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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힘’, 이건희의 경쟁력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삼성의 힘’, 이건희의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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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위 14년’을 맞는 이건희 삼성 회장은 웬만해선 앞에 나서지 않는 오너 CEO다. 그러나 총수가 있는 듯 없는 듯한 삼성은 외풍에도 흔들림없이 ‘한국 최고 기업’의 위상을 굳혔다. 보일 듯 말 듯한 ‘이건희 카리스마’의 실체는 무엇일까.
삼성의 간판 CEO인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은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李秉喆·1910~1987) 회장 시절부터 비서실에서 잔뼈가 굵었다. 1987년 이건희(李健熙·59) 회장 취임 이후로는 계열사 사장으로 나간 2년 정도를 빼고는 비서실을 떠난 적이 없고, 지금도 삼성전자 회장실장(이건희 회장의 공식 직함은 삼성전자 회장)으로 이회장을 밀착 보좌하며 ‘이건희이즘’의 전도사를 자처한다. 그런 그가 이렇게 털어놨다.

“선대 회장이 나를 찾으면 왜 찾는지, 뭘 물어볼 건지, 뭣 때문에 야단칠 건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나를 찾는다고 하면 왜 부르는 건지 감을 못 잡는다. 무슨 얘기를 꺼낼지 예측불허이기 때문이다.”

삼성생명 이수빈 회장은 삼성의 최고참 현역 경영인이다. 1965년 삼성그룹에 입사(공채 6기), 72∼77년 그룹 비서실 차장, 91∼93년 비서실장, 99년 구조조정위원장을 맡아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 부자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그런 그조차 “나는 이건희라는 사람을 모른다”고 한다. “30년 넘게 이건희 회장을 지켜봤지만, 워낙 비범한 인물이라 진면목의 20%도 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그림자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이 정도라면 ‘인간 이건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한 손에 꼽는다고 봐야 한다. 그는 여느 대기업 총수처럼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지도 않는다. 행사나 모임에도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거니와, 어쩌다 나온다 해도 뚱한 표정으로 정물(靜物)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말도 어눌하고 독특한 제스처도 없다.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

이회장의 성장과정과 성격, 경영스타일, 사생활 등에 대해서도 별로 알려진 게 없다. 1987년 선대 회장이 타계한 후 ‘삼성왕국’의 2대 회장에 취임했을 때, 이듬해 ‘제2의 창업’을 하겠다며 이런저런 일을 벌였을 때, 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놓고 다 바꿔라”며 이른바 ‘신경영 선언’을 했을 때, 99년 자동차사업이 법정관리 신청과 함께 막을 내렸을 때처럼 잊을 만하면 한번씩 세인의 주목을 받았을 뿐, 그의 재위 14년은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라는 말로 요약될 만큼 베일에 가려 있다.

더욱이 이회장은 구조조정본부와 계열사 사장들에게 경영 재량권을 주고 자신은 ‘방향 제시’에만 신경을 쓴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좀처럼 회사에 출근하지 않으며, 필요하면 임원을 서울 한남동 자택으로 불러 보고를 받는다.

사정이 이러니 하물며 일반인이 이회장의 실체에 다가설 기회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그가 ‘보통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고 있는 것은 이채롭다. 지난 1월 온라인 채팅서비스업체 ‘스카이러브’가 네티즌 1500여 명에게 ‘올해를 빛낼 인물’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재계에서는 이회장이 1위를 차지했다. 2월에는 한양대 김재원 교수(경제학부)가 학생들에게 ‘가장 닮고 싶은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이건희-박찬호-안철수(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장)-이재웅(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 순으로 답이 나왔다. 5월 여론조사기관 P&P리서치가 성인 남녀 1212명을 대상으로 최고경영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회장이 1위에 올랐다.

이런 현상은 ‘눈에 보이는 삼성’과 ‘눈에 보이지 않는 이건희’가 만들어내는 이미지 승수효과 때문인 듯하다. 삼성은 외환위기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고속 성장을 거듭, 치명타를 맞은 현대와 대우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국내 1위를 굳혔다. 삼성의 지난해 매출은 130조 원, 순이익은 8조3000억 원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이회장이 취임하던 해인 87년보다 매출은 7.6배, 순이익은 41.5배나 증가한 셈.

삼성은 2000년 한 해 동안 6조 원의 세금을 냈는데, 이는 우리나라 조세예산의 7.5%에 달하는 규모다. ‘삼성이 한국을 먹여살린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부채비율도 97년 말 366%에서 지난해 말엔 106%로 줄었다.

지난해 증시 침체로 삼성 상장사들의 시가총액은 1999년 64조2000억 원에서 37조6000억 원으로 급감했지만, 국내 전 상장사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4%에서 20.0%로 오히려 올라갔다. 다른 상장사에 비해 삼성 상장사 주가가 그만큼 덜 하락했다는 얘기다. 지난 5월 말 현재 삼성 주요 계열사의 외국인 지분율은 삼성전자 58%, 삼성SDI 44%, 삼성화재 40%, 제일기획이 60%에 달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높은 신뢰를 보여준다.

또한 삼성은 세계시장 점유율 26%를 차지하는 CDMA 휴대폰을 비롯해 D램, TFT-LCD(초박막 액정표시장치), 컴퓨터 모니터, 브라운관, 편향코일 등 13개 제품이 세계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 있다.

다른 재벌은 총수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쫓아다녀도 기업의 명운이 위태로운 지경인데, 총수가 있는 듯 없는 듯한 삼성은 이처럼 약진을 거듭하니 ‘삼성엔 뭔가가 있다’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준다. ‘조용한 총수’ 이회장은 바로 그 ‘뭔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처럼 비치면서 호의적인 신비감을 자아낸다. ‘눈에 보이는 실적’과 ‘눈에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기업과 오너 CEO의 이미지를 함께 상승시키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건희는 어떤 인물인가. 그가 지닌 ‘열쇠’의 비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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