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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인터뷰|모발이식의 세계적 권위자 김정철 교수

“대머리는 유전질환, 스트레스와는 상관없다”

  • 이권효 영남일보 과학부 기자

“대머리는 유전질환, 스트레스와는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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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머리는 스트레스와 관련이 없는 유전 질환이고, 오히려 지방 섭취 등 식생활이 탈모에 영향을 끼친다. 현재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인정한 대머리 치료제도 복용을 중단하면 원상태로 돌아간다. 가장 확실한 치료법은 머리카락을 옮겨 심는 모발이식술뿐이다.》
서양의학을 일으킨 히포크라테스를 가장 괴롭힌 것은 자신의 대머리였다. 히포크라테스는 아편, 장미나 백합의 추출물, 포도주, 올리브 기름, 아카시아 즙, 비둘기 똥, 사탕무 뿌리를 섞은 연고를 만들어 부지런히 대머리에 발랐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유럽대륙을 정복했던 로마의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정작 자신의 대머리 문제는 정복하지 못했다. 카이사르는 당시 유행하던 온갖 발모제를 구해 발라보았으나 효과가 없자 뒷머리를 길러 대머리를 덮었고, 결국엔 월계관으로 대머리를 가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기원전 400년경 히포크라테스를 괴롭혔던 대머리 문제는 2400년이 지난 지금도 속시원히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대머리는 정력이 세다’ ‘대머리는 인자하다’는 속설이 있긴 하지만, 정작 자신이 대머리인 사람은 열이면 열 명 모두 ‘그래도 대머리는 싫어!’라는 반응을 보인다.

사실 대머리는 다른 질병과는 달리 당장 생명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질병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음에도 대머리는 아직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하지만 대머리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거나, 이미 상당히 진행되고 있거나, 아니면 대머리가 ‘완성된’ 단계에 있어 이를 괴로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일 경우 문제는 심각하다. 스스로 대머리도 개성이라고 당당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한 어떤 질병 못지 않게 자신을 괴롭히는 심각한 질병이 대머리인 것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성인 남성의 20% 정도인 500만명 이상이 대머리 때문에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점에서 경북대 의대 김정철(金政澈) 교수(41·면역학교실 주임 및 피부과 진료)의 대머리 연구는 주목해볼 만하다. 김교수는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고민을 이어받아 대머리 정복을 위해 유전자 분석수준에서 분자생물학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의사다.

그는 94년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세계모발외과학회에서 제1회 학술대상을 받은 데 이어, 95년에는 유럽모발학회에서 금상을 받는 등 세계 모발학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의사 중 한 사람이다. 세계모발외과학회가 펴낸 교과서의 핵심 부분을 김정철 교수가 집필했고, 모발이식 국제워크숍에서는 김교수를 초청하려고 안달할 지경이다.

그의 연구실로는 지금도 모속식모술(머리카락 이식수술법의 하나로, 한 구멍에 들어 있는 여러 가닥의 머리카락을 통째로 들어내 이식하는 방법)과 모발 연구를 배우고 싶어 그를 초청하는 내용의 팩스가 세계 각국에서 끊임없이 날아들고 있다.

무명의사에서 세계제일의 모발이식 전문가로

사실 세계학회에서 주목을 받기 전까지 ‘한국의 닥터김’은 정작 우리나라에서조차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의학자였다. 최근에야 그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머리카락 이식수술법인 ‘모속식모술’이 알려지면서, 그가 몸담고 있는 경북대병원 모발이식센터는 머리카락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2002년까지 대머리 수술 예약이 끝난 상태.

이 정도만 해도 김교수는 ‘잘 나가는’ 의사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전세계 수천만명의 대머리 환자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발에 관해서라면 이 세상 어디에서 누구와 겨루어도 자신있다”고 하는 김교수는 정작 “모발 이식은 내 연구계획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말한다.

지난 1월 초 김정철 교수를 만났다. 기초의학을 연구하는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대머리 치료를 하게 됐는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사람유전자은행’(과학기술부 지정)을 일궈냈는지 들어보았다.

―경북대에서 기초의학 분야인 생화학으로 석·박사과정을 마쳤군요. 현재 하고 있는 모발연구와는 거리감이 있는데….

“지금도 다소 그런 분위기가 있는데, 제가 의과대학에 다니던 80년 전후 시기에 기초의학분야는 아주 인기가 없었어요. 임상 분야 교수를 하든지, 빨리 개업해서 돈을 벌든지 하는 것이 정통 코스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한마디로 ‘실력 없는 사람이 기초의학에 남는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저는 수학에 자신이 있었던 때문인지 의대 예과 때부터 생화학 분야가 체질에 딱 맞았어요.

생화학과 면역학 같은 기초의학에 관심을 갖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후 늘 괴로웠던 것은 ‘돈(연구비)이 없으면 연구 자체가 어렵다’는 점이었고 지금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질병치료에 당장 도움이 될 만한 분야에서 일해야 단 10원이라도 연구비를 따낼 수 있지, 언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는 기초분야에 누가 연구비를 선뜻 주겠습니까.

연구비를 확보해 죽을둥 살둥 연구해도 승산이 있을까 말까 한 것이 바로 ‘기초학문’이에요. 더구나 우리나라의 지방 대학은 서울과 경쟁해야 하는데, 비단 의학뿐 아니라 거의 모든 자연과학의 기초분야 연구 여건이 서울보다 더 열악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연구비를 걱정하던 당시 저는 얼굴에 점을 빼는 연고(이 연고제조방법은 지금도 피부과에서 사용되고 있다)와 무좀치료 연고를 개발하면서, 연구비를 확보할 만한 주제를 찾았는데 그것이 ‘털’이었습니다.”

