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호

미국의 일방적 관리체제가 문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다시 본다

  • 글: 김태효 외교안보연구원 교수·국제정치학 thkim02@mofat.go.kr

    입력2002-12-31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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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일방적 관리체제가 문제

    한국군과 미국군은 한미연합군 사령부를 구성함으로써 통합지휘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북미관계’와 ‘한미공조’란 말을 쓰는 것은, 국가를 한 사람의 ‘행위자’로 간주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가는 수없이 많고 다양한 자연인이 모인 조직이고, 정치체(政治體)말고도 수많은 국내외 기구와 단체에 의해 영향을 받는 조직임에도 우리는 종종 국가를 한 사람의 행위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왜 우리는 ‘민족국가’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일까?

    산소와 같은 국가안보

    국가에 있어 ‘안전보장’은 산소와 같은 것이다. 누리고 있을 때는 고마움을 모르지만, 그것이 사라진 후에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낀다. 국가안보는 소수 정예 전문가들이 머리를 짜내고 현실을 고려해서 입안하는 정책의 영역이다. 전문가들은 국민 정서와 여론을 고려해 대외전략을 수립한다. 대외정책을 추진하면서 국민을 계도하고 그들의 이해를 구하기도 한다.

    대외정책을 담당하는 실무자의 전략관(戰略觀)은 정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물론 전문가도 때로는 오인(misperception)을 하고, 독단적 사고로 판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라는 집합체의 안위를 꾸려가는 과정은 비교적 합리적(rational)으로 일체적(unitary)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보통이다.

    국가는 소속된 국민의 생존을 보장하고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국력배양에 힘쓴다. 군사력을 키워 주변국의 위협에 대비하고 경제력을 신장시켜 개개인의 생활수준을 풍요롭게 하고자 노력한다.



    국력을 키우는 방법에는 이러한 독자적인 노력 이외에도 동맹국을 확보하는 것이 있다. 대외정책 노선에 뜻을 같이하는 국가끼리 힘을 모아 이익을 꾀하기로 약속한다면 훨씬 수월하게 안보정책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미국과 맺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냉전시기 한미동맹은 소련과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방파제 역할을 하였다. 그러한 한미동맹이 올해로 50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한미동맹이 열띤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반미감정에 불이 붙어 한미동맹 개선론에서 폐지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을 할 때 냉철한 이성과 국가이익에 기초하지 않고, 감정적인 민족주의와 정치적 이해에 의한 주장을 해서는 곤란하다.

    국가관계는 개개인의 대인관계와는 크게 다르다. 감정적으로 밀어붙이고 떼를 쓴다고 해서 일이 되지 않는다. 대안을 준비해놓지 않고 무조건 현상타파를 외친다면, 국민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한미동맹과 관련한 핵심 논쟁거리를 분석해보고, 대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자율성 확보가 관건

    지식인·학생·운동권 세력·정치권·담당 관료 등 한미동맹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세력의 주장에는 몇 가지 쟁점이 있다.

    한미동맹은 누가 누구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인가? 그 약속은 과연 믿을 만한가? 그렇다면 그 약속은 어떤 제도적 절차를 통해 보장되는가? 한국은 왜 자국 군대에 대한 작전권도 소유하지 못하는가? 북한의 국력이 남한에 훨씬 못미치며 한반도에 전쟁 가능성이 높지 않은데, 굳이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함으로써 미군을 우리 땅에 주둔시킬 필요가 있는가? 주권국가의 권리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Status of Forces Agreement)은 왜 추가 개정이 힘든 것인가? 한미동맹이 지속되어야 한다면 그 명분과 기능은 무엇인가? 반미감정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등등의 물음이 그것이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데, 이들은 상호 유동적인 긴장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은 현재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다. 동북아시아의 유동적인 환경 속에서 한국이 안보를 유지하려면 미국과 확고한 군사적 협력관계를 지속시켜야 한다는 것은 옳은 판단이다.

