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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마니아들의 18홀 편력기

홀과 바스켓, 같은 점과 다른 점

  • 글: 이충희 농구 감독

홀과 바스켓, 같은 점과 다른 점

홀과 바스켓, 같은 점과 다른 점
평생 농구를 해온 사람이 취미로 골프를 즐기는 게 남 보기에는 영 이상한 모양이다. 직업이 운동이면 취미는 좀 다른 걸 가져야 할 것 아니냐는 식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필드에 나가면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는 동료 체육인이 꽤나 많다. 잘 치면 잘 치는 대로 “자기 운동은 안 하고 골프만 치러 다녔냐”는 말이, 못 치면 또 “운동선수가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하냐”는 말이 따라나오기 십상이다. 이래저래 피곤한 노릇이다.

그렇다고 쉽게 그만둘 수 없는 것이 골프의 매력이라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안다. 내가 골프를 처음 배운 것은 1997년 무렵, 대만팀에 소속돼 있을 때다. 휴가를 맞아 서울에 들어왔더니 커피숍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골프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따로 없었다. 어느새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비즈니스 수단이 된 듯했다.

대만에 돌아가자마자 골프 클럽과 레슨 서적, 강의 비디오 등을 사다가 ‘독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처음 필드에 나간 날 첫 라운딩에서 기록한 점수가 90대. 초보로는 믿기지 않는 스코어에 같이 나갔던 친구들이 모두 “운동선수는 역시 다르다”면서 입을 떡 벌렸다. 그 다음부터는 정말 ‘밤이면 밤마다’ 연습장에 나갔다. 어쩌면 첫 스코어가 잘 나온 덕분에 골프에 열중하게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친구들의 말처럼 농구를 통해 얻은 운동신경이 분명 골프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길지 않은 경력에 최고 스코어 73, 평소에도 꾸준히 80대 전반의 점수가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바스켓이든 홀이든 공을 넣기는 마찬가지니까. 농구에서 얻은 거리감각이나 방향감각은 퍼팅에서만큼은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골프와 농구는 정반대라 해도 좋을 정도로 다른 운동이다. 우선 쓰는 근육이 다르다. 골프 샷의 핵심이 얼마나 그립을 잘 잡느냐에 있다면, 농구는 슛할 때 공을 잡으면 무조건 실수하게 돼있다. 가급적 공을 손 위에 얹어두고 힘을 빼고 던져야 생각한 대로 포물선을 그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골프를 친 뒤 바로 농구코트에 서면 공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자꾸 공을 골프채처럼 쥐게 되기 때문이다.

농구를 하고 난 뒤 바로 필드에 나가도 스코어가 엉망이기는 마찬가지다. 농구의 슛에서는 손목의 스냅이 필수적이지만 골프에서는 손목을 움직이면 끝장이다. 그래서 농구선수가 골프를 치면 폼이 엉망이 되기 쉽다. 티샷이든 퍼팅이든 습관적으로 손목을 쓰려 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골프를 처음 배우던 시절 남보다 훨씬 공을 들여 폼을 다듬어야 했다. 조금만 신경을 안 쓰면 어느새 손목이 제멋대로 움직이곤 해서다. 한동안은 손목과 팔꿈치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퍼팅 연습을 한 적도 있다. 덕분에 지금은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 폼을 갖게 됐다고 자부하지만.

좀더 넓게 보면 농구와 골프는 경기의 흐름도 다르다. 농구는 상대가 있고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는 빠른 리듬의 운동이다. 한번 흐름에 빠져들면 무아지경이 되기 쉽고 경기종료 수십 초 전, 불과 몇 점차의 박빙 승부를 벌이는 상황에선 깊게 생각할 여유도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도 있지만 코트에서 이 금언을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상대와 거친 호흡을 주고받는 가운데 오로지 감각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골프에서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언제나 자기와의 싸움이 중심에 있다. 사실 골프에서 상대방이란 단순히 비교 상대일 뿐, 심리적인 요소만 제외하면 내게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 박빙의 승부라 해도 상대방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내 앞에 놓인 코스와 바람 같은 요소만 진지하게 고민하면 된다. 오히려 상대방을 생각하거나 지나친 욕심으로 샷을 하면 공은 저만치 달아나고 승리도 사라지기 십상이다. ‘집념의 부작용’이라고나 할까.

물론 이러한 차이 때문에 골프가 농구 선수에게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최후의 순간에도 흥분하지 않고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훈련이 그것이다. 슛 하나에 승부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집념의 부작용’을 생각하며 마음을 비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특히 감독이나 경기를 주도하는 선수라면 목표를 ‘공략’하는 골프의 특징이 작전구성에 많은 도움을 준다.

농구와 골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조던을 비롯한 숱한 국내외 농구 스타가 골프를 즐기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신동아 2004년 9월 호

글: 이충희 농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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