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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 정권교체’ 하토야마 내각 출범

하토야마 측근 “한일 관계 더 좋아진다” 귀띔

  • 윤종구│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jkmas@donga.com│

‘일본 최초 정권교체’ 하토야마 내각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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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국민은 54년 장기집권의 자민당을 마침내 버렸다. 하토야마 정권은 주변국들에 이전의 일본과는 다소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일 관계, 북핵 문제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 관심사다.
‘일본 최초 정권교체’ 하토야마 내각 출범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현 총리)가 8월23일 도쿄에서 총선 유세를 하고 있다.

8월31일 저녁 도쿄의 번화가 아카사카(赤坂). 퇴근 후 한잔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로 늘 북적대던 거리가 이날따라 한산했다. 술집 주인이 유일한 손님인 기자 일행을 배웅하면서 투덜댔다. “밖을 보시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정부가 장사를 망쳐놨어요.”

이날 저녁부터 태풍이 불어닥칠 예정이니 국민은 서둘러 귀가하라는 정부의 권고방송을 야속해하는 말이었다. 정부가 귀가를 독려한 것도 좀 우습지만, 그렇다고 술꾼들마저 얌전하게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천하의 아카사카가 휑하게 빈 것은 더욱 가관이었다. 이게 일본이다. 장담컨대, 선진국 중 가장 고분고분한 국민성을 가진 나라가 일본일 것이다.

고분고분하던 국민의 반란

바로 하루 전. 그 일본 국민이 일을 냈다. 민주국가에선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자민당의 54년 장기집권을 표로 종식시켰다. 반세기 동안 쌓이고 쌓인 불만과 분노는 거침이 없었다. ‘이번에는 갈아보자’는 ‘바꿔 열풍’이 일본 열도 전체를 휩쓸면서 국민들도 한껏 달아올랐다. 유세현장에 모인 청중은 교통정리를 위해 저지선을 치는 경찰을 밀치고 차도로 내려서기 일쑤였고, 끼리끼리 길거리 정치논쟁을 벌이며 정부를 비난하는 광경도 드물지 않았다. 적어도 8·30 총선에 임한 일본 국민의 모습은 태풍이 오니 일찍 귀가하라는 정부의 권고에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순한 양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이날 조간신문에는 일제히 ‘신형 인플루엔자 비상’이 1면 주요기사로 보도됐지만,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유세장을 찾았다. 최근 며칠 새 4명이 잇따라 신종 플루에 감염돼 숨졌다는 뉴스에도 불구하고 유세장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건 다른 나라라면 몰라도 일본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날은 ‘9월말~10월초 피크 기간에 하루 60만명씩 감염될 것’이라는 당국의 경고성 전망도 있었다. 이쯤 되면 일본 사람들은 사람 많은 곳에는 얼씬도 않는 게 보통이다. 독감의 ‘독’자만 나와도 거의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나라다. 올봄 신종 플루가 처음 유행하자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마다 장사진을 치고, 마스크 품귀현상이 벌어져 구하고 싶어도 구하기 힘든 지경까지 갔다. 이들이 정권교체의 역사적 현장을 찾아 자발적으로 수천 명씩 무리를 지은 것이다.

투표 하루 전인 8월29일 저녁 도쿄의 부도심지 이케부쿠로(池袋)의 풍경은 일본과 일본 국민이 정권교체에 얼마나 목말라 했는지 잘 보여준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 겸 자민당 총재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의 마지막 유세대결이 이케부쿠로 역을 사이에 두고 7시30분에 동시에 벌어졌다.

이케부쿠로 역 동쪽 출구 세부(西武)백화점 앞에 진을 친 자민당 지지자 수천 명은 아소 총리가 나타나자 일제히 작은 일장기를 흔들며 “니폰” “간바레(힘내)”를 외쳤다. 아소 총리는 이렇게 호소했다. “민주당에 나라를 맡기면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일본을 더욱 성장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자민당 정권뿐입니다. 일본을 지키는 것은 자유민주당, 여러분의 생활을 지키는 것도 자유민주당!” 지지자들은 일장기를 흔들고 박수를 치며 “니폰! 니폰!”으로 화답했다.

이케부쿠로 유세장 풍경

같은 시각 이케부쿠로 역 서쪽 출구 도부(東武)백화점 쪽 도로변을 차지한 하토야마 대표는 유세차 연단에 올라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가 한 표 던진다고 설마 정치가 바뀌겠느냐고 많이들 생각하겠지만, 이번에는 정말 다릅니다. 여러분의 한 표가 50년 이상 지속돼온 정치를 바꿀 수 있습니다. 정권교체에 힘을 모아주십시오.”

일본 역사상 가장 긴 40일간의 선거운동 기간에 전국을 돌며 지원유세를 하느라 목소리는 잠겨 있었지만 승리를 확신한 듯 자신에 넘치는 모습이었다. 토요일 저녁 달콤한 휴식을 반납하고 몰려든 수천 명 지지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하토야마! 총리!” “정권교체!” 구호를 외치는 지지자들은 경찰의 저지선을 무시하고 도로와 인도를 무시로 넘나들었다. 결국 경찰이 도로 한쪽을 완전히 시민들에게 내주고 물러났다. 아들에게 하토야마 ‘차기 총리’의 얼굴을 직접 보게 해주려고 목말을 태운 아빠들, 사진을 찍기 위해 일제히 휴대전화를 치켜든 손…. 곳곳에 ‘정권교체’ 깃발이 넘쳤고 하토야마 대표의 사진이 나부꼈다. 압승이 예견된 선거여서 그런지 잔칫집 분위기였다.

유세가 끝난 후에도 열기는 그대로 이어졌다. 지지자들 간에 길거리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자민당을 지지하는 20대 청년 2명이 ‘아소 자민당’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민주당 유세장을 찾아와 자극한 게 발단이었다. 하토야마 대표가 자리를 뜬 지 30분가량 지난 저녁 8시20분.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청년들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여성 : 아소 총리도 이제까지 최선을 다해왔겠지만, 자민당이 오랫동안 집권하면서 해놓은 게 뭐냐. 우리 생활은 엄청 나빠졌다.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니냐.

청년 : 우리가 이렇게 잘살게 된 게 누구 덕분이냐. 일본을 한꺼번에 바꾸려 해선 안 된다. 바꾸더라도 조금씩 바꿔야 한다.

여성 : 자민당은 수십 년 동안 전혀 바뀌지 않았다. 사회를 바꾸려고 하지도 않았고, 바꿀 능력도 없다.

청년 : 경험도 중요하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확실히 모르겠다.

여성 : 오늘 여기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생각하느냐. 왜 자민당 지지도보다 민주당 지지도가 훨씬 높은지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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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구│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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