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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보호 대책회의 열며 전전긍긍

현대 내부 문건·수사기록으로 본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 전말

  • 글: 허 헌 자유기고가 honey8094@hanmail.net

패밀리 보호 대책회의 열며 전전긍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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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는 사실에 입각해 진술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고 여러 안을 놓고 실무자선에 책임지게 했다. 경영진은 각자의 진술을 불일치시키고, 애매한 상황이 되도록 만들어 피고발인들의 책임이 모호해지게 하려 한다. 현대는 직원들이 검찰에 출석하기 전 사전 각본된 답변 내용대로 진술케 지시하고, 조사후 이들을 다시 불러 검찰에서 각본대로 진술했는지 확인한다.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있는 것이다.…”(검찰 수사보고서 중에서)
패밀리 보호 대책회의 열며 전전긍긍
마이클 더글라스가 주연한 ‘월스트리트’라는 영화가 있다. 천문학적인 거부(巨富)였지만, 내부자 거래로 이득을 얻은 혐의로 수감된 주식 투자자의 얘기를 다룬 영화다. 한 기자가 감옥으로 그를 찾아가 “뭐가 부족해 그런 위험한 투자를 감행했냐”고 물었다. 주인공의 답은 이랬다.

“나는 내 주머니에 돈이 얼마 있는지 모른다. 다만 끊임없이 승부하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일 뿐이다.”

위험을 즐기는 투자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해외에 체류 중인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은 무슨 이유로 위태로운 게임을 시작한 것일까. 그는 3년만에 입을 열어 자신을 키운 현대그룹을 상대로 ‘위험한 카드’를 펼쳐보였다. 현대중공업 고문인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통령 후보가 1998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주가조작을 사전에 알았다는 내용이었다. 대선을 50일 앞두고 터져나온 그의 폭로는 메가톤급 폭탄이 되어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은 1999년 11월3일 서울지방법원이 이 전회장을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징역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후 잊혀져갔다. 이 사건에 연루된 현대증권, 현대중공업, 현대상선 등은 현대그룹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재정적 손해도 컸다. 이 전회장은 법정에서 드러난대로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부실 덩어리 국민투신(현 현대투신)을 인수하고, 해외펀드를 동원해 현대 계열사 주식을 매집했다가 결국 깡통계좌로 전락시켰다. 이런 것들을 합하면 현대증권이 입은 손해는 1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게 현대증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전회장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왜 이제 와서 ‘죽은 얘기’를 다시 끄집어 냈을까. 이 전회장이 이 사건을 다시 헤집어놓자 현대증권과 현대중공업은 발끈했다. 이들은 이씨가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증권 고위 관계자는 “그를 통하지 않고서는 되는 일이 없고, 그를 통하면 안되는 일도 없었다”며 “자신이 단독으로 주가조작을 계획하고 지휘했으면서 다시 말을 뒤집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전회장은 뒤늦게 자신의 죄를 부인했다. 그가 주가조작을 계획하지 않았다면 누가 했을까. 이미 세상을 떠난 정주영 명예회장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것일까. 1998년 4월 주가조작이 시작된 시점부터 1999년 9월 이익치씨가 구속되기까지 17개월 동안 벌어진 사건의 전모를 검찰 수사일지와 관련자 심문조서, 검찰과 참여연대 등에서 입수한 현대그룹의 내부 대책 문건 등을 토대로 살펴보자.

‘현대중공업 살리기’ 논의

사상 최대 규모의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은 1998년 4월부터 11월까지 7개월간 벌어졌다. 은밀하게 진행된 주가조작의 실상은 1999년 4월12일 오전 11시 현대건설 경영전략팀 사무실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부터 드러난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현대건설 경영전략팀 노정익 전무·강연재 이사·장호진 차장 등 3명, 현대증권 김기영 감사·박철재 상무 등 2명, 현대상선 박재영 이사, 현대중공업 서태환 이사 등이었다. 회의의 이름은 ‘현대전자 주식 관련회의’. 주로 노정익 전무가 질문을 하고 김기영 감사가 의견을 말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당시 대화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고딕체로 처리된 부분이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 대기업의 엘리트 임직원들이 주가조작과 관련해 어떤 대책을 세우는지, 어떻게 입을 맞추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흥미로운 얘기들이 담겨 있다. 우선 금융감독원 증권선물위원회의 제재 내용이 회의 안건으로 올랐다.

“증선위의 제재종류에는 검찰 고발, 검찰 통보, 검찰 수사의뢰가 있다. 본건(현대전자 주가조작件-편집자)에 대한 금감원 내부방침은 고발인 것 같다. 검찰수사는 통상 증선위의 의결사항이 검찰에 넘어간 이후에 이뤄지고, 본건은 4월23일 검찰로 넘어갈 예정이다. 증선위에서는 심의조정위원회의 심의사항이 거의 그대로 가결되기 때문에 혐의 자체에 대한 의결 번복은 극히 드물고 제재 수위에만 조정 여지가 있다. 그러나 본건은 제재수위 조정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통상 주가조작 사건은 증권거래소의 매매심리 분석 → 금감원 통보 → 금감원 증선위 조사 → 검찰고발의 순으로 이어진다. 이 회의는 이미 증선위가 주가조작을 입증하는 자료를 토대로 고발 방침을 정한 뒤에 열렸다. 현대 임직원들은 상당히 다급했다. 이들은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고, 어떤 점이 법을 위반한 것인지 파악하기에 분주했다.

“증권거래법 위반의 심의대상이 될 수 있는 건은 현대중공업 및 현대상선의 부당 시세조정 혐의 및 개인 대주주의 부당이득 취득 혐의가 될 것이다. 이중 개인 대주주의 부당이득 취득혐의는 금감원 조사과정에서 뚜렷한 혐의를 밝히지 못해 제외될 것이 확실하다. 다만 검찰 수사과정에서 정책적으로 문제삼을 소지는 있다.”

회의는 현대상선의 고발대상 제외 가능성과 제재수위 조정여부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실제 매매행태의 증권거래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토론했다.

“현대상선의 혐의는 현대중공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미하므로 노력에 따라 고발대상에서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고발을 막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하면 부작용이 예상된다. 거시적으로는 현대중공업 및 상선의 매수 사유에 대해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거래 건전성 측면에서 설명이 곤란한 사례가 많이 발견된다. 특히 현대중공업이 종가를 관리하는 방법으로 매수한 것은 해명이 어렵다. 현대증권이 거래 데이터를 철저하게 분석해 대비하는 것이 좋겠다.”

당시 문제가 됐던 곳은 현대중공업이다. 현대중공업은 1998년 5월26일부터 11월12일까지 현대전자 주식 805만7000주를 매수했다. 직전가 대비 고가 매수주문, 종가 결정을 위한 동시호가시 대량 고가 매수주문, 허수주문 등의 시세조정 주문을 냈다. 이를 통해 현대전자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최저 1만4800원에서 최고 3만2000원까지 116% 상승시켰다. 이점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지 임직원들은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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