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호

‘이명박式 개발’ 어떻게 볼 것인가

  • 입력2002-12-02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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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찬성론] ”개발 아닌 복원... 따뜻한 서울이 보인다” 강병기/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 대표 bkkahng@yahoo.co.kr

    민선3기 서울시정을 이끌 이명박 신임시장이 ‘비전 서울 2006’이란 서울시정 4개년 계획을 내놓았다. 취임 후 서울시정 현황을 어느 정도 파악했고, 그동안 참모와 보좌진, 연구기관 등이 선거공약의 현실성 검토를 끝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이시장은 비전을 3가지로 요약하고 그 실천과제로 20대 중점과제를 내세웠다. 3가지 비전은 ‘시민을 위한 따뜻한 서울’ ‘사람 중심의 편리한 서울’ ‘경제 활성화로 활기찬 서울’이다. 이 모든 비전이 미사여구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그러한 슬로건이나 플래카드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았던가. 시민의 마음을 설레게 해놓고는 실망으로 끝나버린 목표나 방침이나 시책이란 것들이 식상하도록 많이 스쳐갔다.

    알기 쉬운 시정 약속

    이번엔 어떻게 될 것인지 필자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장담하는 이시장도 모를 것이다. 마음 먹는다고 모두 실현되고, 소망한다고 모두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고 편하겠는가. 어떤 일이 실현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전이든 슬로건이든 어떤 목표를 세우는 것은 실현을 향한 첫걸음이자 필수요건이다.

    이시장은 비전을 구체적인 20대 중점과제로 풀어서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신뢰성을 높이고 그 성과를 평가하기 쉽게 구체적인 목표값을 정량적으로 발표했다. 예컨대,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을 지금의 21%에서 임기내에 100%로 올리겠다거나, 잠실상수원의 수질을 생물화학적 산소 요구량 1.6ppm에서 1.3ppm으로 개선하겠다는 식이다.

    약속이 구체적이고 알기 쉬우면 흠 잡히기도 쉽다. 다시말해 시민들이 시장의 업적이나 공약을 감시하기가 쉽다. 이시장이 한발짝 더 나아가 시청 홈페이지에 삶의 질 지표의 현재값과 약속값을 공개하여 시민들이 언제든 시장의 약속을 중간평가할 수 있게 한다면 더욱 신뢰가 쌓여갈 것이다.

    필자는 ‘비전 서울 2006’ 가운데 ‘따뜻한 서울’이란 비전이 가장 마음에 든다. 특히 20대 중점과제에서 시장이 생각한 ‘시민을 위한 따뜻함’에만 머물지 않고, ‘환경과 시민에게 따뜻한 서울’을 표방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점과제들을 보면, 서울의 지역간 격차를 없애고 서민용 임대주택 10만호를 건설해 소외계층을 어루만지려 할 뿐만 아니라, 치매노인 문제와 장애인 이동권 확보 문제, 맞벌이 부부 육아문제 등 그동안 공공정책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상습침수지역을 없애겠다는 약속은 부디 지켜져야 할 정책이다. 많지 않은 비에도 침수되는 지역을 보며 국제도시 서울을 부끄럽게 여기는 시민이 많았다. 당해 지역의 수재민들은 얼마나 큰 배신감과 상실감을 느껴왔던가.

    시민을 위한 따뜻한 정책 외에, 생활권 녹지 100만평 늘리기, 먼지 없는 깨끗한 서울 만들기라거나 한강과 둔치공원 일대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친숙한 도시내 수변공간을 마련한다거나, 도심에 걸어다닐 수 있는 시민광장을 조성하고, 청계천을 복원한다는 과제는 그동안 도외시해온 자연환경을 복원하고 확충하겠다는 따뜻함으로 이해된다.

