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호

‘주먹’은 가고 ‘돈’이 말한다.

‘야인시대’ 건달세계의 달라진 풍속도

  • 글: 조성식 mairso2@donga.com

    입력2002-11-04 1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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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먹’은 가고 ‘돈’이 말한다.

    10월10일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 이정재 추모행사에 참석한 원로주먹들.

    10 월10일 오전 11시. 경기도 이천 설봉산 기슭에 있는 한 묘지에 100여 명의 사내가 모여들었다. 이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50∼60대가 주축을 이룬 가운데 지팡이를 짚은 은발의 70대 노인이 있는가 하면 한창 기운 좋을 나이의 20∼30대 청년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서열’ 순으로 무덤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 술 한 잔씩을 들었다. 이들에게 절을 받은 고인은 5·16 직후 대표적 정치깡패로 낙인찍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왕년의 주먹 이정재. 이 날 행사는 이정재의 사망 41주기 추도식이었다. 일반인들에게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이정재의 추도식에 전례 없이 주먹들이 잔뜩 참석한 데는 최근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는 TV 드라마 ‘야인시대’의 영향도 있었다.

    이정재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여기는 이들은 이 날 모임을 계기로 이정재 명예회복 운동에 나설 예정이다. 아울러 당분간 유보하긴 했지만, 주먹계에서 최고의 ‘악법’으로 인식되고 있는 ‘범죄단체구성에 관한 법률’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신청을 낼 계획까지 갖고 있다.

    이날 모임을 주도한 이는 ‘야인시대’의 주인공 김두한의 후계자인 조일환씨(65). 충남 온양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조씨는 1970년대 전국구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지금도 주먹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주먹계에서 ‘우국지사’로도 불리는 조씨는 1974년 육영수 여사 피살사건이 일어나자 일본에 항의하는 뜻으로 부하 110명을 이끌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단지(斷指)의식을 감행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해 8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 항거해 독립문 앞에서 단지의식을 치른 25명의 ‘구국결사대’(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폭력조직 송악파의 일원이다)도 조씨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정재 추도식엔 조씨말고도 몇몇 유명한 주먹이 참석했다. 조씨의 선배로, ‘오따’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정종원씨(70), ‘낙화유수’ 김태련씨(68) 등이 그들이다. 두 사람 모두 한 시절을 풍미한 원로 주먹으로 주먹계에서 대선배로 대접받고 있다.

    그밖에 이천 주먹계의 대부인 김상○씨도 눈길을 끌었다. 김씨는 이정재에 버금가는 정치주먹으로 일본 야쿠자와도 친분이 깊었던 유지광의 후계자. 이 지역에서 300명의 건달을 동원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진 실력자다.

    “전쟁 벌이면 함께 죽는다”

    조일환씨를 비롯한 이들 ‘왕년의 주먹’들은 현 주먹계 세태를 개탄한다. 한마디로 의리는 사라지고 돈만 남았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실력 좋은’ 주먹이라도 돈이 없으면 후배 주먹들한테 대접을 받지 못한다. 의리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시금석으로 여기던 건달세계의 질서와 풍류는 사라진 지 오래고 요즘의 젊은 주먹들은 돈의 향방에 따라 이합집산한다.

    요즘 주먹들을 만나 주먹계 실태에 대해 물을 때 공통적으로 나오는 얘기가 바로 “돈 있으면 보스”라는 것이다. 수사기관 시각도 일치한다. 검찰에서 손꼽히는 조폭 전문가인 대검 강력과장 김홍일 검사는 “돈 되는 곳, 특히 쉽게 돈 버는 곳에 깡패가 있다는 사실은 조폭수사의 기본”이라며 “자금을 동원하는 힘을 잃으면 두목으로서 입지를 상실한다”고 진단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조직간 다툼이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한국 조직폭력 실태에 관한 책을 낼 정도로 조폭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안흥진 경위(서울 송파경찰서)는 “‘범죄와의 전쟁’ 이후 예전과 달리 조직끼리 싸우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경제성장에 따라 조폭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영역이 넓어져 예전처럼 목숨 걸고 싸울 일이 없다. 혹시 이권 다툼이 생겨도 몇 사람만 보내 해결하지 조직 전체가 동원되는 싸움은 피한다”고 분석했다. 조일환씨는 “요즘 조직들의 평균 조직원 수는 20∼30명이다. 더 많아봐야 수사기관 눈에 띌 뿐 도움이 안 된다”며 “조직간 전쟁이 없는 것은 싸우면 함께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찰 통계자료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노태우 정부가 전개한 ‘범죄와의 전쟁’으로 구속된 조폭은 274개파 1421명에 이른다. 웬만한 조직의 두목이나 주요 간부는 이때 다 구속됐다. 이들이 장기간 감옥에 갇혀 있다보니 상당수 조직이 와해되거나 내부 갈등으로 분열됐다.

