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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분석

왜 지금 국사 해체론인가

단일민족 신화, 민족국가 열망에 대한 ‘도발’

  • 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hmzip@donga.com

왜 지금 국사 해체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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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사(國史)는 억압, 배제, 은폐의 기제이므로 해체해야 한다.
  •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이 ‘국사의 해체를 향하여’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내걸고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과연 ‘국사 해체’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자, 동아시아 연대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왜 지금 국사 해체론인가

2001년 7월 ‘일본 교과서 바로잡기 운동본부’가 개최한 일본의 역사교과서 재수정 거부를 규탄하는 집회

“국사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각인된 내셔널 히스토리는 사실상 ‘민족국가를 위한 변명’이었다. 그것은 민족국가를 역사발전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가장 자연스러운 정치조직이라 믿게 만들고 또 정당화했다. 개개인이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겪은 고통과 절망, 기쁨과 희망은 민족의 고난과 영광이라는 민족 서사에 가려 설 땅이 없었다.”(‘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 한국 공동대표 이영훈, 임지현)

국사는 억압, 배제, 은폐의 기제이므로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국사학계를 강타했다. 8월21일 ‘비판과 연대를 위한 역사포럼’(이하 역사포럼)이 주최한 공개토론회는 ‘국사의 해체를 향하여’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내걸었다. 북한의 핵 도발과 미국의 군사적 위협, 일본의 우경화와 재무장화, 동아시아에서의 헤게모니 복원을 시도하는 중국 등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제기된 ‘국사 해체론’인 만큼 논쟁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한·일 민족주의는 적대적 공범관계

이 논쟁을 이끈 ‘역사포럼’은 일국사적 민족주의 역사학을 비판하며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2000년 1월 결성됐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한국경제사), 임지현 한양대 교수(서양사), 도면회 대전대 교수(한국근대사), 박환무 한양대 강사(일본근대사),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한국고대사), 이와사키 미노루 도쿄외대 교수(정치사상사),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 교수(한국근대사)를 중심으로 한·일 역사학자들이 지난 4년 동안 4차례의 한·일 워크숍과 15차례 국내 세미나를 통해 꾸준히 논의를 발전시켜 왔다. 대중 공개토론회는 이번이 처음. 포럼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임지현 교수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이 ‘국사 해체’ 논의의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2000~2001년에 걸쳐 일본 우익계가 만든 역사교과서로 인해 파문이 이어졌을 때 한국정부가 나서서 항의하고 시민들이 규탄대회를 여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비판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옳고 당신들은 틀렸다는 식은 곤란하다. 오죽하면 일본의 우파언론인 ‘산케이신문’이 한국의 국사교과서를 본받으라고 했겠나.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든 주체나 한국의 비판주체는 민족적 정체성의 확립과 국민 만들기라는 동일한 역사관을 공유하고 있다.”

임교수는 한국의 국정교과서와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는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서로를 배제하고 타자화하고 겉으로는 첨예하게 충돌하지만 결국 민족주의라는 같은 토양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2002년 ‘당대비평’ 특별호 ‘기억과 역사의 투쟁’에서 일본이 우리의 수정요구를 일부 받아들인다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했다.

“사실이 바로잡힌다 해도 일본이라는 민족국가의 ‘정사(正史)’가 중국 또는 한국이라는 민족국가의 ‘정사’와 부딪치고 충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근·현대사의 해석에 드리워진 군국주의적 역사관의 망령을 거두어버린다 해도 발해사와 고구려사를 둘러싼 중국 ‘정사’와 한국 ‘정사’의 갈등은 참으로 해소되기 어려운 것이다.”

실제로 2001년 후쇼샤판 역사교과서의 채택률이 0.1%에도 못미치자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교과서 채택 결과가 외국의 압력과 시민단체들의 활동으로 왜곡됐다”며 “4년 후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별렀다. 한편 교과서 파동으로 일본의 각급 학교가 우익 교과서의 채택을 꺼린 만큼 좌파 교과서도 외면해 어부지리로 중립적 교과서들의 채택률이 높아지는 결과가 초래됐다. 좌파 교과서는 정신대 문제를 비롯,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에서의 가해행위를 비교적 자세히 기술하고 있어 우파로부터 ‘자학사관’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대해 도쿄대 강상중 교수는 “우와 좌의 극단을 배제하고 중(中)을 취한다는 것은 국가와 국민에게 좋지 않았던 역사의 기억을 물타기해서 망각시키는 긴 호흡의 ‘역사수정주의’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일본 우파의 승리인 셈이다. 임지현 교수는 “한국의 민족주의와 일본의 민족주의가 적대적 포즈를 취하는 듯하지만 결국은 공범자”라며 “내셔널 히스토리의 틀을 고수하는 한 이런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예 그 틀을 깨자는 것이 국사 해체”라고 설명했다.

이번 토론회에는 탈식민주의 역사학과 민족주의 역사학에 대해 각자 다른 입장을 지닌 3개국(한·미·일) 5명의 연구자가 패널로 참가했다. 먼저 ‘국사로부터의 해방을 위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한 서울대 이영훈 교수는 “한국인이 유사 이래 혈연·지역·문화·운명·역사의 공동체로서 하나의 민족이었으며, 높은 수준의 문명을 건설했고, 조선왕조에 이르러서는 서유럽의 근대국가 못지않은 공공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췄으나 그만 20세기에 들어와 일제의 침략과 수탈에 의해 망가졌다는 식의 역사 인식 자체가 신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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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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