    관점을 달리해 시정과제를 살펴보면, 개발보다 복원에 중점을 둔 정책을 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불과 한 세대 전 서울이 지녔던 덕목을 회복하려는 의지가 보인다는 말이다. 당시는 요즘과는 정반대의 지역 격차가 문제였다. 저명인사와 유명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명문고도 모두 4대문 안에 있었다. 당시 강남은 사람 사는 동네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시장이 이 문안 지역을 필두로 강북지역의 상대적 위상을 높이는 일을 시작하겠다니, 이건 개발이 아니라 복원정책이라고 봐야 한다. 강북의 자존심과 삶의 질을 복원하는 것이다. 청계천을 복원하겠다는 과제는 선거 당시 이미 쟁점이 됐던 사안이다. 개인적으로 중학천·대학천 등 지천의 복원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복잡함에 찌든 도시민은 고층빌딩보다 푸르른 자연을 갈망한다. 한강을 시민이 즐겨찾을 수 있게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강변도로로 단절된 한강과 시민을 다시 연결하는 일이다. 강변을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어 동·식물의 서식환경을 마련해주는 일도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는 일이다.

    서민용 임대주택 10만호 건설은 형식적으론 분명 개발이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강남에 아파트숲을 만들고 재개발로 고층 아파트를 짓는 과정에 그 많던 민간주택의 셋방이나 셋집을 몽땅 없애버리지 않았던가. 우리의 전세방식은 국민(정부나 연구기관이 아니다)들이 스스로 고안해낸, 매우 뛰어난 주택공급 방법이었다. 정부가 괜스레 집 없는 서러움을 자극하고 자기 집 아니면 주택으로 간주하지 않는 통계 방침을 세워 주택보급률을 지나치게 낮게 발표했다. 왜곡된 주택정책 탓에 아파트를 지으면 지을수록 서민 거처는 줄고 더욱 열악해지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주택공사나 도시개발공사가 서민주택을 외면하는 것을 우리는 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이시장이 서민용 임대아파트(셋집)를 10만호 짓겠다니까, 그 형태는 신식이지만 셋집의 복원 아니겠는가. 그러나 새로운 계층갈등의 씨앗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도 있다. 격리된 임대아파트 대신 일반 아파트와 혼합개발을 하겠다지만 일단 지금까지의 실상은 비관적이었다. 이시장에게 특단의 아이디어를 기대한다.

    교통대란, 별문제 아니다

    장애인 이동의 불편을 없애겠다는 정책이야말로 복원에 전형이 돼야 할 과제다. 도시에선 횡단보도가 지하도로 대체돼버린 지 오래다. 우선 모든 네거리에 횡단보도가 복원돼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뿐 아니라 여러 사회적 약자들의 보행·이동 여건이 비약적으로 개선되고 도시는 활기를 회복할 것이다.

    왜 ‘개선’이 아니라 ‘복원’이라 표현하는가 하면 원래 지하도 이전에 거기 횡단보도가 있었고, 더 거슬러올라가면 길이란 본디 사람의 통행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자동차에 빼앗겼던 횡단보도의 복원이라 칭하는 것이다.

    이시장은 자동차 중심의 도시를 사람 중심, 보행 중심의 도시로 회복시키겠다고 한다. 자동차 교통을 진정시키고 그 사용을 억제하는 대신 근거리 보행을 장려하고 대중교통을 전면 개편해 그것을 교통에 주역으로 삼겠다고 한다.

    이것은 실로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사고의 틀을 바로잡는 대단한 복원이다. 자동차를 도시의 주인이 아니라 머슴 자리로 되돌아가게 하고, 주인 자리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닌가. 대찬성이다. 역대 시장들이 알면서도 꺼내지 못했던 ‘자동차 길들이기’에 나선다니 참 반갑다.

    필자는 평소 자동차교통이 필요악이란 신념을 갖고 있다. 청계천 복원이나 시청앞 광장 조성과 관련해 교통대란설이 제기되지만, 교통대란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예고도 없이 성수대교가 무너져내렸을 때도 며칠동안 혼란이 있었지만 적절한 조처와 사전 숙지에 의해 적당한 우회로가 만들어져 안정된 일상의 흐름을 형성했다. 남산터널 통행세 징수 때도 교통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결과는 시민들이 침착하고 현명하게 행동해 별 문제가 없었다.

