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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마니아들의 18홀 편력기

골프로 인격도야? 웃기는 소리지!

  • 글: 이경규 코미디언

골프로 인격도야? 웃기는 소리지!

골프로 인격도야? 웃기는 소리지!
생각해보니 골프를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다니던 헬스클럽의 비어있던 골프연습장에서 호기심이 동해 클럽을 휘둘렀던 것이 첫경험. 그런데 만만하게 생각했던 공이 도통 맞지를 않는 것이다. 새콤하게 약이 올라 악착같이 휘둘러대다가 석 달 만에 동무인 가수 임백천씨와 기어이 그린에 나섰다.

골프에 그야말로 미쳐있던 시기는 1997~98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없는 시간을 억지로 짜내며 사람들을 불러모아 모임을 만들었다. 약속시간에 늦는 후배들을 억지로 끌고 다니며 그린을 누볐다. 그런데도 점수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85타를 중심으로 한 타라도 줄이려 눈에 불을 켜면 켤수록 공은 엉뚱한 데로 날아가기 일쑤. 드라이버를 잘못 치면 경기가 끝까지 풀리지 않았다. 실내연습장에서 수백 개씩 공을 날려도 점수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골프가 재미없어질밖에.

그 뒤로 한동안 골프장을 찾지 않았다. 나가도 여름철에만 잠깐씩,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지 점수가 쑥쑥 잘만 나오는 것이다. 사람을 놀리는 것도 아니고…. 지난해에는 파4, 파5에 75타가 나오더니 결국에는 홀인원까지 기록했다! (비록 공사 때문에 파3홀로 축소된 45야드짜리 ‘비정상 홀’이기는 했지만. ^^;) 한창 열심히 칠 때는 내 속을 몰라주더니만 한 발짝 떨어지고 나니까 비로소 진가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케이블채널의 골프 프로그램을 진행한 덕이 컸다. 예닐곱 권의 이론서적을 읽은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슬라이스가 있을 때는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 오른쪽 훅이 필요할 때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만날 그린에서 살아봐야 절대 답이 보이지 않는다. 레슨 프로들도 자세교정과 비거리 늘려주기에 바쁘지 그런 이론은 잘 가르쳐주지 않는다. 준비가 없으면 막상 상황이 닥쳤을 때 100% 실수하기 마련. 캐디에게 묻기 전에 본인이 스스로 길을 볼 수 있을 만큼 공부를 해두어야 제대로 공략할 수 있는 것이다.

골프를 미친 듯이 칠 때는 그걸 몰랐다. 그저 열심히, 골프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게 제일인 줄 알았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생각도 하고 공부도 해야 점수가 느는 게 당연하다. 실내연습장에서 혼자 공을 수백 개씩 때려봐야 안 좋은 자세가 굳어져 나중에 고치기만 힘들다. 정확한 궤도로 공을 날릴 수 있는 폼을 다지려면 그저 심심할 때 집에 있는 거울 앞에서 스윙 폼을 잡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편이 ‘무작정 공 때리기’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

남들이 쓴 골프칼럼을 읽으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골프에서 인생을 배운다’느니 ‘골프를 통해 인격을 단련한다’느니 하는 이야기였다. 글쎄, 내가 보기에는 그게 다 뭔 소린가 싶다. 한마디로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골프에서 어떻게 인생을 배우나. 성질만 더러워지기 십상이지. 공만 잘 맞으면야 인격도 좋고 인생도 좋지만, 안 맞으면 미칠 듯이 화가 치솟아 소란을 피게 되는 것이 골퍼들의 인지상정인 법. 내기에 돈 만원이라도 걸리면 다들 눈이 새빨개지게 돼 있다.

축구장에서 공은 살아있는 존재다. 내가 찬 공을 남도 찬다. 그 끊임없이 움직이는 공을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골프장에서 공은 가만히 있다. 내가 친 공은 나만 건드릴 수 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공은 내가 친 그 위치에 있다. 그러니 오비라도 나면 탓할 사람도, 핑계거리도 없다. 오로지 혼자 열 받고 자책하고 기분 나빠질 뿐이다. 공이 나쁘다, 클럽을 바꿔야겠다, 말은 많지만 결국 공이 무슨 죈가, 잘 못친 사람이 죄지. 그걸 잘 아니까 더 화가 나는 거지만.

설령 인생공부가 된다고 치자. 한번 나갈 때마다 20만~30만원이 드는 데 인생공부라고 생각하고 위안 삼는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냥 좀 솔직해지면 안 되나. 사람 만나기 좋고, 시간 보내기 좋고, 기분전환에 좋은 운동이라고 깔끔하게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골프는 충분히 좋은 운동이다. 달리기나 수영은 하다가 지치면 중단할 수 있지만 골프는 동료가 있어 끝까지 해야 한다. 그걸 인격도야 운운하며 억지로 참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왕이면 상쾌하게 즐긴다고 생각해야지.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방법은 간단하다. ‘중독’을 피하면 된다. 그저 생각날 때 한번씩 그린에 나가 충분히 즐기다 오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억지로 인격도야 운운하면서 핑계 댈 필요도 없고, 오비난 공에 히스테리를 부릴 필요도 없다. 밤새도록 골프만 치고 싶다는 욕심은 책으로 달래고 이론공부로 얼러야 점수도 더 잘 나온다. 그렇게 즐기라고 만들어진 운동이 골프다.冬

신동아 2004년 5월 호

글: 이경규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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