    5년형 안팎의 비교적 짧은 옥살이를 하고 출소한 이들도 수사기관의 지속적이고도 강력한 감시망에 걸려 재차 구속되는 일이 흔하다. ‘한번 주먹은 영원한 주먹’이고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신조를 갖고 있는 강력부 검사들은 출소한 주먹들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무렵 다시 잡아넣는 데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때론 실적을 위해 무리하게 구속하기도 한다.

    주먹계 주변을 살펴보면 검거될 때는 온갖 혐의로 요란했다가 법정에서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 가벼운 형에 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먹계에서는 ‘표적수사’라며, 또는 “주먹에게도 인권이 있다”며 반발하지만,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안경위 관찰에 따르면 서울 주먹계는 슬림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조폭을 전담하는 수사기관이 강력하게 감시하는 데다 대부분 합법적인 사업가로 변신한 까닭에 과거처럼 대규모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 불필요할 뿐 아니라 조직들이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공생의 길을 찾기 때문이다.

    “조직원 수가 50명 안팎인 군소조직이 난립해 있다. 예전엔 한군데에 모여 있었지만 지금은 분산 배치돼 있다. 예컨대 호텔 나이트클럽에 6명, 대형상가에 7명, 사채시장에 5명, 슬롯머신업소에 6명… 하는 식이다. 하지만 통신수단의 발달로 일이 터질 경우 집합하는 시간은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반면 지방 조직들은 여전히 몰려다니며 세를 과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역 유지들과 결탁한 토착주먹들은 서울보다 운신의 폭이 넓어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한다. 웬만한 사건은 피해자가 신고도 잘 안 하고 수사기관에서도 적당히 눈감아준다는 것이다. 안경위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조직은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 데 비해 지방 조직은 눈에 띌 정도로 활성화돼 있고, 대형화 통합화하는 추세다.

    전설적인 주먹들이 갖던 카리스마의 부재, 군소조직과 신흥조직의 난립, 전통과 계보의 단절. 현 주먹계의 특징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의리와 충성심, ‘정의감’, 낭만이 흐르던 ‘야인시대’는 전설일 뿐이다. 신흥조직의 젊은 주먹들은 전통과 계보에 얽매이지 않으며 탄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바야흐로 ‘너도나도 보스’인 시대다. 김홍일 검사는 “조직 규모가 작아지면서 과거와 달리 특정 1인의 장악력이 약화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10월8일 오전 서울 시내 P호텔 커피숍. ‘현역’ 주먹 5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인천 등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3명은 보스급, 2명은 그 아우들이다. 명함을 보니 다들 번듯한 사업체를 갖고 있다. 네트워크(다단계판매) 사업체, 생활용품 제조업체, 수산물 가공업체 등의 대표이사나 고문을 맡고 있다. 커피숍에서 식당으로 옮겨가며 2시간 이상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검은색 양복에 짧은 머리를 한 체격 좋은 청년 대여섯 명이 주위를 경계했다.

