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호

부시 행정부 내 파워게임으로 본 북핵

라이스와 럼스펠드의 ‘다른 뉘앙스’, 계속되는 강경파의 백악관 압박

  • 안병진 창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정치학 byongjinahn@yahoo.co.kr

    입력2005-02-22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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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 행정부 내 파워게임으로 본 북핵

    부시 행정부 대외정책의 양대수장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좌)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북한의도발적인 핵 선언 이후 한반도 상공에 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이미 오래 전 냉전의 잿더미 속으로 사라진 쿠바 미사일위기의 유령이다. 1962년 10월 소련의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쿠바 지도자 카스트로 의장의 묵인하에 쿠바에 배치한 핵미사일을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던 사건을 말한다.

    이 유령이 다시 등장한 것은 집권 1기 부시 대통령이 이른바 ‘선제공격 독트린’을 발표하고 나서 이 무렵 백악관은 쿠바 미사일위기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선제공격 명령 직전까지 갔던 선례를 들어 이라크에 대한 ‘예방전쟁’을 정당화한 바 있다.

    놀라운 것은 ‘악의 축’ 같은 노골적인 언사가 사라진 부시 2기의 연두교서가 발표되고 거의 모든 전문가가 입을 모아 6자회담 조기개최를 기정사실화하는 시점에 또다시 유령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의 핵 선언 직후 쿠바 미사일위기를 모델로 한 ‘쿠바식 봉쇄정책’이 ‘뉴욕타임스’ 등 언론에 언급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면 분명해진다.

    이 글은 북한의 핵 선언이 미국 정부 내 정책 결정자들 사이의 위상이나 세력균형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간략하게 분석한 글이다. 물론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기 부시 행정부 내부의 파워게임을 파악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므로, 어찌 보면 거친 소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같은 분석을 통해 향후 북한의 핵 선언이 백악관 내부의 한반도 라인에 어떤 파장을 던질지, 이후 백악관의 대응은 어떠할 것인지를 개략적으로나마 전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전략에 ‘올인’



    2월2일 발표된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는 부시 2기 행정부의 우선적인 국정운영전략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국내적으로는 야심찬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선언하고, 국제적으로는 그간 추진해 온 중동지역의 민주적 재편 전략의 성과를 확인하여 미래 청사진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연두교서의 내용을 정확히 해석하려면 이 문서가 외교정책을 제시하는 전략문서가 아니라 주로 국내 유권자들을 겨냥해 국정운영의 정치적 전략을 가시화한 국내 정치용 문서의 성격이 강하다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실제로 국내 언론매체들은 이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접근해 아전인수격 해석을 남발한 바 있다. 부시 집권 1기의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이 북한에 대한 메시지라기보다는 주로 미국 부동층에 대한 ‘공포전략’ 메시지임을 놓친 것이 그 좋은 사례다. 당시 한국의 일부 언론들은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군수산업의 무기를 판매하려는 의도”라는 식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2002년의 자극적 언사와는 대조적으로 이번 연두교서에서 부시 대통령은 짤막하게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공조하여 북한이 핵 야망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겠다”고 말하는 데 그쳤다. 이는 일각에서 주장하듯 중국이나 한국이 적극적으로 협조를 요청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거시적으로는 과거 ‘악의 축’과 같은 공포전략이 아니라 중동에서의 성과를 대내외에 확인시키겠다는 이른바 ‘희망전략’ 구도를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틀에 부시 행정부의 핵 확산 정책이 실패했음을 암시하는 북한의 존재는 방해가 될 뿐이므로 북한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연두교서에서 드러나는 부시 대통령의 원대한 야심이나 장밋빛 비전과 달리 위의 두 가지 핵심전략은 극심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 지나치게 혁명적인 변화를 함축하는 사회보장 부문 민영화안은 본격적으로 출발하기도 전에 공화당 온건파는 물론 하원의장 데니스 해스터트 등 핵심 지도부의 반발을 사고 있다. 또한 국제적으로도 이라크는 앞으로 제정헌법의 국민투표 비준까지 최소 1년간은 정치일정이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란의 핵위기는 유럽과의 공조체제가 갈등에 부딪힘에 따라 경제제재를 가하거나 침공을 단행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다. 워싱턴 정가에서 딕 모리스 등의 논객에 의해 벌써부터 2008년 대권주자로 거명되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적극적 야심을 보이고 있는 이 사안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 진영이 자체 내 극단 세력에 대해 적극적인 통제의지를 내비침에 따라 청신호가 켜졌다. 하지만 2월13일자 ‘뉴욕타임스’가 지적하고 있듯 이 이슈 또한 산 넘어 산의 장애물을 앞두고 있으며, 이 때문에 백악관은 추후 ‘결렬 책임론’이 불거질 때에 대비해 미리 한 발을 빼고 있을 정도다.