―‘털’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대머리 연구까지 이어졌지요?

“대학원생(조교) 때 지도교수와 친분 있던 일본인 의사가 겨드랑이 암내수술로 유명했는데 대구에 한번씩 들렀어요. 그를 통해 겨드랑이 털에 조금씩 관심을 가졌습니다. 일본은 1940년대부터 머리카락을 한 가닥씩 옮겨 심는 단일식모술을 세계 처음으로 개발했을 정도로 모발 연구가 상당한 수준에 있었지요.

저는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중에도 틈틈이 털을 공부했는데, 우연히 군부대 안에 있던 돼지의 털이 왜 한쪽은 검고, 한쪽은 누른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검은털을 떼내 누른털 부분에 심어봤지요. 검은털이 확산되는지 알아보려는 실험이었는데 그때는 실패하고 말았지요.

제대 후, 그러니까 92년에 내 머리 뒷부분의 머리카락 20가닥을 떼내 허벅지에 심어봤습니다. 이것이 성공했고 지금도 잘 자라고 있어요.(웃음) 이때 사용한 모발이식방법이 이른바 ‘모속(bundle) 식모술’입니다. 지금까지 머리카락을 옮겨 심는 방법은 일본에서 처음 나온 단일식모술과 미국 유럽 등지의 펀치식모술이 있었는데, 모속식모술은 이 두 가지 방법의 중간형태인 새로운 방식이었습니다.

이듬해에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제1회 세계모발외과학회에 구경삼아 참석해 주최측에 내 허벅지에 심은 머리카락을 보여주니까 사례 발표를 해보라고 하더군요. 예정에 없던 발표였지만 참석했던 의사들의 기립박수를 받고서야 이게 국제적으로 주목받을 만한 새로운 모발이식수술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김교수는 이 연구로 94년 9월 캐나다에서 열린 제2회 세계모발외과학회에서 학술대상을 받기도 했다.

여하간 김교수는 93년 여름 미국에서의 체험 이후 자신의 태도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할 만큼 크게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의 모속식모술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당시 포스트닥(박사 후) 과정을 의논하기 위해 존스홉킨스 의대 신현승 교수(64·분자생물학)을 만나면서 학문, 그러니까 ‘의술’을 넘어 ‘의학’이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것.

대머리는 왜 앞부분에만 생기는가?

“질병 현상을 잘 다루는 것은 의학적 기술일 뿐이지 기초의학 즉 학문은 아니라는 게 신교수 생각이었는데 저에겐 굉장히 충격이었습니다. 모발을 독특한 방식으로 잘 이식한다고 해서 의학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어요. 모발을 기초의학 수준에서 연구할 계획이라면 분자생물학 차원에서 모발 유전자까지 확실하게 연구해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신교수님이 대머리 연구를 권하더군요(신현승 교수도 대머리다). 대머리를 제대로 연구하면 모발이식술, 발모제 등 시장이 꽤 넓어 연구비를 확보할 수도 있을 테고, 머리카락 유전자를 통해 유전자 연구에도 상당한 노하우를 쌓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또 기초의학의 주제를 암이나 에이즈 또는 막연하게 유전자 연구 쪽으로 접근해봐야 미국과는 모든 측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으니 시간낭비라는 충고도 있었어요. 미국 의학계가 아직 눈을 돌리지 않은 틈새를 찾아 그것을 연구하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저로서는 아찔한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이때부터 기초의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두 가지 방향을 설정했어요. 모속식모술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한편, 대머리 유전자를 통해 새로운 차원에서 유전자 연구를 시작함으로써 면역질환 같은 질병 치료에도 접근한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머리카락 유전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연구가 없었기 때문에 열심히 하면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기초의학에도 여러 분야가 있지만 결국에는 분자생물학 차원에서 유전체와 대결하지 않으면 사상누각입니다. 바꿔 말해 유전체 연구는 모든 기초의학의 공통적인 과제라는 것이죠.”

김교수가 분자생물학적으로 대머리 연구에 접근한 것은 아주 간단한 의문점에서 비롯됐다. ‘왜 대머리는 머리 앞부분에 생기는가’가 그 화두(話頭). 실제로 대머리인 사람을 보면 머리 뒤쪽은 머리카락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고, 수염도 오히려 더 잘 자란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유전자를 비교 분석하는 방법으로 집중적으로 연구했다고 한다.

―지난 5년 동안 성과는 어땠습니까.

“95년 유럽모발학회에서 금상을 받는 등 모속식모술의 임상 활용도를 계속 높여 나갔습니다. 연 4회 정도 미국, 유럽, 중동 등 세계 각국에 나가 모속식모술을 소개하고 지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과 8월에도 국제모발학회와 유럽모발학회의 초청을 받아 모속식모술을 시연했습니다.

모속식모술이 알려지면서 연구비도 조금씩 확보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지금은 비용이 많이 낮아진 편이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유전자 한 개 분석하는데 14만원 정도 필요했습니다. 그러니까 유전자 1000개를 분석할 경우 1억원 정도 필요한데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할 수 있었겠습니까? 모속식모술을 통해 연구비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지요.

저는 지금까지 대머리가 진행중인 머리카락 유전자 1500여개, 대머리가 안 되는 머리카락 유전자 1700여개, 수염 유전자 2100여개 등을 분석했습니다. 현재 사람의 유전자를 분석한 수량이 미국은 약 150만개, 일본은 약 60만개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모발유전자 6000여개(3000 종류)가 전부입니다.

97년 과학기술부 한국과학재단이 기질세포 유전자은행을 경북대 의대 면역학교실로 지정했어요. 대머리 연구 때문이 아니라 모발을 통한 사람 유전자분석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 연구비 지원이 늘어 지금은 연간 3억원 정도 확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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