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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진출 스타트 신호만 기다린다

미국 기업·민간단체와 북한 유엔대표부의 비밀접촉 기록

  • 송문홍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북한진출 스타트 신호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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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외교협의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를 대신해서 우리 회원들 앞에서 연설하는 자리에 귀하를 초청하고자 합니다. 본 협의회는 국제연합 50주년 기념행사를 맞아 일련의 특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귀하가 뉴욕에 체재하는 기회를 활용해 우리 회원들이 귀하의 연설을 들을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통념과 실제 사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최근 교역이 활발해지고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면서 관계가 개선되고 있지만, 양국간에 아직 긴장은 남아 있습니다. 서방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려고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귀하는 북한 총리로서 북한의 군사적 목표와 남한, 일본 등 주변국들 간 경제적 정치적 관계에 대해서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핵심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귀하가 연설할 구체적인 주제는 물론 전적으로 귀하의 선택에 달린 문제입니다. 이를 위한 협의는 한결 솔직하게 토론할 수 있게 협의회의 전통적인 룰에 따라 진행될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외교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교협의회의 레슬리 겔브(Leslie H. Gelb) 회장이 북한의 강성산(姜成山) 당시 총리에게 보낸 서신 내용이다. 기자가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날짜는 ‘June 15, 199’로만 돼 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1995년임이 분명하다. 1994년 6월이라면 미국이 평양 폭격을 계획했을 정도로 양측 관계가 급박하게 돌아갈 때이고, 서신에 나와 있는대로 국제연합 창립 50주년이라면 1995년이기 때문이다.

1995년 6월에 미 외교협의회가 북한 총리를 뉴욕에 초청했다? 이건 이번에 처음 밝혀지는 사실이면서 동시에 저간의 ‘통념’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왜 그런가?

1995년 당시는 남·북한과 미국 사이에 북한 경수로 건설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시기였다. 93년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본격화된 북한 핵문제가 파국을 향해 치닫다가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합의로 극적인 반전을 겪은 후, 양국간에 관계개선을 위한 물밑 탐색전이 한참 벌어지던 국면이었던 것이다. ‘한국형 경수로’를 줄기차게 고집하는 한국을 사이에 놓고, 북·미는 1995년 6월12일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준고위급회담에서 경수로 제공과 관련한 제반 사항을 합의했다.

그러나 당시 북한 경제는 이미 피폐할 대로 피폐한 상태였다. 심지어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약속하면서까지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킨 배경에는 북한 정권의 ‘잔여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정설’처럼 돼 있을 정도였다. 경수로 건설기간 10년이 다 가기 전에 북한체제는 붕괴할 것이고, 따라서 경수로 건설 약속은 부도수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계산이 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에 따라서 미국의 민간 기업·단체들은 대북 진출에 관심도, 의지도 없다는 게 저간의 ‘정설’이었다. 북한은 경제활동의 전제가 되는 인프라가 열악하고 자본주의 경제운용 방식에 무지하며, 더욱이 언제 다시 고조될지 모르는 남·북관계의 위험 부담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미국 기업으로서는 한 마디로 북한에서 “얻을 게 없다”는 논리였다. 따라서 미국기업들은 한국 기업과 동반해서 대북 진출을 도모하거나, 훗날 제반 여건이 웬만큼 성숙할 때 비로소 북한에 진출할 것이라는 게 그동안의 지배적인 분석이었다.

사적이고 솔직한 대화를 갖자…

그러나 그런 논리는 ‘표면상의’ 논리일 뿐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기자가 입수한 자료의 상당 부분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자료에 따르면, 미국 정부와 민간 기업·단체들은 대북 경제제재와 적성국교역금지법(Enemy Act) 등 북한과의 경제관계를 가로막는 미국 내의 갖가지 규제장치들에도 불구하고 1995년부터 이미 대북 진출을 신중하게 모색하고 있었다. 우선, 몇 가지 자료를 좀 더 살펴보자.

▲ 하버드대학 페어뱅크 동아시아 연구센터의 에즈라 보겔(Ezra Vogel) 박사가 북한 외교부 이형철 미주국장에게 보낸 1995년 12월12일자 서신 중에서.