    이렇듯 두 가지 전략에 올인하고 있는 백악관은 이미 난해한 방정식으로 과부하가 걸린 상태다. ‘화성과 같은 북한’이라는 존재는 일단 미루고 싶은 성가신 일거리일 수밖에 없다. 공포와 오인(誤認)이 혼합된 북한의 강경한 펀치에 백악관이 어떻게 대응할지 카운터펀치에 귀추가 주목된다.

    ‘신동아’ 2005년 1월호 기사를 통해 김윤재 박사는 미국 정부내 한반도 정책을 움직이는 주요직책을 심층적으로 해부한 바 있다. 이후 극단적 강경파인 존 볼턴 차관이 국무부를 떠나고 온건파인 로버트 죌릭 무역대표부 대표가 국무부 부장관에,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 대사가 제임스 켈리 아태담당 차관보 후임에 내정되었다는 점은 현재의 위기국면에 청신호를 던져주고 있다.

    반면 셀리그 해리슨 국제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이 2월14일자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에서 지적한 것처럼 몇 가지 부정적인 징후도 있다. 먼저 국가안보담당 부보좌관으로 임명된 잭 크라우치는 1995년 ‘비교전략’ 1월호에서 북한 공습론을 강하게 주장하는가 하면 한국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할 것을 역설한 강경한 매파다. 또한 한국계라는 이유로 한국에서 호감을 얻은 바 있는 빅터 차 아시아 담당국장의 경우 2002년 ‘포린 어페어스’에 발표한 글에서 해상봉쇄전략을 사실상 북한의 도발을 야기하는 함정전략으로 이해할 만큼 음모적인 시각을 나타낸 바 있다.

    더욱이 매파로 가득찬 국가안보회의를 이끄는 인물이 네오콘 세력에 가담해온 스티븐 해들리라는 점에서, 이들은 도널드 럼스펠드 장관이 이끄는 국방부 및 딕 체니 부통령과 함께 국무부 라인이 온건화하는 것을 견제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만약 해리슨의 예상대로 볼턴의 후임으로 국가안보회의 확산방지국장을 역임한 바 있는 로버트 조지프가 임명된다면,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를 창시하고 차세대 핵무기 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그의 창조적이고 노회한 스타일로 미루어 국무부를 압박하는 힘은 더욱더 가중될 것이다. 그는 북한 핵 관련 상황을 궁극적으로 쿠바식 봉쇄정책으로 연결시키며 대북정책의 헤게모니를 쥐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국무부 라인은 온건하다’는 전제에도 유보적인 부분이 있다. 바로 국무부 수장인 라이스 장관의 문제다. 먼저 그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우선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기본적으로 유럽 지향적이다.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인준청문회에서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한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정치적으로 둔감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인수위 단계에서부터 과거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의 일괄타결식 제네바합의에 매우 냉소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그녀는 과거 헨리 키신저나 콜린 파월 국무장관 같은 강한 소신형이라기보다는 부시의 지향을 그대로 따르는 추종형이고 강경한 다른 부서들과 타협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6자회담을 사실상 무산시켜 강경책의 길목으로 활용하려던 네오콘과의 파워게임에서 극단적 강경파인 볼턴 대신 켈리를 6자회담 대표로 관철시킨 파월과 달리, 그녀는 네오콘이나 이들을 후원하는 럼스펠드 및 체니와의 파워게임에서 일관되게 유연한 자세를 취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조지프 바이든 의원은 그녀에게 럼스펠드와 체니의 충고에 귀기울이지 말 것을 강력히 주문하기도 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신기술’

    북한의 핵 선언 이후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라이스와 럼스펠드가 다소 뉘앙스가 다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2월11일 라이스는 한 프랑스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부인하는 한편 “미국은 여전히 외교적 수단을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면 럼스펠드는 2월10일 프랑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미사일 기술을 퍼뜨려온 북한의 전력과 북한정권의 독재적 특성을 고려할 때 걱정스럽다”고 발언했다.