    ‘잘 나가는’ 호남주먹인 B씨(50대 초반). 전북 출신인 그는 약 200명의 동생을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 이 정도 규모면 상당히 큰 조직이다. 과거 양은이파 계열이던 C씨(40대 중반)와 인천 출신인 K씨(50대 초반)는 인천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지난해 이용호 게이트 수사과정에 문제가 된 호남주먹과 현 정권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현 정부에서 오히려 피해를 입고 있다. 호남주먹이라고 덕본 게 없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 총재로 있을 때 경호를 두 차례 한 적 있다. 차라리 그때가 좋았다. 지금처럼 압박 당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주먹계는 불가분 관계다. 같은 지역 사람끼리 인사를 나눌 수도 있고 밥을 먹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것을 가지고 유착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지나치다. 이권을 줬다면 모르지만, 우리가 알기로 그런 것은 별로 없다.”

    97년 대선 때 DJ 경호

    B씨는 주먹들의 선거개입과 관련해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97년 대선 유세 때 DJ 경호를 맡았는데 부산 같은 데 가서는 많이 맞기도 했다. 우리 같은 사람도 유세 때는 어쩔 수 없이 맞는 경우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선거에 관여하는 주먹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대선에서는 정치권에서 요청한다 하더라도 응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들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 서울에서 호남주먹 대표주자로 부각됐던 양은이파 서방파 ○B파 등 3대 패밀리는 명성만 남아 있지 실체가 없다. 조양은 김태촌 이동재씨 등 두목들이 오랜 수감생활이나 해외도피로 ‘현장’을 떠나 있어 조직관리가 되지 않은 데다 핵심 조직원들이 두목에게 등을 돌리거나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조직원은 뿔뿔이 흩어졌다. 사업가로 변신한 일부 조직원은 서울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뿌리가 잘린 상태라 예전처럼 힘을 쓰지 못한다.

    한때 ‘양은이 식구’였던 C씨는 3대 패밀리의 위력이 언론과 수사기관의 과대 포장으로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3대 패밀리가 한때 셌던 건 맞다. 대전 광주 등 전국적으로 3대 패밀리의 명성이 통한 적이 있었다”며 한때 몸담았던 조직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C씨와 B씨에 따르면 검찰 시각과는 달리 현재 3대 패밀리는 철저히 붕괴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김태촌이 다시 나와도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부하들이 다 떠났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 전쟁을 많이 했는데, 돌이켜 보면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선배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남은 게 없기 때문이다. 이택○(서방파 부두목. 지난해 검찰에 구속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남)도 조직이 없다. 김태촌이나 조양은을 위해 10년 또는 20년 동안 옥살이해봐야 아무런 보상이 없다는 걸 알고 나서 다들 등을 돌렸다. 김태촌 부하 중엔 돈을 번 사람이 꽤 있는데도 옥중에 있는 김태촌을 도와주지 않는다. 조양은도 출소 후 동생들을 챙겨주지 않아 인심을 잃고 욕을 먹었다. 서울에서는 3대 패밀리가 약화된 후 동아파가 컸다.”

    동아파는 광주 동아파의 줄기로 수사기관에 따르면 요즘 서울에서 가장 돋보이는 조직이다. K씨는 “지금은 건달들이 1970∼80년대처럼 살지 않는다. 돈이 있어야 동생들한테 대우받는다”며 “싸움은 동네 건달들이나 하지 생각 있는 주먹들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3대 패밀리 두목들은 질곡의 삶을 살고 있다. 1980년 초 범죄단체구성 혐의로 신군부에 체포돼 15년 동안 옥살이했던 조씨는 출소한 지 1년 만인 1996년 서울지검 강력부에 의해 재구속돼 3년형을 살았다. 그 후 순복음신학대학에 다니며 신앙인이 되는 듯하더니 지난해 12월 해외도박 및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또 다시 구속됐다. 최근 출소한 후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꺼리고 있다.

    김태촌씨는 1986년 인천 뉴송도호텔 사장 피습사건으로 구속돼 징역5년 보호감호 10년형을 받았다. 1989년 폐암판정을 받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가 1990년 ‘범죄와의 전쟁’ 때 ‘신우회’라는 범죄단체 조직 혐의로 재구속, 꼬박 12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출소 예정일은 2004년 10월이지만, 보호감호형이 추가될 것으로 보여 언제 햇볕을 볼 수 있을지 아득한 상태다.

