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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탈북 막기 위한 北 보위부의 유인공작

김동식 목사 납북사건의 진상

  • 글: 이정훈 hoon@donga.com

집단 탈북 막기 위한 北 보위부의 유인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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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탈북 막기 위한 北 보위부의 유인공작

이춘길씨가 2000년 1월16일 김동식 목사 납치에 가담했다고 밝힌 북한 보위부 공작조와 협조자 명단

‘사람’그 자체로서의 김목사는 순탄한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 경남 출신인 그는 부산의 고려신학교를 나와 장로교 학생신앙단체인 SFC(Student For Christ) 경남지방위원장을 지냈다. 그후 목회활동을 하며 결혼해 1남1녀의 아버지가 되었는데 1986년 부인과 함께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부인은 사망하고 그는 오른쪽 대퇴부를 크게 다쳐 인공뼈를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후 그는 지팡이에 의존해 걸음을 옮기는 장애인이 되었다.

장애인이 된 후 김목사는 장애인 같은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돕는 데 헌신했다고 한다. 이 시기 김목사는 사고로 부모를 잃은 2남2녀를 입양해 그의 자녀는 3남3녀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때 입양한 아들 중의 한 명이 2000년 1월 옌지의 사랑의 집에서 머물다 김목사의 실종을 신고했던 김아론군이다. 얼마 후 김목사는 전도사로 활동해온 정영화(전도사로 중국에서 활동할 때의 이름은 주양선)씨와 재혼했다.

김목사는 비록 장애인이 되었지만 뭔가 일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셔서 견디지 못하는 열혈남이었다. 반면 정영화씨는 초등학교 교사를 하며 신앙생활에만 몰두해온 조용한 여성이었다. 이 시기 김목사는 재래시장에서 작은 수레를 밀며 행상을 하는 장애인들을 비닐하우스에 모아놓고 돌보고 있었다. 장애의 몸으로 장애인을 돌보는 김목사를, 내성적이지만 신앙심이 강한 정영화씨가 열심히 도왔다. 정씨는 학교를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까지 들고 가 김목사를 도왔다.

이러한 신앙심 때문에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고 아들 하나를 낳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자 김목사는 중국 선교를 염두에 두고 서울에 온 중국 선수단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것이 인연이 돼 김목사는 중국의 초청을 받아 중국의 장애인을 돕는 선교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1990년 한국국제장애인문화교류협회 회장 자격으로 처음 중국을 방문했던 김목사는 이듬해에는 한국에서 교회 헌금을 통해 소 85마리를 구입해 중국 농촌의 장애인들에게 기증했다. 1994년에는 휠체어를 구입해 중국의 장애인들에게 기증했고, 중국의 여성 장애인인 장혜덕(여)씨의 책을 한국에서 팔아주기도 하며 중국 장애인을 돕는 데 열성을 다했다.

이렇게 중국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 선교활동을 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중국을 떠도는 탈북자 문제를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북한 선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김목사의 가족은 모두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가 사별한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남매는 신학교를 마치고 미국에서 공부하다 미국인과 결혼해 미국 시민권자가 되었다.

한국 교회는 이것저것 따지는 습성이 있지만 미국 교회는 관대한 측면이 있다. 어려운 사람을 돕자고 하는 헌금도 한국 교회보다는 미국 교회에서 훨씬 더 수월하게 이루어진다. 중국과 북한 선교를 보다 원활히 하려면 미국 교회의 지원을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김목사 부부는 첫 번째 부인이 낳은 자녀의 초청으로 미국에 건너가 영주권을 얻었다.

이후 김목사 부부는 미국과 한국 교회를 오가며 마련한 돈으로 중국에 들어가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선교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김목사가 본격적으로 북한 선교를 시작한 것은 1995년이었다. 김목사는 한국과 미국 교회에서 마련한 옷을 전달하며 북한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북한인들과 자주 접촉하게 되었다.

애틀랜타 올림픽서 북 선수단 지원

1996년 마침 김목사가 거주하던 미국 애틀랜타에서 올림픽이 열리게 되었다. 북한은 한인근 국가체육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24명의 선수단을 포함해 60여 명을 파견한 상태였다. 김목사는 애틀랜타 올림픽을 북한에 더욱 가까워 질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다. 당시 선수촌에 입주한 24명의 북한 선수단을 제외하고 나머지 임원은 호텔에 숙박해야 할 처지였는데, ‘주머니가 얇아’ 고민이 많았다.

이러한 사정을 안 김목사는 한인(韓人)교회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북한 선수단 지원 운동을 벌였다. 그리하여 29일간 집 한 채를 빌려 북한 임원의 숙소로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고 빨래까지 해주게 되었다. 이러한 일은 그의 부인이 앞장서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훗날 북한 체육성 부상(副相)이 된 장웅(張雄·65) 등 북한 체육계의 요인들은 진심으로 김목사 부부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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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훈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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