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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리비아사태-포스트 카다피

석유 둘러싼 강대국 이권싸움이 ‘자유 리비아’의 운명 가른다

심층분석 - 카다피 몰락의 숨은 진실

  • 김영미│분쟁지역 전문 저널리스트 gabjini3@hanmail.net

석유 둘러싼 강대국 이권싸움이 ‘자유 리비아’의 운명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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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3년간 이어진 장기 독재의 종말.
  • 이제 리비아 사람들은 포스트 카다피를 고민한다.
  • 리비아는 어떤 모습으로 재탄생할 것인가.
  • 31명으로 구성된 국가과도위원회는 그 답을 알고 있을까. 서방 국가들이 리비아 내전에 깊이 간여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 바로 석유 때문이다. 서서히 달아오르는 반군 내 갈등의 이면에도 석유를 둘러싼 이권이 도사리고 있다. 포스트 카다피는 누가 될 것인가. 그리고 리비아의 그 많은 석유는 누구의 몫이 될 것인가.
석유 둘러싼 강대국 이권싸움이 ‘자유 리비아’의 운명 가른다


올해 초부터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불어닥친 민주화 바람은 리비아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집트, 알제리의 민주화 시민항쟁에 이어 2월15일 리비아 제2도시 벵가지에서 최초의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사실 리비아에서 벌어진 이 최초 시위는 아주 작은 규모였다. 2006년 벵가지에서 열렸던 이슬람주의자 집회에서 14명이 숨진 사건을 기리기 위해 벌인 시위로 페이스북을 통해 듣고 삼삼오오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이 시위대 사이에서 반정부 구호가 나오면서 순식간에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이 벌어졌고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정부군이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상사였다. 이 시위대는 ‘인터넷 세대’ 젊은이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을 겪으며 중동과 아프리카 같은 제3세계의 젊은이들이 인터넷에 더욱 가까워졌다.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도 이들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부모 세대와는 달리 이들은 인터넷 덕에 세상일을 시시각각 알 수 있다. 사막에서 태어난 부모세대의 관심은 부족과 가족에 국한됐다. 그러나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넓어진 눈으로 다른 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민주화가 무엇인지 등에 눈을 뜬 것이다. 처음 시위를 호소한 페이스북 그룹 ‘우리 모두 칼레드 사이드다’는 이를 반증한다. 그들은 카다피 독재 40여 년간 억압되었던 민중의 상징으로 유혈시위에 분노한 시민들과 다시 모여 민주화 시위를 들불처럼 펴져가게 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시위대에서 반정부 세력으로 커져 리비아 동부와 서부의 여러 도시에 대해 통제력을 확보해갔다. 드디어 3월5일, 반군은 벵가지에서 대표기구인 국가과도위원회(National Transitional Council of Libya·NTC)를 발족해 리비아 국민의 유일한 합법적 대표로 세상에 알려졌다.

인터넷 혁명

시대적인 변화와 시민들의 열망을 자각하지 못한 리비아의 대통령 카다피는 끝까지 무력으로 이들에 대응했다. 리비아는 곧 내전에 휩싸였다. 정부군이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벵가지 인근까지 진격해 반군과 밀고 밀리는 격전을 이어갔다. 사실 이것은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는 전투였다. 전투기와 탱크로 밀고 나오는 정부군은 AK 소총 몇 자루와 RPG(로켓 추진형 유탄) 만 가지고 싸우는 반군보다 전투력이 우월했다. 카다피는 정부군을 동원해 반군의 근거지를 초토화해갔다. 그렇게 리비아의 민주화 열망이 사그라질 즈음 반군에게 뜻밖의 지원군이 나타났다. 프랑스 전투기가 리비아 영공에 뜬 것이다. 그리고 곧 카다피군에게 맹렬한 공습을 시작했다. ‘미국도 아니고 왜 하필 프랑스 전투기가 카다피군을 공격한 걸까?’라고 의아해할 수 있지만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의 행보를 보면 이해가 간다.

프랑스는 이미 전세계에서 최초로 리비아 반군의 국가과도위원회를 리비아의 ‘합법적 대표’로 인정한 바 있다. 아직 공식적으로는 리비아 대통령이 카다피로 되어 있지만 프랑스는 처음으로 이를 전면 부정한 나라다. 유엔 안보리의 ‘비행금지구역설정’ 결의안이 통과된 이틀 뒤인 3월19일, 사르코지 대통령은 각국 정상과 주요 국제기구 책임자 회의를 대통령궁인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리비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할지 말지 논의하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깜짝 놀랄 돌발선언을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모인 세계 각국 정상들에게 그는 “프랑스 전투기들이 리비아 내 목표물을 타격하기 위해 이미 이륙했다”고 한 것이다.

안보리 결의를 한 지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프랑스 전투기가 국제사회와는 아무 상의도 없이 벌써 리비아로 떠났다는 것이다. 사르코지는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과 영국이 나토군 연합 작전을 주도하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프랑스 주도로 작전이 전개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사르코지는 군사 작전 개시를 선언하면서 “카다피의 대량살육을 중단시키기 위해 프랑스는 역사 앞에서 역할을 맡는다”고 말했다. 군사작전에서 영원한 조연을 거부하고 리비아에서는 프랑스가 주연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또한 사르코지는 리비아전을 계기로 강력한 국제적 리더십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뛰어난 대통령의 이미지를 국민에게 심어주고 싶어했다. 그리고 사르코지의 이 작전은 일단 프랑스 국민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 내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리비아 공습을 지지하고 나서고 70만명의 네티즌이 투표한 결과에서도 66%가 리비아 공습을 지지했다.

3월20일 오전, 일명 ‘오딧세이 새벽’으로 불린 이 작전에는 프랑스군 전투기 라팔과 미라지 등 10여 대가 참여했다. 뒤늦게 미군도 B2 스텔스기, F15·F16 전투기 등을 포함한 군 항공기 19대를 동원해 리비아의 방공 시스템을 공습했다. 미국 B2 스텔스기 3대가 리비아 주요 비행장에 폭탄 40발을 떨어뜨렸고 미 공군 전투기들이 리비아 육군을 공격하기 위한 정찰임무를 동시에 수행했다. 프랑스군의 첫 공격 몇 시간 뒤 미국과 영국 해군 함정들이 리비아 방공망 등 20곳을 목표로 토마호크 미사일 124발을 발사했다. 카다피군에게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반군은 천군만마를 얻은 격이다. 나토군의 군사공격으로 반군은 카다피군을 밀어내기 시작했고 이 기세를 몰아 3월23일 드디어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반군에 의한 임시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또한 프랑스에 이어 카타르, 영국, 미국 등이 이 임시정부를 리비아의 합법정부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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