    우회로만 있으면 꼭 필요한 교통은 이뤄지기 마련이고, 불요불급한 교통은 자제된다. 교통장애를 사전에 아는 경우엔 미리 다른 교통수단을 선택하기 때문에 상상하는 것처럼 큰 혼란은 오지 않으며 불만도 오래 가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상황변화에 거부반응은 따르기 마련이다.

    일단 민선3기 시장의 시정계획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물론 필자의 뜻과 다른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 방향이 개발시대의 과오로 망가진 삶의 질을 본연의 자리로 복원하겠다는 철학이 엿보여 옳다고 생각한다. 하겠다는 사람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게 일을 성공시키는 열쇠다. 잘못될까 걱정부터 하면 그것이 잠재의식에 작용해 장애가 되기 쉽다.

    그렇다 할지라도 해서는 안될 일이 있다. 강남과 강북의 지역 격차를 해소하는 수단의 하나로 자랑스럽게 내놓은 ‘미니 신도시(뉴타운)’ 구상은 졸작이다. 필자가 알기론 학생작품을 빼고는 그런 방향의 연구나 검토가 별로 없었다.

    개별적인 소규모 재개발이나 재건축사업으로 마련하기 어려운 사회간접자본과 공공시설을 갖춘 거주환경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좋다. 그런데 그 방법이 종전의 재개발 방식과 같은 ‘scrap and build(전면철거 재개발)’방식이란 점이 이시장의 불도저 이미지와 일치하는데, 그래선 안된다는 것이다.

    강북은 강남과는 다른, 강북다운 모양으로 정비돼야 한다. 강북, 특히 문안지역 일대는 강남이나 분당·일산 같은 신도시가 흉내내려야 낼 수 없는 성숙함과 역사의 켜를 간직한 지역이다. 거기에 스며있는 문화적 요소야말로 서울의 정체성이며, 국제경쟁력의 문화적 원천이다.

    이렇게 소중한 것들을 ‘낡았다’는 표피적 판단으로 허물고 다시 번쩍번쩍한 새것으로 바꾸는 일은, ‘4대문안 문화관광벨트 조성’이나 ‘생활 속 문화를 즐길 수 있게 한다’는 정책마저 시설 위주의 전시성 사업으로 흘러버릴까 염려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삶의 현장을 불도저로 밀어 없앴는가. 누구를 위한 재개발이었던가. 거주자의 재정착률을 높일 것이라 장담했던 재개발사업마다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재입주하는 주민이 적었다. 재입주해야 할 기층서민은 더 후미진 곳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갖가지 방법을 써봤지만 부동산시장의 메커니즘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언뜻 보기엔 누추하지만 평온한 강북 기성 시가지 주민에게 또다시 산동네 달동네의 재개발 비극을 안겨줄 ‘미니 신도시’라면 재고하기 바란다.

    대안은 있다. 간단히 말하면, 시가지 정비를 광역적 차원에서 실시해 부족한 공공시설은 공공이 부담하는 동시에 민간개발에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좋은 일도 서두르면 나쁜 일이 된다

    행여 이시장이 선거에서 압승했으니 선거 공약을 시민들에게 승인받은 것과 진배없다고 생각하거나, 압도적 득표가 자신에게 모든 것을 위임했다는 증거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다수결은 매우 우수한 결정방식이긴 하나 다수가 소수를 압도해선 안된다는 전제 하에 성립하는 결정방식이다. 특히 서울처럼 많은 사람이 각자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더불어 사는 곳에서, 어떤 사업과 정책을 다수결로 결정하는 방식이 시대착오적임은 선진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다수보다 소수의 반대자가 오히려 결정권을 가진 시대인 것이다. 다수결 원칙이 통하는 선거와 도시계획사업은 아주 다른 것이다.

    시청앞 광장이나 청계천 복원은 많은 시민이 찬성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그 장소와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생각을 숫자노름인 여론조사로 대체할 수는 없다. 사업을 실행하기에 앞서 국지적 여론을 살펴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납득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사업이나 정책의 채택 때보다 몇 배의 시간과 인력, 지혜가 필요하다. 시민 참여 없는 도시행정은 성공할 수 없다.