    오랫동안 청송교도소에 수감됐던 김씨는 지난해 폐결핵 진단을 받아 여건이 좋은 진주교도소로 이감된 후 행장급수가 1급 모범수(면회가 수시로 허용되고 가석방에 유리함)로 상향조정되는 등 한때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언론에 보도된 ‘호화 수감생활’이 문제가 돼 청송교도소로 되돌아간 후 절망에 빠져 있다.

    3대 패밀리 중 서울에 가장 늦게 진출한 ○B파는 한동안 양은이파 서방파에 눌렸으나 두 파의 두목들이 구속된 후 한때 호남주먹계 패자로 군림했다. ○B파가 몰락한 것은 두목 이동재씨가 1988년 9월 양은이파 계열인 순천시민파 조직원들로부터 칼과 도끼로 난자 당한 후. 거의 불구가 된 이씨는 미국으로 떠났다.

    주먹계 주변에서는 최근 이씨가 오랜 ‘외유’를 끝내고 귀국했다는 소문이 있다. 유력한 정보통에 따르면 이씨는 자신의 형과 함께 모 콘도 인수과정에 개입하고 있다고 한다.

    3대 패밀리의 간부급 주먹 또는 핵심 조직원들 중 주먹계 주변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대략 10명 안팎이다(자세한 사항은 ‘신동아’ 2001년 11월호 ‘주먹과 권력’ 참조). 대부분 사업가로 변신하거나 지방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는데, 그중엔 지난번 서울지검 강력부의 연예계 비리수사에 연루된 사람도 있다.

    언론에 알려진 바와 달리 주먹계에서는 3대 패밀리를 최강의 호남주먹으로 여기지 않는다. ‘언론과 검·경이 키웠다’는 것이 주먹계 정설이다. 중앙무대인 서울에서 여러 차례 조직간 칼부림 사건을 일으키며 소란을 피웠기 때문에 다른 조직보다 더 두드러졌다는 분석도 있다. 원로주먹 C씨는 “언론에서 조양은 김태촌을 키워서 그렇지 그들은 정작 고향인 광주에서는 별로 힘을 쓰지 못한다. 지방엔 그보다 센 애가 많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 실세 주먹인 L씨는 “조양은 김태촌 이동재는 건달이 아니라 불한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먹싸움이 아니라 정보싸움

    10월10일 오후, 30대 후반의 주먹 두 사람을 만나 한층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전남 목포 출신으로 약 100명의 ‘식구’를 거느리고 있다는 B씨와 전북 출신으로 서울에 진출한 모 조직의 핵심 간부 J씨가 그들. 격투기 국가대표 출신인 B씨는 모 네트워크사업체의 지사장이다. J씨는 건축자재 관련 업체 임원인데 그가 속한 조직은 서울 유흥업계의 강자다.

    B씨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 올라와 있는 목포 출신 주먹은 1000명에 이른다. ‘누가 가장 센가’라는 질문에 B씨는 “그런 질문은 무의미하다. 각 조직이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또래가 다 보스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 30대 보스들은 강남의 호텔 등지에서 정기적으로 모여 조직간 친목을 도모하고 사업정보를 교환한다고 한다.

    “목포 주먹이 다른 지역보다 수가 많은 것은 목포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인근의 해남 신안 등 섬 출신들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목포에서는 서로 맞섰던 오거리파 터미널파 생활파 등이 서울에 올라와서 하나로 합하거나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이는 광주 식구들도 마찬가지다. 요즘 서울의 조직들은 각자의 영역을 갖고 공존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영광파는 서울 모 지역의 오락실을 점령했고, 이리 배차장파는 호텔(나이트클럽)에 많이 들어가 있고, 목포 주먹들은 벤처기업에 많이 진출했다고 한다. 상대방 영역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요즘 이 바닥 풍토다.

    건달이 남 등쳐먹고 돈 떼먹는 것은 옛날 얘기다. 요즘 건달은 남한테 피해 끼치지 않고도 돈을 잘 벌기 때문에 그럴 일이 없다. 공권력이 하도 제재를 하니까 조직끼리 서로 안 씹고 안 싸운다. 10년 전만 해도 큰 숙소에서 많을 때는 50명씩 단체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2∼3명씩 흩어져 생활하면서 일이 있을 때만 모인다.”

