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호

‘老兵’ 이봉주를 위한 변명

지구 3.3바퀴 돌며 ‘서산’을 벌겋게 물들인 사내, ‘봉달이’는 할 만큼 했다

  • 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부장 mars@donga.com

    입력2004-09-23 14: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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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테네올림픽 남자 마라톤. 온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안고 뛴 이봉주는 메달을 따지 못했다. 예상보다 서늘한 날씨, 난코스, 오른발에 잡힌 물집, 체력 저하 등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34세의 이봉주는 그동안 너무 많이 뛰었다. 14년 동안 풀코스를 32번 완주했다. 훈련과 실전에서 뛴 거리는 지구를 3.3바퀴 돈 것과 같다. 이제 사람들은 그에게 말한다. “봉달아, 가끔은 피곤한 다리 쉬었다 달리렴.”
    ‘老兵’ 이봉주를 위한 변명
    황영조는 날렵하다. 부드럽고 리드미컬하다. 초원을 달리는 사슴처럼 가볍게 달린다. 달리는 자세 어디에도 군더더기가 없다. 팔의 스윙 동작도 전혀 힘이 들어 있지 않고 경쾌하다. 오죽하면 어느 외국 전문가는 “마치 콧노래를 부르며 애인을 만나러 달려가는 것 같다”고 말했을까. 일본코치들은 한술 더 뜬다. “왜 요즘 한국선수들의 자세가 엉망인지 모르겠다. 교과서 같은 자세의 황영조를 따라 하면 될 텐데….”

    이봉주는 투박하다. 힘이 넘치지만 어딘지 거칠다. 달리다 지치면 오른팔이 처지거나 상체와 머리가 뒤로 젖혀진다. 달릴 때 오른발이 팔자걸음처럼 약간 바깥쪽으로 비껴 흐른다. 그만큼 힘이 낭비된다.

    더구나 오른발을 내디딜 때 발끝이 바깥쪽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내딛는 발은 일직선상에 놓여야 ‘최대 보폭’이 된다. 2만4000∼2만6000 걸음을 내딛는 105리 레이스에서 한 걸음에 1cm씩만 손해봐도 240∼260m(43∼47초)를 뒤지게 된다.

    이 모두 이봉주의 짝발과 관계가 있다. 이봉주는 왼발이 253.9mm인데 반해 오른발은 249.5mm다. 왼발이 4.4mm 더 길다. 또한 왼발의 기울기(안쪽 쏠림)가 0.2도인데 반해 오른발 기울기는 2.7도에 이른다. 걸을 때 어깨선이 지면과 수평이 되는 게 아니라 오른쪽 어깨선이 약간 올라간다는 얘기다. 결국 몸이 전체적으로 불균형한 것이다. 이는 마라토너에겐 치명적인 약점이다. 몸의 기울기는 신발 안창이나 깔창의 두께를 달리해 조절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책은 아니다. 게다가 그는 거의 평발에 가깝다. 완전 평발은 군대에서도 잘 받아주지 않는다. 보통사람이라면 조금만 걸어도 피곤해진다.

    황영조는 풀코스 도전 네 번 만에 92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썼다. 이전 그의 성적은 91동아국제마라톤 3위(2시간12분35초), 91셰필드유니버시아드 우승(2시간12분40초), 92벳푸오이타마라톤 2위(2시간8분47초)가 전부다. 5000m급 산봉우리를 세 번 오른 뒤 단번에 에베레스트(8850m) 정상을 훌쩍 밟은 셈이다. 고(故) 손기정 선생이 생전에 황영조를 두고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물건인데…, 계속했더라면 올림픽 3연패는 문제없는데…”라며 탄식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황영조는 1996년 풀코스 여덟번째 완주를 끝으로 무대를 떠났다.



    이봉주는 풀코스 도전 15번 만에 96애틀랜타올림픽 2위에 올랐다. 그 뒤로도 두 번(2000시드니 24위, 2004아테네 14위) 더 시도했지만 끝내 올림픽월계관을 쓰는 데 실패했다. 아시아경기 2연패(98방콕, 2002부산), 2001보스턴마라톤 우승 등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를 섭렵했지만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엔 실패한 것이다.

    어릴 적 혹사한 탓에 스피드 약해

    이봉주는 너무 많이 뛰었다. 14년 동안 32번 완주(황영조는 5년 동안 8회) 기록은 기네스북에 올라야 할 정도다. 마라토너가 대회에 출전하려면 최소 매주 330km씩 12주 동안 달려서 몸을 만들어야 한다. 이봉주는 33번(1번 중도 기권) 대회에 출전했으므로 훈련거리만도 13만680km(3960km×33)에 이른다. 여기에 실제 대회에서 달린 거리(42.195×32+하프마라톤 및 역전대회) 1576.825km를 더하면 13만2256.825km나 된다. 지구를 약 3.3바퀴(지구 한 바퀴 약 4만km) 돈 거리다.

