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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괴감에 무너졌다 바닥에서 성숙해졌다”

진화한 ‘타격기계’ 김현수

  • 볼티모어=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자괴감에 무너졌다 바닥에서 성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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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야, 하나 쎄리라!”

“그 경기에서 주전으로 나서질 못했어요. 9회말 애덤 존스의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어요. 시애틀이 10-0으로 앞서고 있었고. 그때 시애틀 더그아웃에서 대호 형 목소리가 들리더라고요. ‘현수야, 그냥 하나 쎄리라(때려라)’ 하는 겁니다. 깜짝 놀랐어요. 상대팀 선수가 그렇게 말하기가 어렵잖아요. 승부가 기울었고 마지막 타석이었기에 대호 형이 제게 힘을 실어주려고 그렇게 소리를 지른 것 같아요. 대호 형의 외침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속구 적응 후 안정 찾아

김현수는 땅볼 타구를 때려 아웃될뻔했지만 2루수 실책으로 1루 베이스를 밟았다. 이후 시애틀에서 이대호를 만났을 때 물어봤다. 아무리 후배라도 상대팀 선수에게 안타를 치라고 말하는 건 팀워크를 해치는 일이 아니냐고.

“감독, 코치한테 현수와의 관계에 대해 잘 설명했어요. 힘든 시기를 딛고 올라왔으니 눈치 보지 말고 자신 있게 상대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현수는 KBO(한국프로야구)리그에서 최고의 타격 능력을 가진 선수예요. 올라올 사람은 올라올 거란 믿음을 갖고 지켜봐 주시면 좋겠어요.

(박)병호도 빠른 볼 공략이 좋은 선수예요. 언론에서 하도 못 친다, 안 된다 하니까 점점 더 자신감을 잃는 것 같아요. 후배들이 메이저리그에 왔다고 눈치 보는 게 싫어요. 하던 대로 자신감 있게 경기를 풀어나가면 좋겠어요. 야구를 왜 ‘멘털 게임’이라고 하겠어요. 결국엔 자기가 해결하고 극복해야 해요. 그런 점에서 현수는 잘 견뎌냈어요. 대견할 정도로.”



김현수가 벤치 신세에서 주전으로 발돋움한 터닝포인트는 5월 25일(한국시각) 휴스턴  방문경기다. 이전까진 일주일에 한두 경기에 간신히 출전하는 수준이었다. 휴스턴전부터 5월 31일 보스턴 경기까지 6경기 연속 선발 출전했고, 7월 5일 뉴욕 양키스전까지 11경기 연속 출루를 기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자 조이 리카드, 놀란 라이몰드는 부진을 거듭했다.

쇼월터 감독은 제한된 출전에도 높은 타율을 선보이며 제몫을 해내는 김현수를 계속 외면할 수 없었다. 김현수의 타순은 9번, 8번에서 어느새 2번으로 올라왔다. 1번타자 애덤 존스와 테이블 세터를 이루며 볼티모어의 중심 선수로 거듭난 것이다.

김현수는 패스트볼에 어려움을 겪다가 부단한 노력 끝에 패스트볼을 치기 시작하면서 타석에서 안정감을 찾게 됐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물론 이곳 기자들도 제가 시속 90마일(약 145km) 이상의 빠른 볼을 칠 실력이 안 된다고 지적했어요. 어떤 기자는 제가 안타를 친 날, 대놓고 ‘상대 투수의 구속(球速)이 느려서 안타를 친 거냐’고 물어봤을 정도입니다. 그동안 콘택트(contact, 방망이에 맞히는 것) 하면 김현수였는데, 여기선 그게 안 통하는 거예요. 스캇 쿨바 타격 코치와 머리를 맞대고 대응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쿨바 코치는 피칭머신을 사용해보자고 조언더라고요.”

KBO리그 두산 베어스 선수일 때 김현수는 공을 최대한 오래 보면서 때리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평균 구속이 한국보다 4~5㎞/h 더 빠른 메이저리그에선 이런 기다림이 통하지 않았다. 빠른 볼에 타이밍을 잡지 못하면서 변화구에 대처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볼티모어 지역지 ‘볼티모어선’이 김현수가 자신의 문제점을 극복해나간 방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김현수는 일반 타격 훈련 뒤 150회의 피칭머신 타격을 3차례(총 450개) 반복했고, 남은 공이 없을 때까지 계속 때렸다. 남들이 쉬는 날에도 그는 어김없이 훈련장에 나와 피칭머신 앞에서 땀을 흘렸다.’



혼자만의 싸움

기자는 피칭머신 훈련에 도움을 준 스캇 쿨바 코치를 볼티모어에서 만나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쿨바 코치는 1998년 프로야구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됐을 때 현대 유니콘스의 첫 외국인 선수로 활약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은 터라 김현수에게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다. 쿨바 코치는 스프링캠프에서 김현수가 빠른 볼 공략에 어려움을 느끼는 걸 보고 시즌에 들어가면 분명 큰 문제점으로 나타날 것이라 예상했다고 한다.

“김현수는 분명 메이저리그의 속구를 이겨낼 실력이 있었어요. 저는 그 실력이 나올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게 피칭머신이었어요. 피칭머신의 구속을 올리면서 김현수가 다양한 거리에 서서 그 공을 보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빠른 공에 타이밍을 맞추는 능력을 갖출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구종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알게 되죠.”

쿨바 코치는 김현수가 빠른 공에 적응하는 것은 물론 얼마나 빨리 적응을 끝내는지에도 주목했다.

“한국 선수들이 매일 시속 90마일, 95마일의 공을 보는 건 아니잖아요. 이곳은 선발이든 불펜이든 90마일 이상의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런 상황을 빨리 받아들여야 했어요. 빠른 공과 변화구의 궤적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중요한데, 김현수는 ‘좋은 선수’잖아요. 한국에서 ‘타격기계’로 인정받던 선수기에 쉽게 적응할 거라 믿었습니다.”

쿨바 코치는 김현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만의 싸움을 벌였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김현수가 피칭머신으로 빠른 스피드의 공에 대응하며 자신의 감각을 찾기를 바랐습니다. 스윙을 좀 더 짧게 하기 위해 혼자서도 무척 많이 노력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요즘 그의 타격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98마일의 공에도 잘 반응하는 것은 물론 어떻게 해서든 안타를 만들어냅니다. 한국 최고의 타자가 메이저리그에 혼자 와서 수개월 동안 시련을 겪고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김현수는 혼자 힘으로 일어섰고 자신과 지루한 싸움을 벌였습니다. 결국 오리올스의 타선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거듭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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