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미국, 대량살상무기 개발 우려해 러시아 로켓기술 한국 이전 막았다”

‘내년 우주 로켓 발사 무산’ 과기부 대외비 보고서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6-11-07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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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로켓기술 한국 이전 우려’ 서한 러에 전달
    • 美, 한국에도 로켓 보유 부정적 의견 통보
    • 美 국무부 “한국 로켓, 대량살상무기 개발 가능성 높여”
    • 러시아, 발사체 설계도·발사대 시스템 한국 이전 중단
    • 우주센터에선 토목공사만…
    • 러시아 기술 안 들어오면 사업 좌초 위기
    • 전문가, “미국은 우방의 상업용 로켓 개발 가로막지 말라”
    “미국, 대량살상무기 개발 우려해  러시아 로켓기술 한국 이전 막았다”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우주센터 조감도

    올해 2월19일, 김우식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방문했다. 부총리 취임 9일 뒤의 일이었다. 김 부총리는 이 연구원이 깊이 관여하고 있는 한국우주발사체(KSLV-Ⅰ·Korea Space Launch Vehicle) 사업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김 부총리는 “말로만 듣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와보니 우주개발 사업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중요한 사업이니만큼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우주발사체 사업이란 2007년 10월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소재 나로우주센터(현재 건설 중)에서 인공위성(과학기술위성 2호)을 실은 발사체(KSLV-Ⅰ)를 우주로 발사하는 사업이다. ‘한국 땅에서 한국이 개발한 로켓을 우주로 날려 보낸다’는 것으로,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상징성이 큰 일이다. 이 때문에 여러 언론매체가 나로우주센터 현지 취재에 나서는 등 국민적 관심이 높다.

    숨겨진 내막, ‘미국의 개입’

    정부는 2005년을 우주개발의 원년으로 삼아 ‘우주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을 확정한 바 있다. 2005년 12월 ‘우주개발진흥법’도 발효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2010년까지 13기의 인공위성(기존 위성 포함)을 로켓에 실어 발사하며 최초 우주비행사도 배출할 예정이다. KSLV-Ⅰ로켓 발사를 한국 우주산업 및 과학기술 분야의 역사적 전기로 평가하며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 사업이 성공할 경우 한국은 세계에서 자력으로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린 9번째 국가가 된다.

    김우식 부총리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방문할 당시 이 연구원 전광판엔 ‘발사 593일 남음’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주발사체 발사 시점은 정부 중장기 계획에 의해 여러 차례 공표된 사안이다. 따라서 2007년 10월 예정대로 우주발사체를 성공리에 발사하는 것은 연구원을 비롯한 관련 기관의 최대 과제였다.



    정부는 한국우주발사체 사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다고 언론에 홍보해왔다. 그래서 2006년 10월 초순까지 여러 언론에선 “내년에 예정대로 발사체가 발사될 것”이라는 낙관적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신동아’ 취재 결과 2007년 발사 계획은 실현되기 힘든 것으로 드러났다. ‘신동아’는 최근 과학기술부가 작성한 ‘자력발사(自力發射) 사업’ 관련 보고서를 정부 관계자로부터 단독 입수했다. 과기부는 한국우주발사체 사업을 ‘자력발사 사업’으로 표현했다. 이 보고서는 표지에 ‘대외 주의’라는 표현이 있으며 내용 곳곳에서도 “보고서 내용이 외부에 공개되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은 ‘러시아로부터 로켓 발사 기술을 이전받아 2007년 10월 이내에 외나로도에서 우주발사체를 발사한다’는 내용으로 러시아와 기술협력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러시아로부터 관련 기술이 이전되지 않아 2007년 중 발사는 어렵다”고 밝혔다. 김우식 부총리도 10월12일, 한국우주발사체의 발사 시기가 2008년 이후로 연기될 것임을 시사해 보고서 내용을 뒷받침했다.

    이 보고서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미국이 한국의 우주발사체 발사를 원치 않고 있다는 내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러시아의 발사체 기술이 한국에 이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러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우주발사체 발사 사업에 미국이 개입한 사실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의 북한 핵실험 및 미사일 사태와 관련해서도 미국이 한국의 우주발사체 개발을 저지했다는 점은 대단히 민감한 대목으로 받아들여진다. 보고서가 밝히고 있는 KSLV-Ⅰ사업의 실체와 숨겨진 내막을 소개한다.