    주먹계 경력으로 B씨 후배인 J씨는 최근 주먹계 풍토에 대해 “모든 것이 돈에 좌지우지된다”고 잘라 말했다.

    “요즘 서울에는 신흥조직이 많다. 10명 안팎의 잔 조직이 많은데 이런 조직들이 통합될 경우 돈 많은 사람이 대장을 맡는다. 1980년대 후반 건달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그저 이 길이 좋아서 선택한 것이다. 선배가 시키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칼을 먹였다. 그런데 요즘 건달들은 돈 벌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돈이 되는 곳엔 다 개입한다고 보면 된다. 오래 전부터 건달의 영역인 나이트클럽이나 대형 술집, 오락실 등은 지금도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유흥업계말고도 건달이 돈 벌 수 있는 곳이 많다. 주먹으로 싸우던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은 머리 싸움이고 정보 싸움이다. 싸움 잘 해봐야 교도소만 들락거린다. 감방 안 가는 건달이 똑똑한 건달이다.”

    J씨는 자신의 선배 주먹들인 3대 패밀리에 대해 “매스컴이 키운 매스컴 주먹”이라고 깎아내렸다. J씨의 말대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주먹이 주먹계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숨은 실력자가 많기 때문이다. 경찰청의 ‘관리대상 조직폭력배 현황’에 따르면 조폭은 2002년 현재 194개파에 4052명이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수치일 뿐이다. 수사기관 통계자료는 각종 사건·사고에 연루된 조폭들 위주로 작성된 것이므로 실태를 정확히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주먹들을 합하면 갑절이 넘어 1만명은 된다는 게 주먹계 내부 얘기다.

    ‘주먹’은 가고 ‘돈’이 말한다.

    ‘김두한 시대’를 다룬 SBS 드라마 ‘야인시대’는 주먹계에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서울의 경우 목포파, 동아파, 신배차장파, 영광파, 송정리파 등이 눈에 띄지만 과거의 3대 패밀리에 버금가는 큰 조직은 없다. 춘추전국 양상이다. 그런 점에서 조직 이름으로 주먹계 판도를 살펴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폭력조직의 명칭은 출신지, 활동무대, 두목 이름 등을 따서 경찰이나 검찰이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먹들끼리는, 언론을 통해 공공연하게 굳어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런 명칭을 쓰지 않는다. 보통 ‘아무개 식구’라고 하거나 ‘아무개 형 밑에 있다’ 또는 ‘아무개 형을 모시고 있다’고 말한다.

    B씨는 “예전엔 연장질 하면서 컸으나 요즘은 서로 선배 이름을 댈 뿐 싸움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선배는 주로 1980년대 이름을 떨쳤던 40∼50대 주먹들이다. 비록 직계 조직은 없지만 그들의 이름은 전국 어디서도 통한다. 이들은 또 그 윗세대 주먹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국내 주먹계에서 ‘전(前) 세대 주먹’의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 있다. 무대에서는 사라졌지만 장막 뒤에서 주먹계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다만 마피아나 야쿠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계보를 바탕으로 한 건달 세계 특유의 위계질서가 약하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조직도 뿌리가 탄탄하지 않아 두목이 잘못될 경우 언제든지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역’들의 싸움을 뒤에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예비역’ 주먹계의 실세들은 누구인가. 이들 가운데는 여전히 거대 조직의 보스로 군림하는 주먹도 있고 명성과 재력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먹도 있다. 또 직계 조직은 없지만 권력 가까이 있으면서 그 누구도 무시 못할 힘을 가진 주먹, 완전히 은퇴했지만 ‘이름값’으로 젊은 주먹들의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하는 주먹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들 한때는 한가락씩 하던 주먹이라는 점, 대체로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 지역에 그 이름이 통하는 전국구 주먹이라는 점, 그리고 법적으로 아무 문제될 게 없는 엄연한 사업가라는 점 등이다. 이들은, 3대 패밀리는 건달 족보에 끼워주지도 않는다. 주먹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그들이 ‘뿌리’라면 조양은 김태촌 이동재 등은 ‘가지’, 즉 행동대장급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서 움직이는 젊은 주먹들과는 차원이 다른 이들 ‘상류층 주먹’들은 사회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갖고 있다. 대부분 재력가이고 사업가이고 지방에서는 유지로 자리잡고 있다. 50대 중반∼60대 초반이 많다. 이들 중 상당수는 따로 조직을 거느리지 않고 있지만, 필요할 경우 몇백명의 주먹을 동원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자신의 영향권에 들어 있는 조직의 두목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야말로 국내 주먹계를 막후에서 움직이는 실력자들인 셈이다. 이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우정회라는 모임이다. 국내 주먹계 관련 모임 중 전국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10여 개. 그중 우정회가 가장 힘 있는 모임이라는 것이 정평이다. 전국구 주먹 또는 주먹 출신 사업가들의 친목회 형태인 이 모임엔 현재 31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다. 하나같이 자신의 지역에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실력자들이다. 10년 전 조직됐는데, 그 뿌리는 30년 전 결성된 수원 우정회다. 신규 회원 가입 조건은 엄격한 편. 비밀투표로 회원 전원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평균 연령대는 50대 후반∼60대 초반.