    마라톤은 ‘발-발목-정강이-무릎-허벅지-골반’에 고루 충격이 가해지는 운동이다. 발의 뼈 27개와 골반에서 발목에 이르는 뼈 5개가 체중의 2∼3배나 되는 하중을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어릴 때 너무 먼 거리를 달리면 성장판이 닫히고 뼈가 비정상적으로 휘거나 부러지게 된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는 뼈가 굳어야 비로소 할 수 있다. 뼈가 굳는 나이는 인종, 성별, 개인에 따라 각각 다르다. 서양 남성은 보통 19∼20세면 뼈가 완전히 굳어 마라톤 풀코스를 뛸 수 있다. 그러나 동양 남성은 이보다 1∼2년 늦다. 여성은 보통 남성보다 1∼2년 빠르지만 한국여성이 서양여성보다 뼈가 굳는 시기가 약간 늦다. 국내 감독들은 남자선수의 경우 대학 3∼4학년이 돼야 비로소 풀코스를 뛰게 한다. 대학 1~2학년 때는 하프(21.0975㎞)코스를 뛰다가 기권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봉주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0년 20세 때 전국체육대회에서 처음으로 풀코스를 뛰어 2위(2시간19분15초)를 차지했다. 그후 1993년까지 3년 동안 무려 8번이나 풀코스를 완주했다. 1년에 2.67회 꼴로 뛴 셈. 그때 이미 이봉주는 너무 많이 뛰었다. 아직 뼈도 완전히 굳지 않은 나이에 무리한 것이다. 그의 ‘오른발 팔자형 폼’도 어쩌면 그때 굳어졌는지 모른다. 만약 그 기간에 이봉주가 1만m나 5000m 등 중장거리에 치중했다면 마라토너로서 그는 결코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많이 뛰거나 어린 나이에 너무 먼 거리를 달리면 무릎과 발목이 약해진다. 당연히 스피드가 나지 않는다. 30만km를 달린 자동차가 5만km를 달린 자동차에 뒤지는 것은 당연하다. 바퀴가 시원치 않거나 엔진이 닳고닳은 자동차가 속력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케냐나 유럽의 유명 선수들이 기껏해야 15회 정도 완주하고 은퇴하는 것도 바로 스피드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맨발의 영웅’ 에티오피아의 비킬라 아베베도 15번 대회에 출전해 13번 완주한 게 전부다. 그는 완주한 대회 중 단 한 번을 빼놓고 12번 모두 우승했다.

    이봉주는 32번 완주한 대회에서 9번 우승하고 6번 준우승을 했다. 기권한 것은 2001에드먼턴 세계선수권대회가 유일하다. 그때 28km 지점에서 양다리 허벅지 통증이 워낙 심해 더 달릴 수가 없었다. 반면 황영조는 8번 완주해 3번 우승에 2번 준우승을 했다.

    이봉주가 2위를 차지한 6번 중 4번이 96애틀랜타올림픽(15번째 출전) 이후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봉주는 바로 그 대회에서 남아공의 조시아 투과니에게 3초 뒤진 2시간12분39초의 기록으로 2위에 그쳤다. 또 1996년 이후 우승(후쿠오카, 방콕아시아경기, 보스턴, 부산아시아경기)한 기록이 보스턴대회(2시간9분43초)를 제외하고는 모두 2시간10분대를 넘은 것도 스피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봉주는 지구력의 화신이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데는 그 누구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스피드가 약하다. 스피드는 어릴 때가 아니면 아무리 애를 써도 나아지지 않는 법이다. ‘스피드는 선천적으로 타고 나지만 지구력은 후천적인 노력에 달려 있다’는 말도 이래서 나온 것이다. 그만큼 스피드는 때를 놓치면 더는 향상되지 않는다.

    이봉주는 몸에 기름기가 거의 없다. 마치 ‘뼈에 가죽만 입혀놓은 것’ 같다. 그래서 뛰고 있는 그를 보면 안쓰럽다. 얼굴은 시커멓고 쪼글쪼글 주름까지 져 있다. 그는 쌍꺼풀 수술도 했다. 달릴 때 눈에 땀이 흘러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앞머리가 벗겨져 다른 선수들보다 많은 땀이 눈 속으로 파고든다.

    그가 즐겨 동여매는 태극 머리띠는 이마의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아주는 완충역할도 한다. 2003년 겨울 그는 뒷머리카락 2004개를 뽑아 앞머리에 이식했다. 2004아테네올림픽에서 반드시 우승하고야 말겠다는 뜻에서 2004개를 택했다.

    초반부터 치고 나가는 전략

    육상에선 단거리 선수보다 장거리 선수의 키가 작다. 역대 올림픽 단거리 육상 남자선수들의 평균 체형은 183㎝에 68㎏이다. 이에 비해 마라톤 남자선수들은 169㎝에 56㎏(이봉주는 168㎝에 55㎏)이다. 나이는 남자 단거리 선수가 평균 23세 안팎, 남자 마라톤 선수가 평균 26세 내외다.

    근육도 다르다. 단거리 선수들은 근육이 울퉁불퉁하고 우람한 반면에 마라톤선수들은 근육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다. 왜 그럴까. 사람의 근육은 속근(速筋)과 지근(遲筋)으로 나뉜다. 속근은 순간적인 힘을 발휘하는 데 유효하고 지근은 지구력을 발휘할 때 유효하다. 단거리 선수들은 더운 날씨를, 마라톤 선수들은 쌀쌀한 날씨를 좋아하는데, 이 역시 속근과 지근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우면 우람한 근육에 경련이 일기 쉽다. 반면 지근은 더위에 약하다. 마라톤의 최적 기온이 9℃ 안팎(습도 30∼40%)인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봉달이’는 더위에 강하다. 96애틀랜타올림픽, 98방콕아시아경기 등 ‘찜통 레이스’에서 비교적 좋은 성적을 냈다. 전문가들이 아테네올림픽에서 이봉주에게 기대를 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아프리카 선수들은 습하고 더운 날씨에 약하다. 세계기록 보유자인 폴 터갓(케냐)의 말.