    라이스는 앞서 밝혔듯 현재 부시 대통령이 갖고 있는 두 가지 전략구도를 허물어뜨리지 않기 위해 애써 이슈를 축소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자극을 무시하며 6자회담의 틀을 유지하려는 자세다. 반면 럼스펠드의 발언은 2004년 4월 ‘뉴욕타임스’에 유출된 비밀메모에서처럼 그가 여전히 북한 정권교체론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아직 이들의 갈등이 수면위로 떠오른 국면은 아니다. 그러나 강경파 세력이 정부 안팎에서 백악관을 압박해나가는 징조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공화당에 영향력이 큰 제임스 베이커 전 미 국무장관은 2월13일 ABC 방송에 출연해 “6자회담 틀의 유용성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하면서도 “UN 안보리가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주장했다. 심지어는 “그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다면 북폭(北爆)도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한 한국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2월12일 ‘뉴욕타임스’는 체니 부통령이 한국의 대북지원에 압박을 가한 것으로 추정하며 심지어 북한에 흘러 들어가는 자금을 차단하는 등 새로운 경제압박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2월14일자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최근 몇 주간 국가안보회의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손질해온 비밀 ‘도구상자(tool kit)’의 존재를 지적했고 일부 신기술은 이미 실행된 바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신기술 가운데 하나는 3월 발효될 일본의 새 ‘해운관계법’으로, 이는 이후 실질적으로 북한-일본간 선박왕래를 중지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예측된다.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특히 우려스러운 대목은 일부 전직관리가 이 전략에 부시 대통령이 개입하고 있는 정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다”고 내비쳤다는 부분이다. 몇몇 정부 관계자는 이 압박계획의 부산물로 정권붕괴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렇듯 전방위적으로 암시되고 있는 강경한 대북(對北) 제재방안에 대한 논란은 한편으로 이후의 정국을 향한 백악관 내외 강경파의 고도의 언론플레이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향후 사태의 진전이 없고 6자회담의 무용성(無用性)이 보다 분명해지면 부시 대통령은 이를 공개정책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 케네스 퀴노네스 전 국무부 북한담당관이 전망하듯, 최소한 납북자 문제를 이유로 대북제재를 가하려는 일본 정부의 구상을 부시 행정부가 지지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고, 이는 이후 다른 국가들의 태도가 강경해지는데 영향을 끼칠 공산이 크다.

    봉쇄의 실질적 목적

    물론 베이커나 백악관 밖의 네오콘들이 주장하듯 백악관이 군사공격을 정책으로 채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럼스펠드 장관 등은 일부 네오콘과 달리 북한이 가진 군사력의 위험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때문에 그는 2004년 4월 유출된 비밀메모에서도 군사적 공습보다는 경제제재를 선호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다양한 수위의 봉쇄정책은 향후 사태의 전개에 따라 백악관 내 강경한 현실주의자들과 체니 부통령 등의 네오콘 후원자 혹은 네오콘들 사이의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공식적인 정책으로 채택될 수 있다.

    북한의 최근 핵 선언이 지극히 위험한 것은, 과거의 벼랑 끝 외교가 안고 있는 한계를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극적인 협상과 억제력을 확보하려는 주관적인 의도와는 달리 결과적으로 미국과 한국 내 강경파의 입지를 대폭 강화시키고 중국의 조정 영향력을 약화시키며 일본 등을 비우호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이는 쿠바 미사일위기에서 남미지역 혁명수출을 통해 미국의 쿠바침공을 막으려고 한 카스트로 의장이 자신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미국 내 강경 매파의 입지를 강화시켜 준 것과 비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단순 협상용이 아니라 실질적인 억제력 추구로 이동하는 듯한 북한의 태도는, 늦기 전에 신속하고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강경파의 주장을 정당화해준다. 더구나 최근에는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의 펠로시 하원대표나 민주당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조지프 바이든 상원의원 등이 대북제재나 ‘더 많은 채찍’을 주장하고 있다. 대북 온건론을 주도하던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의 거센 공격에 직면해 있다.

