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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美 共和黨,강경파 대 온건파

  • 이흥한 < 미 KISON 연구원 >

美 共和黨,강경파 대 온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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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임스 제퍼즈 의원의 공화당 탈당은 미국 정치이념 변화의 속사정을 드러냈다는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인 한 사람의 정치쿠데타이기 전에 공화당 온건중도파가 마침내 자기 목소리를 낸 것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제퍼즈 미 상원의원이 공화당을 탈당한 지 12일째 되던 지난 6월5일, 존 매케인 상원의원 부부는 부시 대통령의 저녁식사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닭고기 스테이크를 대접받았다. 부시 대통령이 매케인 의원과 단 둘이 만난 것은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에 들어간 후 처음이었다.

이 소식을 알린 6월8일자 ‘워싱턴 포스트’ 2면의 머릿기사 제목은 ‘온건파(moderates), 느닷없이 부시의 주목을 받다’였다. 온건파 제퍼즈 의원 탈당 후 부시 대통령이 당내 온건파 의원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부시 대통령이 매케인 의원 부부를 백악관에 초청한 것은, 매케인 의원이 상원 다수당이 된 민주당의 상원 리더 톰 대슐 의원을 자신의 애리조나 농장에 초청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의 일이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맞섰던 부시와 매케인의 이 정치 게임은 제임스 제퍼즈 의원의 공화당 탈당과 민주당의 상원 점령이 아니었다면 물론 보기 힘들었을 진풍경이었다. 매케인 의원은 이날 백악관에서 밥만 얻어먹고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부시 대통령에게 환자 기본권의 입법화를 추진하겠다며 온건파의 목소리를 잊지 않고 들려준 것이다.

이 환자 기본권은 부시가 시답지 않게 여기던 것이었고, 매케인은 내심 벼르던 정책안이었다. 며칠 전 매케인을 만났던 민주당 상원의 사령탑 톰 대슐도 매케인과 같은 주장을 펴고 있었다.

매케인은 대통령 선거 이후 찬밥 신세였다. 백악관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백악관 참모가 매케인과 접촉한 것은 백악관이 상무부 관리를 임명하면서 상원 상무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매케인에게 협조를 부탁한 것이 전부였다.

부시-매케인이 만난 다음날, 백악관 참모들은 매케인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환자 기본권 법안에 대해 상의하자고 했고, 또 그 다음날에는 백악관 비서실 차장과 보건 담당 참모가 매케인 사무실로 찾아갔다. 온건파 매케인의 목소리가 먹혀든 것이었다. 부시가 당내 온건파와 민주당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겠다는 정책 변환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부시는 이틀 후 로드 아일랜드 주 출신 공화당 상원의원으로 역시 당내 온건파이며, 매케인처럼 찬밥 신세였던 링컨 초피와도 만났다. 제퍼즈 의원의 공화당 탈당이 불러온 변화임은 물론이다. 머리 꼿꼿이 세우고 팔다리 쭉쭉 뻗으며 기세 등등하던 부시 대통령의 행진곡이 순간에 사라지면서 그만 부시 대통령을 그 자리에 주저앉힌 것이다.

제퍼즈 의원의 공화당 탈당은 혁명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은 정치판의 대변혁이었다. 일단, 제퍼즈 의원 한 사람이 움직임으로써 50 대 50으로 의석 수가 양분되어 있던 상원이 1석 차이로 민주당 손에 넘어갔다. 공화당이 백악관과 상하 양원을 장악했던 1954년 이후 거의 반세기 만에 백악관과 상하 양원을 다시 한 번 장악했던 공화당은 그야말로 둘도 없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더구나 선거 결과로 판세가 뒤집힌 것이 아니라, 1994년 이후 줄곧 꽉 잡아왔던 상원을 의회 임기 중에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단 한 석 차이로 민주당에 지휘봉을 넘겼으니 공화당으로서는 속이 쓰려도 이만저만 쓰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이고 시위 떠난 화살이다. 공화당 지도부가 멀쩡한 두 눈을 감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정치 감각이 마비되어 있었던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이런 일이 한순간에 벌어질 수 있었는가? 지난 대통령 선거 개표 때 그런 위기 상황에서도 악다구니 한번 쓰지 않고 차분하게 위기를 넘겼을 때 알아보긴 했지만, 이런 대격변을 겪으면서도 역시 상원 지휘봉을 비굴하지 않게 넘겨주고 점잖게 받는 정치 게임의 막후는 어떠했는가?

제임스 제퍼즈라는 의원은 또 누구기에 이런 절묘한 상황을 만들어냈으며, 과연 제퍼즈 의원의 탈당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궁금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화당 내 강경파가 도대체 온건파를 어떻게 두들겨 팼기에 이런 꼴을 당했으며, 공화당 내 온건파라는 딱지는 어떻게 붙게 된 것인가?

미국 의회정치의 묘미는 바로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는 데 있으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또한 들어볼 만하기에 묘미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미국답게 만든 미국의 역사와 문화와 건강한 지역색이 정치와 겉도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고유의 색깔로 묻어나기 때문이다.

뉴잉글랜드 유권자의 변화

제퍼즈라는 사람을 알려면 그의 출신지인 뉴잉글랜드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미국 동북부 끄트머리의 메인, 버몬트, 뉴햄프셔, 로드 아일랜드,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6개주를 일컫는 뉴잉글랜드야말로 한때 공화당의 굳건한 ‘섬’이라고까지 불리던 곳이다.