    우선 보고서는 “2007년 10월 자력발사를 목표로 우주발사체 개발 및 우주센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외나로도 해안 150만평에 우주센터를 짓고 있다. 우주발사체 사업은 로켓 발사대(Launch Complex·1만4300평), 로켓 발사 통제동(棟) 등 10여 개 건물로 구성된 우주센터와 우주발사체(로켓)로 구성된다. 보고서는 “우주발사체에 5098억원, 우주센터에 2649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며, 8월말 현재 토목 81%, 건축 84%가 완료됐다”고 밝혔다.

    로켓 발사 통제동은 발사체를 쏘아 올릴 때 카운트다운이 이뤄지는 곳이다. 또한 기상 측정을 위한 관측소가 우주센터 부근 마복산에 별도로 건설되며, 제주도엔 우주발사체의 비행정보를 수신하기 위한 추적소가 세워진다. 우주센터에는 이밖에 전시관, 영상관, 야외전시장 등이 갖춰진 우주교육 홍보관도 들어서게 된다.

    핵심은 발사체와 발사대인데, 국내 기술로는 자체 제작이 어려워 정부는 러시아(흐루니체프社 등)와 기술협력계약을 체결하고 기술 이전을 받기로 했다. 발사체인 KSLV-Ⅰ은 2단 로켓으로 되어 있다. 1단은 흐루니체프사가 개발한 차세대 발사체(액체 추진체)인 ‘앙가라(Angara)’를 그대로 사용한다. 2단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화가 고체 추진체를 개발해 사용하기로 했다. 발사대는 설계도 제작에서부터 러시아 기술을 지원받기로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07년 10월 1차 우주발사체 발사에 이어 2008년 6월 2차 발사체 발사도 계획하고 있었다. 다음은 보고서가 밝힌 러시아와의 기술협력 계약 일부다.

    “발사 실패시 1회의 무상 재발사를 수행한다(우주발사 관련 계약의 특수성에 비추어 발사가 실패할 경우에는 계약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통례). 쌍방은 기술자료의 제3국 유출을 금지하며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규칙을 준수한다. 러시아측에 기술협력 비용을 지급한다.”

    “자력발사 일정에 차질”

    그러나 발사체 발사 시기는 예정대로 지켜질 수 없게 됐다. 보고서는 “자력발사 일정에 차질이 발생했다. 2007년 중 발사가 어렵게 됐다. 자력발사 관련사업의 종합점검을 통해 발사일정을 재점검하고 향후 성공적인 자력발사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재점검은 2006년 8∼9월 이뤄졌다. 재점검 대상엔 우주발사체(KSLV-Ⅰ) 개발, 우주센터 건설 등 사실상 이 사업 전체가 포함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주발사체의 경우 러시아는 상세 설계도를 이미 완성했으나 이를 한국에 넘기지 않고 있다. 설계도가 없으니 발사체 제작 전반에 걸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우주센터 건설도 러시아는 로켓을 우주에 쏘아 올리는 핵심 시설인 발사대 시스템의 설계를 마쳤으나 이것 역시 한국에 이전하지 않고 있다.

    현재 외나로도 우주센터는 토목, 건축 등 기반시설만 조성되고 있는 상태다. 발사체와 발사대 등 핵심 부분은 설계도를 얻지 못해 손을 놓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다음은 보고서의 관련 내용이다.

    “설계도 없어 착수도 못해”

    “우주발사체(KSLV-Ⅰ) 개발 : 러시아의 상세설계가 2005년 12월 완료됐으나 현재까지 이전되지 않고 있음. 이로 인해 발사체 1, 2단 인터페이스 관련 개발이 차질을 빚고 있음.

    상세설계 결과 이전을 제외한 양국 사업자간 실무협력, 러시아가 개발하는 1단, 우리나라가 개발하는 상단부(노즈페어링, 2단)는 정상적으로 개발이 추진되고 있음. 국내 개발의 기술적 성과는 양호하며 상세설계 결과 이전을 제외한 국제협력도 양호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음. 러시아측의 상세설계 결과 이전 후 일부 일정 단축은 가능할 것으로 보이나 2007년 중 자력발사는 어려움 예상.

    “미국, 대량살상무기 개발 우려해  러시아 로켓기술 한국 이전 막았다”

    한국우주발사체(KSLV-I) 발사의 의의를 설명하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작 삽화.

    우주센터 건설 : 발사대 시스템의 상세설계가 2006년 1월 완료됐으나 러시아로부터 이전되지 않아서 발사대 시스템 구축을 착수하지 못하고 있음.

    우주센터의 토목·건축 등 기반시설 조성과 주요장비의 발주·도입은 정상적으로 진행 중. 러시아의 상세설계 결과 이전 후에야 발사대 시스템의 발주·제작이 가능. 또한 납기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는 장비들이 있어 2007년 중 발사대 시스템 구축에 어려움 예상.