    향후 대북 해상봉쇄 같은 높은 수준의 압박정책이 채택된다 해도 그 실효성은 다소 의심스럽다. 다른 국가들의 긴밀한 공조를 이끌어내야 할 뿐 아니라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이 말했듯 축구공만한 농축우라늄 폭탄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조된 위기 속에서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우려한 백악관이 극적인 타결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해상봉쇄의 핵심은 이미 부시 행정부 인사들이 여러 차례 시사했듯 단순히 핵무기 수출의 사전발견이 아니다. 오히려 쿠바 미사일위기 당시 르 메이 공군 사령관 같은 강경파의 의도와 유사하게, 이 과정에서 우발적인 충돌이 일어나면 그로 인해 보다 강경한 조치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는 데 있다. 물론 그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정권의 붕괴가 될 것이다.

    부시와 케네디의 차이

    이 점을 고려할 때 과거 쿠바사태 당시의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지금의 부시 대통령의 차이는 매우 크다. 케네디 대통령이 비록 해상봉쇄라는 강경책을 구사하긴 했지만 동시에 그는 이 과정에서 소련의 체면을 살리는 협상책을 모색한 바 있다. 반면 부시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자존심’에 사활을 걸고 있는 북한의 체면을 살리는 일에 큰 관심이 없다. 더욱이 부시 대통령은 강압정책이 성공한다는 신화를 깊이 믿고 있다.

    물론 집권 2기를 맞이한 그가 역사적 업적을 남기기 위해 닉슨이나 레이건 모델처럼 극적인 타협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북한의 추가 강경조치 등 뒤따르는 상호 반작용 속에서 적대적 대응과 오인을 거듭하며 위기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얼마 전 TV에 출현해 “쿠바미사일 위기 당시 부시가 대통령이 아니었던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거꾸로 보면 북핵 위기를 맞은 지금 백악관의 주인이 존 F. 케네디가 아니라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카스트로와 김영삼의 교훈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백악관의 구성과 경향, 미국 정부 내부의 권력지형 등을 고려해보면 향후 문제가 타결될 때까지 북미관계는 상호 오인과 편견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위기를 반복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은 쿠바미사일 위기로부터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배워야 할 교훈은 다른 것일 듯싶다.

    미사일 위기 당시 카스트로 의장은 지나치게 호전적인 태도로 인해 이후 진행된 미소간 타협과정에서 배제되었고 위기가 해결된 후에도 당초 요구했던 불가침협정을 얻어내지 못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의도한 것과는 달리 자신의 도발적 선택으로 인해 이후 문제해결의 공이 자신을 떠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한국의 정치인들은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강경한 태도를 견지한 김영삼 대통령이 결국 북미간 협상에서 소외되고 경수로 비용을 주로 부담하는 부정적 결과만을 떠안게 됐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볼 때 남북간에 특사를 교환해 북미간 시각차를 줄이고 창조적인 해법을 만드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다. 이에 대한 구체적 제언은 이 글의 초점이 아니므로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민간외교 차원에서 역사적 교훈을 음미해 갈등해결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을 언급하고자 한다. 바로 1994년 1차 북핵 위기를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학술회의를 한국과 북한, 미국의 학자들이 당시 관계자들과 함께 개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바이든과 루거 상원의원에 의해 특사로 거론된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처럼 1차 위기를 해결하는 데 관여했던 인사들의 주도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강압의 신화’를 맹신하며 베트남전쟁을 주도했던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은 이 전쟁을 재평가하는 미국-베트남 공동학술회의에 참여해 솔직한 태도로 과거인식의 오류를 인정하고 상호간의 인식차를 줄이는 데 기여한 바 있다. 또한 쿠바미사일 위기를 재평가하는 쿠바-미국 공동학술회의에는 카스트로 본인이 참가해 양국의 편견과 오인을 생생하게 성찰한 바 있다. 이 회의에서 ‘적(敵)의 심리적 상태에 대한 공감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 맥나마라 장관의 연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위기의 해결은 결코 정부 당국자의 문제만이 아니다. 1994년 긴박했던 북핵 위기를 해결한 실마리는 양국의 현직 정부 지도자의 결단이 아니었다. 오래 전 퇴임해 일개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물러나 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양측이 양해한 것에서부터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려나갔다. 2004년 또다시 먹구름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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