    “1997년 8월 아테네세계육상선수권대회 1만m에 출전한 적이 있다. 그때도 정말 더웠다. 게다가 아테네는 습도가 높다. 건조한 케냐 날씨에 익숙한 내 몸이 아테네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습도가 높은 데서 달리면 쉽게 탈수상태에 빠지고 다리에도 경련이 온다. 그런 기후라면 기록보다는 전술적인 레이스를 펼 수밖에 없다. 이번 레이스는 무더위에 강한 한국, 일본, 스페인, 이탈리아 선수들이 라이벌이 될 것으로 본다. 우승자를 예측하기는 정말 어렵다. 틀림없이 서바이벌 레이스가 될 것이다. 코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현장답사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아테네올림픽 마라톤 레이스 당일은 예상과 달리 기온(30℃)이 그다지 높지 않았고 습도(39%)도 낮았다. 레이스 양상도 터갓이나 이봉주가 예상했던 ‘전술적인 레이스(종반까지 서로 눈치를 보며 선두권을 형성하고 가다가 막판 30km 이후 지점에서 스퍼트하는 전략)’가 아니라 초반부터 치고 나가는 전략으로 펼쳐졌다. 그래도 터갓은 선두권을 유지하며 35km 지점까지 3위로 달렸으나 막판 추격에 실패해 10위(2시간14분45초)에 그쳤다.

    ‘老兵’ 이봉주를 위한 변명

    8월30일 아테네올림픽 남자마라톤 경기에서 14위로 골인한 이봉주가 허탈한 듯 트랙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당초 이번 올림픽마라톤 우승기록은 난코스와 더운 날씨 때문에 2시간13분∼15분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됐다. 실제 이 코스의 종전 최고기록은 스페인 아벨 안톤이 세운 2시간13분16초이다. 하지만 초반부터 접전이 진행되는 바람에 역대 올림픽 5위인 2시간10분55초의 우승기록이 나왔다. 그만큼 현대마라톤은 아무리 난코스라 할지라도 스피드 경쟁이 일반화됐다. 초반 페이스를 조절하다가 막판 스퍼트하는 전략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초반부터 올인해야 살아남는다. 이제 지구력은 기본이다. 여기에 스피드가 더해져야 한다.

    마라톤의 3대 요소는 코스, 날씨, 컨디션이다. 이 3박자가 맞아떨어져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마라톤 레이스는 도로에서 이뤄진다. 대회마다 코스가 각각 다르고 같은 코스라도 날씨가 매번 다르다. 단순한 기록만으로는 누가 최고라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다. 마라톤에서 ‘신기록(new record)’이란 말 대신 ‘최고기록(best record)’이란 용어를 쓰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현재 마라톤 세계 최고기록(2시간4분55초) 보유자는 케냐의 폴 터갓(35)이다. 이봉주의 한국기록(2시간7분20초)보다 85초 빠르다. 거리로는 약 477 m 차이. 터갓은 2003년 베를린마라톤에서 100m를 평균 17.76초(시속 20.267㎞)꼴로 달렸다. 이봉주의 100m 평균속도는 18.10초(시속 19.872km). 터갓의 기록은 1936년 고 손기정 선생의 베를린올림픽 우승기록 2시간29분19초(100m 평균 21.23초)보다 무려 24분47초나 빠르다.

    터갓의 스피드로 따진다면 터갓이 결승선을 통과할 때 손 선생은 33.8㎞ 지점을 달리고 있다. 손 선생의 기록은 아마추어 마라토너인 김형락씨가 2003년 3월 동아서울국제마라톤에서 세운 한국 아마추어 최고기록 2시간25분33초보다도 늦다. 영국의 파울라 래드클리프가 2003년 4월13일 런던마라톤에서 세운 여자 세계 최고기록 2시간15분25초보다도 13분54초 늦다. 래드클리프는 100m를 평균 19.25초에 달리지만 손 선생은 21.23초에 달린 셈이다.

    그렇다면 손기정 선생의 마라톤 실력이 요즘 여자마라토너나 아마추어 마라토너보다 못한 걸까. 아니다.

    1936년 당시 손 선생은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2시간58분50초) 이래 처음으로 2시간30분 벽을 깬 올림픽 최고기록으로 대단한 찬사를 받았다. 손 선생이 달린 코스는 베를린올림픽스타디움을 출발해 아포스 자동차도로를 돌아오는 반환코스다. 오늘날의 베를린마라톤 코스와는 다르다. 막판 32㎞ 지점에 빌헬름 언덕, 38㎞ 지점에 비스마르크 언덕이 있다. 게다가 1936년 8월9일 오후 3시 30℃가 넘는 찜통더위 속에서 출발했다. 손 선생은 당시 물을 많이 마시면 몸이 무거워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물도 안 마시고 달렸다. 그런데도 마지막 100m를 13초대로 전력 질주해 스탠드의 관중을 놀라게 했다.

    손 선생은 생전에 “그때는 뒤돌아보는 것이 비겁한 행위로 간주돼 스포츠맨십에 어긋난다고 해서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누가 뒤쫓아오는 것 같아 불안해 미칠 정도였지만 레이스 도중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마지막 스타디움에 들어섰을 때 관중이 함성을 내지르고 박수를 치길래 뒤에 영국의 하퍼(2위)가 바짝 따라붙은 줄 알았다. 안 잡히려고 죽어라 달렸다”고 회고했다.

