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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어이할꼬?

문대성·김연아 소동으로 본 ‘국위선양’의 함정

  • 정윤수│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어이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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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구선수 하은주가 일본 세이토쿠대 영문과에 다닐 때, 수업 출석 일수를 제대로 채우지 못해 4학년만 3년을 다녔다는 사실을 우리의 스포츠계 지도자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왜? 우리나라에선 담당 교수나 학교 측에 잘 얘기해서 리포트로 대체하거나 전지 훈련하는 모습을 촬영해서 e메일 대용량 첨부로 보내주면, 학점 관리가 다 되기 때문이다.
  • 선진국의 스포츠 선수들이 왜 ‘사서 고생’을 하면서 공부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어이할꼬?

문대성 의원이 당선자 시절이던 4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예고했던 기자회견을 돌연 취소하고 국회를 빠져나가려다 기자들이 쫓아오자 차에서 내려 자신의 거취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가장 위대한 곳에서 엄청난 특권을 누렸다.”

박지성은 8년 동안 정들었던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떠나 새로운 시즌부터 퀸즈파크레인저스(이하 QPR)에서 뛴다. 그는 호날두, 긱스, 스콜스, 루니, 퍼디낸드 등 주급이 3억 원 넘는 최고 수준의 선수들과 8년을 함께했다. 박지성은 팀을 옮기면서 맨유의 홈페이지에 “위대한 팀의 일원으로 뛸 수 있었던 것과 특별한 동료, 훌륭한 감독과 함께한 것은 엄청난 특권이었다”고 썼다.

맨유의 ‘특권’

그 특권이란 무엇인가. 고액 연봉·고급 주택과 근사한 스포츠카·환영 인파·퍼스트클래스, 그런 건 겉으로 보이는 특권이다. 그러면 박지성이 맨유에서 뛰면서 ‘고급 주택과 차량을 제공받아 기뻤다’고 했을까. 아니다. 그 특권은 좀 더 상징적인 것이다.

첫째, 그 특권이란 맨유라는 팀의 일원으로서 갖는 지역사회 내의 드높은 명예다. 유럽에서 축구 선수는, 그것도 축구 클럽의 선수는, 더욱이 맨유 같은 유서 깊은 클럽의 선수는 그 지역사회나 유럽 전체에서 엄청난 영향력과 명예를 갖는다. 저 19세기 중엽 빅토리아 왕조 때의 고조할아버지부터 대를 이어 지역사회의 명예와 역사를 상징하는 맨유라는 팀의 응원석에 앉아온 사람들은 8년 동안 늠름하게 자기 지역 팀을 위해 헌신한 박지성을 진실로 사랑하고 존중한다. 우리의 열악한 스포츠 환경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선수가 그저 운동이나 열심히 해서 성공한 사람 정도로 취급받고 그렇게 성공하지 못한 선수는 낙오자처럼 평가받는 이 사회의 열악한 스포츠문화를 박지성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맨유에서는 대우가 달랐고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박지성이 표현한 ‘특권’이란 바로 이런 존중의 시선이 아닐까.

둘째, 맨유의 비범한 성적은 철저한 선수 관리 시스템의 결과다. 스카우터들이 지금도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유망주를 선별하고 그렇게 영입한 선수들은 한 치의 빈 틈 없는 시스템 속에서 운동을 한다. 단지 고급 주택을 제공하거나 원정 경기 때 전세기를 띄운다는 식의 외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 두 가지 사례가 있다. 2010년 5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위해 한국 대표팀은 오스트리아 노이슈티프트 캄플 구장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그 장소에 맨유의 의료팀이 와 있었다. 그들은 ‘일시적으로’한국 대표팀으로 소속이 바뀐 박지성에 관한 신체 활동 능력 분석 자료를 우리 코치진에게 알려줬을 뿐만 아니라, 그 와중에도 1년 내내 자기 팀 소속인 박지성의 신체 활동을 점검했다. 이런 과학적인 시스템이 박지성이 최고 클럽에서 받은 특권이다.

다른 사례로는 2009년, 맨유가 내한했을 때를 떠올릴 수 있다. 당시 맨유는 국내 K-리그의 정상급 클럽인 FC서울과 친선 경기를 했다. 박지성을 비롯해 긱스, 호날두, 루니 등이 친선경기임에도 최선을 다해 뛰었다. 루니는 거의 우격다짐처럼 보이는 돌파를 시도했는데, 정규 시즌에서 보여주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 경기장에서 내가 본 것은 그런 경기력만이 아니었다. 경기가 끝난 후, FC서울 선수들은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맨유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에 남아 있었다. 팬들을 위한 답례나 사인회 때문에? 그게 아니었다. 맨유의 피지컬 트레이너가 선수들을 분류했다. 풀타임을 소화한 선수와 중간에 교체된 선수들로 나누어 회복 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풀타임을 소화한 선수들은 주로 스트레칭을 했고 절반 정도 뛴 선수들은 가볍게 달리기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기를 뛰지 않은 선수나 골키퍼처럼 활동량이 많지 않았던 선수들도 따로 모여서 회복 훈련을 했다. 관중이 다 빠져나간 후에도 그들의 회복 훈련은 좀 더 지속되었다. 철저한 프로 정신과 과학적인 시스템!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서 입은 ‘특권’은 바로 그것이다.

차범근과 박지성

그런 박지성이 2011년 1월, 대표팀을 은퇴했다. 이후, 감독이 두 차례나 교체됐고 박주영은 슬럼프를 겪고 있으며 재기한 이동국이 분투하고 있지만 대표팀에서 박지성의 은퇴 공백은 확연해 보인다. 그는 단지 한 명의 유능한 공격형 미드필더 정도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시한을 최대 3~4년으로 보고 이에 잉글랜드 최상위 프로 리그에 몰입하는 것으로 타깃을 재설정하면서 대표팀 은퇴를 결정했는데, 이 결정에 대해 당시 축구계에서는 두 가지 반응이 나왔다.

먼저 축구협회 수뇌부의 반응.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은 “진의 파악이 중요하다. 깊은 얘기를 들어보겠다”고 했다. 당시 카타르에서는 아시안컵 대회가 개막될 무렵이었고 이미 협회 안팎에서 그 대회를 끝으로 박지성이 은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퍼진 상태였다. ‘진의 파악’이라는 미묘한 표현은, 협회 측에서 은퇴를 만류했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 섭섭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회택 부회장은 “그의 몸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라고 말했다. 한 선수의 고뇌에 찬 은퇴 결심이 ‘국위 선양’이라는 애국주의 신화에 휘둘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박지성은 “은퇴는 대표팀은 물론 나를 위해서도 좋은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 점을 생각해보자. 당시 차범근 전 수원 감독은 인터넷에 매우 침통한 자기고백적인 글을 남겼다. 그 첫머리는 이렇다. “환갑이 별로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했는지 생각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아니, 천하의 차범근 아닌가. 그는 무엇을 왜 부끄럽다고 했는가. 당시 그가 남긴 글을, 그 핵심을 정리해 다시 새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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