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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베이징올림픽, 그 후 中國

중국의 눈으로 본 동북아 정세

중·일 밀월, 북·중 회복, 북·미 개선…한국은 외톨이?

  • 권오홍 중국 전문가

중국의 눈으로 본 동북아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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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가 주어진 조건이라면, 외교는 그 조건을 타개해나가는 수단이다.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중국의 눈에, 동북아의 최근 정세는 급변 그 자체다. 일본이나 북한과의 관계에서 지극히 실용주의적인 외교를 채택해 성큼 가까워지고 있는 중국이 왜 유독 한국에 대해서는 이를 마다하고 있을까. 단순히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 천명에 따른 반작용일까. 아니면 한국의 ‘외교능력’을 근본적으로 불신하고 있는 것일까. ‘실용주의 중국 외교’가 만들어가는 동북아 정세는 어떤 모양으로 변모할 것인가.
베이징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열렸다.

써놓고 보면 말은 참 간단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다. 온갖 구설이 있었다. 중국 경계론, 중국 위협론, 중국 폄하론이 뒤섞여 있었다. 티베트 사태가 야기한 각국 정상들의 개막식 불참 움직임에서부터, 올림픽 전에 터져 나온 위구르 자치구의 무장투쟁, 인공강우를 해도 쉽게 개선되지 않은 베이징의 대기오염까지 악재(惡材)는 빈발했다.

그 때문일까. 중국은 올림픽을 위해 많은 희생을 감수했다. 대외관계에서는 지난 몇 년간 주변국에 최대한 몸을 낮추는 자세로 일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올림픽은 끝났다. 올림픽 이전의 중국과 이후의 중국은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중국은 ‘모든 걸 참고 견뎌야 하는’ 올림픽이라는 굴레를 쓰고 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앞으로의 변화가 결코 단순할 수 없는 이유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8월1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인민대회당에 등장해 ‘올림픽 이후’를 이야기했다. 올림픽 이후의 중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였다. 그는 “중국은 패권주의가 아니라 방어적 국방정책을 추구하고, 중국의 발전은 다른 국가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후 주석은 성장유지 경제정책을 포함해 물가억제 등 거시적 경제관리, 정치개혁, 행정관리 효율성 강화, 인민 권리 보호, 환경보호 정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언급했다. 이후 열린 올림픽 기간에 그는 70여 개국 정상들과 회담을 갖는 등 바쁜 외교일정을 소화했다. ‘마음먹고 벌인 잔치판’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자세였다.

2008년 상황에서 중국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 혹은 어떤 평가를 받는가. 여전히 개발도상국일까, 아니면 질시 어린 폄하 아래 엄청난 힘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중국은 그 힘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혹은 어떤 나라가 되려 하는가…. 이 모든 질문은 각각 찬찬히 살펴봐야 할 만큼 의미 있는 주제다. 그러나 때로는 한발 떨어져 ‘숲’을 보는 것이 이런 질문에 정확히 답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먼저 살펴볼 것은, 최근 중국과 일본의 관계개선 무드다.

판을 읽는 키워드 ‘중일관계’

지난 5월 후진타오 주석은 일본을 방문했다. 이름하여 난춘지려(暖春之旅), 따뜻한 봄날의 여행이었고, 실제로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자 애썼다. 왜 하필 일본이었을까. 좁은 소견으로 보자면 한·미·일의 남방 삼각동맹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집권한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한·미·일 동맹을 강조한 만큼, 중국의 움직임을 이와 관련해 해석하는 시각도 나올 법하다.

어쨌든 5월의 방문을 계기 삼아 중일 관계는 ‘전략적 호혜관계’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때 두 나라는 영유권 문제가 첨예하게 걸려 있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경계설정 논의를 아예 유보하는가 하면, 동중국해 가스전 공동개발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공동의 이익 추구’가 서로의 실리에 부합한다는 걸 증명한 셈이다. 7월에는 민관교류 사업이 이어져 30~50대 정치가와 공무원, 경영자, 문화예술인 등이 상호 방문하는 행사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다양한 수위의 대화를 통해 양국 간 연대를 강화하자는 협의가 이뤄졌다.

흥미로운 것은 역사 문제다. 당초에는 7월 말 두 나라 역사학자들이 모여 만든 ‘중일역사공동연구회’가 보고서를 내기로 돼 있었는데, 올림픽을 앞두고 발표가 보류된 것이다. 난징(南京) 대학살 등 민감한 부분에 대한 언급이 올림픽을 앞둔 중국에서 반일감정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두 나라 모두 밀월(蜜月)을 깨고 싶어 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역사 문제를 유보하면서까지 밀월을 추구하는 두 나라의 움직임은 갑작스러워 보인다. 2001년 10월에만 해도 주룽지(朱鎔基) 당시 중국 총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회견에서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교과서 문제의 해결 없이 중일관계 개선은 어렵다”고 단언했다.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도 “역사의 참된 모습을 가르침으로써 비로소 우호가 세대에 걸쳐 지속된다”고 지원사격을 가했다. 그러나 신사참배와 교과서 문제는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았고, 2005년에는 극심한 외교분쟁으로 이어졌다. 우이(吳儀) 부총리가 고이즈미 총리와의 회담을 취소하고 귀국해버리는가 하면,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문제를 거론하는 국가는 세계에서 중국과 한국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의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랬던 중국과 일본이, 이렇게 갑자기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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