공화당의 역사적 요람이라 불리던 뉴잉글랜드의 유권자들은 이제는 자신들을 코끼리 당(공화당)이라기보다는 무소속이나 민주당으로 여긴다. 최근의 공화당을 지배하고 있는 남부나 서부 출신 공화당 사람들과는 색채가 다르다는 것이고, 사실이 그렇다. “남부 공화당 사람들의 보수 이념으로 우리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말이다.

제퍼즈 의원이 공화당을 탈당했을 때 그의 지역구인 버몬트의 유권자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공화당 내 강경 우파인 트렌트 로트 전 상원 원내총무와, 98세의 노구로 보좌진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에서도 끝까지 의원직을 유지하는 스트롬 서몬드 의원이 좌지우지하는 현대 공화당(Modern Republican Party)은 더 이상 머물러 있을 곳이 못 된다는 것이었다. 공화당 내 힘의 중심이 중서부와 남부로 옮겨가면서 동북부 뉴잉글랜드 출신 공화당 의원들의 기가 꺾인 것은 사실이다. 청교도 정신으로 무장하고 미국의 새 역사를 수놓던 뉴잉글랜드 시대는 지난 것이다.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조상들은 그 자손들에게 도덕심을 깊숙이 불어넣었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상호 의무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으며, 극기와 자제를 가르쳤다. 미국 개혁의 역사를 이끌어간 곳도 뉴잉글랜드였다. 여성의 참정권에서부터 노예 반대 운동에 이르기까지 뉴잉글랜드는 미국의 맨 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목소리만 앞세우지 않았다. 때가 되면 움직였고 소신껏 행동했다.

제퍼즈 의원이 부시 대통령의 미사일 방어 계획을 반대한 것도 이런 뉴잉글랜드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뉴잉글랜드 출신의 공화당 의원들은 미 공화당의 스페인 전쟁에 반기를 들고, 핵 실험 폐지 조약을 지지한 전통이 있었던 것이다. 소속 공화당의 당론일지라도 자신들의 믿음과 거리가 있다면 그들은 청교도 선조들의 가르침을 따랐다.

제퍼즈 의원이 밝힌 탈당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공화당이 공교육에 대해 뚜렷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642년 매사추세츠 베이 식민지 당시 모든 아이들은 읽기를 배워야 한다는 법을 처음 제정했고,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하버드 대학이 있는 뉴잉글랜드 출신다운 생각이었다.

뉴잉글랜드에서도 특히 제퍼즈 의원의 출신주인 버몬트와 메인은 뉴잉글랜드의 프런티어라고 불리는 곳이다. 버몬트와 메인 주 사람들은 스스로 “우리는 뉴잉글랜드의 오스트레일리아”라고 말할 정도다. 1936년 대통령 선거에서 플랭클린 루스벨트 대신 알프 랜돈 후보에게 표를 던진 곳은 전미국을 통틀어 버몬트와 메인 두 주뿐이었다. 그래도 기 한번 꺾이지 않고 버몬트 주의 벌링턴 신문은 1면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온나라가 괴상한 신을 좇아가고 있으나 버몬트는 굳건히 자기 땅을 지키다.’

물론 일부 공화당 사람들이 버몬트와 메인을 특별히 취급하는 것에 반대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버몬트 주 의원의 절반 이상이 타 지역 출신인데다가, 자유로운 정치 분위기에 밀려 뉴잉글랜드의 완고했던 정치 분위기는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버몬트는 여전히 제퍼즈라는 인물을 지지하고 있으며, 제퍼즈 의원도 버몬트 유권자들의 뜻을 거역하지 않았다.

사사건건 부시와 충돌한 제퍼즈

이런 배경을 가진 제퍼즈 의원은 부시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사사건건 부시와 부닥쳤고, 공화당 강경 우파의 선봉에 섰던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트렌트 로트 전 상원 원내총무 등 의회 지도부와 백악관 참모들이 여기저기 눈치 안 보고 강경 보수의 기치를 드높일 때마다 이들에게 제동을 걸었다. 공화당의 보브 돌 의원이 상원 원내총무를 할 때만 해도 제퍼즈 의원 등 온건파가 당 지도부와 얼굴을 붉히는 일은 흔치 않았다.

어쨌든 교육 환경 보건 문제 등 주요한 사회 현안에서 부시 정권의 강한 보수 색채와 제퍼즈의 정치신념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1994년 클린턴 대통령이 보건 제도안을 내놓았을 때 공화당에서는 유일하게 클린턴을 지지한 사람이 제퍼즈였다. 올해 초 부시가 1조6000억 달러에 달하는 감세안을 내놓았을 때도 제퍼즈는 눈치를 보기는커녕 대놓고 반대해 부시의 부아를 돋웠고, 한술 더 떠 연방 교육비를 증액하라고 대들기까지 했다. 물론 공화당 내 중도파, 즉 온건파 의원들의 뒷심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는 취지의 교육비 증액 요구를 부시가 묵살하면서, 교육 문제에 관한 한 공화당 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이자 존경받는 고참 의원인 제퍼즈는 졸지에 조롱감이 되고 말았다. 환경 문제도 마찬가지. 환경이야말로 제퍼즈 의원이 성심을 다해 매달렸던 문제였고 버몬트 주의 주요 쟁점도 환경이었으나, 환경 분야에서도 극우적인 환경 정책의 선봉장인 체니 부통령이라는 높은 벽에 부딪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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