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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 미리 보는 인천 아시안게임

아시아 넘어선 빅 스타들 지상 최대 라이벌전

  • 기영노 | 스포츠평론가

아시아 넘어선 빅 스타들 지상 최대 라이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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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북한 참가하면 국제적 흥행
  • ● 개회식 총감독 임권택, 총연출 장진
  • ● 양학선-이세광, 박태환-쑨양 세기의 대결
  • ● 아시아 주방장 ‘요리 축제’ 함께 열려
아시아 넘어선 빅 스타들 지상 최대 라이벌전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를 슬로건으로 내건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의 성패는 인천시민, 흥행 여부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쥐고 있다.

인천 아시아경기대회가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16일간 열린다. 육상 수영 등 28개 올림픽 종목과 야구를 비롯한 비(非)올림픽 8개 종목 등 모두 36개 종목에 45개국 1만3000여 명의 선수와 임원이 참가한다.

36개 경기가 펼쳐질 38개 경기장 중 12개는 인천이 아닌 다른 지역에 마련됐다. 경기 하남시, 고양시, 안산시, 부천시, 안양시, 수원시, 화성시와 충북 충주시, 서울 양천구에서도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린다.

가장 큰 관심사는 흥행 여부다. 각 경기장에 관중이 가득 들어차지 않으면 중계 화면이 빈약해진다. 전국체전과 별 차이가 없게 된다. 따라서 모든 경기장에 매일같이 구름 관중이 몰려들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중국은 1974년부터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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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연재

인천시는 대회 기간에 중국 일본 등지에서 20만 명가량의 관광객이 경기장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경기장 수와 16일 동안의 경기 일정에 비하면 관광객 수는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인천시민과 경기가 열리는 도시의 시민이 경기장을 자주 찾아 분위기를 고조시켜야 한다. 마침 대회 기간에 ‘국화축제’와 아시아 각국 최고의 주방장이 솜씨를 겨루는 ‘음식문화 축제’가 함께 열린다.

북한의 참가 여부는 아시아경기대회가 지역 대회로 그치느냐, 아니면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는 빅 이벤트로 자리매김하느냐를 판가름할 것이다. 북한은 2002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2003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2005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선수와 응원단을 파견해 지역 대회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대회로 격상하는 데 기여한 바 있다. 김정은 제1비서가 참가를 최종 승인하면 아시아경기대회의 흥행은 8할 이상 성공한 셈이다.

아시아경기대회 입장료는 최저 무료(마라톤, 경보 등)에서 최고 10만 원(남자축구 결승전)이다. 그 밖에 각 종목 입장료는 박태환 손연재 이용대 같은 스타플레이어가 출전하거나 인기가 있는 종목은 3만~5만 원 안팎, 그렇지 못한 종목은 5000원~2만 원이다.

IT 초강국에서 열리는 만큼 최첨단 기술을 적용해 ‘스마트 아시아경기대회’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IT를 경기 운영과 중계 등에 연계하는 것은 물론 참가자, 운영자는 모바일 기기를 통해 경기 상황과 결과, 교통, 맛집까지 한손에 찾아볼 수 있다.

1951년 ‘영원한 전진’을 슬로건으로 인도 뉴델리에서 처음 열린 아시아경기대회는 원래 아시아 각 국민의 우호 증진 및 세계 평화 기여를 목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극동 선수권대회와 서아시아경기대회를 통합해 창설된 것이다.

1948년 런던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한국 필리핀 미얀마(당시 국명 버마) 인도 타이완 스리랑카 6개국이 모여 4년마다 한 번씩 아시아경기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1951년 1회 대회 때 한국은 6·25전쟁으로 불참했다. 개최국 인도, 일본 등 11개국이 참가해 열린 뉴델리 대회가 끝나고 3년 후 마닐라에서 제2회 대회가 개최됐다. 마닐라 대회 이후부터는 4년마다 열린다.

초창기에는 이스라엘도 참가했지만 중동 국가의 반대가 심해 1974년 테헤란 대회 이후 이스라엘은 출전하지 못했다. 대신 중국과 북한이 합류했다. 또한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아시아에 속하는 독립국이 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이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에 가입했다. 이 5개국은 1994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제12회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종합 1위 中·日 8번씩

1951년 1회 대회부터 1978년 8회 대회(방콕)까지 일본이 매 대회 가장 많은 메달을 땄다. 아시아경기대회도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종합 시상제가 없지만 통신사와 각국 언론이 편의상 금메달 수 기준으로 종합 순위를 정한다.

중국은 처음으로 참가한 1974년 테헤란 대회 때 일본은 물론 개최국 이란에도 뒤져 3위에 그치더니 1978년 방콕 대회 때는 일본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1982년 뉴델리 대회에서 처음 종합 1위를 차지한 후 2010년 광저우 대회까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1990년 베이징 대회 이후 대회마다 전체 금메달 수의 40%까지 휩쓸며 아시아 스포츠의 거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북한은 1978년 방콕, 1982년 뉴델리, 1990년 베이징 대회에서 모두 4강 안쪽에 들었으나 이후에는 10위 안팎에 머물렀다.

한국은 1954년 2회 마닐라 대회 이후 2~3위권을 맴도는데, 1986년 서울 대회 때는 종합 1위를 차지할 뻔했다. 중국과 금메달 수 93대 94, 단 한 개 차이로 2위에 머물렀다. 당시 한국은 중국을 물리치고 종합 1위를 차지하려고 양궁의 금메달 수를 4개에서 거리별로 메달을 수여하도록 해 12개로 늘리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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