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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대표팀에서 ‘공정사회’를 봤다

슈틸리케 감독의 ‘희망 리더십’

  • 장원재 │축구 칼럼니스트 drjang12@gmail.com

국민은 대표팀에서 ‘공정사회’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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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축구대표팀은 최근 아시안컵 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불과 수개월 전 브라질 월드컵 때의 그 팀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울리 슈틸리케(61) 대표팀 감독의 선수 선발, 전략, 언술은 그라운드 밖 한국 사회 전체에 잔잔한 울림을 줬다. 그의 리더십을 조명해봤다.
국민은 대표팀에서 ‘공정사회’를 봤다
2014년 6월. 꽃 대신 엿이 날아들었다.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축구대표팀이 귀국한 인천공항에서 벌어진 광경이다. 2015년 2월, 엿 대신 꽃이 전해졌다. 대표팀에 쏟아지던 비난은 불과 반년 사이에 따뜻한 성원과 격려로 바뀌었다. 냉정하게 보면, 아시안컵 준우승은 이만큼의 열광을 이끌어낼 업적은 아니다.

하지만 대중은 환호했다. 한국 축구와 감독에게 별칭을 선사했다. 상대를 허우적거리게 만들다 끝내 무릎 꿇린다고 ‘늪 축구’, 실용적으로 딱 필요한 만큼만 득점한다고 ‘실학축구’라고 했다. 슈틸리케 감독을 조선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에 비유한 합성사진도 인터넷을 수놓았다.

무엇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는가. 확실한 이유가 있는가.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우리가 보고 싶어 하던 무엇인가를 아주 확실하게, 그것도 예상보다 빼어난 결과를 가지고 눈앞에 펼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공정사회(公正社會)’다.

최근 회고록을 출간해 주목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집권 초 내건 슬로건이 ‘공정사회’다. 구호 자체로는, 많은 이가 공감했다. 한국 사회를 이대로 둬선 안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불공정한 사회에선 학연·지연에 의한 인사, 측근 위주 인사, 회전문 인사, 코드 인사 같은 인사 참극이 횡행한다. 특권을 지키는 데에만 솔선수범한다. 불통과 독주, 사분오열이 일상화한다. 거기에다 무능하고 추진력도 없어 어느 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축구적, 축구외적 리더십

국민은 대표팀에서 ‘공정사회’를 봤다

많은 시민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아시안컵을 마치고 귀국한 한국 축구대표팀을 열광적으로 환대해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공정사회를 내세웠지만 이를 실천해 보여주진 못했다. 장관 딸이 해당 부처의 공무원으로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나와 공정이라는 말을 무색게 했다. 집권층은 임기 내내 불통 논란에 휩싸였다. 정권이 바뀐 뒤에도 공정사회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독일에서 온 벽안의 축구감독에게서 공정사회의 실천적 사례를 확인한 것이다. 슈틸리케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아, 이렇게 하면 공정사회가 되는구나’ 하는 느낌을 얻었다. 이것이 슈틸리케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지지로 이어진 기폭제다. 대중은 슈틸리케의 축구적인 리더십,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축구 외적인 리더십을 모두 즐기려 하는 것 같다.

감독 한 사람이 바뀌면 많은 것이 바뀌는가. 물론이다. 2012/13 영국 프리미어리그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8승 5무 5패, 86득점 34실점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바로 이듬해, 맨유의 성적은 19승 7무 12패 43득점 21실점으로 급전직하했다. 최종순위는 리그 7위였다. 선수도, 코치진도, 구단도, 관중도, 리그에 참여한 다른 19개 팀의 전력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바뀐게 있다면, 오직 알렉스 퍼거슨이 맨유 감독에서 물러난 사실 단 하나였다. 감독 한 사람에 따라 팀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퍼거슨이 있고, 없고

한국인의 가슴에 불을 지른 남자, 슈틸리케는 누구인가. 그는 1954년생으로 1973년 독일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뮌헨글라드바흐에서 데뷔해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리그 3연패에 공헌했다. 1977/78 시즌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옮겨 1984/85 시즌까지 6번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스페인 시절 그는 네 차례 최우수 외국인선수상을 수상했을 만큼 인정받는 선수였다. ‘위대한 공격수는 팬을 불러 모으고 위대한 수비수는 우승컵을 가져온다’는 축구 격언의 모델이었던 셈이다.

서독 국가대표 경력은 1975년부터 1984년까지 42경기 출전에 3골 득점. 월드컵 출전은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이 유일하다. 이 대회에서 슈틸리케는 ‘어마어마한 경험’을 한다. 서독은 홈팀 스페인을 2-1로 잡고 4강에 올랐다. 준결승 서독-프랑스전은 축구 역사에 남을 명승부였다. 전·후반 90분이 지난 시점의 스코어는 1-1. 연장전에서 프랑스는 두 골을 먼저 넣고 3-1로 달아났다. 서독은 저력을 발휘해 기어이 3-3 동점을 만들었다. 마침내 승부차기. 서독은 먼저 실축했지만 결국 승부차기 스코어 5-4로 승리했다. 이때 실축해 흐느낀 서독 선수가 슈틸리케였다. 독일 축구 역사상, 월드컵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한 선수는 슈틸리케가 유일하다.

슈틸리케가 지도자로서의 재능을 꽃 피운 곳은 유소년 축구팀이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독일 대표팀 코치를 지낸 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독일 U-20팀 감독으로 적(籍)을 옮겼다. 그는 유소년을 강화해 세계를 제패하자는 ‘독일 축구 개조계획’의 핵심 인력이었다. 그런 슈틸리케가 독일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선수 보는 눈이 독특해 윗사람과 부딪치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선택은 거의 대부분 탁월한 것이었음이 증명됐다고 한다. 그의 선수 선발 기준은 잠재력, 창의력, 인성을 동반한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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