“최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한 내 친구인 스티븐 린튼 박사로부터 박석균(Pak Sok Gyun)씨를 만나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데에 귀하가 도움을 주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와 같은 비공식적, 비공개 대화는 우리 양국간의 이해를 증진하는 데에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학술대표단이 미국에 와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공개된 장소에서 여러 차례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그런 면담은 양측의 공식적인 주장만을 천명한 채 결국 논쟁으로 이어졌을 뿐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좀 더 사적인 토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샌 넌 상원의원은 린튼 박사에게 자신이 1994년 카터대통령 방북 이전에 받았던 방북 초청이 아직 유효한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미·북 대화에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의회와 정부 내의 다른 고위 인사들도 고위급 접촉에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이같은 생산적인 의견교환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워싱턴 정부에 2년간 봉사하고 지난 9월 하버드대학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여행을 하기에 좀 더 자유롭습니다. 하버드에서의 강의일정 때문에 1월 말에서 5월 말까지는 여행하기가 어렵지만, 1월 중순에는 며칠간 여유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1월20일 이후 며칠간 베이징에 체류할 계획이지만, 그 전 며칠간 스티븐 린튼 박사와 함께 평양을 여행할 수 있습니다.

귀하의 정부가 그같은 사적이고 비공식적인 접촉에 관심이 있다면 린튼박사나 나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린튼 박사와 나는 평양이나 다른 곳에서 귀하나 귀하의 동료들과 만나서 샌 넌 상원의원같은 분들의 방북문제를 논의할 기회를 갖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양국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 사이에서 우호적이고 솔직하며 생산적인 의견교환을 나누기 위한 최선의 방안을 찾기 위해서 토론할 기회를 갖기를 희망합니다.…”

(이 서신을 보낸 보겔 하버드대 교수는 93∼95년에 미 국가정보위원회(NIS) 동아시아 담당관을 지낸,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동북아문제 전문가다. 서신에 등장하는 스티븐 린튼 박사 역시 미국의 대표적인 민간 대북구호단체인 유진벨(Eugine Bell) 재단을 세워 북한에 식량지원과 결핵퇴치 사업 등을 지원하면서 수십 차례 북한을 방문한 인사다. 한편 이 서신의 수신자인 이형철 국장은 북한 외교부 내의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알려진 인물. 이들간에 ‘비공식적이고 사적이며, 보다 솔직한 대화’의 필요성이 언급되고 있는 게 흥미롭다.)

▲ 미 노틸러스 연구소의 피터 헤이즈(Peter Hayes) 박사가 뉴욕소재 북한 유엔대표부에 보낸 1995년 8월4일자 서신 중에서.

“이 서신은 북한대표부에 인터넷 설비를 제공하고, 대표부와 평양에 있는 스태프를 (우리 바람으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교육하기로 합의한 우리의 논의에 따른 것입니다.

저는 지금으로서는 한정된 자원 때문에 귀하가 속한 대표부에만 인터넷 장비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여기에는 컴퓨터·모뎀·소프트웨어의 제공, 여행경비, 숙박비 및 뉴욕 혹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교육비용이 포함됩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통신센터의 스태프 두 명을 교육하는 데 필요한 추가 자원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 부분은 재정적 준비가 확실하게 확보되기 전까지 기다리는 게 나을 듯 합니다.

이런 일에는 어쨌든 서류작업에 일정 시간이 걸리는 까닭에 여기 ‘인수서류’를 동봉해 보냅니다. 귀하는 이 서류에 서명한 뒤 우리측 워싱턴 사무실의 스티븐 뇌퍼 박사에게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발송봉투와 서류를 동봉했으므로 귀하는 1-800-0000000 페데럴 익스프레스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서 서류를 건네주기만 하면 됩니다. 뇌퍼 박사는 그 서류를 받아서 워싱턴 관료조직을 통해 수출허가를 획득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지루하고 복잡한 절차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긍정적인 결론이 나올 것으로 믿고 있으며, 최소한 대표부에 대한 교육문제는 향후 몇 달 이내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요한 자원이 확보되는대로 평양측 요원들에 대한 교육도 동시에 혹은 추후에 이뤄질 것입니다.