    2003년 9월28일 세계최고 기록이 나온 베를린마라톤 코스는 런던, 시카고와 함께 ‘세계 3대 세계기록 산실’로 불리는 곳이다. 모두 표고 차 20m 이하의 평탄하고 굴곡이 적은 코스다.

    반면 1897년에 시작된 세계 최고 권위의 보스턴마라톤 코스나 1896년 1회 대회에 이어 2004년 다시 레이스가 펼쳐진 아테네올림픽 코스는 ‘죽음의 코스’로 불린다. 32㎞ 지점부터 이어지는 ‘하트 브레이크 힐’로 유명한 보스턴 코스나 출발 6.5㎞ 지점부터 32㎞ 지점(표고 차 250m)까지 오르막이 계속되는 아테네 코스는 세계기록 탄생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아테네올림픽 마라톤이 시작되는 8월29일 오후 6시(한국시각 8월30일 자정)의 매년 평균 기온은 35℃에 습도가 70%나 됐다.

    오인환(46) 감독은 올초 “2003년 9월1일 아테네에 갔을 때도 기온이 36.7℃나 되고 습도는 60%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위를 이기려면 산소가 부족한 고지 적응훈련이 필수다”고 말했다.

    이봉주도 “8월 아테네올림픽에서 ‘누가 이기나’ 한번 이를 악물고 뛰어볼 생각이다. 다행히 아테네올림픽 코스는 지구력이 강한 저에게 유리한 ‘죽음의 코스’다. 기온도 35℃가 넘는 찜통 날씨이고. 아프리카 선수들은 스피드는 빠르지만 더위와 오르막이 많은 난코스에선 쉽게 포기하고 만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봉주가 아테네올림픽을 대비해 본격적인 훈련에 나선 것은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5위(2시간8분15초)를 한 뒤부터다. 4월7일부터 대전 계족산을 오르내리며 지구력과 스피드를 길렀고 그후 중국 쿤밍 고지훈련(5월1∼24일), 강원도 횡계 지구력 훈련(6월3일∼7월12일), 스위스 생모리츠 최종 고지훈련(7월21일∼8월4일)을 소화했다. 쿤밍과 생모리츠에서 실시한 고지훈련은 아테네의 무더위를 이겨낼 지구력을 기르기 위한 것이었다. 고지대 훈련은 혈액 내 산소를 운반해주는 헤모글로빈의 수를 늘려준다. 이봉주는 평소 고지훈련을 몹시 힘겨워했다. 입술이 부르트고 두통으로 고생했다. 하지만 특유의 인내력으로 잘 견뎌냈다.

    이봉주는 해발 1890m의 고지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15일간의 마지막 훈련을 끝내고 레이스 24일 전인 8월5일 아테네에 입성했다. 곧바로 북쪽으로 100여㎞ 떨어진 전원도시 시바로 이동해 훈련캠프를 차렸다. 8일 새벽 5시엔 오르막이 이어지는 15∼33㎞ 지점을 직접 달리며 코스 적응력을 길렀다. 이봉주는 “실질적인 아테네 마라톤 코스훈련은 이번이 처음이다. 새벽이라 덥지 않아 만만하게 봤는데 예상과 달리 쉽지 않았다. 25~32㎞ 구간이 가장 힘들어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오늘은 기록에 연연하기보다는 코스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데 주안점을 뒀고 어느 정도 눈에 들어왔다. 이번 마라톤 코스는 난이도가 아주 높다. 더운 날씨가 이번 마라톤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날씨가 더우면 남보다 지구력이 강한 내가 좀 유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인환 감독도 “오늘 훈련은 난코스가 많다는 점을 감안해 봉주가 경기 당일 어떻게 공략할지 생각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15~33㎞ 지점이 대부분 오르막길이라 적응 훈련이 필수적이다. 나 또한 날씨가 당일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 승부는 32㎞ 지점에서 갈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레이스 6일 전인 8월26일. 드디어 지옥의 식이요법이 시작됐다. 식이요법은 1960년대 스웨덴의 어느 학자가 발표한 학설로부터 비롯됐다. 인체는 몸 안에 부족한 게 생기면 다음에 더 많이 저장하려는 본능(보상기전)이 있다. 식이요법은 이를 이용한 것이다. 보통 사흘 동안 쇠고기와 물만 먹어 근육 내 글리코겐이 완전히 빠져나가게 한 뒤 사흘간 탄수화물을 집중 섭취해 글리코겐을 최대한 축적하는 방법을 쓴다. 한국엔 고 정봉수 감독이 1970년대 일본으로부터 배워왔다.

    이봉주는 8월23일부터 여섯 끼를 고기와 물만 먹었다. 쇠고기 부위 중 가장 부드러운 최상급을 구해 먹어도 나중엔 고무줄을 씹는 느낌이라고 한다. 여기에 훈련은 훈련대로 해야 하니 선수들의 신경은 바늘 끝처럼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이봉주는 다른 대회 때는 고기를 여덟 끼 먹었지만 아테네에선 여섯 끼로 줄였다. 오인환 감독은 “아테네 날씨가 너무 더워 자칫 탈진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기와 물만 먹는 지옥의 식이요법

    8월23일, 35℃의 무더위 속에 여자마라톤 레이스가 펼쳐졌다. 우승자는 일본의 노구치 미즈키(26). 북한의 함봉실은 20㎞ 지점을 1시간13분52초에 통과한 뒤 중도 기권했다. 함봉실은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식이요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감독이 오인환 감독에게 “식이요법을 하려 하는데 밥솥 좀 구해줄 수 없느냐”고 했다는 것. 아마도 쇠고기 8~9끼를 먹은 뒤 탄수화물 섭취를 위해 찰밥을 지으려 한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식이요법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위가 약한 선수는 절대 금물이다. 일반적으로 소화력이 약한 아프리카 선수들은 식이요법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고도 잘만 뛴다. 한국, 일본, 스페인 등 일부 국가의 선수들이 주로 식이요법을 하지만 그것도 위가 약한 선수들은 하지 않는다. 오 감독이 북한 감독에게 식이요법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며 극구 말렸지만 이번에 한번 해보겠다며 막무가내였다는 후문이다.

