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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싸구려 국가고시’

한 문제 출제수당 7000원

  • 이진영 동아일보 지방자치부기자

한 문제 출제수당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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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의 공복(公僕)을 선발하는 국가공무원 시험이 잇따라 소송에 휘말리며 ‘과연 믿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98년 치러진 사법시험 문제 중 7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법원의 판단을 받은데 이어 99년 41회 사법시험에서도 모두 6문제에 정답이 두 개거나 없다는 판결이 내려진 것. 국가시험의 신뢰성이 누더기가 되자 행자부는 고시제도 개편안을 내놓았는데….》
우리나라 정부부처에서 고스톱을 가장 잘치는 공무원들이 모여있는 곳은? 정답은 행정자치부 고시과다.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 각종 국가고시와 7·9급 공무원 시험을 관리하는 행정자치부 고시과 직원들은 공통적으로 술을 잘 마시고 고스톱을 잘친다. 이들은 보통 시험이 치러지기 20∼30일 전에 서울 종로구 창성동 합동청사 내의 국가고시 편집실에 들어가서는 시험이 끝나는 날 오후에야 풀려나온다.

시험위원들이 문제를 선정하고 최종 결정된 문제들이 인쇄되는 동안 전화선도 없이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바깥 출입이 금지된 사람들이 술과 고스톱으로 무료함을 달랜다는 것이다. 올해 사법시험 1차시험 문제선정 및 재검토위원으로 위촉된 사람들도 이와 같은 ‘수감’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까다로워진 출제절차

예년에는 50명 남짓한 위원들이 하루에 출제를 끝냈으나 1차시험문제 오류판결이 잇따라 나옴에 따라 출제절차가 꽤 까다로워졌다. 2월20일 실시한 사법시험을 앞두고 출제위원 140여명과 재검토위원, 그리고 관리요원들은 경기 양평의 모처에서 10일간 합숙하며 23과목에 40문제씩 모두 1000문제에 가까운 시험문제를 내느라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내년부터는 행정고시 외무고시 기술고시 지방고시 등 4개의 고등고시 1차시험 출제도 이렇게 요란한 사법시험 출제 시스템을 따를 전망이다.

사법시험과 각종 국가고시의 1차 객관식 시험은 문제은행 방식이다. 평소 과목별로 각계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출제한 문제들을 카드형식으로 모아뒀다가 이중에서 매년 시험문제를 선정한다. 현재 문제은행에 등록돼 있는 문제는 30만 개가 넘으며 매년 출제문항 만큼의 문제가 새로 추가된다.

모든 공무원 시험과 지난해까지 치러진 사법시험의 경우 출제 절차는 문제를 선정할 시험위원을 위촉하고 → 문제은행에서 문제를 선정한 뒤 → 인쇄를 거쳐 → 시험을 치르고 → 정답을 결정해 → 채점하고 합격자를 발표하는 순서다.

사법시험의 경우 시험위원은 헌법 민법 형법 등 기본 법학과목은 과목당 4명. 이중 판사나 검사를 1명 이상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나머지 20개 선택과목은 과목당 3명이 문제 선정위원으로 참여한다.

시험위원을 위촉하기 위해 행정자치부 고시과는 900여개의 시험과목별로 시험위원 인력풀을 관리하고 있다. 이 인력풀에는 전국의 고시과목 관련 교수들과 관련 전문인들의 인적사항, 연락처가 기재돼 있다. 한번 시험위원으로 위촉되면 다음해에는 빠지는 것이 원칙이다.

시험위원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7시까지 국가고시 편집실에 모여 문제를 선정한다. 3중문으로 된 편집실은 344평 규모로 이 안에서 문제 선정위원들은 과목별로 정리된 문제은행에서 시험문제를 뽑고 3800여권의 참고도서를 들춰보며 최종 출제문제를 다듬는다.

이렇게 뽑힌 시험문제는 위원들이 모두 합의해야 최종 시험문제로 선정하고 시험위원들간 논란이 있는 문제는 아예 빼버린다. 정답은 일단 문제 선정단계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험을 치른 뒤 정답을 재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법령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문제선정 당시의 정답이 시험시행 시점에는 바뀌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정답은 대개 법령의 효력이 시험시행일을 기준으로 언제 발생했느냐를 가지고 가린다.

이와 같은 출제시스템은 사법시험의 경우 올해 이미 바뀌었고 나머지 국가고시는 내년부터 바뀐다. 즉 시험문제 선정 단계에서 선정한 문제를 별도의 재검토위원회가 점검하고 문제지도 공개해 의견을 수렴한 뒤 정답심사위원단이 최종 정답을 결정하는 3중 검증절차를 거치는 것이다. 문제 선정위원회와는 별도로 재검토위원회와 정답심사위원단을 운영할 경우 시험절차는 꽤 번거로워진다. 게다가 한번 공개한 문제는 다시는 쓸 수 없기 때문에 문제은행 관리에 막대한 차질이 예상된다. 행정자치부가 이와 같은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국가시험 출제시스템을 바꾸기로 한 배경에는 사법시험 1차시험의 오류를 지적하는 소송과 이를 인정하는 법원의 판결들이 있다.