이 서신이 전달됐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며칠 뒤에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피터 헤이즈 박사 역시 한반도문제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핵문제 전문가인 헤이즈 박사는 90년대 이래 미 캘리포니아에서 동북아 지역의 안보·에너지·환경 문제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노틸러스연구소(민간)를 운영해오고 있다. 한편 스티븐 뇌퍼 박사는 하와이 주둔 미 태평양사령부 산하 연구소에 근무하는 동북아 전문가인데, 이렇게 보면 민간·정부산하 연구소의 전문가 2명이 미국내의 유일한 북한 공식기관인 유엔대표부에 컴퓨터 및 관련 장비를 ‘기증’하기 위해서 뛰었다는 말이 된다.

미국 기업들의 대북 타진

90년대 초, 북한이 핵문제를 들고 국제사회에 ‘깡패 국가’로 부각될 때만 해도 미국이 보기에 북한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나라’였다. 그래서 미국은 구소련이나 동유럽, 중국 등 사회주의권 국가들과도 구별되는 북한의 행태나 협상 테크닉을 파악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북한 정보에 관한 한 최고임을 자부하던’ 한국측 정보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점점 커지고, 현실에서 북한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미국의 대북한 정보력은 그새 수직 상승곡선을 그렸다는 게 여러 전문가들의 말이다. 북한은 더 이상 ‘미지의 땅’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에서 본 것과 같은 갖가지 ‘비공식적’ 혹은 ‘인도적 차원’의 접촉 노력이 그러한 변화에 크게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여러 민간기업들도 1995년 당시 북한의 문을 두드렸다. 이미 1995년 당시에 CNN, 코카콜라, AT · T 등 미국 유수의 대기업들이 북한과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은 나돌았지만, 해당 기업 임원이 공개리에 방북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구체적인 행보는 대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몇 가지 예를 보자.

▲ 코카콜라의 아틀랜타 본사 장-미첼 복(Jean-Michel Bock) 부회장이 뉴욕 북한대표부 박길연 대사에게 보낸 편지(1995년 1월17일자)

“뉴욕으로 귀환하는 비행편이 편안하셨으리라고 믿으며, 귀하의 짧은 아틀랜타 체재가 즐겁고 유익한 것이었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귀하를 만나 짧게나마 코카콜라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대프트(Daft)씨에게서 말씀을 들으셨듯이, 올 봄 어느 시점에 우리측 경영진 2∼3명이 평양을 방문하는 사안에 대해서 귀하가 보여준 지지와 지침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들의 약력은 아래에 첨부돼 있습니다. 우리측의 이번 평양 방문은 미국 법률이 허용하는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에서 코카콜라를 생산·배포하는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 목적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귀국 내에서 우리 제품을 생산할 회사를 설립하는 등의 다양한 문제와 관련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어떤 당사자와 협조를 해야 할지와 관련, 귀하의 지도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귀하의 대표부 측이 우리가 접촉해야 할 당사자와의 면담을 주선해주는 일 등에서 가능한 한 많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작년 말에 저는 우리측의 이러한 노력과 관련, 참사를 경유해서 김종수 대사와 접촉을 가졌습니다. 귀하는 이런 접촉을 통해서 우리측의 의사를 더 분명하게 파악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코카콜라는 자본주의와 미국 문화의 상징이다. 그래서 사업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폐쇄됐던 사회가 일단 개방되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진출하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코카콜라는 굳게 닫혀 있던 북한의 대문 틈새가 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약간 벌어지자마자 가장 먼저 그 문을 두드린 미국 기업 중 하나였지만, 아직 북한에 코카콜라는 없다.)

▲ 알프레드 R. 피어스(Alfred R. Pierce) 법률사무소가 의뢰인 코라데티사(Coradetti Enterprises, Inc.)를 대신해서 북한 유엔대표부에 보낸 1995년 2월28일자 서신.

“이 서신은 3월10일 오전 11시에 귀하의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확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의 고객인 코라데티사는 다양한 종류의 상업적, 가정용품 생산업체이며, 동시에 외국에서 상업적, 가정용품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객은 향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국 간의 교역이 활발해질 것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물론 양국간 교역이 확대되기 전에 추가적인 외교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에서는 현 단계에서 미국인은 귀측에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고 알려 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귀하와 만나서 우리측이 귀하의 국민과 정부에 제공할 수 있는 인도적 지원의 형태에 대해서 논의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상호간 우정과 신뢰의 기초를 만드는 것이 일차적으로 필수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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