    종합의견 : 상세설계 결과의 미이전으로 한·러 협력으로 진행되는 사업 일정이 지연되고 있음. 한·러 협력을 제외한 사업관리 및 국내개발은 전반적으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음. 당초 계획된 2007년 10월 자력발사는 연기 가능성이 있음.”

    보고서는 발사 일정에 차질이 생긴 이유에 대해 “한·러 우주기술보호협정(TSA·Technology Safeguard Agree-ment)의 타결이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협정은 러시아가 한국에 우주발사체 기술을 제공할 경우 한국이 이 기술을 외부에 넘기지 않을 것을 보장한다. 보고서는 이 협정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주발사체는 대량살상무기의 운반 시스템으로 전용이 가능하므로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등에 의해 국제적으로 기술이전이 엄격히 통제됨. 따라서 기술협력을 위해서는 관련 품목, 자료 등의 이전 등에 대해 정부간 보증이 필수적임.”

    보고서는 이 협정이 미뤄지는 이유를 ‘러시아의 태도 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2000년 12월 우주센터 건설에 착수했으며 2002년 8월 우주발사체 개발을 시작했다. 그 사이인 2001년 3월 한국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도 가입했다. 2004년 9월 한국은 러시아와 한·러 우주기술협력협정(IGA)을 맺었다. 한 달 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러시아 흐루니체프사와 우주발사체 기술협력계약을 체결했다.

    이처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가던 중 러시아는 자국의 우주기술 보호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한·러 우주기술보호협정(TSA)의 경우 러시아는 처음에는 이 협정과는 상관없이 발사체나 발사대 설계도면을 한국에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이 협정이 체결돼야 설계도면을 주겠다고 방침을 바꿨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태도 바꾼 이유는?

    러시아측이 잡은 협정 서명 목표 시점은 당초엔 2005년 12월이었다. 이 일정대로만 진행되어 설계도가 넘어왔어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10개월여가 지난 2006년 10월 현재까지 러시아는 협정에 서명을 하지 않고 있다. 10월12일 한·러 정부는 제7차 한·러 경제과학기술공동위원회에서 늦어도 연내에 TSA를 체결하기로 했다. 협정이 체결되더라도 러시아 의회 비준 절차가 남아 있다.

    러시아는 한때 의회 비준 없이 이 협정을 잠정 적용하는 방안을 한국측에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엔 한국이 이를 거부했다. “관계기관 간 합의를 도출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는 국내 사정이 이유였다.

    현재 우주발사체를 보유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우크라이나, 중국, 일본, 인도, 이스라엘 8개국뿐이다. 보고서는 “이들 나라 중 한국과 발사체 개발을 위한 협력 의지를 보인 나라는 러시아뿐이다. 러시아는 발사체 엔진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 선진국이며, 발사체 기술을 상업화하려는 의지가 높아서 협력이 성사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러시아와의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한국의 우주 계획은 좌초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러시아의 미묘한 태도 변화로 인해 러시아의 핵심 로켓 기술이 한국에 이전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보고서에는 한·러 사이에 미국이 개입한 정황도 나와 있다.

    보고서는 “미국은 ‘한국우주발사체(KSLV-Ⅰ) 사업이 한국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우려를 러시아와 우리나라측에 표현한 바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로의 발사체 기술 이전에 부정적”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미국 국무부가 러시아 외무부에 ‘KSLV-Ⅰ사업이 한국에 대량살상무기 개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서한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무부가 이 같은 서한을 러시아에 보낸 사실은 러시아 연방우주청장이 2006년 1월23일 러시아를 방문한 한국 정부 관리에게 귀띔해 한국측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자 한 달 뒤인 2월21일 주미 한국대사관은 미국 국무부에 “KSLV-Ⅰ은 평화적 목적으로 개발되며 MTCR의 비확산 규정을 준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밖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한국의 로켓 개발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보고서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로켓 개발에 대해 미국 정부 팀(Onsite Inspection Team)이 6차례(1차 : 1992년 5월7일, 2차 : 1993년 11월19일, 3차 : 1995년 9월20일, 4차 : 1997년 11월5일, 5차 : 1999년 5월6일, 6차 : 2001년 9월12일)에 걸쳐 현장 확인을 했다”고 밝혔다. 한국 외교통상부도 2004년 9월 주한 미국대사관측에 KSLV-Ⅰ사업을 설명했다고 한다.

