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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특집|일본역사교과서 韓·日 논쟁

“나는 한국인의 어리광이 정말 답답하다!”

일본 ‘역사교과서모임’ 대표가 한국인에게 보내는 공개장

  • 니시오 칸지(西尾幹二) <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회장· 일본 전기통신대 교수 >

“나는 한국인의 어리광이 정말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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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은 수동적인 문화의 나라다. 서쪽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북쪽에서는 러시아가, 남쪽에서는 미국이 일본을 위협할 때 수동적인 일본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조선을 합병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미안하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 후 일본의 역사가들은 동경재판사관과 사회주의 환상사관에 젖은 계급주의 사관에서 일본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관을 물리치고 일본이 고유한 문화를 갖고 역사를 발전시켜온 민족이란 것을 가르치기 위해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들었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일본인 자신의 자기회복 문제다. 국가가 전쟁에 패함으로써 입은 상처는 깊다. 전후 50년간, 일본인은 세계를 두 진영으로 나눈 두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의 서로 다른 역사관을 애매모호하게 공존시켜왔다. 곧 미국·영국 등의 민주주의 체제는 항상 옳고 세계사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며 다음 두 가지 가설을 적당히 융합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은 영·미 민주주의가 일·독 파시즘을 이긴 정의와 승리의 전쟁이었다는 가설-이것을 ‘동경재판사관(東京裁判史觀)’이라 한다. 한편, 소련을 대표로 하는 공산주의 체제는 평화세력이며 미국을 대표로 하는 자본주의 진영은 전쟁세력이라는, 전후에 특히 지배적이 된 가설-이것을 사회주의 환상(幻想)사관이라 하자.

역사를 잃은 戰後 일본

지금도 일본인은 동경재판사관에는 승복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영·미의 민주주의가 반드시 세계사의 모델이라 할 정도로 훌륭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동아시아의 역사에도 나름대로 고유한 민주주의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일본은 독일과 같은 홀로코스트(유태인 학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전쟁은 유럽의 전쟁과는 기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한다.

사회주의 환상사관은 1945년부터 1975년 사이 창궐(猖獗)했는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80년대 들어 한꺼번에 퇴조하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가속화돼 소비에트연방은 최후를 맞았다.

일본인은 전후에 동경재판사관과 사회주의 환상사관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의 판이한 역사관을 억지로 합체시켰다. 오로지 머리 속으로 관념적인 역사지도를 그리며, 어떤 의미에서는 스스로 속여왔다. 신문이나 공영방송(NHK), 그리고 교과서가 그려온 역사상(歷史像)은 이 납득하기 어려운 두 가지 역사관의 절충체(折衷體)였다. 왜 그러한 일이 벌어졌는가?

한반도는 독일과 함께 분단국가가 되었으므로 일본의 이 어리석은 자기은폐극(自己隱蔽劇)을 잘 모를 것이다. 일본은 분단되지 않은 대신, 일본 사람들의 마음속에 38선이 그어졌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미·소의 대리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일본인은 내전의 유혈 참사를 회피하고 싶다는 소원을 거의 무의식적·본능적으로 끌어안게 되었다. 그러한 상태에서 전후(戰後) 세월을 보내왔다. 자민당과 사회당, 즉 보수와 좌익이 확고히 대치하며, 자민당에서는 단 한 사람의 탈당자도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회당에게도 최고 160석 이상의 의석 획득이 허용되지 않고 1955년부터 1993년까지 대립만 일삼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일본인은 미국의 역사관과 소련의 역사관이라는 양극단의 논리를 섞어 합한 후 둘로 나눠놓은 것과 같은 부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을 만들어내고, 이것으로 자기 나라 역사를 묘사함으로써 국내 평화를 유지하고 경제번영의 길을 개척하는데 성공하였다. 이것은 어떤 의미로는 일본인의 ‘지혜’였다. 그러나 지혜이자 교묘한 삶의 방식이었던 까닭에, 일본인은 그 대신 ‘자기 자신의 역사’를 잃어버린 것이다.