    기자는 2002부산아시아경기 당시 함봉실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다. 얼굴에 뾰루지가 많이 나 있었다. 그만큼 위가 약하다는 증거다. 얼른 보기에 소화력은 약하지만 힘 안들이고 경쾌하게 달리는 아프리카 선수들과 비슷한 타입이라고 생각됐다. 한때 이봉주의 후계자로 각광받던 김이용도 위가 약한 선수다. 그럼에도 그는 소속팀인 코오롱에서 거의 억지로 식이요법을 해야만 했다. 고 정봉수 감독 앞에서 그는 우물우물 고기를 씹다가 밖으로 나와서 뱉기도 했다. 결국 김이용은 후에 위장 폴립 제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은퇴할 생각으로 올인해야

    여자마라톤 세계 최고기록(2시간15분25초) 보유자이자 이번 아테네올림픽에서 우승후보 0순위로 꼽혔던 폴라 래드클리프(영국)는 초반 무더위 속 질주가 부담이 돼 36㎞ 지점에서 주저앉았다. 오버워크에 걸린 것이다. 하지만 초반 그와 선두 경쟁을 벌이던 일본 선수들 중 도사 레이코(2시간28분44초)와 사카모토 나오코(2시간31분43초)는 각각 5, 7위로 골인했다. 일본은 출전 선수 3명이 모두 톱 10에 진입했다.

    한국의 이은정(충남도청)은 2시간37분23초로 19위에 올랐고 정윤희(SH공사)가 2시간38분57초로 23위를 기록했다. 이은정, 정윤희, 최경희(충남도청)는 레이스를 끝낸 뒤 “죽을 뻔했다. 훈련 때 뛴 것과 실전은 완전히 다르다. 두 배 이상 힘들다”고 했다.

    “봉주 오빠도 레이스 전략을 다시 검토하는 게 좋을 것이다. 사전답사 땐 마지막 10km가 내리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완만한 오르막이 1km 넘게 이어지는 곳도 있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섞여 있다. 내리막만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뛰었다간 큰코다친다. 8km 이후 완만한 오르막과 급격한 내리막이 이어져 페이스를 조절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35℃가 넘는 날씨에 정면에서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도 힘들었다. 그러나 난코스와 무더위가 생각처럼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다만 8km부터 오르막이 시작되기 때문에 페이스를 조절할 줄 알았는데 세계기록(2시간15분25초) 보유자 래드클리프와 일본 선수들이 처음부터 치고 나가는 바람에 따라가기 버거웠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해 오인환 감독은 “남자마라톤은 세계기록 보유자인 폴 터갓을 비롯해 우승 후보 15명이 출전한다.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레이스를 펼쳐온 정상급 마라토너들이라 30㎞를 넘어서까지 대열이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르막의 끝 지점인 32km 이후에 잠시 내리막이 이어진 뒤 다시 오르막이 나타난다. 이런 점을 감안해 레이스 전략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레이스 이틀 전인 8월27일엔 황영조(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 감독)가 친구 이봉주에게 띄우는 편지를 동아일보에 보내왔다. 마침 황영조는 SBS 해설위원으로 아테네 현장에 있었지만 훈련중인 이봉주를 만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서른넷 동갑내기로 고 정봉수 감독 밑에서 1994년부터 3년 동안 한솥밥을 먹은 사이. 이봉주의 동갑내기 부인 김미순씨를 소개한 사람도 황영조다. 1994년 황영조가 초등학교(강원도 삼척 근덕초교) 동창생인 김씨를 이봉주에게 소개한 것이다.

    “내 친구 봉주에게. 이제 네가 마라톤 평원을 누빌 일만 남았구나. 솔직히 친구로서 이런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네가 꼭 금메달을 따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몇 자 적는다. (…중략…) 넌 이번 레이스에서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선두그룹을 따라가는 것과 아예 2위 그룹에 처져 뛰는 것. 첫째 선택은 금메달을 노릴 수는 있지만 오버페이스를 할 경우 자칫 메달은커녕 10위권 밖으로 처질 수도 있다.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두 번째 선택은 상위권 진입은 가능하나 금메달을 딸 수는 없다는 게 문제다. 선택은 네 몫이다.

    난 늘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뛰었다. 훈련 때도 마찬가지였다. 92바르셀로나올림픽 때는 ‘레이스를 마치고 바로 은퇴한다’는 생각으로 올인했다. 몬주익 언덕을 올라갈 때 숨이 턱까지 찼지만 죽을 각오를 했기에 모리시타(일본)를 이길 수 있었다. 최근 네가 ‘아테네올림픽 이후에도 계속 뛸 것’이란 말을 했다는 소식에 놀랐다. 풀코스를 31번이나 완주하고도 또 뛰겠다니….