    CEO는 어떤 사업에서 이익이 남고 어떤 사업에선 밑져도 전체의 이익이 크면 성공으로 본다. 그러나 도시사업에선 하나라도 잘못된 게 있으면 언제까지나 잘못이고 실패다. 기업에선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불문에 부치는 경우가 있다 해도, 도시사업에서는 결과보다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물론 어떤 사안이 다수결로 결정되어도, 그러한 결정에 찬성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행정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주민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반대했지만, 다수결로 결정되고 말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설득하기 위해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면 주민의 말이 옳다. 행정은 이런 부분에 아직 익숙지 못하다. 어쨌든 소수의견을 버리던 시대는 지났다.

    모처럼 발상의 전환을 실감할 좋은 비전과 시정과제를 선정한 김에, 이시장은 시민에게 따뜻한 시장으로서, 서두르지 말고 착실하게(slow but steady) 일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바야흐로 어떤 일을 누가 시작했는지를 평가하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 [반대론] ”밀어붙이기식 행정에 서울은 질신한다이재준/협성대 교수·도시계획과 jjlee@hyupsung.ac.kr

    서울시는 이명박 시장 취임 이후, 선거에서 최대쟁점이었던 청계천 복원과 더불어 2012년까지 강남을 제외한 서울 전역에 은평·길음·왕십리 등 3개 뉴타운을 제외하고도, 29개의 뉴타운을 더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같이 주거 중심 성격을 띠는 뉴타운 조성 예정지만도 총 32곳이지만, 이와 별도로 상업중심지구가 될 ‘균형발전촉진지구’ 3곳을 내년 중 선정할 예정이고, 지금까지 미개발지로 남아있던 강서 마곡지구 100만평 정도를 택지로 개발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더불어 대단위 개발계획이 수립돼 있던 뚝섬을 세계적인 대형 공원으로 조성하고, 서울시청 앞을 보행자 중심의 시민광장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 정도 개발면적이면 서울시 행정구역 605.96㎢의 4분의 1 내지 5분의 1에 해당한다. 서울시의 계획이 그대로만 추진된다면 실로 서울의 공간적 구조나 형태가 몰라볼 만큼 달라지게 된다.

    후기산업사회에서 지식기반사회로 전환되는 시대에 서울을 국제경쟁력 있는 도시로 성장시키고, 시민이 꾸리는 삶의 질을 고양하려면 미래의 청사진은 필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시장의 이런 원대한 꿈은 오랫동안 그려온 청사진이 아니다. 시장 취임 후 불과 4개월 남짓한 사이에 그려진 것들이다.

    600여 년 혹은 최근 수십년간 발전해온 역사가 있고 미래가 있는 서울시의 시정계획을 불과 4개월 만에 계획하고, 불과 10여년 동안 서울의 뼈대를 4분의 1 가까이 바꾸려는 것은 과거 개발시대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도시 막개발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수도권 집중이 우려된다

    서울의 청사진은 비단 서울시민뿐 아니라 전국민의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된 다음 추진해야 한다. 서울은 서울시민과 그 후손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서울의 하천복원이나 도시재개발사업 등은 모든 지방자치단체에 중요한 선례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의 질을 한 차원 높여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정책추진 동기는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이시장의 서울시정 4개년 계획이 자칫 수도권 집중을 불러오지는 않을지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 집중은 수도권 도시 과밀화와 주택 부족, 교통 혼잡, 환경 악화 등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다양한 문제를 유발한다. 뿐만 아니라, 점차 침체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에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준다. 지역 격차 해소는 그동안 범정부적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노력해온 중요한 정책과제이기도 하다. 급기야 올해는 어느 대통령후보가 ‘행정수도 이전’을 대선 공약사항으로 내걸 정도로 비중 높은 쟁점사안이 됐다.

    때문에 최근 잇따르는 서울시의 각종 개발정책이 국토면적의 12%에 전체인구의 46%가 살고 있는 수도권에 새로운 인구집중을 야기하지는 않을는지 검토해야 한다.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3개 뉴타운만 보아도 길음뉴타운에 25%, 왕십리뉴타운에 100%, 은평뉴타운에 30% 정도로, 인구가 늘어나 전체적으론 평균 50% 증가하는 것으로 계획돼 있다.