1990년 미소 초강대국간의 냉전이 끝났다. 사회주의 환상사관은 효력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동경재판사관이 유일하게 효력을 지닌 역사관으로서 살아 남았느냐 하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예컨대 히로시마(廣島)·나가사키(長崎)의 원폭 투하를 예로 들어보자. 1990년까지 세계는 핵무기를 전제로 힘의 균형을 잡고 국제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원폭투하가 미국의 전쟁범죄라고는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었다.

계급주의 사관을 거부한다

그러나 지금은 원폭 투하를 미국의 전쟁범죄라고 공공연히 말하게 되었다. 히로시마의 원폭 돔은 나치스의 아우슈비츠 가스실과 함께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러한 것은 미국이 뉘른베르크 재판의 피고석에 소환당해 세워진 것과 다름없다.

‘새로운 역사교과서’에는 1860년대 이후 미국이 태평양에서 획득한 영토, 즉 식민지를 표시하는 한 장의 지도가 게재돼 있다. 북쪽에서부터 알래스카, 알류산 열도(列島), 미드웨이 제도(諸島), 존스턴 섬, 하와이 제도(諸島), 바르미라 섬, 웨이크 섬, 미국령(領) 사모아, 괌 섬, 필리핀 등등이다. 일본이 근대국가로서 세계사에 등장한 바로 그 시기 미국은 일본열도의 남쪽 해양을 봉쇄하는 형태로 포위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미국은 이미 일본에 무언의 위협을 주고 있었다.

1904∼1905년 일로(日露)전쟁 때 미국은 일본의 협력자였다. 그러나 일로전쟁 직후 미국은 만주 진출의 기회를 노리며 16척의 전함으로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등, 일본을 가상적국으로 삼는 행동을 나타냈다. 나는 일본과 미국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 선이고 어느 쪽이 악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두 힘의 물리적인 충돌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전후 일본인은 앞서 말한 동경재판사관-미국의 승리는 정의이고, 일본은 부정의(不正義)한 전쟁을 저질렀다는 논리-에 따라 일방적으로 죄의식을 세뇌받았으므로 자기 처지를 주장할 수 없었다.

그런데다 역사교육이나 역사교과서의 세계에서는 사회주의 환상사관의 뿌리가 매우 깊어, 아직도 구(舊)공산주의 국가와 같은 사고방식에 깊이 주박(呪縛)당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용되어온 일본의 중학교 역사교과서(1996년도 검정) 일곱 권 가운데 여섯 권이 한국전쟁을 북한의 침략이라고 명기하지 않고 있다.

일곱 권 전부가 러시아 혁명을 높이 평가하며 공산주의의 미점(美點)을 예찬하고 있다. 그리고 스탈린의 범죄는 간신히 한두 줄 언급하지만 사회주의 체제를 악이 아니라 스탈린의 개인 범죄로 취급하고 있다. 스탈린과 히틀러의 범죄가 지닌 동질성을 직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모택동이나 폴 포트의 대량학살에 관해서나, 중국에 의한 티베트인의 대량 살육에 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사회주의 환상사관은 특히 고대사에서 특히 현저하다. 고대사회에서는 중앙집권, 황제나 천황에게 어떻게 권력을 집중시키느냐가 ‘공(公:publicity)’이었다. 그것은 일반 호족(豪族)들에게 위탁한 토지나 인민을 왕권이 몰수하고 국가가 어떻게 공평하게 재분배할 것이냐는 의미다. 중국 당(唐)나라에서는 균전제(均田制), 고대 일본에서는 반전제(班田制)라 불리는 ‘공지공민(公地公民)’의 이념이 그것이다.

우리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는 마르크스주의 사관과는 완전히 절연(絶緣)하였으므로 이 고대사에 관해 국민생활에서 ‘공정(公正)’의 전진(前進)을 의미하였다고 제대로 써놓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본의 역사교과서들은 “오로지 농민들은 비참했다”, “그래도 농민들은 노예와 다름없었다”며 일면만 강조하고 있다. 이는 “권력은 언제나 ‘악’이며, 민중은 언제나 ‘선’이다”라며 계급투쟁사관이다. 이러한 사관은 이제 시대에 뒤졌으며, 역사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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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오 칸지(西尾幹二) <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회장· 일본 전기통신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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