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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 없는 근성’ 체화 ‘똑바로 멀리 치기’ 단련 ‘이기는 골프’ 익숙

한국 여자골프가 세계 최강인 이유

  • 이강래 | 헤럴드스포츠 대표 altimus@naver.com

‘멘붕 없는 근성’ 체화 ‘똑바로 멀리 치기’ 단련 ‘이기는 골프’ 익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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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언론은 요즘 경외심을 갖고 한국 여자골프를 지켜본다.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11개 대회 중 9개 대회에서 한국 또는 한국계 선수들이 우승했다. 특정 국가 선수들이 이처럼 투어를 ‘장악’한 것은 처음이다. 한국 여자골프는 왜 이렇게 강한가.
‘멘붕 없는 근성’ 체화 ‘똑바로 멀리 치기’ 단련 ‘이기는 골프’ 익숙

박인비가 5월 LPGA투어 노스 텍사스 슛아웃에서 아이언 샷을 하고 있다. 그는 이대회에서 우승했다.

박인비(27·KB금융그룹)는 5월 4일 미국 텍사스 주 어빙에서 열린 LPGA 투어 노스 텍사스 슛아웃에서 15언더파 269타로 박희영(28·하나금융그룹), 크리스티 커(미국)를 3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올 시즌 LPGA 투어에서 박인비·김세영(22·미래에셋), 그리고 세계랭킹 1위인 한국계 리디아 고(18·뉴질랜드)가 각각 2승을 올렸다. 최나연(28·SK텔레콤), 양희영(26), 김효주(20·롯데)도 한 차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지난해에도 한국(계) 선수는 LPGA에서 16승을 거뒀다. 올 시즌엔 LPGA 대회가 22개 남아 있어 한국(계) 역대 최다 우승이 점쳐진다.

‘코리안 런(Korean Run)’

매주 발표되는 롤렉스 월드랭킹 100위 안에 가장 많은 이름을 올린 국가 역시 단연 한국이다. 무려 34명. 500위 안에도 147명으로 가장 많다. 5월 현재 세계랭킹 10걸엔 한국 국적 선수가 3명 포진해 있다. 2위 박인비와 4위 김효주, 8위 유소연(24·하나금융그룹)이다. 20걸엔 8명이 있다. 미국 언론은 이를 두고 ‘코리안 런(Korean Run)’이라고 표현했다.

미국 투어를 뛰는 한국 선수들도 신바람이 난다. 김효주는 3월 JTBC 파운더스컵에서 우승했다. 올해 미국에서 루키 시즌을 보내고 있는 김세영, 장하나(23·비씨카드), 백규정(20·CJ오쇼핑)도 부친과 함께 투어생활을 하고 있다.

1990년대 말 박세리와 김미현, 박지은, 한희원 같은 ‘LPGA 투어 1세대’가 미국 프로골프에 처음 도전했다. 그때와 지금 상황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1세대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불안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여자 프로골퍼들에게선 여유와 자신감이 넘쳐난다.

이들은 세계의 벽이 높지 않다고 본다. 무엇보다 이들은 1세대 선배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축적한 정보를 바탕으로 일찌감치 미국 진출 전략을 수립했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꺾기 위해 체계적으로 훈련했고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았다. 또한 영어, 외국 음식, 미국 문화에 대한 적응까지 마쳐 경기 외적인 스트레스를 원천봉쇄했다. 대표적인 예가 김효주, 김세영, 장하나다.

김효주는 지난해 9월 프랑스에서 열린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베테랑 캐리 웹(호주)을 상대로 역전우승을 거뒀다. 마지막 18번홀에서 4.5m 거리의 만만찮은 버디 퍼트를 넣어 승리했다. 웹이 해야 할 플레이를 19세 소녀가 해낸 것이다. 웹의 낙승을 점치던 전문가들의 예상을 깬 이변이었다. 웹은 1995년생인 김효주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세계 무대를 주름잡았다. 1990년대 말 아니카 소렌스탐, 박세리와 함께 LPGA투어에서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했다. 통산 41승을 거뒀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김효주의 대담함에 흔들리며 마지막 홀에서 치명적인 칩샷 실수를 범했다.

웹은 3월 JTBC 파운더스컵 때 기자에게 “김효주는 완벽하게 게임을 지배했다.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은 결코 요행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김효주가 미국을 대표하는 강호 스테이시 루이스와 우승 경쟁을 펼치기 직전에 한 말이다. 웹은 루이스가 아닌 김효주의 우세를 점쳤다. 그 예상대로 김효주는 미국 본토 첫 경기에서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김세영도 미국에서 멋진 스토리를 쓰고 있다. 김세영은 자신의 데뷔전이자 시즌 개막전인 1월 코츠 골프 챔피언십에서 예선탈락한 뒤 다음 주 퓨어실크 바하마 LPGA 클래식에서 우승했다. 유선영, 아리야 주타누간(태국)과의 연장전에서 거둔 승리다. 하루하루 다른 게 골프라지만 일주일 새 ‘컷오프’와 ‘우승’이라는 극과 극의 결과물을 내놓은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김세영은 4월 하와이에서 열린 롯데 LPGA 챔피언십에서도 ‘거함’ 박인비를 상대로 극적인 연장전 승리를 거뒀다. 연거푸 나온 ‘칩인 파’와 ‘샷 이글’은 실력이 뒷받침된 행운이었다.

어머니 사망보상금으로 골프

많은 골프 전문가는 ‘코리안 런’의 비결로 가족의 헌신, 대기업의 후원, 산악지형인 한국 골프장에서의 단련을 꼽는다.

이와 관련해 한국 여자골프, 그 도도한 흐름의 발원지인 박세리 신화를 먼저 살펴보자. 1997년 외환위기 때 박세리의 맨발 투혼을 지켜본 한국인들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또한 골프채 하나로 큰돈을 벌고 스타덤에 오르는 신세계가 열린 것에 고무됐다. 내 딸을 ‘제2의 박세리’로 만들려는 현대판 골드러시가 일어났다. 여기엔 가족의 헌신이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박세리의 성공 뒤에도 가족의 뒷바라지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박세리는 아버지 박준철 씨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부터 흘린다.

신지애, 박인비, 최나연, 김세영, 장하나, 김효주도 그 길을 따라갔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프로선수가 되기까지 선수당 보통 8억~10억 원이 투자된다. 이 정도 돈은 웬만한 중산층 가정이라도 딸의 골프에 ‘올인’ 해야 쏟아부을 수 있는 금액이다. 없는 집안에서 이렇게 뒷받침한 사례도 많다. 큰 빚을 지기도 한다. 신지애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보상금으로 골프를 했다.

돈도 돈이지만 부모는 자신의 시간도 딸에게 바쳐야 한다. 자신의 삶이 희생되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성공한 여자 골퍼 중 부유층 출신은 박지은과 한희원 정도다. 이렇게 집안의 모든 게 투자되다보니 ‘내가 성공해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다짐이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연습벌레가 되고 독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많은 한국 여자 골퍼에겐 ‘병참’ 개념으로 아버지가 투어에 따라붙는다. 김효주는 부친, 한국인 캐디, 로드 매니저를 대동한 채 LPGA 대회를 누빈다. 딸은 훈련과 경기에 집중하고 나머지 일은 아버지가 해결하는 분업 시스템이다. 가족이 함께 다니면 경비가 많이 든다. 그럼에도 ‘골프 대디’가 유행하는 것은 ‘상금을 더 따면 된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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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래 | 헤럴드스포츠 대표 altim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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