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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과 권력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주먹과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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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촌씨와 친구 사이로 서방파의 중간보스였던 이아무개씨. 일찍이 동남아로 진출해 카지노사업에 손을 댄 그는 1990년 해외도박사건에 연루돼 외환관리법위반으로 기소중지됐다. 정권이 교체된 직후 귀국, 현재 서울에서 대규모 위락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동아파 두목 문아무개씨의 동향 선배다.

호남주먹은 그 뿌리가 매우 깊고 단단하다. 표면적으로는 위에 언급한 40대 주먹들이 서울을 장악하고 있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선배주먹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비결은 바로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과 오랜 세월에 걸쳐 다져온 인간관계다. 호남주먹은 크게 전남 주먹과 전북 주먹으로 구분되는데, 대대로 전남 주먹이 우위를 보였다. 전남 주먹의 양대 본산지는 목포와 광주다. 전통적으로 광주보다는 목포 쪽이 드세고 걸출한 주먹도 많이 배출됐다.

호남주먹이 서울로 진출한 시기는 1960년대 중반이다. 먼저 자리를 다진 쪽은 목포 주먹. 박종O, 오종O씨 등이 상경 1세대 주먹이다.

번개라는 별명으로 한 시절을 주름잡았던 박씨의 주 활동무대는 북창동 일대였다. 계보상 김태촌씨의 대선배로 1989년 김씨가 조직한 신우회의 고문(검찰 자료에는 회장)을 맡는 등 호남주먹계의 대부로 군림해왔다.

그는 1988년 국내 최대 폭력조직의 하나인 부산 칠성파 두목 이강O씨, 수원 주먹계 대부 최창O씨 등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야쿠자 조직과 우의를 다지는 행사를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모 스포츠협회의 고위직을 맡고 있다.



무교동에 자리잡았던 오씨는 조양은씨의 직계 선배다. 1976년 3월 무교동 엠파이어호텔 후문 주차장에서 김태촌씨 부하들의 칼에 맞아 불구가 된 이후 사실상 주먹계에서 은퇴했다. 조양은씨와 김태촌씨 간에 벌어진 ‘3년 전쟁’의 계기가 바로 오씨 피습사건이다.

광주 출신 주먹의 대부는 박영O씨다. 서열상 박종O씨 바로 아래로 원래 광주 동아파 소속이다. 전 국회의원 신아무개씨의 사위이기도 한 그는 후배 김태촌씨를 도와 신우회 자문을 맡았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때 구속됐을 당시 언론은 그를 ‘국내 최대 폭력조직 서방파의 전신인 동아파의 대부’라고 소개했다.

정치권 인사들과 교분이 두터운 그는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사건’에 관련됐다. 당시 신민당 비주류측의 요청을 받아 김태촌씨를 비롯한 직계 ‘동생’들을 이끌고 전당대회에 참석해 주류측에 폭력을 행사한 혐의다. 김태촌씨 석방운동을 펼치고 목포파 두목 강아무개씨의 배후 노릇을 했다는 소문도 있다. 주먹계에서는 박종O, 박영O 두 박씨의 영향력이 지금도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방파는 광주시 서방동이라는 동네 이름을 따 만든 조직이다. 뒷날 김태촌씨가 범서방파로 발전시킨 이 조직의 최초 두목은 건설업자 김성O다. 김씨의 뒤를 이어 서방파를 이끈 사람이 바로 ‘정현준 게이트’로 널리 알려진 오기준씨다. 목포 출신인 오씨는 김태촌씨의 직계 선배로 1977년 구속된 적이 있다.

당대 최고의 호남주먹들

신우회 회장(검찰 자료에는 부회장)을 맡을 정도로 김태촌씨와는 무척 가까운 사이. 김씨를 서울로 불러들인 사람도 오씨다. 김씨는 평소 그를 ‘존경하는 선배’로 깍듯이 대접했다.

박종O, 박영O씨와 마찬가지로 오씨 또한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정치권에 발이 넓어 나름대로 주먹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준 게이트’가 터진 직후 미국으로 도피한 후 귀국하지 않고 있는데, 이경자씨에게 고위층을 연결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 LA에서 룸살롱을 개업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고위층 인척인 차아무개씨와 밀접한 관계다.

오씨와 같은 시기 광주에서 활동한 주먹으로 김제O씨가 있다. 구OB파 두목인 김씨는 한때 광주 주먹계를 통일했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동생’들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탓이다. 그후 서울로 올라와 술집을 운영했다.

비슷한 시기에 상경한 광주 출신 주먹으로 정아무개, 추아무개씨 등이 있다. 정씨는 무도인(태권도) 출신이다. 광주에서 칼을 맞고 서울로 올라온 추씨는 서울역 부근 P다방을 근거지로 삼았다. 김대중 대통령과 오랜 세월 민주화투쟁을 함께 한 K 전의원과 친분이 깊다. 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목포 출신 주먹으로는 아마추어복싱 라이트급 챔피언을 지낸 이아무개씨가 있다.

그밖에 특정 조직에 몸담지 않은 이 지역 출신 주먹으로 송아무개, 조아무개씨 등이 있다. 송씨는 오종O씨와 더불어 무교동에 터를 잡았는데, 그의 도움으로 상당수 호남주먹이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는 독자적인 길을 걸었는데 몇 년 전 고혈압으로 사망했다.

주먹계의 한 관계자는 “송씨는 무척 야물었다(실력이 좋은 주먹을 가리켜 ‘야물다’고 한다)”며 “살아 있었다면 주먹계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씨도 송씨처럼 독자적으로 활동한 주먹이다. ‘패밀리’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주먹 실력을 뽐냈다고 한다.

서울로 진출한 호남주먹 중에는 광주·목포 출신 외에도 뛰어난 주먹이 많다. 대표적인 이가 벌교 출신의 문아무개씨. 원로주먹 유지광씨와 동 세대인 그는 당대 최고 주먹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경기도의 한 소도시에서 건물임대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양 출신의 ‘닷소(별명)’는 박종O씨의 윗세대로 호남주먹 가운데 가장 먼저 명동에 진출한 사람이다. 신도호텔이 근거지였는데 유명 가수 조아무개씨의 매니저로도 활약했다.

보성 출신 주먹으로는 이육O씨가 가장 유명하다. 1989년 부산의 100억원대 매립지 이권을 갈취한 혐의로 구속될 당시 언론에 ‘3대 패밀리의 대부’로 소개됐다. OB파 두목 이동재씨와 가까운 친척이다. 이승O씨가 조직한 호청련(호국청년연합회)에서 고위간부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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