    “미국, ‘발사체’ 말만 꺼내도…”

    보고서는 이어 “1993년 대전엑스포 행사시 국내 모 인사가 우리나라도 발사체를 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자 미국은 로켓·유도탄 등 국방 관련 수출허가서(E/L) 발급을 전면 중단한 바 있으며 3개월간 관련 협력을 중단했다. 이어 미국은 같은 해 11월 한국 국방과학연구소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현장검증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미국이 제3세계의 로켓 개발을 저지한 사례도 인용했다. “인도는 우주발사체인 GSLV의 3단 액체엔진 개발을 위해 러시아와 기술이전 계약을 했으나 미국은 MTCR 위반이라는 이유로 인도와 러시아에 대해 협력 반대 및 판매금수(禁輸) 조치를 취했다.”

    한국의 로켓 개발에 대한 미국의 이 같은 부정적 태도는 한국측을 위축시킨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는 우주발사체의 종합기술을 체계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현재까지 총 74명의 연구소·산업계 인력을 러시아측에 파견하여 공동으로 시스템 설계, 상세설계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다분히 미국측 감시를 의식하여) 한국과 러시아 사이 계약서에는 ‘기술이전’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으며, ‘감시(monitoring)’ 및 ‘접근(access)’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계약서 제14조에는 “계약자의 의무이행에 관한 ‘모니터링’, 제작활동 및 데이터에 대한 ‘접근’ 규정” 등으로 표현돼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한국으로 설계도 등 로켓의 핵심 부분을 주지 않고 있는 것이 ‘미국의 요구’에 따른 것인지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외교 문건을 통해 ‘우려의 뜻’을 전한 행위가 러시아의 태도 변화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개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직설적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는 “한국으로의 기술 이전을 반대한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미국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 아래서 국가간 로켓 기술의 교류를 차단할 힘을 갖고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보고서가 설명한 대로 러시아는 인도로 로켓 기술을 수출하려다 미국과 마찰을 일으킨 사례가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미국의 이렇듯 강경한 태도를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는 러시아가 미국의 부정적 기류를 계약 파트너인 한국측에도 전한 점,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즉각 설득에 나선 점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주발사체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기술적으로 유사한 측면이 있다. 끝부분에 위성을 실으면 우주발사체가 되고, 핵폭탄 등 대량살상무기를 적재하면 미사일이 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여러 인공위성(러시아 스푸트니크 1호, 미국 익스플로러 1호 등)은 미사일을 개량한 로켓에 실려 발사되기도 했다. 보고서도 “우주발사체 기술은 대량살상무기의 운반 시스템으로 전용이 가능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미국측 논리는 일정 부분 타당성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의 우주 로켓 기술습득을 막는 의도에 대해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한국은 KSLV-Ⅰ 로켓을 상업적, 과학적 목적으로만 사용한다고 밝혀왔다. 대륙간탄도미사일로의 전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한국이 북한과 같은 나라가 아닌 다음에야 당장 국제사회의 의심과 반발을 살 그런 무모한 선택을 할 리 없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사일기술통제체제 하에서도 완성품, 로켓의 각단(카테고리 Ⅰ)의 경우 최종 용도 등에 대한 구속력 있는 정부간 약속과 보증이 있으면 이전이 허가된다. 한국은 이 같은 미사일기술 통제체제 조항을 준수하겠다고 미국측에 여러 차례에 걸쳐 설명했고 미국측의 현장 조사도 받았다.

    미사일로 쓰기 위해선 고체 추진제(연료)가 유리한데, KSLV-Ⅰ로켓의 경우 1단이 액체 추진제다. 한국은 미사일로의 전용 방지를 위해 비행거리 300km 이상의 고체 추진제 로켓 개발을 자체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2002년 11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성공적으로 발사한 KSR-Ⅲ 로켓도 액체 추진제였다.

    ‘숙청’ ‘사찰’ ‘외교 서한’…

    이처럼 KSLV-Ⅰ 로켓은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되는 것을 차단하는 이중삼중의 장치가 있다. 그런데도 미국이 “한국의 로켓 산업은 한국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가능성을 높인다”고 한 부분에서 미국의 의중은 어느 정도 드러난다. 미국은 한국을 신뢰하지 않으며, 한국의 로켓 기술 보유를 원치 않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 한국의 미사일·로켓 기술 보유를 억제하는 정책은 수십년간 내려온 미국의 대한(對韓) 정책이었다.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해 민주적 정통성이 약한 신군부 정권이 들어선 직후 국방과학연구소 미사일 개발팀은 대부분 숙청됐다. 이는 미국의 압력 때문이었다는 얘기가 지배적이다. KSR-Ⅲ 액체 로켓이 발사됐을 때도 미국은 ‘한미 미사일 각서’ 위반이라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사찰했다.

