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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과 권력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주먹과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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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국 주요도시 주먹실세 계보
  • ● 주먹, 검사, 정치인 커넥션
  • ● 호남주먹의 뿌리와 가지
  • ● 전화 한 통으로 권력 움직이는 ‘귀족주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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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포 주먹의 허망한 죽음

주먹과 권력의 관계는 흔히 말하듯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다. 주먹은 권력의 보호가 필요하고 권력은 주먹을 이용한다. ‘왕년의 주먹’ B씨는 “오늘날 주먹계에서 힘이라는 것은 곧 권력 실세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말한다.

“주먹과 권력의 관계는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주먹은 권력에 투자하고 권력은 주먹을 이용한다. 그 인맥이 여간 탄탄한 것이 아니다. 끊으려 해야 끊을 수가 없다.”

‘이용호 게이트’가 ‘호남 커넥션’ 시비로 발전한 것은 야당 탓이 아니다. 야당이 정치공세 차원에서 사태를 키운 측면도 있지만, 근원은 주먹과 권력의 결합에 있다. 이 커넥션의 기본 원리는 공생이다. 한쪽이 정치자금을 제공하거나 선거에 도움을 주면, 한쪽은 특혜나 이권을 준다.

오늘날 기업형으로 바뀐 주먹은 더 많은 이권을 챙기기 위해 권력에 다가간다. 권력은 양지의 세계에서 처리하기 껄끄러운 일을 주먹에게 맡긴다. ‘이용호 게이트’에서 주먹 출신 사업가인 여운환씨가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하고 ‘정현준 게이트’에서 오기준이라는 과거 호남주먹의 대부가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주먹과 권력의 결합이 빚어낸 필연적 현상이다.

‘이용호 게이트’ 발생 이후 주먹세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과연 대한민국 주먹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주먹계 실세는 누구고 주먹계 배후세력은 누구인가. 현재 경찰에서 파악하는 전국 조직폭력배는 총 199개파에 4153명이다. 검찰은 전국 28개 지청을 통해 주요 조직폭력배 162개파 668명을 관리하고 있다(2000년 대검 강력부 자료).

하지만 이는 수사기관이 편의상 분류해놓은 자료일 뿐 실제 사정은 많이 다르다. 이른바 ‘실세’들은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는 데다 대부분 사업가이기 때문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여운환씨가 경찰 관리대상에서 빠져 있는 것도 이런 사정에서다. 주먹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경찰·검찰이 파악하고 있는 주먹들은 맨날 빵(감방)에 드나드는 ‘가지’일 뿐”이라고 말했다.

주먹세계의 실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호남주먹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현 정부 들어 호남주먹이 드세졌다는, 이른바 호남주먹 득세설은 한편으로는 맞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맞지 않는다. 일부 호남주먹이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권력층과의 친분을 과시한다는 점에서는 맞다. 하지만 호남주먹이 예나 지금이나 주먹계 강자라는 점에서는 맞지 않는 얘기다.

주먹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지역주먹과 전국구주먹이다. 지역주먹은 특정 지역에서만 힘을 쓴다. 반면 전국구주먹은 말 그대로 전국 어디서나 실력 또는 이름값을 인정받는 주먹이다. 주먹세계에서 호남주먹이 돋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전국구주먹의 상당수가 호남주먹에서 배출된 점이다.

호남주먹이 위력을 떨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부와 권력이 집중된 서울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서울로 진출한 호남주먹은 1970년대 후반 이른바 3대 패밀리 시대를 거치며 서울에서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호남주먹이 서울로 몰려든 현상에 대해서는 ‘못 먹고 못 살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현재 서울에서 활동하는 호남주먹 중 일부는 부를 움켜쥐었다. 겉보기에는 다들 사업가다. 실제로 직접 주먹을 쓰는 일도 별로 없다. 정확히 표현하면 주먹이라기보다는 ‘주먹 사업가’다. 하지만 여운환씨의 경우에서 보듯 이들이야말로 주먹계를 움직이는 실세거나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다.

