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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전쟁’, 정부보다 기업이 먼저 나서라

칠레와는 ‘몸풀기’, 게임은 지금부터

  • 글: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 inkyo@inha.ac.kr

‘FTA 전쟁’, 정부보다 기업이 먼저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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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한-아세안 FTA 협상개시를 선언했다. 2005년 벽두부터 유럽과의 FTA 협상도 시작된다. 머지않아 10개 FTA 협상이 동시에 추진될 가능성도 크다. 칠레 한 나라와 FTA를 맺는 데도 기진맥진한 우리 정부의 리더십으로 과연 ‘동시다발 FTA’의 험난한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FTA 전쟁’, 정부보다 기업이 먼저 나서라

FTA를 본격 추진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대국민 홍보전략 수립과 전문인력 보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검토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경제개방에 대한 국내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해 FTA 관련 논의는 구체적 결실을 보지 못했다. 당시 비공식적 차원에서 FTA를 검토했던 대상국은 미국이었다. 1984년 당시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브록 3세(Brock Ⅲ)는 한-미 FTA에 대한 미국의 견해를 우리측에 전달했다.

1988년 미 상원은 미국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 국가들과의 양자간 FTA 체결 타당성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듬해 USITC는 이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경제면에서 한-미 양국간 FTA는 바람직하나, 한국 내 반미 감정이 매우 높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편 북미지역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추진되자 우리 정부도 자체적으로 FTA 정책 추진에 대해 검토한 바 있으나,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로 농산물시장이 개방되자, 국내의 반(反)개방 정서가 확산됐고 FTA 논의는 또다시 중단됐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부 경제전문가들이 FTA의 필요성을 다시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를 공개할 경우에 발생할 파장을 우려해 당시 정부는 비공개로 FTA를 검토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21세기위원회’는 FTA를 향후 정책과제의 하나로 설정하고, 당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던 필자에게 보고서 작성을 의뢰했다. 당초 이 보고서는 1996년 하반기 ‘21세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농업 등 취약산업이 반발할 것을 우려해 기회를 놓쳤다.

그 후 정부가 FTA에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동아시아 금융위기다. 금융위기 전만 해도 우리 정부는 다자체제의 틀 안에서 지역주의의 확산을 방지하는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 내 지역무역협정위원회(CRTA)가 지역주의의 확산을 방지하는 데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다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안정적 수출시장 확보와 투자유입 확대 등 FTA를 활용한 경제적 이익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고, 경제제도의 선진화 및 투명화, 구조조정의 가속화, 새로운 동맹관계의 확보 수단으로도 FTA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직후 집권한 김대중 정부에 신설된 통상교섭본부는 FTA 추진을 핵심 통상정책분야로 정하고, 한국의 첫 FTA 대상국 선정에 대한 검토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시장개방에 대한 반발 여론이 거세 1998년 중반까지는 관련 부처 담당자, 업계 대표, 경제전문가가 주로 참여하는 형태로만 논의를 진행했다. 당시 정부는 외교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와의 FTA에 관심을 가질 만한 국가와 공식 및 비공식 접촉을 시도했다.

그 결과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칠레, 뉴질랜드, 이스라엘 6개국이 긍정적인 사인을 보내왔고, 첫 FTA 대상국 선정 작업은 자연히 이들 국가에 국한됐다. 여러 기준을 적용해 검토를 거듭한 결과 정부는 칠레를 첫 FTA 대상국으로 선정했다.

칠레냐 싱가포르냐

한-칠레 FTA에 대해 우리 농업계는 반대했고, 2000년 이후 일본이 농업문제가 전혀 없는 싱가포르와 FTA를 추진하자, 정부가 첫 FTA 대상국으로 싱가포르를 선정하지 않은 사실을 들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당시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와의 FTA보다는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의 강화가 우선이라는 이유로 우리나라와의 FTA 체결 검토를 사실상 거부했다.

금융위기가 최악의 상태로 치닫는 과정에 외화자산이 바닥나고, 대외신인도가 급속히 하락한 상황에서 여러 국가가 우리나라와의 FTA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우리 정부의 FTA 추진의지를 의심하는 국가도 적지 않았다. 여기에 개방에 대한 보수적 입장, UR에서 이미 확정된 농업 개방으로 인해 전개된 일련의 국내 정치적 혼란, 농업의 정치적 민감성 등이 겹치면서 우리나라의 FTA 정책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우리나라의 FTA 정책은 초기에 정부가 주도했다. 그러나 FTA가 활성화된 미국의 경우, FTA로 기업의 활동범위가 확대되고, 기업이 경제적 이익을 누린다는 점에서 기업이 FTA 정책 수립에 중요한 작용을 해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간 기업이 FTA 정책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경우를 보기 어려웠다. 물론 그럴 만한 사정도 있었다. 동아시아 금융위기 직후 우리 기업들은 FTA에 대해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북미지역이나 유럽에서 지역무역블록을 형성, 손실을 경험하고 있더라도 우리 기업들은 당장 ‘발등의 불’인 재벌 해체, 기업 투명성 강화, 내부 구조조정, 급변하는 금융환경 등에 우선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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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 inkyo@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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