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호

“운동하자고? 달리기? 헬스클럽?”

  • 호리 신이치로 마이니치신문 서울지국장

    입력2005-09-29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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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하자고? 달리기? 헬스클럽?”
    서울에 부임하기 전, 필자는 태국 방콕에서 4년간 특파원 생활을 했다. 아마도 그때가 내 골프 인생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아무래도 방콕의 골프장 사정이 한국이나 일본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가깝고, 싸고, 그래서 혼자서도 갈 수 있는 곳. 방콕의 골프장이 지닌 매력이다. 전세계 어디를 돌아봐도 이 세 가지 요소를 두루 만족시키는 골프장을 가진 나라는 드물다.

    신문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하루 종일 지국을 비우기가 어렵다. 무슨 일이 생기면 금세 휴대전화가 울리고 곧바로 기사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온다. 그런 의미에서 방콕은 안심하고 골프를 칠 수 있는 도시다. 방콕의 교통체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중심가에서 30분~ 1시간 거리에 골프장 수십개가 있다. 평일에는 예약도 필요 없다. 예약전화를 걸어봤자 “비어 있으니까 어서 오세요. 예약은 필요 없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을 뿐이다.

    그러니 골프를 치고 싶을 때면 언제나 필드를 밟을 수 있다. 멤버 4명을 모을 필요도 없다. 나만해도 자주 혼자서 골프장에 나갔다. 처음에는 혼자지만 끝날 때까지 혼자인 것은 아니다. 도중에 앞 팀을 추월하기 때문이다. 나보다 앞선 골퍼가 혼자라면 추월한 홀부터는 함께 돈다. 그런 뜻하지 않은 만남이 방콕에서의 골프가 주는 색다른 재미다. 필자는 이런 식으로 꽤 많은 태국인, 특히 태국 군인들을 만나 금세 격의 없는 사이가 됐다.

    방콕의 플레이 요금은 평일이 5만원 수준이다. 더 저렴한 코스도 있다. 그리고 골퍼 한 사람당 한 명의 캐디가 붙는다. 심지어 캐디 3~4명을 데리고 플레이하는 사람도 있다. 우산을 받쳐주는 캐디, 땀을 닦아주는 캐디, 휴대용 의자를 운반하는 캐디까지. 이쯤 되면 그다지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다. 한번은 놀러 온 일본 야쿠자 일원이 캐디 5명을 데리고 필드에 나선 모습을 보았는데, 같은 일본인으로서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물론 일이 없어서 손님을 기다리던 캐디 처지에서는 반가울 수밖에 없겠지만.

    골프장의 크기도 놀랄 만하다. 아마도 국토의 넓이에 비례하는 것이리라. OB는 거의 없다. 드라이버가 휘어져도 옆 코스에서 치면 된다. 비어 있기 때문에 볼을 2개씩 치는 사람도 많다. 물론 코스가 넓다고는 하지만 워터 해저드나 크리크같은 장애물이 여기저기 있기 때문에 항상 좋은 스코어가 나오지는 않는다. 칠 때는 회심의 일타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가서 보면 볼이 연못이나 크리크 한가운데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싱글인 사람도 1개의 볼로 18홀을 마치기가 어려운 곳이 방콕이다.



    여유만만 유유자적, 한가로운 방콕의 골프장을 누비던 필자로서는 한국에서 골프 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외국인이다 보니 조건은 더욱 나쁘다. 우선 골프를 치고 싶다고 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회원권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경우는 없을 것이다.

    외국인인 내가 골프를 치려면 별다른 방법이 없다. 한국인 누군가가 초청해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서울에 체류한 지 3년 반이 되자 한국인 친구가 꽤 늘었고 그 가운데는 회원권을 가진 골프 친구도 있다. 그들이 초대해줄 때만을 목을 빼고 기다리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호리상, 다음주 일요일에 함께 운동하러 갈래요?”

    서울에 와서 얼마 되지 않을 무렵, 이런 말을 들으면 “무슨 운동? 달리기? 헬스클럽?”하고 되물어 친구들을 웃기곤 했다. 한국에서는 많은 이가 ‘운동하러 가다’를 ‘골프치러 간다’는 의미로 사용하지만, 일본에서는 누구도 골프를 ‘운동’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로서는 이 ‘운동’ 권유가 기쁘기 한량없는 일이다. 무조건 OK다. 나에게까지 순서가 돌아올 때는 대부분 4명 멤버 중 1명이 부족한 경우지만, 그래도 무슨 상관이랴.

    그러다 보니 골프장 티 그라운드에서 명함을 교환한 이가 여러 명 있다. 처음 만난 사람과 도는 18홀은 늘 긴장되지만, 잠시만 지켜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는 것도 한국에서 즐기는 골프의 잔재미 가운데 하나다. 연습 스윙을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나서야 티샷을 하는 사람, 러프에 있는 볼을 움직이는 사람, 주위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무조건 먼저 치는 사람, 다른 사람의 볼을 열심히 찾아주는 사람…. 흡사 그 사람이 직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해 사람들을 살피는 재미가 쏠쏠하다.

    회원권이 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워낙 남발해 회원권이 있어도 예약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범칙금을 내야 하는 캐디들은 게임이 후반부에 이르면 어김없이 “빨리빨리”하며 골퍼를 재촉한다. 이쯤 되면 한국의 골퍼들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일본의 온천 골프투어가 인기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얼마 전 규슈에서 골프를 쳤다. 캐디가 내게 한국 골프용어를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요즘 들어 한국인 골퍼들이 여행을 많이 오기 때문에 한국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한국사람들은 일본사람들보다 골프를 잘 치니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더니 놀라는 표정이다.

    한국의 여자 프로 골퍼들이 세계무대에서 맹활약하자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한국 골프가 자주 화제에 오른다. 영화와 드라마뿐 아니라 골프에서도 한류가 기대된다고 할까. 되도록 많은 방법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는 것, 그것이 한일우호의 첫걸음이려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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