    하지만 지금은 올림픽 후의 생각을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오직 올림픽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너나 나나 이제 서른넷이다. 지난달 말 강원도 횡계에서 훈련에 열중한 너를 봤을 때 ‘이젠 봉주도 옛날같지 않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으니까. 너에겐 이번이 올림픽 금메달을 딸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싶다. 봉주야,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라이벌로 처음 만났으니 벌써 20년이 다 돼가는구나. 묵묵히 성실하게 땀 흘리는 네 모습을 보면 고개가 숙여진다.

    지금까지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게 죽을 각오로 달려 한국에 멋진 금메달을 선사하기를 친구로서 진심으로 바란다. 힘내라 봉주야. 아테네에서 친구 영조가.”

    서늘한 날씨에 모든 것이 어긋나

    그렇다. 결과적으로 황영조의 이야기는 맞았다. 황영조의 말처럼 어떤 일이 있어도 선두그룹을 따라갔어야 했는데 이봉주는 그러지 못했다. 어차피 메달권에 들지 못할 바에야 중도에 기권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번 치고 나갔어야 했다. 30명 가까이 선두권을 형성해서 달리던 15~20㎞ 구간에서 죽을힘을 다해 치고 나갔어야 했다. 오히려 19km 지점에서 브라질의 리마가 스퍼트를 시작했다. 일주일 전 여자마라톤 레이스에서 래드클리프와 노구치 등 일본 선수들이 초반부터 치고 나가는 양상과 비슷했다. ‘세계 톱클래스 선수 15명은 30㎞ 지점까지 선두대열을 이탈하지 않고 레이스를 펼칠 것’이란 오인환 감독의 예상은 크게 어긋났다. 따라서 오르막 끝 지점인 32km 지점 이후에 승부를 건다는 작전은 의미가 없어졌다.

    리마는 하프 지점(21.0975㎞)을 1시간7분23초로 통과했고 이봉주는 이보다 15초 뒤진 1시간7분38초의 기록으로 3위로 통과했다.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이봉주는 지치기 시작했다. 선두 리마는 점점 멀어져 갔다. 이봉주는 25㎞ 지점에선 1시간20분15초를 기록해 18위로 처졌다. 선두 리마와는 48초 차. 거리로는 약 250m. 이봉주는 26~27㎞ 지점에서 스피드가 더 떨어져 30㎞ 지점에서는 선두 리마와 1분25초나 차이가 났고 2위권과도 40초 이상 격차가 벌어졌다.

    결국 이봉주는 2시간15분33초로 14위에 그쳤다.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발디니가 2시간10분55초로 우승. 2위는 미국의 메브라톰 케플레지기(2시간11분29초). 줄곧 선두를 달리다 아일랜드 광신도의 습격을 받은 리마는 2시간12분11초로 3위를 차지했다.

    날씨가 예상보다 서늘해지면서 모든 것이 어긋나버렸다. 이봉주는 무더위 속 레이스가 펼쳐질 경우 지구력 싸움으로 한번 승부를 걸어볼 생각이었다. 훈련도 거기에 맞췄고 작전도 무더위 레이스를 전제로 짰다. 하지만 이날 레이스 출발시점의 기온은 일주일 전 열린 여자마라톤 때보다 5℃ 낮은 30℃였다. 습도도 예상했던 60∼70%가 아니라 마라톤 하기에 딱 좋은 39%였다. 출발 때 날씨가 예상보다 덥지 않았다면 재빠르게 레이스 전략도 바꿨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봉주도 상황에 따라 ‘스스로 알아서’ 레이스를 펼쳐야 했는데 우직하게 ‘30km 이후 승부’를 지나치게 염두에 둔 감이 없지 않다. 여기에 현대마라톤은 아무리 난코스에 악천후일지라도 초반부터 무조건 스피드 경쟁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아테네에 너무 일찍 들어간 것도 이봉주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경도가 비슷한 생모리츠 훈련으로 시차에 완전히 적응한 상황에서 레이스를 24일이나 앞두고 굳이 들어가야 했을까? 인간은 어느 환경이든 2주 정도가 지나면 지루해지고 쉽게 싫증을 느낀다. 긴장이 풀어진다. 일주일 정도 앞두고 현지 적응훈련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아쉬움이 남는다.

    새 신발이 만든 물집



    또한 레이스 중반 이후 이봉주의 오른발에 물집이 잡힌 것도 큰 부담이 됐다. 마라토너가 레이스에 지장이 될 정도로 발에 물집이 잡힌다는 것은 연습 때는 몰라도 올림픽 같은 큰 대회에선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물론 레이스를 마치고 나면 작은 물집이야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뛰는 데 지장이 될 정도로 물집이 잡힌다는 것은 문제다.

    물집은 신발과 관련이 있다. 이봉주의 신발은 일본 아식스가 특수 제작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이 새 신발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보통 선수들은 대회 때 신을 신발을 신고 미리 15∼20km 정도 달려본다. 너무 낡은 것은 효능이 떨어지고 완전 새 신발은 발에 안 맞아 물집이 잡히는 등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봉주는 이번 아테네올림픽에서 스폰서인 아식스로부터 두 종류의 신발을 받았다. ‘우레탄 밑창 신발’과 ‘스펀지 밑창 신발’이 그것이다. 스펀지 밑창 신발은 내리막에서 발이 받는 충격을 최소화한다. 오르막 때 발에 전해지는 충격은 체중의 2.7배이지만 내리막 때는 그 두 배에 가까운 4.5배다. 게다가 섭씨 35℃가 넘는 땡볕에선 아스팔트 온도가 40℃나 돼 발바닥에 전달되는 열도 높아진다. 스펀지 밑창 신발은 열 차단에도 효과적이다. 아식스의 스펀지 밑창 신발을 신고 뛴 여자마라톤 우승자 노구치는 “난코스에 길바닥이 뜨거웠지만 신발이 편안해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레탄 밑창 신발은 마찰력이 커 스펀지 밑창 신발보다 스피드를 내는 데 유리하다. 막판 선두그룹에서 스퍼트할 땐 우레탄 밑창 신발이 나은 것이다. 아식스의 미무라 히토시(56) 마라톤화 박사는 아테네 클래식코스를 답사한 뒤 이봉주에게 ‘스펀지 밑창 신발’을 권했다.