잇따른 오류지적 판결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구욱서·具旭書 부장판사)는 지난 1월14일 “99년도 41회 1차 시험 중 2문제의 정답이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민법 문제 1개는 정답이 2개이고 형법 문제 1개는 정답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1차시험에 탈락한 송모씨 등 206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이 소송에서 “2개 문제에 오류가 발견된 만큼 이에따라 합격선 안에 들게된 송씨 등 28명에 대한 불합격처분을 취소하라”며 원고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13개 문제에서 출제 및 정답 선정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민법문제 1개는 정답이 2개로, 형법문제 1개는 정답이 없는 것으로만 판명됐다”며 “이 두 문제의 오류로 탈락한 28명에 대한 불합격 처분은 취소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이뿐 아니라 행자부가 채점 도중 헌법과 지적재산권법 등 4문제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정답을 정정한 사실도 재판 과정에 밝혀졌다. 재판부 관계자는 “그 4문제 중 2문제는 정답이 없어 모두 맞은 것으로 채점됐다”고 밝혔다. 결국 대표적인 국가시험인 사법시험에 아예 정답이 없는 3문제를 포함, 6문제가 잘못 출제된 것이다. 이번 소송을 대리한 이재화(李在華)변호사는 출제오류가 더 있다고 보기 때문에 항소할 계획이며 이번 판결로 400여명의 당락이 바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재판부는 “사법시험을 주관하는 행정자치부는 문제 선정과정과 시험 후 정답의 검토 확인과정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각 문제의 변별력에 대한 완벽한 검증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밖에 98년도 40회 1차시험에서도 7문제가 잘못됐음이 확인됐다. 이중 헌법 1문항 민법 1문항 형법 2문항 등 4문제는 대법원 판결 후 복수정답으로 처리됐고 2문제의 오류는 행정자치부의 채점과정에 밝혀졌다. 나머지 1문제는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이에따라 행정자치부는 지난해 9월 사법시험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불합격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해 대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은 신이철(37) 오윤석(35)씨와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수험생 등 527명의 불합격처분을 직권 취소했다. 사법시험 사상 정부가 불합격처분을 취소해 추가로 합격처리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정부의 조치에 따라 추가 합격자들은 올해와 내년 두 차례에 걸쳐 사법시험 2차시험에 응시할 기회를 갖게 됐다. 41회 1차 2문제의 오류가 대법원에서 확인될 경우 41회의 ‘억울한’ 탈락자에 대해서도 비슷한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드러난 40, 41회 1차 문제의 오류만 무려 13개. 출제 잘못에 따른 후유증은 탈락자 구제로 끝나지 않는다. 국가시험의 생명인 신뢰도와 공정성이 훼손될 뿐만 아니라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잇따르게 돼 막대한 행정비용이 들게 된다.

40회 1차시험에 불합격 했다가 뒤늦은 문제 오류 발견으로 지난해 구제된 태모씨(31) 등 171명은 1월 “잘못된 문제 출제로 피해를 보았다”며 정부를 상대로 1인당 2000만원씩 모두 34억2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법조계는 40회 시험에서 추가합격한 527명이 모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다면 정부의 부담은 최소 50억원 이상이라고 추산했다.

사법시험, 신뢰의 위기

이처럼 사법시험, 특히 법학 과목에서 출제 시비가 잇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정자치부 김주섭(金周燮)인사국장은 시험문제가 함정출제로 흐를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다수설과 소수설이 끝없이 경쟁하는 법학의 특성을 이유로 꼽는다. “사시는 5개의 보기 중 가장 옳은 것을 고르는 시험이다. 응시자가 많아 변별력을 높이려다 보니 문제를 이중 삼중으로 꼬게 된다. 매년 커트라인이 80점선에서 5점 정도가 올랐다 내렸다 할 정도로 높고 커트라인 근처에 수백 수천명이 몰려 있어 1,2문제 차이로 당락이 뒤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연히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 될 수밖에 없다. 정답 1개를 뺀 나머지 4개를 완전히 틀린 보기로 채운다면 답을 고르기가 쉬워 고득점자가 많이 나올 것 아닌가.

또 법에 관한 학설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 다수설이 소수설이 되고 또 소수설이 다수설이 되는 것이다. 5개의 보기중 가장 옳은 것이 있게 마련이지만 나머지도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니라 학설에 따라 10∼20% 정도는 맞는 것이다.”

실제로 국가시험의 몇몇 문제는 하느님도 정답을 모른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행정자치부가 정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이다.

98년 행정자치부를 상대로 소송을 낸 신모씨(37)가 재판과정에 겪은 해프닝 하나. 신씨는 40회 사시 1차시험 민법 17번 문제의 정답이 4번이라고 주장했다. 정답에 대한 소견을 밝힌 교수중 일부는 신씨의 주장에 동의했고 몇몇 교수들은 3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중에 행정자치부는 1번을 정답으로 채점했다고 밝혔다.

한편 행정자치부의 또다른 관계자는 “97년부터 사법시험 1차 4회 응시제한 제도가 실시돼 그 여파로 98년부터 수험생들의 출제 잘못 시비가 급증했다”고 분석한다. 올해 처음으로 사법시험 1차를 4번 보면 4년간 응시조차 못하는 ‘4진 아웃제’의 당사자가 나오게 된다. 올해 1차시험이 4번째인 수험생은 이번에 떨어지면 4년동안 시험볼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출제 오류 소송이 급증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보면 예전에도 소송이 제기되지 않았을 뿐이지 근본적인 문제의 오류는 있어 왔다는 얘기다.

사법시험 출제 시스템을 아는 사람들은 정답시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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