    경기도 수원에서 사업을 하는 이석○씨가 10년째 회장을 맡고 있다. 이씨는 수원 주먹계의 대부이자 전국구 주먹으로 이름을 날리던 최창○씨 직계로 알려져 있다. 냉철해 보이는 인상에 다혈질로 카리스마가 강하다.

    우정회에는 수사기관이나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건달세계 실력자가 많은데 서울에서 활동하는 김남○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친화력이 좋아 정·관계에 탄탄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으며 주먹계 내부의 평판도 좋은 편이다. 한때 정덕진씨의 재산을 관리했다는 소문도 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서울 주먹계를 호령했던 신상사파 간부 출신인 김수○씨도 이 모임 회원이다. 신상사파 실세로 통하던 1975년 1월, 사보이호텔에서 조양은씨와 그 부하들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기도 했던 그는 권력기관과의 유대를 바탕으로 주먹계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서울 영등포 주먹계의 대부인 이신○씨도 오래된 회원이다. 호남주먹들이 서울의 다른 지역은 다 침범했지만 영등포만은 뚫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수십년 동안 이 지역을 완벽하게 장악해왔다. 이 점은 수사기관에서도 인정한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서울에서는 영등포 건달이 가장 역사가 깊다. 호남건달이 이곳만큼은 못 들어갔다. 단결이 잘 돼 있으며 조직의 중간보스들이 다 술집사장을 하는 등 자금력도 탄탄하다”고 귀띔했다. 이씨는 정덕진씨와 절친한 사이다.

    부산 주먹계에서는 영도파를 이끌고 있는 천달○씨가 회원으로 들어와 있다. 천씨는 부산 주먹계 최강자인 칠성파 두목 이강○씨의 친구이기도 하다.

    회원 중에는 호남 출신 건달도 적지 않다. 서울 시내 호텔의 카지노 업소에서 오랫동안 경호 책임자로 지낸 최○희씨도 회원이다. 목포 출신인 최씨는 상경 1세대 호남주먹인 박종○씨와 절친하다. 광주 출신 회원으로는 오○수, 김○수씨 등이 있다. 다들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엘리트 건달이다. 그밖에 전남 진도 주먹계의 대부인 유○의씨와 전북 전주 출신의 박○찬씨 등이 있다.

