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실력? 오만? ‘CEO형 정치인’ 연구

‘1류 재계’→‘2류 정치’ 수혈은 당연! ‘황제 스타일’은 어쩔 수가 없어!

  •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3457@naver.com

실력? 오만? ‘CEO형 정치인’ 연구

2/5
역시 CEO 출신인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아시아나항공 부사장, 금호피앤비화학 사장 등 역임)도 정치권에 한마디 한 적 있다.

“기업에서는 투명경영, 신뢰, 성실을 기본 바탕으로 일해왔는데, 정치판에 들어와 보니 합리적 경영 기법이 거의 도입돼 있지 않고 너무 소모적이다.”

‘기존 정치권은 낙후해 있고 비효율적이며 답답하고 웃기는 곳’이라는 평가는 CEO 출신들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다. “나는 정치판에서 살아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명박 시장의 ‘정치판’도 바로 그런 곳이다.

기업인, ‘을’에서 ‘갑’으로

CEO 출신들이 이렇게 큰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우리 정치사에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권위주의 시절, 그들은 구색 맞추기용에 불과했다. CEO 출신 정치인으로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이를 꼽으라면 쌍용그룹 창업주인 성곡 김성곤(1913~75)을 먼저 들어야 할 것 같다. 6~8대 국회의원, 공화당 재정위원장을 지낸 공화당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또한 ‘공화당의 돈줄’이었다.



그는 1971년 10·2항명 파동으로 내쫓기듯 정계를 은퇴해야 했다. 당시 오치성 내무장관의 해임안을 둘러싼 갈등이 사단이었다. 그는 야당의 해임안을 부결시키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거스른 뒤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조사관들에게 마스코트였던 콧수염을 뜯겼고 고문을 당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결국 박 정권에 의해 의원직을 잃고 정계에서 퇴출됐다.

성곡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정치인은 늘 ‘갑’이었고 기업인은 늘 ‘을’이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그는 이 관계를 단숨에 역전시키고 싶어했다. 정 회장은 1992년 77세의 고령으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그러나 그 도전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말해오던 정 회장에게 생애 최악의 실패를 안겨줬다.

한국 현대사에서 숱한 기업인이 정치권에 몸을 담았다. 11·12대 의원을 지낸 왕상은(협성해운 회장), 역시 11·12대 의원을 역임한 권영우(대원교통 회장), 13·15대 의원 이정무(대구백화점 대표), 14·15대 의원 이재명(대우그룹 사장), 14대 의원 김동권(쌍마그룹 회장), 15·16대 의원 주진우(사조그룹 회장)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이때만 해도 정치권은 기업인을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 입문시켰다. 극명한 예는 벤처기업 CEO로 잘나가던 이찬진 당시 한글과 컴퓨터 사장의 정치 입문이다. ‘한국의 빌 게이츠’로 불리던 그는 1996년 신한국당에 입당해 1997년 11월부터 1998년 5월까지, 그리 길지 않은 기간 국회의원을 했다. 그의 정치 참여는 당시로선 짜릿한 이벤트였다.

하지만 이찬진씨 본인은 정치에 웅지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현재 드림위즈 대표인 이씨는 “한글과 컴퓨터 사장으로 있을 때 가장 큰 문제이던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참신한 얼굴을 찾던 상대방(신한국당)의 뜻과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에 대한 소회를 묻자 그는 “짧은 기간 보고 느낀 것을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며 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정치 참여에 대해 그리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듯했다. 그는 “나는 애당초 30m를 달리기 위해 정치권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은 왜 마라톤을 안 뛰었냐고 평가하더라”고도 했다. ‘다시 (정치권에) 들어오라는 제의를 받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지금은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어쨌든 그는 스스로 인정하는 “성공하지 못한 CEO형 정치인”이다.

이처럼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정치권은 CEO 출신 정치인에 대해 그리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CEO형 정치인의 뚜렷한 성공 족적을 찾기도 어려웠다. 한켠에선 “장사꾼은 장사나 잘하면 되지”라는 비아냥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기업인과 정치권은 ‘갑’과 ‘을’의 관계가 역전된다.

‘부(富) 창출’ CEO형 정치의 키워드

IMF 구제금융 사태는 한국사회에 ‘경제제일주의’ ‘국가경영주의’의 광풍을 몰고 왔다. 정부와 공공부문에서 ‘대기업을 배워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국가도 지방정부도 ‘경영’해야 할 대상이 됐다. 이런 가운데 여야 정치권은 몇 차례의 ‘부패 스캔들’로 이미지가 크게 구겼졌다. 정치인은 구태(舊態)의 상징이 됐다. 자연스레 CEO가 ‘대안’으로 부상했다. 주종(主從)이 바뀐 듯하다.

열린우리당 김혁규 최고위원. 미국에서 가방 무역회사를 설립, 성공신화를 일궈낸 CEO 출신 김 의원은 경남지사 시절 스스로 ‘경남주식회사 사장’으로 불렀다. 10년간의 도백(道伯) 생활 동안 경상남도를 하나의 기업으로 보고 경남에 부가가치 높은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이윤 창출을 시도했다. 기업인의 최대 덕목인 ‘부(富)의 창출’을 정치의 키워드로 삼은 것이다.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를 경남 진해에 유치한 것도 CEO형 정치인으로서 그의 성향이 발휘된 사례다. 그는 경남지사로 취임한 뒤 과감한 조직개편과 인원감축 등 구조조정을 단행, 공무원 3650명을 감원하기도 했다.

2/5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3457@naver.com
목록 닫기

실력? 오만? ‘CEO형 정치인’ 연구

댓글 창 닫기

2019/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