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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마니아들의 18홀 편력기

골프회원권, 절대 사지 말아야 할 이유

  • 글: 묵현상 동부증권 부사장

골프회원권, 절대 사지 말아야 할 이유

골프회원권, 절대 사지 말아야 할 이유
골프코스 건설을 가로막는 행정적인 규제를 풀겠다고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직접 나서서 말했다. 해외원정 골프로 유출되는 외화가 연간 1조원이 넘기 때문에 국내에 골프코스를 많이 건설해서 불필요한 외화유출을 막고, 350만이 넘는 국내 골퍼들이 자유롭게 골프를 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부총리의 발언 뒤 골프코스 200여개가 새로 건설될 것이라는 풍문이 돌자,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오르기만 하던 기존 골프코스 회원권 가격이 주식시장의 폭락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급격히 떨어졌다. 공급이 늘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경제학의 기초원리 중 하나 아닌가. 재미있는 것은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예측해보는 일이다. 경제학의 논리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생각보다 의미심장한 결론이 나온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우리나라 경제가 일본의 헤이세이(平成) 장기불황과 유사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때 2000개에 이르렀던 일본 골프코스 회원권 가격이 불황기에 80%나 떨어졌다는 사실을 들이대며,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한데 골프코스 200곳을 신설하면 어떡하느냐고 묻는다. 기존 회원제 골프코스의 회원권 가격의 폭락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우리나라 경제가 일본식 복합불황을 따라가지 않는다고 해도, 가격은 본래 수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므로 골프코스가 갑절로 늘어나면 몇몇 명문 코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골프회원권 가격이 떨어지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회원권 가격뿐만 아니라 그린피도 떨어질 것이 틀림없다. 이름하여 ‘경쟁의 순효과’다.

골프코스 운영주체의 입장에서 회원권 가격이 떨어지면 초기건설비를 뽑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린피가 떨어지면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반대로 일반 골퍼 입장에서는 예약도 수월해지고 그린피도 내려 적은 부담으로 골프를 즐길 수 있게 되니 분명 좋은 일이다. 지금 같은 초호화 서비스를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지겠지만.

일본의 경우 2003년 가을에 골프코스 내장객을 연령대별로 조사했는데 20·30대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내장객의 대부분이 40대 후반부터 60대 초반이었던 것. 이 데이터를 가지고 예측해보면 앞으로 10~20년 후에는 일본의 골프산업이 발붙일 곳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자료에는 골프를 하지 않는 30대 중반 젊은이들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이들은 “비용문제 때문이 아니라, 입문 초기 6개월의 고통을 감내할 이유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골프를 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골퍼라면 누구나 기억하겠지만 골프를 처음 배우고 나서 6개월~1년은 정말 힘들다.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다.

예전 일본에서도 그랬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골프를 하지 않으면 행세를 할 수가 없고 비즈니스에서도 난관에 부딪히기 때문에 이른바 ‘지위상징(status symbol)’의 하나로 골프를 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골프코스가 늘어나 수요를 충족하고도 남으면 그 희소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배우려는 입문자의 숫자 자체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사례는 이러한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질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돌아보면 우리나라도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한 일이 있다. 1980년대 테니스 붐이 바로 그랬다. 테니스 코트가 부족해 치기가 어려웠을 때는 희소성이 있었고, 그 통에 너도나도 테니스를 배우겠다고 나서서 주말에 코트를 예약하기가 대단히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부 동호인을 제외하고는 일상적으로 테니스를 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젊은 사람들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마운틴바이크를 타지 테니스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테니스는 더 이상 지위상징이 되지 못하고 다수 대중의 뇌리에서 서서히 사라져간 것이다.

골프코스 200여곳이 새로 건설되면 골프도 테니스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이미 골프를 잘 아는 40대 이상 연령층에서만 즐기는 제한된 스포츠가 될 것이고, 이들이 세월을 따라 늙어가면 노인들만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매김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더는 젊은 층의 충원이 불가해질 공산이 크다.

따라서 재테크의 관점에서 골프회원권을 보유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돈벌이의 수단이 되지 못한다. 이제는 즐기기 위한 수단이라는 골프 회원권 본래의 목적으로 회귀할 것이기에. 어쩌면 이것이 올바른 골프문화일지도 모른다.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골프,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회원권 보유는 이제 곧 옛이야기가 될 것이다.

골프 같은 레저스포츠도 베블런의 밴드왜건 효과,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경제학의 원리를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결론이 자못 흥미롭다.

신동아 2004년 11월 호

글: 묵현상 동부증권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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