    미무라 박사는 “이봉주와 노구치는 보폭이 큰 스트라이드주법을 쓰는 점에서 닮았다. 이봉주도 노구치가 신었던 마라톤화를 신으면 32km 이후 이어지는 내리막에서 훨씬 편안한 레이스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마라토너의 발은 여자의 피부만큼이나 예민하다. 아침에 다르고 저녁 때 다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크기가 달라질 뿐더러 신발을 신을 때 착용감도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그래서 아무리 잘 만든 신발이라도 연습 때 발에 익히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오후 6시에 마라톤 레이스를 시작했다면 연습 때도 그 시각에 맞춰 신발을 신고 달려봐야 한다. 이봉주는 레이스가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레이스에 임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게 마라톤인 것 같다. 막상 전 구간을 뛰어보니까 8일 새벽에 15∼33km를 달려본 것과는 차이가 많았다. 26∼27㎞ 지점에 이르러 선두권에서 떨어지면서부터 힘들었다. 다리에 쥐가 난 것 같았다. 오른발 바닥에 물집이 잡혔는데 30㎞ 지점을 넘으면서 물집이 커진 것 같다. 그게 부담이 됐다. 날씨와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아쉬웠다. 그러나 날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덥지 않았다. 그보다는 코스가 예상보다 어려웠다. 초반에는 페이스가 빠르지 않아 괜찮았는데 후반 들어 페이스가 들쭉날쭉하면서 언덕에서 체력이 다운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곳 코스는 다른 곳과 많이 다르다. 가파른 오르막은 없는데 은근한 오르막이 이어져 힘들었다. 아직 은퇴한 것은 아니다. 들어가서 진로를 감독과 상의해보겠다.”

    아들 생각하며 소처럼 웃는 아빠

    이봉주는 공을 잘 찬다. 천안 성거초등학교 시절 그의 축구 실력은 인근에서 알아줄 정도였다. 포지션은 공격수. 지금도 휴식 시간이면 공을 즐겨 찬다. 물론 그의 스피드는 아무도 못 따라간다. 게다가 발기술도 빼어나다. 오인환 감독은 혹시 부상이라도 당할까봐 “제발 공 좀 차지 마라”고 하지만 이봉주는 배시시 웃으며 슛을 날린다.

    그러나 이봉주는 천안농고에 입학하자마자 축구부를 제쳐두고 육상부를 택했다. 가난 때문이었다. “육상부는 바지 하나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4년 동안 세 군데나 옮겨다녔다. 인근의 삽교고에 1학년으로 재입학했다가 육상부가 해체되자 광천고로 옮겨 졸업했다. 고교시절 대회성적도 시원찮았다. 다행히 3학년 때 전국체전 10km에 나가 3위로 턱걸이를 한 덕분에 간신히 서울시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봉주가 마라톤에 눈뜬 것은 1994년 당시 고 정봉수 감독이 이끄는 코오롱에 입단하면서부터다. 이전까지 이봉주는 풀코스 8번 완주에 최고기록 2시간10분27초에 불과했다. 우승도 호놀룰루 대회가 고작이었다. 마침 오인환 코치가 거의 같은 시기에 부임했다. 결국 이들은 이때부터 입단동기이자 사제로서 끈끈한 연을 이어온 셈이다.

    코오롱에서 이봉주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코오롱엔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와 당시 한국 최고기록(2시간8분34초) 보유자인 2년 선배 김완기가 있었다. 이봉주는 어디까지나 2진에 불과했다. 팀에서도 크게 신경 써주지 않는 판에 성격마저 내성적이고 조용했다. 오죽했으면 생전에 정봉수 감독이 “봉주는 평소 옆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놈”이라고 말했을까.

    그러나 이봉주의 속은 끓고 있었다. 그는 방황했고 술을 마셨다. 가끔 팀을 이탈해 정 감독으로부터 심한 질책도 들었다. 크고 작은 부상까지 이어졌다. 그때 그의 마음을 다잡아준 사람이 현재 그의 아내인 김미순씨였다.

    이봉주는 1996년 3월 애틀랜타올림픽 티켓이 걸린 동아국제마라톤에서 2위에 오르면서 마라톤 인생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라이벌 황영조는 29위(2시간29분45초)로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고 이어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이봉주는 애틀랜타올림픽 2위-98방콕아시아경기 우승-2000도쿄마라톤 2위(한국최고기록 2시간7분20초 작성)-2001보스턴마라톤 우승-2002부산아시아경기에서 우승하며 승승가도를 달렸다.

    지금도 이봉주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사람은 아내 김씨와 2003년 2월에 얻은 아들 우석군이다. 아들 생각을 하면서 혼자 소처럼 의뭉하게 웃는 그는 훈련이 끝날 때마다 아내에게 전화한다. 미주알고주알 모든 것을 다 보고하고는 다시 의뭉하게 웃는다.

