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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칼럼

‘老兵’ 이봉주를 위한 변명

지구 3.3바퀴 돌며 ‘서산’을 벌겋게 물들인 사내, ‘봉달이’는 할 만큼 했다

  • 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부장 mars@donga.com

‘老兵’ 이봉주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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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테네올림픽 남자 마라톤. 온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안고 뛴 이봉주는 메달을 따지 못했다. 예상보다 서늘한 날씨, 난코스, 오른발에 잡힌 물집, 체력 저하 등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34세의 이봉주는 그동안 너무 많이 뛰었다. 14년 동안 풀코스를 32번 완주했다. 훈련과 실전에서 뛴 거리는 지구를 3.3바퀴 돈 것과 같다. 이제 사람들은 그에게 말한다. “봉달아, 가끔은 피곤한 다리 쉬었다 달리렴.”
‘老兵’ 이봉주를 위한 변명
황영조는 날렵하다. 부드럽고 리드미컬하다. 초원을 달리는 사슴처럼 가볍게 달린다. 달리는 자세 어디에도 군더더기가 없다. 팔의 스윙 동작도 전혀 힘이 들어 있지 않고 경쾌하다. 오죽하면 어느 외국 전문가는 “마치 콧노래를 부르며 애인을 만나러 달려가는 것 같다”고 말했을까. 일본코치들은 한술 더 뜬다. “왜 요즘 한국선수들의 자세가 엉망인지 모르겠다. 교과서 같은 자세의 황영조를 따라 하면 될 텐데….”

이봉주는 투박하다. 힘이 넘치지만 어딘지 거칠다. 달리다 지치면 오른팔이 처지거나 상체와 머리가 뒤로 젖혀진다. 달릴 때 오른발이 팔자걸음처럼 약간 바깥쪽으로 비껴 흐른다. 그만큼 힘이 낭비된다.

더구나 오른발을 내디딜 때 발끝이 바깥쪽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내딛는 발은 일직선상에 놓여야 ‘최대 보폭’이 된다. 2만4000∼2만6000 걸음을 내딛는 105리 레이스에서 한 걸음에 1cm씩만 손해봐도 240∼260m(43∼47초)를 뒤지게 된다.

이 모두 이봉주의 짝발과 관계가 있다. 이봉주는 왼발이 253.9mm인데 반해 오른발은 249.5mm다. 왼발이 4.4mm 더 길다. 또한 왼발의 기울기(안쪽 쏠림)가 0.2도인데 반해 오른발 기울기는 2.7도에 이른다. 걸을 때 어깨선이 지면과 수평이 되는 게 아니라 오른쪽 어깨선이 약간 올라간다는 얘기다. 결국 몸이 전체적으로 불균형한 것이다. 이는 마라토너에겐 치명적인 약점이다. 몸의 기울기는 신발 안창이나 깔창의 두께를 달리해 조절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책은 아니다. 게다가 그는 거의 평발에 가깝다. 완전 평발은 군대에서도 잘 받아주지 않는다. 보통사람이라면 조금만 걸어도 피곤해진다.

황영조는 풀코스 도전 네 번 만에 92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썼다. 이전 그의 성적은 91동아국제마라톤 3위(2시간12분35초), 91셰필드유니버시아드 우승(2시간12분40초), 92벳푸오이타마라톤 2위(2시간8분47초)가 전부다. 5000m급 산봉우리를 세 번 오른 뒤 단번에 에베레스트(8850m) 정상을 훌쩍 밟은 셈이다. 고(故) 손기정 선생이 생전에 황영조를 두고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물건인데…, 계속했더라면 올림픽 3연패는 문제없는데…”라며 탄식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황영조는 1996년 풀코스 여덟번째 완주를 끝으로 무대를 떠났다.

이봉주는 풀코스 도전 15번 만에 96애틀랜타올림픽 2위에 올랐다. 그 뒤로도 두 번(2000시드니 24위, 2004아테네 14위) 더 시도했지만 끝내 올림픽월계관을 쓰는 데 실패했다. 아시아경기 2연패(98방콕, 2002부산), 2001보스턴마라톤 우승 등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를 섭렵했지만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엔 실패한 것이다.

어릴 적 혹사한 탓에 스피드 약해

이봉주는 너무 많이 뛰었다. 14년 동안 32번 완주(황영조는 5년 동안 8회) 기록은 기네스북에 올라야 할 정도다. 마라토너가 대회에 출전하려면 최소 매주 330km씩 12주 동안 달려서 몸을 만들어야 한다. 이봉주는 33번(1번 중도 기권) 대회에 출전했으므로 훈련거리만도 13만680km(3960km×33)에 이른다. 여기에 실제 대회에서 달린 거리(42.195×32+하프마라톤 및 역전대회) 1576.825km를 더하면 13만2256.825km나 된다. 지구를 약 3.3바퀴(지구 한 바퀴 약 4만km) 돈 거리다.

마라톤은 ‘발-발목-정강이-무릎-허벅지-골반’에 고루 충격이 가해지는 운동이다. 발의 뼈 27개와 골반에서 발목에 이르는 뼈 5개가 체중의 2∼3배나 되는 하중을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어릴 때 너무 먼 거리를 달리면 성장판이 닫히고 뼈가 비정상적으로 휘거나 부러지게 된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는 뼈가 굳어야 비로소 할 수 있다. 뼈가 굳는 나이는 인종, 성별, 개인에 따라 각각 다르다. 서양 남성은 보통 19∼20세면 뼈가 완전히 굳어 마라톤 풀코스를 뛸 수 있다. 그러나 동양 남성은 이보다 1∼2년 늦다. 여성은 보통 남성보다 1∼2년 빠르지만 한국여성이 서양여성보다 뼈가 굳는 시기가 약간 늦다. 국내 감독들은 남자선수의 경우 대학 3∼4학년이 돼야 비로소 풀코스를 뛰게 한다. 대학 1~2학년 때는 하프(21.0975㎞)코스를 뛰다가 기권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봉주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0년 20세 때 전국체육대회에서 처음으로 풀코스를 뛰어 2위(2시간19분15초)를 차지했다. 그후 1993년까지 3년 동안 무려 8번이나 풀코스를 완주했다. 1년에 2.67회 꼴로 뛴 셈. 그때 이미 이봉주는 너무 많이 뛰었다. 아직 뼈도 완전히 굳지 않은 나이에 무리한 것이다. 그의 ‘오른발 팔자형 폼’도 어쩌면 그때 굳어졌는지 모른다. 만약 그 기간에 이봉주가 1만m나 5000m 등 중장거리에 치중했다면 마라토너로서 그는 결코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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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부장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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