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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비화

‘북한판 황우석’김봉한 의 영광과 몰락

‘경락 발견’ 세계적 찬사 속 영웅 추앙… ‘허위날조’ 혐의로 숙청, 자살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북한판 황우석’김봉한 의 영광과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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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남한 출신, 그것도 비자발적인 월북자라는 ‘신분상의 한계’는 전쟁 이후에도 그의 입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 말 김일성 1인 체제 수립에 즈음해 사상검열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여러 월북 과학자가 자리를 잃었다. 위험을 느낀 그는 이 무렵부터 국면 전환에 도움이 될 만한 전기를 찾으려 애쓴 것으로 보인다. 1957년까지만 해도 그의 연구주제는 전형적인 서양의학의 생리학 문제였지만, 이 무렵 동양의학에 눈을 돌린 것이다.

북한은 1956년 4월 조선로동당 3차대회를 계기로 한의학 연구를 활성화하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김봉한이 몸담고 있던 평양의학대학은 이 사업의 핵심이었다. 한의학이 아닌 서양의학 교육을 받은 그가 동양의학의 핵심 주제인 경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러한 당(黨)의 방침에 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의 논문 곳곳에서 정치적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한 대목을 찾을 수 있다.

1961년 그가 발표한 경락 관련 첫 논문은 “조선로동당 제3차 대회의 결정정신에 립각하여 본 연구사업이 시작되었다”는 서문으로 시작해, “우리의 성과는…우리 당 과학정책의 정당성의 또 하나의 실증으로 된다”는 결론으로 끝난다. 이렇듯 강도 높은 정치적 수사(修辭)는 북한에서도 1970년대 이전 과학논문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김봉한의 논문이 효시가 되어, 이후 다른 과학자들에게도 정치적 수사가 일종의 ‘전범’으로 자리잡은 듯하다는 게 북한 과학사에 정통한 이들의 분석이다.

이렇게 보면 김봉한과 황우석 교수의 첫 번째 공통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알려진 바와 같이 황우석 교수는 외국유학을 거치지 않은 순수 국내파 학자로, 수의학분야에서 출발해 외국 유명 의과대학 출신 학자들을 뛰어넘는 성과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대대적인 조명을 받은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른바 ‘진실 게임’의 초기에는 그 배경에 ‘의과대학과 수의과대학 사이의 알력’이라는 해묵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기도 했다.

‘국내파 학자’라는 입지와 관련해, 황 교수가 언론 인터뷰나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같은 애국주의적 언급을 자주 한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논란의 와중에 여러 차례 ‘대한민국의 원천기술’ 같은 용어나 ‘국익론’이 등장한 것도 마찬가지. 과학 영역을 과학 외적인 영역 혹은 정치적인 담론에 연결해 의미를 확장하는 능력은 김봉한과 황우석 두 사람모두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공통점이다.



최고지도자의 찬사

이후 김봉한의 논문이 국제학계에 소개되고 대대적인 찬사와 지원 속에 연구가 진행된 과정은 황우석 교수의 경우에서 지켜본 그대로다. 경락에 관한 김봉한의 첫 논문은, 발표 이듬해인 1962년 4월 4차 당대회를 통해 해외파 대신 국내파가 북한 과학계의 주도권을 잡은 뒤 본격적으로 주목받는다. 당 관료들과 정치 색채가 짙은 학자들이 논문을 격찬했고, 김일성 수상이 직접 “현대 생물학과 의학 발전에 탁월한 기여를 했다”는 축하문을 보내기에 이른다.

값비싼 현미경, 방사선 추적장치 등 첨단 연구장비가 투입된 결과물인 1963년 11월의 두 번째 논문에 쏟아진 찬사는 더욱 엄청났다. ‘조선중앙통신’ ‘로동신문’ ‘대중과학’ ‘조선의학’ 등 각종 매체에는 봉한학설이 다윈의 진화론이나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이론에 버금가는 업적이라는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급기야 1964년 2월 북한 내각은 연구를 본격적으로 확대 발전시키기 위해 ‘결정 10호’를 채택하고 내각 직속으로 ‘조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락연구원’을 조직한다. 원장은 당연히 김봉한 교수가 맡았다.

김봉한의 논문이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어,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되어 세계 각국에 배포된 것 또한 이 무렵부터였다. ‘On the Kyungrak System’ 제하의 이 논문은 공산권이 아닌 서구진영의 언어로 번역된 최초의 북한 논문으로, 노벨상 수상을 위한 행보의 시작이었다. 김봉한에게는 북한 최고의 학자들만이 선정되는 ‘인민상계관인’ 칭호가 주어졌고, 연구성과는 ‘경락의 세계’라는 과학영화로 제작되어 극장에서 상영됐다. 다만 체제경쟁을 의식한 정부의 정보통제로 학설 자체가 금기시됐던 한국에서만 알려지지 않았을 따름이다.

이렇듯 김봉한을 둘러싼 1964년 무렵 평양의 분위기에서 황우석을 둘러싼 2005년 서울의 분위기를 읽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계줄기세포허브’의 출범을 비롯해 국가예산이 대대적으로 투입되어 진행된 연구사업, 황 교수의 ‘최고과학자’ 선정과 ‘노벨상 수상 추진위원회’ 발족, 각종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와 검증 없는 ‘업적’ 기사, 위인전 출간을 비롯한 ‘영웅화 작업’까지 판박이에 가깝다.

이는 연구사업이 정치권과 정부의 강력한 연계를 통해 진행됐다는 사실만 봐도 분명해진다. 2005년 10월19일 노무현 대통령은 서울대 병원에서 열린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서 “이 시기에 제가 대통령 자리에 앉아서 여러분과 이 일을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은 무척 큰 행운”이라며 “옛날에는 제가 별로 도움이 안 됐지만 지금은 좀 돕고 있고 앞으로 확실히 밀겠다”고 황 교수의 연구를 적극 지지하고 나선 바 있다. 이른바 ‘황금박쥐‘로 불린 최고위 관료들의 깊숙한 개입도 김봉한의 경우와 고스란히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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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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