    하지만 평소 이봉주는 말이 거의 없다. 어쩌다 입을 떼도 어눌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는 성실하다. 아무리 힘든 훈련도 묵묵히 해낸다. 그는 깔끔하다. 방은 언제나 깨끗하고 침대나 책상 등 모든 것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다른 사람한테 싫은 소리 한번 못하지만 한번 아니다 싶으면 그 누구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

    1999년 겨울, 후배들을 이끌고 소속팀 코오롱을 뛰쳐나와 지방 여관을 전전하며 훈련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때 육상계에선 여러 말이 떠돌았다. “이봉주는 이제 끝났다” “이봉주가 스승 정봉수 감독을 배신했다” 등등. 그러나 그때도 이봉주는 아무 말 없이 훈련에만 몰두했다. 여러 곳에서 팀 창단을 조건으로 오라고 했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다. 혼자 살자고 후배들을 놔두고 갈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때 이봉주는 훈련비로 1000만원을 선뜻 내놓고 4000원짜리 식당밥을 먹으며 달렸다. 결국 그해 겨울 무적 선수로 출전한 2000도쿄마라톤에서 이봉주는 한국 최고기록(2시간7분20초)으로 우승했다.

    골인 직후 이봉주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정말 원 없이 울었어유. 그날 밤 축하파티 자리에서도 울고 또 울었어유.” 이봉주의 말이다.

    그러나 시련은 계속됐다. 그해 시드니올림픽에서의 추락(24위)과 2001년 초 아버지의 별세로 또 한번 충격에 빠진 것이다. 한창 보스턴마라톤에 대비해 훈련에 피치를 올리던 때였다. 오인환 감독도 “이때가 가장 큰 고비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봉주는 그해 4월 보스턴마라톤에서 우승하며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이젠 봉주도 옛날같지 않구나’

    마라토너의 달리기 능력은 주로 산소와 영양분을 근육에 공급하는 심장과 폐에 달려 있다. 한마디로 심폐지구력이 좋아야 잘 달린다. 이런 면에서 부모로부터 튼튼한 심장을 물려받은 황영조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전성기 시절 그의 최대산소섭취량(1분간 몸무게 1kg당 산소섭취량)은 82.5ml나 됐다. 이는 이봉주(78.6ml)보다 높을 뿐더러 20대 남자 평균치 45ml보다 2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무산소성 역치라는 것도 있다. 어느 순간 피로가 급격히 높아지는 시점을 말한다. 가령 이 값이 50%라고 한다면 신체 능력이 50%를 발휘할 때 갑자기 피로가 몰려와 운동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다. 보통 성인은 무산소성 역치가 50% 정도다. 그러나 황영조는 79.6%나 된다. 이봉주는 약 70%.

    일반적으로 인간은 25세 이후엔 신체능력이 매년 약 1%씩 떨어진다. 올해 서른넷의 이봉주는 25세 전성기 때보다 신체능력이 9%나 떨어져 있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아직 체력엔 자신있다. 더 달릴 수 있다”고 말하지만 세월엔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 요즘 이봉주의 최대산소섭취량과 무산소성 역치는 전성기 때보다 많이 떨어진 느낌이다. 빨리 지치고 옛날같이 끈질기게 따라붙는 힘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황영조가 “지난달 말 강원도 횡계에서 훈련에 열중한 너를 봤을 때 ‘이젠 봉주도 옛날같지 않구나’란 느낌을 받았다”고 한 것은 빈말이 아니다. 이젠 이봉주도 슬슬 은퇴를 생각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인간은 물러날 때가 되면 뭔가 크게 한번 저지르고 떠나고 싶어한다. 소위 ‘서산을 한번 벌겋게 물들이고’ 사라지고 싶은 것이다. 한 획을 크게 한번 긋고 떠나려 한다. 그러나 이봉주는 이미 몇 번이나 서산을 벌겋게 물들였고 열손가락을 꼽을 만큼 큰 획을 그었다. 그냥 조용히 물러나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 없다. 이번 아테네 성적이 나쁘다고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이봉주는 할 만큼 했다. 피와 땀과 눈물로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물론 그는 8000m급 산봉우리에는 수없이 올랐지만 에베레스트 정상엔 끝내 오르지 못했다. 어찌 가슴에 한이 없겠는가.

    “나는 영원히 달린다”

    ‘인간 기관차’로 불리던 체코의 에밀 자토페크는 올림픽 사상 유일한 육상 장거리 3관왕이다. 그는 1948년 런던올림픽 1만m 금메달에 이어 1952년 헬싱키올림픽 장거리 3관왕(5000m, 1만m, 마라톤)에 올라 ‘신발을 신은 전갈’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세계기록을 18개나 세우기도 했다. 그는 말한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고.

    이봉주는 말한다. “난 어릴 때부터 달리는 것밖에 몰랐고, 지금도 달리고 있고, 앞으로도 죽는 날까지 영원히 달릴 것이다”라고.

    그렇다. 이봉주도 언제인가는 현역에서 은퇴할 것이다. 지도자로 마라톤계에 돌아오든 아니면 국민 마라토너로 마스터스들과 함께하든 그는 인생이란 마라톤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손기정 선생은 생전에 “인생 마라톤이 실제 마라톤보다 수백배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봉달아, 가끔 피곤한 다리 쉬었다 달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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