    따라서 2012년까지 뉴타운을 30여개소로 늘리고 3개의 ‘균형발전촉진지구’와 강서 마곡지구 개발까지 추가한다면 훨씬 더 많은 인구가 유입되리라는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게다가 건설교통부가 올 연말 혹은 내년 초 경기도 일원에 또다시 신도시 건설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하니, 향후 10여년 동안 수도권에 엄청난 수의 인구가 집중되리란 것은 불문가지다.

    도시개발사업은 대상구역 개발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인접지역과의 유기적 관계 등 도시 전체를 조감하는 가운데 계획돼야 한다. 특히 기성 시가지 개발은, 주택·교통 등 주변지역은 물론 서울시 전체의 도시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도시계획적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제도적으로 계획의 큰틀이라 할 수 있는 도시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도시계획 차원에서 본다면, 3개 뉴타운 중 은평뉴타운은 그린벨트 해제지역이지만 중고밀 개발계획이 수립됐고, 길음타운은 이미 점(點)적으로 재개발 혹은 재건축되는 곳이 많아 면(面)적인 개발시 합리적 계획을 유도하기 어렵다. 왕십리타운은 청계천 복원과 더불어 주변 재개발지역 전체를 고려한 왕십리 개발안이 나와야 하지만 주변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개발계획이 도출돼 서울시 전체적으로 볼 때 합리적인 개발을 추구하기가 매우 불리하다.

    아울러 2011년까지 제도적인 도시기본계획상 생산기능과 자연녹지로서의 생태적 기능을 충분히 담당할 서울시의 마지막 유보지이자 미개발지인 강서 마곡지구를 택지개발하려는 것은, 단기적으론 강서지구 발전을 촉진하는 긍정적 측면을 지니지만, 장기적이고 도시계획적인 측면에서 보면 도로·상하수도 등 각종 기반시설용량 초과 문제, 도시생태적 유보지가 없어지는 문제를 야기한다.

    따라서 충분한 기초조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도시환경용량에 적합한 개발규모와 지역을 설정하고, 반드시 도시기본계획과 도시관리계획 등 마스터플랜에 따라 각종 개발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600여년 역사를 지닌 서울이기에 장기적으론 600여년의 미래를 보거나 단기적으론 적어도 20년 정도의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계획의 큰틀을 짜고 지역적으로 각종 개발안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지속가능한 계획철학의 바탕 위에서 준비돼야 한다.

    지속가능한 계획철학은 올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지속가능발전 세계정상회의(WSSD)의 회담 주제인 ‘지속가능한 개발’을 들 수 있다. ‘지속가능한 개발’은 통상 ‘미래세대가 자신의 필요를 충족할 능력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개발’이다. 즉 지금과 같이 경제적 효용성에 기초하여 고층·고밀개발로 자연환경을 파괴하거나 환경을 오염시키는 개발이 아니라, 경제적 욕구와 환경보전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도록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개발을 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이라는 공간에 담을 수 있는 적정환경용량을 파악해서 적절한 대상지에 적정한 규모로 개발해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개발의 속도와 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도시 막개발을 피할 수 없다.

    서울의 도시환경용량은 서울시 부설 시정개발연구원의 ‘1999∼2000년 서울시 환경용량평가 연구결과’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연구 결과 서울의 도시생태적 수준을 런던의 도시생태적 수준과 같게 하기 위해서는 서울시민 1인당 토지소비량을 연간 1.53ha만큼 줄이거나, 현재의 소비수준을 35.4% 감축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미 서울시의 적정수용인구가 초과된 지 오래돼 살 만한 도시를 만들려면 인구를 줄이거나 토지소비수준을 줄여야 함을 의미한다.