    한국이 미국 이외의 다른 강대국과 동맹을 맺을 경우, 얻을 수 있는 목표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미 확보돼 있고 유지돼온 한미동맹의 가치를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미국은 지리적인 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근접한 강대국인 중국·일본·러시아보다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한반도 정책을 구사할 수 있다. 한국이 근접한 강대국과 동맹관계를 맺는다면 한반도는 강대국의 주관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미 관계를 유지하되, 우리의 전략적 소요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한미 안보관계를 조정해 나간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동북아 지역은 군사 및 경제적 경쟁관계가 심화됨에 따라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가 한층 유동적이고 역동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 변화에 정밀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인 여유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한미 안보협력은, 우리의 전략적 유연성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앞으로 동북아 안보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요소는 미북 관계의 정상화다. 북한과 미국이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맺는다면,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과 군사 지휘체제를 통합한 지금의 한미 군사협력 관계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북일 관계 정상화도 미래의 안보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과 일본이 수교한 다음에도 미군 장성(한미연합사령관)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한다면, 한국은 대북 관계에서 주도권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 운명이 주변 강대국들의 관계 변화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발생할 다양한 주변 상황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쪽으로 미국과의 군사협력 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이 독자적으로 전략적 자립능력을 확보하기는 어려우므로, 확고한 군사적 지원세력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두 가지 관점에서 한미 안보협력 관계의 강도와 형태를 조정해 나가야 한다.

    독자적 영역 늘어나긴 했으나…

    한국과 미국은 그동안 몇 차례 단계적인 변화를 거쳐 현재와 같은 연합방위체제를 마련하였다.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됨으로써 미군의 한국 주둔이 지속된 가운데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가 발족되었다. 그후 한미 군사협력기구는 각기 상이한 지휘체제를 가진 주한미군사령부·한미연합군사령부·유엔군사령부 등 3각 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1978년 7월에 열린 제11차 한미연례안보회의에서는 군사위원회 및 한미연합군사령부 권한위임사항(Terms of Reference for the Military Committee and ROK/US CFC)에 대한 합의에 따라, 한미 양국의 합참의장을 대표로 하는 군사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해 7월 28일 열린 제1차 한미군사위원회는 한미연합군사령부의 임무와 지휘관계를 규정한 ‘전략지시 제1호(Strategic Directive No.1)’를 하달했다. 이로써 1978년 11월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되었다.

    한미군사위원회(MC: Military Committee)는 한미 양국의 국가통수 및 지휘기구의 실무적인 최고 군령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즉 군사위원회가 한미 양국의 전략지시와 작전지침을 발전시켜 한미연합군사령관에게 지시하면, 한미연합군사령관은 한미 양국의 작전부대들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한미연합사가 창설됨으로써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유엔군사령관에서 한미연합군사령관으로 이양됐다. 과거에는 미 8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했으므로, 미군은 한국군에 대해 일방적으로 작전통제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한미 합참의장으로 구성된 군사위원회의 통제를 받는 한미연합사가 출범함으로써, 한국군은 미국군과 연합으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한미연합사가 출범한 후 유엔군사령부는 별도의 법적 군사기구로 존속하게 되었다. 유엔군사령관은 미국 합참의 통제와 지침을 받아, 정전협정 유지 및 이행과 관련된 임무만 수행하게 되었다. 주한미군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는 미국 합참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고, 한미연합군사령부는 양국의 연합 의사결정기구인 한미군사위원회의 통제를 받는 복잡한 지휘체제가 만들어졌다.

    주한미군의 주전력은 2사단인데, 1992년 7월 1일부로 한미연합야전군사령부(한미야사)가 해체되면서 미 2사단은 연합군사령관의 작전통제에서 벗어났다. 이로써 연합사 지상군구성군은 한국 육군으로만 편성되었다.

