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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 르포

굶주림에 체면조차 내던진 ‘하늘의 제왕’

장단반도 독수리들의 고달픈 겨우살이

  • 글: 김진수 jockey@donga.com

굶주림에 체면조차 내던진 ‘하늘의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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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에 체면조차 내던진 ‘하늘의 제왕’

돼지 간을 받아 먹는 탈진한 독수리(작은사진). 독수리들과 까치. 덩치의 차이가 엄청나다.

한국에서 월동하는 독수리들이 장단반도만 찾는 건 아니다. 이 곳 파주를 비롯 강원도 화천·철원·양구·고성 등 DMZ 인근에 모두 850여 마리가 흩어져 겨울을 난다. 이는 2000년 1월 최초로 실시한 국내 월동 독수리 개체수에 대한 전국 동시 센서스를 통해 밝혀진 837마리에 근거한 수치다.

타 지역보다 장단반도에 독수리들이 유독 많은 까닭은 2001년 11월 보호구역을 설치해 정기적으로 먹이를 공급해주기 때문. 2001년 초까지만 해도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가 최적의 월동지로 꼽혔지만, 먹이 찾기가 쉽잖아 폐사 개체수가 늘어나자 부득이 독수리들의 ‘집결’을 인위적으로 유도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독수리 먹이 공급을 위해 2002년 처음으로 파주 지역에 750만원을 지원했다. 이날 독수리들이 먹던 젖소와 돼지도 2002년 12월1일 먹이주기 행사 때 준 것이다. 당시 함께 제공했던 닭 1000마리는 깃털만 흩날릴 뿐,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당초 취재팀은 독수리들의 ‘일거수(편의상 날개 대신 손이라 하자) 일투족’을 관찰할 심산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인간과 독수리의 공통 분모를 찾아보려 했다. 결과는 기대 이하.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한국에서 월동하는 독수리의 대다수는 생후 1년이 채 안 된 유조(幼鳥). 드물게 2년생 아성조(亞成鳥)도 있지만 대개 그해 3월경 태어난 놈들이다. 사람으로 치면 태어나 10개월도 안 된 젖먹이다. 자연히 유조들의 행동거지가 성조(成鳥)에 비해 단조로울 수밖에. 통상 4∼5년 된 독수리를 성조로 치니, 독수리라고 다 같은 독수리는 아닌 것이다.



게다가 월동지는 ‘휴양지’일 뿐 번식지가 아니다. 번식지라면 암수의 사랑놀음이나 권력 암투 등 스토리가 넘칠 법하건만, 월동지에서 접하는 독수리의 요모조모는 지극히 단순하다. 오랜 비행에 지쳐 몸 누이기에 정신없는 녀석들이 취재팀을 위해 특별히 ‘버라이어티쇼’를 벌여줄 것 같지도 않다.

결식(缺食) 독수리들

머리가 벗겨진 놈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의 ‘상식’대로라면 이런 게 아니잖은가. 이 역시 유조이기 때문. 검은 털 송송한 유조는 성조가 되면서 뒷목과 정수리의 털이 벗겨진다. 성조는 유조의 검은 빛깔과 달리 몸깃의 빛깔이 암갈색이다. 대머리는 짐승 창자를 특히 좋아하는 독수리의 식성을 고려한 조물주의 배려. 사체에 머리를 깊숙이 박고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독수리는 동물의 사체를 먹는다. 녀석들은 매나 다른 수리류처럼 사냥을 할 줄 모른다. 또 불에 탄 동물의 고기도 먹지 않는다. 때문에 번식지든 월동지에서든 놈들의 먹이는 언제나 부족하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체를 독수리가 쪼아먹게 하는 티베트의 전통 장례의식 ‘천장(天葬)’ 풍습도 이런 독수리의 식습관과 관련 있을 것이다.

어쨌든 독수리에 관한 이런 사실들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언론의 오보도 잦다. 흔히 각종 기사에서 독수리를 ‘대머리독수리’ ‘검독수리’ 등으로 오기(誤記)하는 경우가 적잖은데, 이는 명백히 오류다. 독수리의 ‘독’은 ‘대머리 독’(禿)자. ‘독수리’에 이미 ‘대머리’란 뜻이 포함돼 있는데 ‘대머리독수리’라니. ‘역전(前)앞’ ‘처가(家)집’식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독독(禿禿)수리’가 되는 셈이다.

검독수리로 혼동해서도 안 된다. 검독수리(Golden Eagle)란 종(種)은 따로 있다. 물론 이놈도 독수리와 마찬가지로 수리과(科)에 속한다. 참수리, 흰꼬리수리, 물수리, 초원수리 등이 모두 수리과에 속한 종들이다. 그러나 검독수리는 독수리와 딴판으로 사냥의 천재. 여우나 늑대까지 채간다고 한다. 어릴 적 곧잘 듣곤 했던, “독수리가 아기를 채간다”는 말의 장본인이 바로 이놈이다. 반면 독수리의 영문 표기는 ‘Black Vulture’다.

오후 4시. 별다른 여운도 남기지 않은 채 한 마리도 남김없이 다 날아가버렸다. 아마 지금쯤 장단반도 인근 적성면 일대의 하늘엔 독수리들이 적잖이 날고 있으리라. 배를 채운 독수리들은 해질 무렵이면 하나둘씩 인근 산으로 날아간다. 그리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소나무 가지 위나 아래서 몇 마리씩 잠을 청한다. 아는 사람만 아는, 독수리들의 잠자리 위치는 여간해서 외부로 노출되지 않는다. 행여 독수리들의 수난이 가속화할 게 우려돼서다.

아무튼 텅 빈 벌판에 철 지난 허수아비처럼 서 있긴 뭐했다.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 싶더니…. 별 수 없다, 일단 철수. 멀리서 지뢰 터뜨리는 굉음만 “꽝꽝” 울려퍼진다. 곧 해가 질 것이다. 그리고 겨울밤도 절정으로 치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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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진수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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