    우정회와는 조금 다른 성격이지만 충청 지역 주먹 출신 사업가들이 중심이 된 충우회도 눈여겨볼 만하다. 우정회가 ‘보스급’들만의 수평적 모임이라면, 충우회는 주먹계 선후배가 아우러진 수직적 형태의 모임이다. 지난해 독립문 앞에서 항일(抗日) 단지의식을 치른 ‘구국결사대’도 충우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충우회는 충청 출신이 주축이긴 하지만 타 지역 사람들도 있어 전국 조직이라 할 만하다. 불우청소년 장학사업 등 사회사업도 벌이고 있다. 현재 회원은 약 200명이다. 서울에 있는 배○수씨가 회장을 맡고 있는데, 구심점은 고문인 조일환씨다. 수사기관이 송악파(충남 천안·온양이 근거지) 두목으로 지목해 쫓고 있는 장○길씨도 충우회 회원이다. 최근 대전 주먹계 실력자로 자리잡은 양○모씨도 이 모임과 관련돼 있다.

    호남주먹 가운데 상류층 주먹이라 할 만한 사람으로는 1970년대 초반 서울에서 호남주먹계를 대표했던 박종○, 박영○, 오기○, 이승○씨 등이 있다. 번개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박종○씨는 목포 주먹계의 대부다. 광주 동아파 출신인 박영○씨는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사건에 개입하는 등 정치주먹으로 이름을 떨쳤다.

    권력층 주변의 호남주먹들

    오기○씨는 1970년대 중반 광주 주먹계에서 샛별로 떠오른 김태촌씨를 서울로 끌어들인 장본인으로 김씨에 앞서 서방파를 이끌었다. 정현준 게이트에 연루돼 해외 도피중인데 고위층 인척인 차○○씨와 절친한 사이.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이승○씨는 전주 출신으로 전북 주먹계의 대표주자. 5공 때 정치적 사건에 연루돼 언론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렸다. 1987년 안기부가 관련된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 주역으로 우익청년연합단체인 호청련을 창설했다. 박종○씨와 더불어 모 스포츠협회를 장악해 고위직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 김홍일 의원과 가깝다는 이유로 구설수에 오른 정학○씨도 주먹계에서 무시 못할 영향력을 갖고 있다. 경희대 재학 시절부터 ‘태권도 주먹’으로 이름을 날린 정씨는 특히 1980년대 중반 진로그룹 내분 과정에 깊이 간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서울 주먹계 판도를 뒤흔든 사보이호텔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 뒤인 1975년 2월 범죄단체조직 혐의로 구속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바 있을 뿐 그 외에는 전과가 없을 정도로 주먹계 주변에서 ‘신사 건달’로 통했다.

    진로그룹에서 잔뼈가 굵은 정씨는 계열사 사장까지 지내고 모 대기업체 스포츠단 사장을 맡는 등 사업가의 길을 걸어왔다. 현 정권이 들어선 후 의식적으로 주먹들을 멀리했으며 그 탓에 주먹계로부터 인심을 잃었다.

    ‘현역’ 전국구 주먹의 선두주자는 부산 칠성파의 이강○씨다. 호남주먹에 대한 말이 많지만 오늘날 한국 주먹계에서 단일조직으로 가장 센 조직은 칠성파라는 것이 주먹계 정설이다. 수사기관 평가도 그렇다. 간부급 주먹만 100명에 이를 정도로 일단 머릿수에서 다른 조직을 압도한다는 것. 야쿠자와 연대한 점도 무시 못할 요인이다.

    1991년 ‘범죄와의 전쟁’으로 구속됐다가 1999년 출소한 이씨는 이듬해 협박, 세금포탈 등의 혐의로 재구속돼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두목의 ‘장기 부재’로 조직이 붕괴된 3대 패밀리와 달리 칠성파는 여전히 탄탄한 조직력을 자랑한다는 것이 수사기관의 분석이다.

    ‘신동아’는 2001년 11월호(‘주먹과 권력’)에서 호남주먹 계보를 중심으로 전국 각 지역의 실세 주먹 70여 명을 소개한 바 있다. 당시 언급되지 않았던 주먹계의 숨은 실력자를 추가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서울 주먹계. 전주 출신인 최○○씨가 1순위로 꼽힌다. 장애인 조직을 이끌고 있으며 모 스포츠협회 고위직을 지냈고 현 정부 실세인 K의원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고 있다. 역시 전주 출신인 이○○씨도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실세 주먹. 레슬링 선수 출신으로, 현 정부 실세로 통하던 정치인 K씨와 친분이 깊다.