    그해 12월 연합사 지휘구도에 변화가 일어나 연합군사령관이 겸하던 지상군구성군 사령관에 한국군 장성(연합사 부사령관)이 보임되었다. 1994년 12월 1일에는 한국군에 대한 평시 작전통제권이 한국군 합참의장에게 넘어왔다. 연합사사령관은 전시 작전통제권만 보유하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군의 독자적인 지휘통제 영역은 확장되어 왔다. 그러나 실질적인 운용 측면에서 볼 때, 현재의 연합방위체제는 사실상 미군의 전쟁지휘체제에 거의 모든 한국군을 편입시켜놓은 구조라고 할 수 있다. 1994년 한국군에 대한 평시 작전통제권이 한국군으로 이관되었지만, 여전히 평시 작전의 핵심영역은 ‘연합권한위임사항(CODA: Combined Delegated Authority)’에 의해 연합군 사령관이 관할권을 행사하고 있다.

    한미연합방위체제의 변경과 관련한 논의의 핵심은 한국군에 대한 전·평시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 완전히 이양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현재의 한미연합방위체제에서 비롯되는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한미연합방위체제는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측면을 지닌다.

    첫째, 한미연합방위체제는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 및 독자적인 작전능력을 제약한다. 1994년 평시 작전통제권의 환수로 한미연합방위체제는 ‘한국 주도형’으로 변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CODA에 의거, 연합군사령관은 군사력 운용의 핵심 영역에서 여전히 통제권을 장악한다. 따라서 작전통제권을 전시 및 평시로 나눈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전시와 평시를 구분하는 결정 권한은 미국측이 갖는다. 따라서 한미 연합전력은 전시나 평시를 막론하고 사실상 연합군사령관의 지휘하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평시 분리, 유사시 통합’의 지휘구조인 NATO나 철저한 지휘권 분리를 전제로 한 미일군사협력체제와 크게 다르다. 현재의 한미연합방위체제는 ‘통합형 지휘체제’이며, 한국군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관리체제라고 보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둘째, 지금의 한미연합방위체제는 불확실한 미국의 전시(戰時)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한미연합방위체제를 유지하는 기본적인 법적 장치는 양국이 체결한 ‘상호방위조약’이다. 그러나 이 조약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자동개입’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 조약은 ‘양국의 국내 헌법 절차에 따라’ 개입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미연합방위체제를 가동할 것인가의 여부는 연합사가 아니라 미국 정부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미연합방위체제가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군사적 지원과 개입을 확실히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원천적으로 미국의 한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미국 내 헌법 절차, 즉 행정부의 결정과 의회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이러한 법적 한계와 함께 대부분의 권한이 미국측에 위임되어 있는 연합사의 지휘체제, 그리고 전시 증원전력의 원활한 동원에 대한 불확실성 등을 고려한다면, 현재와 같은 한미연합방위체제가 한국에 제공하는 전략적 이득과 한국이 감수하고 있는 전략적·군사적 제약 사이에는 명백한 불균형이 존재한다. 전시에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지원이 불확실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은 평시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있는 셈이 된다.

    北 도발 억제 못하는 한국군

    셋째, 한미연합방위체제는 다양한 군사적 위기에 대한 한국의 독자적인 대처 능력을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 연합전력의 구조를 볼 때, 한국의 전 군사력은 연합사 체제에 편입되어 있다. 따라서 전면전 이외의 군사적 위기에 대한 한국의 독자적인 대처역량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제한 때문에 그동안 한국이 북측의 도발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왔고 그 결과, 북한은 한국의 보복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고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형태의 도발을 시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구조는 북한이 한반도 군사문제에 관해서 한국과의 협상을 거부하는 가장 큰 명분이 되고 있다. 결국 한미연합방위체제로 북한의 전면전 도발 위협에 대처한다는 목적을 위해 한국은 전면전 이외의 상황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인 것이다.