동아파와 3대 패밀리의 후예들

현재 서울 주먹계의 실세 그룹은 40대가 주축이다. 3대 패밀리(양은이파, 서방파, OB파) 시절 행동대장급으로 활약했던 이들은 현재 독자 계파를 꾸리거나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조직은 동아파. 동아파는 원래 광주에서 대호파와 더불어 1960년대 광주 주먹계를 양분했던 조직이다. 충장로파로도 불리는데 1969년 두목 전희O씨가 구속되면서 대호파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

서울에서 ‘최고 잘 나가는 주먹’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문아무개씨. 광주 송정리 출신인 그는 1990년대 초 해외도박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적이 있다. 그후 건설업과 사채업에서 큰돈을 벌었는데 최근 벤처업계에도 진출했다. 재산이 300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그를 동아파의 실질적인 두목으로 보는데, 그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있다. 한번에 200명 가량의 부하를 동원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는가 하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으며 사업에 전념하면서 주먹계를 떠나기 위해 노력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는 정부 고위직을 지낸 민주당 P의원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북지역에 위치한 대형 상가의 고위간부인 김아무개씨는 동아파 실세로 통한다. 문씨 직계인 그는 1990년대 초 ‘범죄와의 전쟁’ 당시 구속돼 실형을 살았다. 상가 분양 등으로 수백억원대의 재산가가 됐다.

역시 P의원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계보상’ 동아파 두목인 또다른 문아무개씨(50대·건물입대업)는 얼마 전 검찰에 구속됐다.

주먹계에 따르면 3대 패밀리 조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두목들이 오랜 수감생활 또는 해외도피로 조직을 관리하지 못한데다 중간 간부들이 독자적인 길을 걷기 때문이다. 3대 패밀리의 위력이 통하는 곳은 교도소뿐이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교도소에서는 아직도 조양은이나 김태촌이라는 이름이 통한다고 한다.

서방파 두목 김태촌씨는 10여 년째 옥살이를 하고 있다. 출소예정일은 2004년 10월.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씨는 신학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1988년 양은이파 계열인 순천시민파에 의해 불구가 되도록 난자 당한 OB파 두목 이동재씨는 미국 뉴욕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긴 해도 3대 패밀리의 자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양은이파 조직원이었던 한아무개씨는 강남 모 호텔의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며 수백억원대의 돈을 벌었다. 유명 여가수 U씨의 매니저를 맡기도 했다. 그밖에 서울에서 활동하는 3대 패밀리의 후예 중 주목할 만한 사람으로는 강아무개, 조아무개, 나아무개, 박아무개씨 등이 있다. 이들 또한 모두 사업가로 변신했다.

양은이파 계열 조직원이었던 강씨는 1980년대 후반 라이벌 조직의 보스를 난자해 악명을 떨쳤다. 모 정당의 대표를 역임한 K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OB파 행동대장으로서 칼잡이로 이름을 날렸던 조아무개씨. 1980년대 후반 서방파 중간보스 이아무개씨를 기습하는 등 서방파와 OB파의 ‘전쟁’에 앞장섰던 그도 지금은 보스 대접을 받고 있다.

서방파 막내였던 나씨는 강남에서 큰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 서방파 조직원이었던 박씨는 고향이 목포인데, 지난해 정권 실세로 통하는 P씨가 결혼식 주례를 서 화제가 됐다. P씨는 과거 야당 시절 주먹들의 경조사를 잘 챙기기로 유명했다.

한편 검찰은 주먹계의 시각과는 달리 3대 패밀리 조직이 명맥을 이어가는 것으로 보고 뿌리를 뽑을 태세다. 검찰은 올초 3대 패밀리의 부두목급 3명을 구속했다. 이택O(서방파), 오상O(양은이파), 김인O씨(OB파)가 그들이다. 이중 이씨는 집행유예로 출소, 인도네시아로 출국했다. 오씨는 양은이파 직계가 아니라 방계인 순천시민파 두목이었다. 김씨는 과거 명실상부한 OB파의 2인자로서 이동재씨의 오른팔 노릇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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