    서울에서는 그밖에 헌병 장교 출신인 최○국씨, 교수 출신 엘리트 주먹인 최○웅씨, 대형 체육관 임원인 정○○씨가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서는 김○수, 최○화씨를 꼽을 수 있다. 두 사람 다 모 스포츠협회 실세들이다.

    충남 천안이 배출한 당대 주먹으로는 박충○씨가 있다. 한때 조일환씨의 후계자로 통하던 박씨는 호남주먹들과 유대가 깊었는데 김태촌씨나 강대○씨 등 호남 최고의 주먹들도 그 앞에선 절절 맸다는 얘기가 들린다. 보스인 조씨에게 도전했다가 쫓기다시피 서울로 올라간 후, 강남 일대에서 건달 생활을 하다가 최근 천안으로 되돌아갔다.

    논산에서는 원로 주먹 김형○씨가 실력자. 유력 정치인 L의원과 가깝다. 대전 주먹계에서는 이상○씨를 무시 못한다. 대전 주먹계를 장악했던 김옥○(2001년 수배중 사망), 목포내기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진 김기○씨가 이씨의 직계 후배들이다. 두 김씨는 평소 여권 실력자 K의원과의 친분을 주변에 과시해왔다.

    전북 익산에는 김철○씨가 실세. 배차장파 대부로 오랫동안 이 지역에 군림해온 김향○씨 못지않은 힘을 갖고 있다. 전주에서는 김병○씨를 빼놓을 수 없다. 상대방 발을 도끼로 조각 낼 정도로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다. 1980년대 후반 부산 주먹계 최강자인 이강○씨와 함께 일본에 건너가 야쿠자와 의형제를 맺기도 했다. 전북 주먹계 대부인 이승○씨와는 적대적인 관계로 알려져 있다. 후배들이 각 조직의 대장 노릇을 하고 있는데 그중엔 전북 지역 최대 조직인 월드컵파 두목 주오○씨도 포함돼 있다.

    광주의 숨은 실력자는 조○씨. 서울에 진출한 호남주먹들 사이에서는 알아주는 주먹이다. 원로 주먹으로 이영○씨가 있다. 목포 출신 실세 주먹으로는 이○선씨가 있다. 50대 중반이지만 동생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현역’이다.

    마산에는 신상사파 직계인 구○○씨가 있다. 박수○씨는 대구 주먹계 실력자. 일설에는 대구 지역 주먹의 30%를 동원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한다. 강원도에서는 강릉의 김○오, 속초의 주○규, 김○수씨를 꼽을 수 있다. 이 중 김씨는 ‘현역’이다.

    “돈 많이 벌면 건달 그만두겠다”

    지금까지 소개한 주먹계 실세들은 수사기관 관리대상 명단에 들어가 있지 않다. 대부분 사업가인 데다 주먹계 현장에서 한 발 물러서 있기 때문이다. 합법인 사업을 하는 데다 직계 조직을 거느리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법망에 걸리는 일도 없다.

    요즘 주먹들 모임에서는 ‘야인시대’가 화제다. P호텔에서 인터뷰에 응했던 주먹들 사이에서도 ‘야인시대’ 얘기가 나왔다. 그들에 따르면 초등생들까지도 난리란다. ‘긴또깡(김두한의 별명)’과 ‘쌍칼’ 모르는 아이가 없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할 때 그들은 건달세계에 몸담은 사람으로서의 ‘자부심’과 정통 건달시대에 향수를 느끼는 듯싶다.

    하지만 이들은 ‘야인시대’가 ‘흘러간 노래’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황금만능주의는 건달 세계가 갖고 있던 최소한의 ‘미덕’마저 파괴해버렸다. “이 세계에서는 나이 들면 남는 게 없다. 돈 없으면 따르던 동생들도 등을 돌린다. 돈 많이 벌게 되면 이 바닥을 떠나 외국에 나가 살 생각”이라는 30대 주먹 B씨의 자조적인 고백은 오늘날 한국 주먹계의 실태를 잘 보여준다.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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