    특히 우주산업 분야에서도 한국과 미국은 편하지 않은 사이다. 김대중 정부는 미국 부시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미사일방어(MD) 시스템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한미간 신뢰에 금이 갔다는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한미동맹 관계는 동해처럼 멀어졌다”고 보도했다.

    한국은 미국의 틀에서 벗어난 ‘자주외교’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창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계속된 북한의 ‘핵-대포동 위협’에 질린 미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 보유국이 한 곳이라도 적을수록 본토 방위에 유리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미국의 한국 로켓 개발 저지는 이러한 과거, 현재의 상황적 배경에서 나왔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우방인 미국이 러시아에 외교 서한까지 보내며 한국의 우주발사체 기술 습득을 막으려 한 것은 야박해 보이는 일이다. 이 사업에 한국 국민은 큰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으며 평화적 이용을 추구해왔는데, 결과적으로 미국은 ‘힘의 논리’로 이를 꺾으려 했다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한 우주산업 전문가는 “미국은 동맹국의 상업용 로켓 개발을 적대시하지 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우주기술 순위는 세계 13∼15위로 브라질, 노르웨이, 덴마크, 오스트리아, 벨기에, 핀란드, 네덜란드와 함께 C그룹에 속한다”고 분석했다. A그룹은 자체 로켓 발사능력 및 위성개발능력 보유 국가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 인도, 이스라엘이다. 우크라이나는 로켓 발사 능력은 있으나 위성 개발 능력은 확인되지 않은 국가다. B그룹은 위성 개발 능력 보유국으로 캐나다, 독일, 이탈리아다. C그룹은 부분적 로켓 및 위성 개발 능력 보유국이며, D그룹은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등 최근 연구개발 착수국이다.

    우주산업은 ‘국력의 바로미터’로 통한다. 이번에 우주발사체 사업이 상당기간 지체되거나 좌절될 경우 한국은 A그룹이나 B그룹으로 도약할 기회를 미뤄야 할지도 모른다. 전세계 우주산업 시장은 972억달러 규모(2004년)에 달하며 연간 10%의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이런 미래 핵심 산업에서 한국이 뒤처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특히 동북아시아에서 한국은 우주산업의 후발주자에 속한다. 중국은 이미 창정(長征) 로켓으로 유인우주선을 쏘아 올렸으며 사거리 1만12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둥펑(東風)-314를 2007년부터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일본은 1994년 방송통신위성을 실은 H-2 로켓을 3만6000km 정지궤도 상공에 올렸고, 2005년에 H-27호기 로켓을 개발했다. 현재는 액화천연가스 추진 엔진을 장착한 차세대 로켓을 연구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 공동으로 MD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대만은 사거리가 1000km까지 연장되는 순항 유도탄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은 1998년 대포동 1호 미사일, 2006년 7월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다. 북한은 아시아-태평양을 사정권으로 두는 미사일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한국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의해 500kg 이상의 탄두를 300km 이상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 등 발사체 개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최근 “탄두 중량 500kg을 넘지 않는 사거리 300km 이상 크루즈 미사일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지금까지 개발한 로켓은 1993년 10월 KSR-Ⅰ(고도 75km까지 대기층 탐사, 1단형 고체추진제), KSR-Ⅱ(고도 150km까지 대기층 탐사, 2단형 고체추진제), KSR-Ⅲ(고도 42.7km, 액체추진제 로켓 개발을 위한 기반기술 확보용 로켓) 3개로 동북아 주변국의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

    한국 우주 로켓, 미사일체제 준수

    보고서는 “한국과 러시아는 우주기술협력협정을 발효하는 등 양국간 신뢰를 바탕으로 기술 협력에 필요한 체제를 구축해왔다”면서 사업의 성공을 전망했다. 그러나 한국우주발사체 사업은 전세계 로켓산업을 주도하는 미국의 반대와 핵심 기술의 미(未) 이전, 내년 발사 무산 등으로 기로에 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업을 성사시키겠다는 강한 의지, 러시아·미국을 상대로 한 노련한 외교력 및 국내 기관 간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할 때다.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는 외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로켓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자체 기술이 있으면 외국의 간섭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구속되지도 않는다. 우주산업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기술했다.

    보고서는 “언론에 보고서 내용이 공개되면 주변국들의 불필요한 주목을 받게 되어 사업이 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동아’는 한국의 로켓 개발이 국제 미사일체제와 모순되지 않으므로 지나치게 저자세로 진행할 일이 아니며, 오히려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알리는 것이 우주발사체 사업과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일부 민감한 부분은 빼고 보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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