.

골프관(觀)이 후자 쪽으로 바뀌게 된 건 지난 2000년, 그러니까 취미였던 골프가 방송 일이 되면서부터다. 심각하지 않게, 진지하지 않게, 바람처럼 가볍게 골프를 하는 것이 결코 자랑할 만한 일도, 내세울 만한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필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진정한 골퍼들의 눈빛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단순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마음이었다. 명색이 스포츠 채널의 골프중계 캐스터라면서 필드에서 공 하나 제대로 못 친다면 그건 채널과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선배들의 협박(?)에 못 이겨 몇 년 만에 연습장을 찾아 다시 레슨을 받았다. 그립에서 숏 어프로치까지, 기본부터 출발해 하나하나 점검해나갔다. 골프 관련 책들도 빠짐없이 사서 읽었다. 골프룰에 관한 책에서 소설에 이르기까지 서점에 나와 있는 책 가운데 제목에 ‘골프’라는 말이 들어가는 건 거의 다 봤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마 나 같은 독자 때문에 저 많은 골프 전문서들이 소리 없이 팔려나가고 있는 거겠지’ 툴툴대면서 말이다.

골프를 제대로 익히는 일에 몰두해보니, 어떤 일이든 완전히 집중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일에 대해 얘기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뭘 믿고 이렇게 자신있었던 거지?’ 쉴 때도 끊임없이 골프를 생각하는 골퍼들의 진지한 자세, 그 생각을 실제 필드에서 응용해보는 모습, 그 ‘몰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진지하게 다가가지도 않은 채 골프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골프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겸손함’이라는 가치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어딜 가나 그런 골퍼들이 꼭 있다. 처음 한두 홀은 제대로 치다가 나중에 트러블을 만나 트리플 보기를 하고 나면 “에이, 오늘 골프도 망했다! 연습이나 하고 가자”며 자포자기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기분이 고스란히 동반자들에게 전해져 집중을 흐트러뜨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끝까지 기본을 지키는 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상대방도 기분 좋게 라운드를 끝낼 수 없을 거라는 배려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바로 내가 그랬으니까. ‘바람처럼 자유롭게, 심각하지 않게’. 내가 쳐온 골프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마음속에서 한 가지 철칙이 생겨났다.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한결같이’라는 원칙이다. 그것이야말로 동반자에 대한 예의이자 골프 그 자체에 대한 예의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반성과 함께 어느덧 나도 진지한 골퍼로 변해 있었다. 이후 라운드에 나갈 때면 클럽을 놓을 때까지 한결같은 자세로 플레이 하려고 애쓰고 있다.

한 발짝 더 나가면 이는 내년 시즌 골프중계를 준비하는 캐스터로서의 마음자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쯤 우리 선수들은 동남아시아나 미국 등지에서 동계훈련을 마치고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가끔 걸려오는 안부전화를 받아보면 이들이 기울이는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그건 나 같은 ‘골프 비즈니스의 주변 인물’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필드의 주인공인 이들이 겨우내 흘린 땀의 양에 따라 다음해 골프계 전체가 거둬들일 수확량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큰 규모의 잔치를 벌인다 해도 선수들이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면 그 시합은 사람들 사이에서 곧 잊혀지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최고로 대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일에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그 일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한가로운 골프는 그들 앞에서는 오히려 죄에 가깝지 않은가. 골프방송을 할 때 ‘선수를 우선으로 여기는 중계를 하자’고 결심한 것 또한 이 때문이다. 라운드에서 동반자에 대한 예의를 끝까지 지키자는 각오와 같은 이유에서다. 골프 선수들, 그들은 캐스터에게 소중한 동반자인 까닭이다.

신동아 2004년 4월 호

글: 김수정 MBC 골프전문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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