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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미국 선교사 브루엔이 처음 전파

한국야구 ‘원조(元祖)’는 대구

  • 김중순 │계명대 한국문화정보학과 교수 tsk@kmu.ac.kr

1899년 미국 선교사 브루엔이 처음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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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에 야구가 도입된 건 언제일까. 1904년 미국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처음 야구를 전했다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 그런데 그보다 5년 앞선 1899년 대구에 야구가 전파됐다는 관련 문헌이 발견됐다. ‘야도(野都)’ 대구의 전통이 처음 공개된 것이다.
최근 나는 클라라 헤드버그 브루엔(Clara Hedberg Bruen)이 정리한 ‘40 Years in Korea’(한국에서의 40년)라는 제목의 자료집 번역을 완성해 ‘아, 대구! 브루엔 선교사의 한국생활 40년’(평화당출판사) 전 5권 가운데 1권을 펴냈다. 헨리 문로 브루엔(Henry Munro Bruen·1874~1959)을 비롯한 여러 초기 선교사가 남긴 일기 혹은 편지글들이다. 여기엔 구한말인 1899년부터 대구에서 생활하며 남산교회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선교봉사활동을 펼쳤던 브루엔의 야구 전파 과정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클라라는 그의 두 번째 부인이다.

그저 외국인의 눈에 비친 당시 대구 풍경이 어떠했을지 들여다보고 싶었던 나는, 갈증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샘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전문 분야도 아니면서 이 자료집의 번역과 해설에 손을 댄 이유다.

때론 지루한 개인사도 들어 있지만, 재미있었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재미가 어떤지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편지글이 단순한 텍스트가 아닌 편지글로 읽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재미가 지나쳐 번역을 단숨에 끝내지 못하고 질질 끌어야 했지만, 독자를 위해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었다. 숨어 있는 사건들을 찾아내 퍼즐 맞추기를 시작했다.

이 책을 그저 선교 역사의 일부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읽는다면 많은 걸 놓치게 될 것이다. 단순히 교회의 사실(史實)에 대한 집대성도, 내공 깊은 선교사들의 신앙 고백서도,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뤄낸 기적에 대한 보고서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자료집엔 지금까지도 미국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WASP(White Anglo-Saxon Presbyterian)의 정복담도 있지만, 당시의 비루했던 조선인들이 오므리지도 펴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맞닥뜨린 근대에 대한 내러티브가 담겨 있다.

한반도에 근대문명이 찾아온 건 주로 부산이나 제물포 같은 항구를 통해서다. 중국으로부터 육로를 통해 유입되기도 했지만, 그것이 내륙으로 전달되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렸다. 그럼에도 한반도 ‘최초’의 사과나무가 유입된 곳이자 한반도 ‘최초’의 피아노가 유입된 곳이 대구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반도 ‘최초’로 야구가 유입된 도시도 바로 대구다. 내륙지방의 대표적인 보수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는 그런 점에서 참으로 흥미로운 도시다.

우리는 고베에서 시모노세키까지 작은 일본 화물선을 타고 내륙의 바다를 지나갔는데, 여러 개의 예쁘고 작은 섬들을 거쳐서 지나갔소. 거기서부터 우리는 한국의 부산으로 가는 해협을 지났는데, 거친 바닷길이었소. 우리 ‘대구’ 선교사들은 서울에서 열리는 선교 연회에 참가 중이었소. 그래서 나는 호주 선교사 브라운 양에게 짐을 부탁했소. 해외 선교부에서 추천한 장비 외에도 텐트, 천으로 된 접는 의자와 간이침대, 총과 탄약, 낚싯대와 낚시도구, 그리고 방망이, 공, 마스크, 글러브 같은 야구 장비들, 테니스 라켓과 공, 캠프용 취사도구, 랜턴을 구입했고, 빅터 제품인 축음기, 카메라, 삼각대, 로체스터 램프, 정수기, 자전거, 그리고 캔버스보트를 가져왔소.

대구에 야구를 가르치다

브루엔이 미국에 남은 약혼녀 마사(Martha·이후 브루엔의 첫 부인)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인데, 1899년 9월 부산항에 도착하는 장면이다. 브루엔의 이삿짐에 이미 야구 장비가 포함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같은 편지에선 제물포를 거쳐 서울로 입성해 선임 선교사인 마펫으로부터 야구와 관련한 질문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브루엔이 야구광이란 사실을 동료 선교사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다시 인력거를 타고 서울시내까지 3마일을 달려 1899년 9월 29일에 도착했소. 여기서 아담스 씨와 마펫 씨를 만났소. 나는 마펫 씨가 나에게 아주 어려운 신학적인 질문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도 이렇게 물었소. “브루엔, 요즘 야구계에서는 누가 잘나가나요?”

그런가 하면, 브루엔이 1900년 1월 31일자로 마사에게 보낸 편지에도 설날 풍경을 그리면서 다시 한 번 야구 이야기가 언급된다. 이번엔 아이들에게 야구 게임을 직접 가르쳤다는 내용이다.

아이들과 우리는 서로 좋아하기는 했지만, 녀석들은 상당히 경계를 했소. 우리가 그 아이들의 옷을 좀 살펴보기 위해 잡는 시늉이라도 하면 아이들은 금세 흩어지고 말았소. 그들 중에 좀 자란 몇몇 용감한 녀석들을 잡기는 했지만 말이오. 아니 내가 잡혔던 게지요. 걔들은 내 손을 잡고 집까지 뒤따라왔소. 제법 먼 거리인데 말이오. 집에 오니 6명 내지 10명 정도가 더 있어서 당신의 테니스 라켓과 볼을 가지고 야구를 가르쳤다오. 그들은 한 사람씩 번갈아 가며 공을 치고 나는 공을 잡고 감독을 했소.

1899년 미국 선교사 브루엔이 처음 전파

1 1931년에 찍은 브루엔의 노방(路傍) 전도 광경. 2 한국에 야구를 처음으로 소개한 이로 알려진 미국 선교사 필립 질레트. 3 1914년 혹은 1915년에 찍은 미국 선교사 브루엔과 그의 첫 부인 마사 사진. 4 삼성라이온즈 선수들이 지난해 11월 1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우승한 뒤 단체로 우승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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