    넷째, 한미연합방위체제는 핵심전력에 대한 과도한 대미 의존을 고착시켰다. 한국군은 연합체제 안에서 미군 전력을 보완하는 수준에 국한됨으로써 미국의 지원 전력에 부속된 ‘소모성 전력’ 위주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장기간 지속됨에 따라 한국군의 전력구조는 기형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다.

    미일간의 군사협력체제는 보다 개별적이고 독자성을 가진 형태다. 미일간 군사협력은 미일안보협의회(SCC), 미일사무레벨협의회(SSC), 미일방위협의소위원회(SDC) 등에서 조율하는데, 이 기구들은 상설 조직체가 아닌 상호 협의체이다.

    최근 미국과 일본 간에는 ‘신방위협력지침’에 대한 협의가 완료되어 유사시 양국간 군사협력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도화되었다. 그러한 움직임의 하나로 유사시(일본 유사시 및 주변 지역 유사시)를 대비해 미일 공동작전을 협의할 ‘미일 합동조정소’ 설치가 추진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미일 양국군을 통합 지휘하는 어떠한 기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항은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협의해서 처리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대등한 협의체 방식은 안보협력과 관련된 다른 문제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다.

    한미 군사협력체제가 좋으냐, 미일 군사협력체제가 좋으냐는 각국의 여건이 상이하기 때문에 어느 쪽이 낫다고 쉽사리 단정지을 수 없다. 하지만 미일 군사협력체제가 지휘체제 분리형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양국간에 강력한 협력관계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이 한반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전략적 이해관계와 한국이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전략적 효용성, 그리고 한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한국의 통합형 지휘체제는 과중한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유사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 여부는 양국간 동맹구조 자체의 견고함보다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군사협력은 당사국 간의 상호안보에 대한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특정 체제를 마련한다고 해서 그 체제가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협력관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볼 때 한미연합방위체제의 협의와 운용에 관한 개선을 시도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한국은 독자적인 전력을 구축할 수 있는 역량과 의지를 더욱 다져야 한다. 장기적으로 한미동맹을 지속시키고 발전시킨다는 인식을 미국측에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안보 지지하는 최후의 보험장치

    동맹은 그에 참여하는 국가들이 ‘공통의 적(common enemy)’을 갖고 있을 때 성립된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미일동맹은 소련을, 한미동맹은 북한을 막고 견제하기 위해 작동해왔다.

    그런데 21세기의 동맹은, 주적(主敵)을 공식적으로 상정하지 않음으로써 직접적인 대결구도를 회피하고자 한다. NATO가 러시아를 더 이상 적대시하지 않는다고 확인하고, 미일동맹이 중국을 견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는 이유는, 불필요한 오해나 긴장을 야기하지 않기 위해서다.

    한미동맹 역시 오로지 북한의 남침을 억제하기 위해 존재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반도는 냉전구도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반도에서의 전면전 가능성은 많이 줄어들었으나 북한의 다양하고도 간헐적인 대남 도발 가능성에 대한 대비태세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과 인도적 지원은 그 자체로서는 완결한 논리이자 당위적인 실천방안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존과 안보이익까지 해쳐가면서 추진된다면 모순된 안보정책이 되고 말 것이다.

    한반도에서 남북간 화해와 협력관계가 제도적으로 정착되고 실질적인 평화가 도래할 경우, 한미동맹은 동북아시아의 지역안정을 위해 공헌하는 방향으로 다듬어가야 한다.

    통일이 이루어진다 해도 한국은 중국·일본·러시아 등 주요 강대국들과 접하여 살아야 하는 숙명을 피하지 못한다. 세 나라와 우호적인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가운데,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한국의 안보를 지지하는 최후의 보험장치로 남겨두어야 한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존속이 필요하다고 해서 한미동맹이 내포한 불평등성까지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미국과의 동맹이 유발하는 안보이익을 최대한 향유하는 가운데, 한국군의 자율성과 한국이 마땅히 누려야 할 온전한 주권 행사를 위해 꾸준하고도 일관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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