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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월드컵

남아공월드컵 Big Fish(거물) 10人 역경 극복기

이들에게 시련은 친구이자 라이벌

  • 최원창│일간스포츠 축구팀 기자 gerrard11@joongang.co.kr│

남아공월드컵 Big Fish(거물) 10人 역경 극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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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월드컵이 열린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상공에 수많은 별이 몰려든다.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웨인 루니(잉글랜드) 등이 세계 축구 판도를 바꿀 새로운 빅 피시(Big Fish·거물)로 떠오른다. 이들은 화려하다.
  • 하지만 화려함만으론 이들을 설명할 수 없다. 밤하늘의 별빛이 빛나려면 더 짙은 어둠이 필요하듯, 최고 스타들의 화려함 이면엔 시련과 역경을 이겨낸 스토리가 숨어 있다. 루니-메시-호날두를 비롯한 남아공월드컵에 나설 스타 10인의 역경 극복 스토리를 소개한다.
남아공월드컵 Big Fish(거물) 10人 역경 극복기
1 리오넬 메시

- 아르헨티나 -

남아공월드컵 Big Fish(거물) 10人 역경 극복기

리오넬 메시 / 아르헨티나
1987년 6월24일생
FC 바르셀로나 소속
A매치 43경기 13골

가난이 싫었다. 성장 호르몬 분비가 부족해 키가 크지 못했다. 축구를 죽도록 하고 싶었지만 아르헨티나의 구단들은 그를 문전박대했다. 사람들은 왜소한 메시를 ‘벼룩’이라고 부르면서 놀렸다. 가족들은 지긋지긋한 아르헨티나의 경제난에서 벗어나고자 바르셀로나로 이주했다. 그곳 유소년팀에서 공을 차던 그에게 FC 바르셀로나 구단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성장 호르몬 주사를 꾸준히 맞을 수 있게끔 치료비와 생활비를 지원했다. 디에고 마라도나의 현신, 아니 그 이상이라고 평가받는 리오넬 메시(23·FC 바르셀로나)는 이렇게 탄생했다.

16세 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데뷔했고, 2005년 5월 17세10개월7일의 나이로 알바세전에서 골을 뽑으며 바르셀로나의 주력군에 올랐다. 그는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연소 득점자로 기록돼 있다. 바르셀로나에 적응하지 못한 가족들은 다시 아르헨티나 산타페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형 로드리고와 바르셀로나에 남았다.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준 바르셀로나를 위해 잠재해 있던 천재성을 맘껏 발휘했다. 그는 골을 터뜨릴 때마다 바르셀로나 유니폼 왼쪽에 달린 구단 엠블럼에 키스를 하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외로울 때마다 웹 카메라를 통해 어머니 셀리아와 대화를 나누는 내성적인 청년 메시는 2008-09시즌부터 자신의 기량을 활짝 꽃피우기 시작했다.

38골 18어시스트(51경기)라는 경이적 공격 포인트를 올리며 바르셀로나를 트레블(리그·FA컵·UEFA챔피언스리그 3관왕)의 권좌에 올려놓는다. 올 시즌 그의 기세는 더욱 무서웠다. 44골 10어시스트(5월5일 현재)의 맹폭을 퍼부으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사람들은 23세의 마라도나가 1986년 멕시코월드컵을 아르헨티나에 안겼듯, 23세의 메시가 통산 3번째 월드컵 우승컵을 조국에 안길지 지켜보고 있다.

2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포르투갈 -

남아공월드컵 Big Fish(거물) 10人 역경 극복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포르투갈
1985년 2월5일생
레알 마드리드 소속
A매치 69경기 22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5·레알 마드리드). 꽃미남 같은 외모와 조각 같은 몸매. 환상적인 발재간에다 총알 같은 스피드와 승리를 부르는 킬러본능을 지닌 그는 화려하다. 하지만 호날두가 위대한 까닭은 힘겨운 가정사를 견뎌내고 우뚝 일어섰기 때문이다.

그는 1985년 포르투갈 본토에서 서남쪽으로 800㎞ 떨어진 마데이라 섬에서 정원사로 일하던 호세 디니스 아베이루와 어머니 마리아 돌로레스 두스 산투스 아베이루 사이에서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디니스는 술 중독자였고 형 휴고는 마약에 빠져 있었다. 어머니 돌로레스가 청소부 일을 하며 한 달에 400파운드(약 74만원)를 받아 근근이 생활했지만, 수입의 상당 부분을 아버지 치료비로 써야 했다.

축구공이 없어 양말을 돌돌 말아서 공으로 쓰거나, 빈 깡통을 차면서 기술을 익히던 호날두는 어릴 적부터 소년 가장이 돼야 했다. 발군의 기량을 보인 덕분에 열 살 때 포르투갈 명문구단 스포르팅 리스본의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15세 때 리스본과 정식 계약을 앞두고 청천병력 같은 얘기를 듣는다. 메디컬 테스트 중 호날두의 심장이 지나치게 빠르게 박동하는 것이 발견되자 구단에서 조심스럽게 축구를 그만둘 것을 제안했다.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호날두는 선수 생명을 걸고 수술대에 올랐다. 어머니 돌로레스는 “호날두가 선수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했다. 다행히 수술이 잘됐고, 훈련에 복귀할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2005년 9월 그는 독일월드컵 예선 러시아와의 경기를 하루 앞두고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아버지가 술을 끊지 못하고 요절한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을 때다. 러시아전에 나선 그는 “분명 아버지의 죽음은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고통이 지나갈 것을 알고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가 계속해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잉글랜드와 맞붙은 독일월드컵 16강전에서 승리를 확정짓는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한 후 그는 하늘을 향해 키스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는 골 세리머니를 펼친 것이다.

그의 스피드와 기술은 화려하다. 마데이라 섬 사람들은 그의 기술을 마데이라 전통춤 이름을 따 ‘오 바일리뇨 마데이레인세(O Bailinho Madeireinse)’라고 부른다. 윙어와 스트라이커의 구분을 파괴하며 ‘멀티 킬러의 시대를 연 주인공 호날두는 최대 시속 33.6㎞의 스피드와 마법사처럼 상대를 속이는 기술, 무회전 프리킥을 무기로 포르투갈의 월드컵 첫 우승을 준비한다. 그의 왼쪽 어깨엔 주장 완장이 둘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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