    서울은 국내에서 시가지가 가장 많이 개발된 도시다. 그런데도 1997년 서울도시기본계획 자료에 의하면, 대지면적 대비 용적률이 강북과 강남을 합해 평균 110% 수준을 나타낸다. 또 이를 서울시 도시계획조례의 일반주거지역에 대한 용적률(제1종 150%, 제2종 200%, 제3종 250%)과 비교하면 현재 개발된 시가지 밀도는 법적 허용밀도의 50%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결과는 서울시가 아직은 대지면적 대비 용적률이 매우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강북과 강남을 비교하면 침체된 강북지역(용산구)이 70% 정도, 활성화된 강남지역이 140%(강남구) 정도로 강북이 강남에 비해 절반쯤이다. 따라서 강북을 강남 수준으로 개발하려면 대지면적 대비 용적률이 140%인 강남의 개발밀도에 맞춰 개발하는 게 타당하다.

    그러나 이번에 서울시가 발표한 3개 뉴타운의 개발밀도를 살펴보면, 구체적인 밀도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길음뉴타운은 지금보다 25%, 왕십리뉴타운은 100% 증가하는 것으로 인구계획을 설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 2개 뉴타운이 지금보다 많은 인구를 수용하고 그에 적절한 기반시설을 마련할 수 있도록 사업의 수익성을 올리기 위해서는 건폐율과 용적률을 최대한 높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왕십리뉴타운의 사업방식은 도시개발공사가 사업시행자이지만, 길음뉴타운은 사업시행자가 민간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에 사업 수익성에 맞춘 고밀개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150∼200%의 저밀 저층으로 개발한다는 은평뉴타운은 일견 바람직해 보이지만, 개발제한구역 해제지역을 중심 개발지로 설정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매우 고밀개발인 셈이다.

    ‘이명박式 개발’ 어떻게 볼 것인가

    서울시가 구상중인 청계천 복원 사업 조감도

    건교부는 지난해 개발제한구역 해제지역의 경우 해제와 동시에 자연녹지 혹은 제1종 전용주거지역 등 도시계획 용도지역으로 편입되도록 해제원칙을 설정했다. 이 원칙을 준수해 은평뉴타운 지역이 자연녹지로 변경될 경우 서울시 도시계획조례에 따라 50%, 제2종 전용주거지역일 경우엔 120%, 최대 제1종 일반주거지역일 경우 150%에 해당하므로 원칙적으로 은평뉴타운은 120∼150%가 가장 적합한 개발밀도다.

    이번에 서울시가 내놓은 계획들은 사회적 합의가 부족했다. 대규모 개발에는 지역 주민은 물론 전체 서울시민과 전국민적 합의과정이 필요하다. 여론수렴은 절차상의 민주화란 측면에서 꼭 거쳐야 할 과정이며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계획이 아니라 주민들이 참여하는 계획을 통해 민원을 줄이고 계획의 실현성을 높여야 건설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원지동 추모공원 건립 추진과정에서나 ‘개발제한구역 임대주택단지’ 추진과정에서 주민 동의나 여론수렴 없이 추진되는 사업이 사업비와 기간 그리고 노력을 더 많이 요구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다.

    지금과 같은 밀실행정으로 갑자기 계획을 발표하고 막무가내로 추진할 게 아니라, 지역 주민, 행정가, 전문가, 시민단체가 참여해 문제점과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들을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계속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환경시민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의 반대운동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시민 참여가 활성화되면 그 과정에 시민들이 도시환경에 관심을 갖고 향토애와 공동체의식도 느낄 수 있다. 개발사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이시장은 미래 구상을 위한 정책적 의지를 더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개발의 효율성을 내세워 사업을 밀어붙이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사회 경제 환경의 통합적 개념인 지속가능성의 시대다.

    도시를 발전시키고자 꿈꾸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성급하게 임기 내에 성과를 내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낙후된 강북의 진정한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역 여론을 충분히 수용해 종합적 계획의 틀을 짜야 한다.

    무엇보다 과거의 각종 막개발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계획철학을 바탕으로 친환경적 개발에 초점을 맞추되, 지역 주민들의 사회 경제 환경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지역균형개발을 도모해야 한다.

    단순히 물리적 환경개선에 치중한다면 가진 자 중심의 투기장으로 전락하거나, 뉴타운지역 원주민들을 외곽이나 경기도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모든 문제들을 차분히 풀어가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합의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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